단재학교와 광진Iwill 콜라보 5
살다 보면 굽이굽이에 우리가 전혀 예측하지도 못했지만 어마한 일이 숨어 있기도 하고, 하나의 작은 일들이 계기가 되어 엄청난 일로 비약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일이 일어나기 전엔 절대로 알 수 없고, 이미 일어난 후에만 그렇게 정리할 수 있을 뿐이다.
영화와 드라마를 보다 보면, 오프닝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멘트가 있다. 이 멘트는 지금까지의 삶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는 뜻을 담고 있고, 여태껏 한 번도 생각해보거나 예측한 적이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는 뜻을 담고 있다.
2007년에 방영된 『얼렁뚱땅 흥신소』에선 동굴에 갇힌 사람들 중 한 명이 그토록 황당한 상황을 돌아보며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라고 말하면서 시작하고, 2008년에 방영된 『베토벤 바이러스』에선 음대를 졸업하고 시청 공무원이 된 주인공이 그럴듯한 프로젝트 오케스트라를 만들어 공연을 하려 했지만 사기를 당해 오합지졸인 오케스트라를 꾸리면서 ‘난 그때까지만 해도 그 일이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줄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라고 속말을 하며 시작한다.
이 두 말은 삶에 대해 숨겨진 비밀을 알려준다. 삶은 누구도 예측한 대로 살 수 없다는 것이고, 알지 못해 불안할지라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이 계기가 되어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을지, 어떤 일로 상황이 급속하게 흘러갈지 아무도 모르는 채 주어진 현실을 뚜벅뚜벅 걸어가야만 한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좋은 감정으로 시작한 일이 안 좋은 결과로 끝나기도 하고, 그 반대 상황이 되기도 한다.
어느 날 하필 ‘좀비어택’이란 카드 게임을 만들게 되었고, 그날 미경쌤이 ‘아이디어 발표대회’라는 소스를 줌으로 얼떨결에 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물론 여기까지는 아무런 문제도 없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이 대회가 우리를 사정없이 흔들어 놓을 줄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열심히 발표대회를 준비했고, 꿈틀이 축제 때엔 발표자인 규빈이를 위해 한 마음으로 응원을 하며 리허설을 했다. 규빈이의 발표는 깔끔했고 명료했다. 왠지 이런 상황이면 상위권에 들 것 같은 느낌이 물씬 들었다. 아이들이 함께 만든 카드게임의 아이디어는 각별했고, 발표도 잘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우린 ‘최우수상’을 받았고, 그게 엄청 좋아서 서로를 둘러보며 함께 축하해줬다.
현모양처 단재팀은 지원서 상엔 4명만 팀원인 것처럼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7명이 팀원이다. 처음부터 7명이 함께 모여 의견을 모으며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지원서엔 4명만 이름을 올릴 수 있도록 되어 있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것이다.
그런데 막상 4명만 이름을 올리고 나니, ‘4명만 참가하는 것으로 할까?’라는 생각도 들더라. 대회에선 발표하는 7명이 모두 필요한 게 아니라, 4명이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말을 듣고 규빈이는 “그래도 처음부터 함께 만들었는데, 이제 와서 4명만 한다고 하면 나머지 아이들이 상처를 받을 거예요. 그러니 모두 다 함께 하는 것으로 해요”라고 꼭 짚어서 얘기해주더라. 규빈이의 배려심을 느낄 수 있던 순간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우여곡절을 거쳐 우린 7명으로 구성된 팀이 되었다.
여기까지는 정말 좋았다. 게임을 만들 때도, 그리고 발표 자료를 만들 때도, 카드를 직접 제작할 때도 서로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함께 해나가는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와 단결력을 옆에서 지켜보는 맛도 쏠쏠했고 교사가 된 보람을 느끼기에도 충분했다. 그런 상황에서 결국 최우수상이란 벅찬 상까지 받았으니, 더 이상 무엇을 바라랴.
하지만 상금을 배분하는 것이 문제였다. 서로 축하해주는 그 상황 속에서 누군가는 “이제 상금을 나눠볼까요?”라고 불씨를 당겼다. 막상 상금 얘기가 나오니 축하해주던 마음은 금세 사라지고, 흥분은 가라앉고 말았다. 영화 『타짜』의 대사처럼 ‘싸늘하다.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히는 느낌이었달까. 이런 축하의 자리에서 막상 돈 얘기를 하다보면 아귀다툼이 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에, “상금 배분은 다음 주에 학교에서 얘기할 테니, 여기선 그 얘긴 꺼내지 말자”라고 일단락을 지었다.
