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건빵 Nov 08. 2016

모르기에 갈 뿐

단재학교와 광진Iwill 콜라보 1

요즘 천착하고 있는 주제가 ‘사후적 지성(事後的 知性)’이라는 말이다. 그 말은 곧 지금까진 매우 ‘사전적事前的 지성’으로 살아왔다는 말이기도 하다.                



▲ 작년에 아이들과 일주일 동안 함께 떠난 자전거 여행은 일반적으로 '미친 짓'이다. 하지만 해보기 전엔 모르는 것도 있다.




사전적 지성으로 배워왔다

     

‘사전적 지성’이라는 말은 어떤 일을 하기 전에 계획을 하고, 그 계획대로 실천한다는 뜻이다. 물론 이 말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계획을 하고 실천해야 되는 일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너무도 그와 같은 방식만으로 생각하고 살아왔다’는 사실이다. 

그건 무언가를 하기 전부터 ‘이걸 하고 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아는 상황’을 말한다. 하기도 전에 이걸 하고 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그리고 그게 나에게 얼마나 유용한 것인지 알 때에만 그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의 밑바닥엔 ‘등가교환의 환상’이 자리하고 있다. 



▲ 우린 등가교환의 세계에 살고 있다. 돈을 주면 그 자리에서 상품으로 교환 받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배움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아이들과 학교에서 생활을 하다 보면 아이들이 자주 하는 말들이 있다. “이걸 배우면 뭐가 좋아요?”, “배워봤자 도움 되는 게 없다고 생각하기에 하지 않을 게요”라는 말이 그것이다. 그런데 재밌는 점은 이런 식의 질문을 던지는 과목 중엔 국영수사과와 같은 주지교과主知敎科(이 단어 자체가 매우 폭력적임)는 없고, 기타와 요리, 목공, 아카펠라와 같은 특수 과목에 한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주지교과의 경우 이미 우리 사회에선 유용성이나 가치에 대해서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이걸 공부하면 대학에 갈 때 도움이 된다’, ‘남들 앞에서 무시당하지 않는다’와 같은 합의가 이미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과목은 이미 사전적으로 그 의미를 알기 때문에 너무도 당연히 배워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 올해 2월엔 학교 환경 개선으로 벽지 도배를 했었다. '벽지 도배도 교육이 된다'라고 말한다면, 과하다고 하려나?




그렇다면 이제부턴 사후적 지성으로 배우라

     

하지만 문제는 그렇지 않은 과목의 경우, ‘배워서 어떤 도움이 되는지?’, 그리고 ‘왜 배워야 하는지?’, 심지어는 ‘이런 쓸데없는 짓을 왜 해야 하는지?’ 아무 것도 알 수 없기에 아예 배우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치를 모르니까 배우지 않겠다’라는 말은 어딘가 매우 어색하다. 애초에 배움이란 존재의 역량을 키우고, 인식의 지평을 넓히며, 관계의 망을 확장하는 것이기에, 배우기 전에 배운 후에 어떤 변화가 나타날지 모르는 건 너무도 당연하기 때문이다. 



▲ 전주 한옥마을의 전경. 배우고 나면 조감적 시좌로 이륙하여 그 전에는 보이지 않던 걸 보고, 들리지 않던 걸 듣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지금이나 조선시대나 배움의 이유는 크게 다르지 않았나 보다. 그래서 정약용은 『다섯 가지 배움에 대하여(五學論)』란 글에서 “가까이 마음을 다스리고 성품을 바로잡는 것은 생각지 않고, 멀리 세상을 돕고 백성을 기르는 것은 구하지 않는다. 오직 널리 듣고 잘 기억하는 것과 글 잘 짓고 말 잘하는 것을 자랑하며 세상을 고루하다고 깔볼 뿐이다.”라고 비좁아질 대로 비좁아진 배움만이 판치는 세태를 일갈한 것이다.  

이처럼 배움은 ‘사전적 지성’으로는 결코 알 수 없고, 배울 수도 없으며 오로지 ‘사후적 지성’으로만 판단할 수 있다. 이에 대해 깊은 통찰을 보여주는 학자가 바로 우치다 타츠루 선생이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노력이라는 것을 일종의 상거래쯤으로 여기는 사람은 이 같은 시스템을 좀처럼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노력하게 만드는 이상, 노력한 이후에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사전에 보여 달라. 그러면 노력하는 데 훨씬 인센티브가 될 것’이라고 말이지요. 