막상 상금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서 생각해 보니, 이것이야말로 축복이라기보다 저주란 생각이 들더라. 자칫 잘못하면 그렇게 합심하여 함께 웃고 즐기며 발표대회를 준비했으면서도, 상금을 배분하면서 서로 관계가 영영 틀어지게 될 지도 모른다. 서로 좋자고 한 일인데도 결과적으로 서로 안 좋아지는 상황까지도 이를 수 있으니,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고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기 시작했다. 여기서 내가 제대로 중재하지 않으면, 오히려 아무 것도 안 한 것만도 못하게 되니 말이다.
이건 어찌 보면 사람의 욕망과 관련이 있다. 돈은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좋고, 절대적인 만족이란 게 있을 수 없기에, 돈 앞에선 누구도 욕망의 화신이 되고 마는 것이다. 재벌 자식들의 재산 다툼이 그렇고, 로또 1등에 당첨되고 폐륜 아들이 된 사건이 그렇다. 그런데 이건 결코 자본주의 사회에서만 볼 수 있는 모습은 아니다. 1530년에 만들어진 『신증동국여지승람』이란 책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실려 있기 때문이다.
고려 공민왕 때에 형제가 살고 있었다. 함께 길을 걷다가 동생이 황금 두 덩어리를 발견하여 (자신이 한 덩어리를 갖고 나머지) 한 덩어리는 형에게 주었다.
공암진(강서구 개화동의 나루터)에 도착하여 함께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는데, 동생이 문뜩 강에 황금을 던져 버리는 것이다. 형은 (그 행동을) 괴이하게 여겨 까닭을 물으니, 동생은 “저는 평소에 형을 아끼는 마음이 두터웠지만, 이제 막상 황금을 나누고 보니 홀연히 형을 미워하는 마음이 생기지 뭡니까. 그러니 이건 상서롭지 못한 물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강에 던져 황금을 잊어버리는 게 낫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 말을 듣고 형도 “자네의 말이 진심으로 옳구만.”이라 말하고, 또한 강에 황금을 던져 버렸다.
高麗恭愍王時, 有民兄弟. 偕行, 弟得黃金二錠, 以其一, 與兄. 至孔巖津, 同舟而濟, 弟忽投金於水. 兄怪而問之, 答曰:“吾平日, 愛兄篤, 今而分金, 忽萌忌兄之心. 此乃不祥之物也, 不若投諸江而忘之.”
兄曰:“汝之言, 誠是矣.” 亦投金於水. 『新增東國輿地勝覽』
가지고 있는 돈이나 권력이 시기심을 불러일으킨다고 해서, 그걸 버려야겠다고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도 이 형제는 더 많이 갖기를 바라기보다 형제의 우애를 위해 아예 버리는 쪽을 택했으니, 충분히 미담으로 남을 만하다. 그때의 내 심정도 솔직히 상금을 버리고 싶었다. 그러면 이런 식으로 바짝 긴장하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실제로 그 다음 주가 되어 학교에 가니, 아이들은 벌써부터 상금 배분 문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누가 좀 더 많이 했고, 적게 했고를 따지며, 어떻게 나눠야 하는지 설왕설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바로 ‘배분 문제’를 얘기하는 건 불난 집에 기름 껴 얹는 경우처럼 느껴졌기에, 좀 더 미루기로 했다. 어떻게든 마음이 누그러질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상금은 토요일에 받았지만, 상금 배분을 위한 회의는 그 다음 주 목요일에 진행하게 되었다. 아이들이 그냥 얘기하게 하면 서로의 감정을 건드리고 비아냥댈 수도 있기 때문에, 그 기간 동안 나도 여러 방안을 생각해봤다. 그때 만든 방안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 상대방을 비난하지 말며 자기 이야기만 해야 한다. 자칫 상대방의 기여도 정도를 평가하기 시작하면 서로 감정을 상하게 하고, 그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 우리가 드라마에서 흔히 보는 ‘막장 스토리’처럼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대한 상대방을 배려하며 자기의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이다.
둘째, 건빵 판단 하에 상대방을 비난한 횟수가 세 번이 될 경우 발언권이 사라진다. 이런 자리일수록 자기의 의견을 말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그러니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게 된다는 건, 엄청난 리스크일 수밖에 없다. 상대방에 대해 좀 더 배려하며 말할 수 있도록 이런 조항을 뒀다.
셋째, 서로가 납득할 만한 결론이 나지 않으면 다음 회의로 미뤄지며, 결론이 날 때까지 회의는 무한정으로 열린다. 지금 당장 결론을 내야할 필요는 없었기에, 최대한 시간을 두고 모두가 받아들일 만한 결론을 만들어가기로 했다.
이런 조항들은 하나의 기술적인 접근일 뿐이다. 아무리 만들었어도 이걸 지키려 하지 않으면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게 되고 만다. 결국 기술적인 접근보다 아이들의 서로를 배려하는 성숙한 마음이 이 회의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일은 과연 어떻게 전개될까?
드디어 ‘제1차 상금 배분 위원회’가 열렸다. 시작하자마자 이 회의의 성격에 대해 간단하게 알려줬고, 세 가지 조건을 말해줬다. 평상시엔 다들 말도 많고 장난을 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시작될 텐데, 이땐 상황이 상황이어서 그런지 분위기는 무겁게 짓눌려 있었다. 역시 아이들은 한 없이 어리고 철이 없을 것만 같아 보여도, 이럴 때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상황에 따라, 환경에 따라 카멜레온처럼 자기의 상을 바꿔가며 적응하고 있는 것일 뿐이니 말이다. 우치다쌤이 말한 ‘낡은 목조 건물’이란 비유로 한 사람 안엔 다양한 자아가 있다고 표현한 말이 사실이라는 걸 이런 장면에서 여실히 알 수 있다.
솔직히 막상 회의를 시작하면 아무리 기술적인 틀을 만들어 놓았다 할지라도, 서로 언성을 높이며 ‘니가 잘했네, 못했네’라고 싸울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기분이 매우 좋게도 나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다. 아이들은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성숙했고, 서로를 배려하며 말할 수 있는 자세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누구 하나 목소리를 높이는 아이는 없었다. 어른의 세계에선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라는 말이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니 교통사고가 나더라도, 서비스센터에 찾아가더라도 무작정 소리부터 지르며, 애석하게도 또 그런 사람에게 좀 더 잘해주기도 한다. 분명 아이들도 그걸 알고 있겠지만, 이 순간만큼은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언성도 높이지 않고 함께 조곤조곤 이야기를 하며 방향을 잡아가고 있으니, 굳이 내가 개입하여 상황을 정리할 필요도 없었다.
회의는 40분 만에 끝났다. 누구 하나 소리 지르는 사람은 없었고, 감정이 상할 만한 일도 없었다. 발표대회의 기여도를 정할 때, 기여도에 따라 상금을 얼마로 할지를 정할 때 약간의 갈등은 있었지만, 그때에도 아이들은 슬기롭게 해결해 나갔다. 서로의 의견을 묻고 한 명이라도 못마땅하게 생각하면 그걸 처음부터 다시 검토했다. 다수결이라며 폭력적으로 분위기를 몰아가지 않고 소수의 의견을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 고민한 것이다. 그러니 시간은 좀 더 걸렸지만, 누구 하나 소외되지 않고 회의에 참석할 수 있었고 각자의 의견을 편하게 말할 수 있었다. 그러니 회의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아이들은 한결 차분해져갔고, 분위기는 더욱 화기애애해져갔다.
이쯤 되니 ‘솔직히 상금을 버리고 싶었다’는 말은 취소하고, ‘오히려 거금의 상금을 받은 덕에 아이들의 성숙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라는 말로 바꾸고 싶다.
욕심 앞에선 어른이나 아이가 따로 없다. 그러니 뉴스에서 돈 앞에 한없이 추해진 어른들을 쉽게 볼 수 있지 않은가. 결국 그 사람의 성숙도는 ‘그런 욕심 앞에서 어느 정도 욕심은 내려놓을 수 있느냐, 그러면서 서로를 얼마나 배려할 수 있느냐?’하는 것으로 알 수 있다. 그만큼 소탐대실하지 않고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난 이번 일을 통해 아이들에게서 그런 희망과 가능성을 봤다. 그리고 이건 어떤 학교 교육으로도 배울 수 없고 경험해볼 수 없는 산교육의 장이었기에 더욱 각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제3회 꿈틀이 축제는 우리에게 단합과 영광, 그리고 성숙까지 선물 보따리를 한 아름 안겨주고 막을 내렸다.
목차
사전적 지성으로 배워왔다
그렇다면 이제부턴 사후적 지성으로 배우라
광진iwill센터와의 인연을 통해 사후적 지성을 느끼다
2016년 꿈틀이 축제, 그 현장으로
제2회 꿈틀이 축제의 기억
마침내 건빵이 꿈틀이 축제에 참석하다
아이디어 발표회 현장 스케치
현모양처 단재팀, 최우수상을 수상하다
‘좀비어택’은 시작은 어땠나요?
‘좀비어택’ 이렇게 탄생했다
발표한다는 부담이 앞을 가로막네
아이디어 발표대회에 당당히 선, 현모양처 단재팀
전문가만이, 교원자격증을 지녀야만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다?
반보 뒤에 서서 함께 가는 존재로서의 교사
『DREAM』은 김민석 감독 작품이 아닌 오현세 감독 작품이었다?
김민석 감독이 두 번째로 메가폰을 잡게 되다
집착력과 책임감으로 영화를 만들다
모르기에 우리는 우연에 몸을 맡긴 채 살아간다
7명의 현모양처 단재팀이 최우수상을 받다
상금 배분의 문제로 골머리 썩다
상금 배분 위원회를 위한 기본 전제 마련하기
무엇을 상상했든 그 이상
제3회 꿈틀이 축제는 선물 보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