그러나 이것은 엄청난 착각입니다. 원래 ‘인센티브’라는 것은 수업과는 무관한, 본질적으로 ‘반수업적’인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왜 반수업적인가 하면, 인센티브incentive(동기, 장려금, 보상, 격려 등을 의미)의 가치는 노력하기 전에 이해할 수 있는 것이어야만 비로소 의미를 가지기 때문입니다. ‘노력하면 돈을 주겠다’는 제안이 효과적인 것은, 노력하기 이전에 ‘돈의 가치’를 미리 알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수업이라는 것은 그런 게 아닙니다. 수업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란, 수업하기 전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니까요.

-『배움은 어리석을수록 좋다』, 우치다 타츠루 저, 샘터, 2015, 19쪽  


        

사전적 지성만을 부추겨 배움의 장으로 끌어들일 경우 할 수 있는 말은 “이걸 배우면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어”, “10분만 더 참고 공부하면 남편의 직업이 바뀐다”와 같은 말이다. 지금 당장 그 말을 들어도 바로 미래상을 그릴 수 있고, 그게 어떤 말인지 6살 아이도 뻔히 알만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그건 현재의 욕망을 극대화시켜, 존재의 역량을 낮추고, 인식의 지평을 좁히며, 관계의 망을 축소시키는 일에 다름 아니다. 

그러니 ‘사후적 지성’으로 널리 바라볼 수 있고, 알지 못하는 것에 몸을 맡겨 노닐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건 당장의 이득을 쫓아가는 게 아닌, 지금 당장은 납득도 되지 않지만 그럼에도 끌리기에 해보려는 마음가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려면 기지旣知(이미 알고 있는 것)에 투항해선 안 되고, 미지未知(아직 모르지만 끌리는 것)에 투신해야만 한다.               



▲ 올해 청계천에서 열린 대안교육 한마당에선 미지에 투신하는 많고 많은 청소년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광진iwill센터와의 인연을 통해 사후적 지성을 느끼다

     

길고도 길게 ‘사후적 지성’에 대해 이야기를 한 이유는 바로 광진Iwill센터(이하 광진센터)와의 인연을 말하기 위해서다. 이미 작년에 썼던 글을 통해 광진센터와의 인연에 대해 짧게 말한 적이 있다. 어찌 보면 이 글은 그 글의 후속편이라 할 수 있다. 

그때는 한 학기동안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여러 부분에서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받으며 돈독한 우정을 쌓았었다. 그렇기에 그런 내용을 풀어내본 것이다. 



▲ 작년 찬혁쌤과 아이들의 호흡은 최고였다.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받으며 두 편의 영화를 남겼다.



그러나 그 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이렇게 시작된 인연이 올해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져 더욱 스파크가 팍팍 튀고, 앎의 희열이 일렁이는 관계로 발전될 것이라는 걸 말이다. 이래서 ‘사전적 지성’으론 결코 예측할 수 없고, 오로지 믿고 함께 가보는 가운데 사후적으로만 판단 가능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작년과는 달리 올해엔 두 가지 달라진 점이 있었다. 첫째, 프로젝트 기간이 훨씬 늘었다는 점이다. 작년엔 한 학기만 진행되었기에 시간이 매우 짧아서 두 편의 영화를 제작하는 데에 모든 시간을 다 써야만 했다. 그에 반해 올핸 일 년이란 시간동안 진행되니, 서로가 레포Rapport 형성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했고 영화를 제작하는데도 디테일한 것까지 다듬으며 할 수 있었다. 

둘째, 인원이 대폭 늘었다는 점이다. 이 말을 잘못 들으면 ‘단재학교 학생들이 올해 많이 늘었나보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런 얘기가 아니라는 것을 먼저 밝힌다. 작년엔 4명의 영화팀 아이들만 이 프로젝트에 참가하여 일정을 진행한데 반해, 올핸 고2 학생들을 제외한 모든 아이들이 이 프로젝트에 참가하게 된 것이다. 7명의 아이들이 함께 떠들며 프로젝트를 진행하다보면 때론 ‘여기가 도떼기시장인가?’라는 생각도 들 정도였지만, 그래도 함께 만들어갈 수 있는 멤버들이 있다는 사실은 힘이 되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작년보다 더 활기찼고, 함께 해나가는 즐거움도 가득했다. 



▲ 작년엔 남양주종합촬영소를 갔지만, 올핸 미디어센터에 가서 5컷 영화를 찍었다.



여기에 덤으로 지도교사가 바뀌었다는 점도 첨가해야겠다. 작년엔 전찬혁 선생이 영화팀 아이들과 활동하며 환상의 케미를 보여줬다. 그런데 올핸 전찬혁 선생이 업무지원팀으로 가면서, 작년에 처음 단재학교에 올 때 왔었던 김미경 선생이 맡게 되었다. 그런데 미경쌤도 유쾌하여 에너지가 넘칠 뿐만 아니라, 아이들과 잘 어우러질 수 있는 사람이다 보니 아이들과 색다른 케미를 발산하며 한 해를 신나게 보낼 수 있었다. 이것 또한 큰 변화지만 뺀 이유는 찬혁쌤이나 미경쌤이나 오랜 시간동안 청소년들과 활동해 오신 분들이라 위화감 없이, 갈등 없이 함께 어우러지며 그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이렇듯 단재학교와 광진센터와의 만남은 우연인 듯, 필연인 듯 마주쳤고 나름의 울림을 만들어 냈다. 그 당시만 해도 찬혁쌤의 “컴퓨터, 스마트폰 중독에 관한 영화를 찍어보고 상영회를 하고 싶다”는 제안이 맘에 들어서 시작되었지만, 이렇게까지 긴 시간동안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며 관계를 이어갈 수 있을지는 꿈에도 몰랐다. 그러니 이런 모든 것은 결코 그 당시의 잣대로만 생각하여 알 수 있는 것이 아닌, 사후적 지성에 따라 알 수 있는 것이란 얘기다.                



▲ 올해는 미경쌤이 아이들과 함께 어우러지고 있다. 그렇게 우리의 시간들이 쌓여가고 있다.




2016년 꿈틀이 축제그 현장으로

     

다음 후기에선 광진iwill센터의 일 년을 마무리하는 ‘꿈틀이 축제’에 참석한 후기와 아이들이 의견을 모아 함께 개발하여 ‘아이디어 발표대회’에서 발표한 ‘좀비어택’이란 보드게임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민석이가 제작한 ‘DREAM’이란 영화에 대해 이야기해보도록 하겠다. 

결과적으로 우린 ‘꿈틀이 축제’에 아이디어 발표회와 영화 상영회, 두 가지 순서에 참여하게 되면서 얼핏 보면, ‘올해 초부터 계획하고 열심히 준비했겠구나’라는 인상을 남기게 했다.





하지만 “애초에 우린 아무 생각이 없었고, 그저 미경쌤을 따라 열심히 활동을 했던 것뿐이다. 그러다 자연히 영화를 찍게 됐고, 하필 그날 만들기 시작한 보드게임을 보고 미경쌤이 ‘아이디어 발표대회’라는 중요한 소스를 줘서 얼떨결에 참석하여 발표하게 됐던 거다. 계획이 아닌 흐름이 있었을 뿐이다”라고 과감히 말할 수 있다. 



▲ 아주 기고만장해 있다. 하지만 전혀 기고만장해 보이지 않는다. 가장 기쁜 순간을 함께 기뻐할 수 있는 것도 중요하니 말이다.




목차     


1. 모르기에 갈 뿐

사전적 지성으로 배워왔다

그렇다면 이제부턴 사후적 지성으로 배우라

광진iwill센터와의 인연을 통해 사후적 지성을 느끼다

2016년 꿈틀이 축제, 그 현장으로     


2. 3회 꿈틀이 축제에 가보자

제2회 꿈틀이 축제의 기억

마침내 건빵이 꿈틀이 축제에 참석하다

아이디어 발표회 현장 스케치

현모양처 단재팀, 최우수상을 수상하다

  

3. ‘좀비어택’ 카드게임을 만들다

‘좀비어택’은 시작은 어땠나요?

‘좀비어택’ 이렇게 탄생했다

발표한다는 부담이 앞을 가로막네

아이디어 발표대회에 당당히 선, 현모양처 단재팀

  

4. 단재학교 영화팀 5번째 작품제작기

전문가만이, 교원자격증을 지녀야만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다? 

반보 뒤에 서서 함께 가는 존재로서의 교사

『DREAM』은 김민석 감독 작품이 아닌 오현세 감독 작품이었다?

김민석 감독이 두 번째로 메가폰을 잡게 되다

집착력과 책임감으로 영화를 만들다

 

5. 돈 돈 돈, 그것이 문제로다

모르기에 우리는 우연에 몸을 맡긴 채 살아간다

7명의 현모양처 단재팀이 최우수상을 받다

상금 배분의 문제로 골머리 썩다

상금 배분 위원회를 위한 기본 전제 마련하기

무엇을 상상했든 그 이상

제3회 꿈틀이 축제는 선물 보따리

매거진의 이전글 교사는 전문가여야만 할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