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재학교와 광진Iwill 콜라보 3
그럼 이제부터 ‘좀비어택’이란 게임의 탄생 비화를 들어보도록 하자. 어찌 보면 이건 첫 번째 후기에서도 밝혔다시피 ‘우연하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어서’, ‘그냥 하고 싶어서’ 시작되었다고 보는 게 맞다. 그래서 단재학교에서 유행어가 된 ‘밑도 끝도 없이’ 만들어진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작년부터 일주일 중 3시간을 아이들이 직접 만들어가는 시간인 ‘우리끼리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이 수업은 ‘학생들의, 학생들을 위한, 학생들에 의한 수업시간’이라 할 수 있다. 학기가 시작되면 학생들끼리 회의를 하여 한 학기 동안 하고 싶은 것, 그리고 했으면 하는 것을 정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했던 수업들은 단재웹툰 만들기, 팀별로 궁금한 내용을 조사해서 발표하기, 단재학교 티셔츠 디자인하기, 캐릭터 보고 따라 그리기 등의 다채로운 활동들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1년이 넘게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아이들도 아이디어가 떨어졌고, 늘 하던 것(영화보기, 그림 그리기)만을 그저 하던 대로 하자는 의견이 나오기에 이르렀으며, 그로 인해 이 시간 자체가 지지부진한 시간이 되어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건 지금까지 해왔던 활동을 이어서 하는 것이 아닌, 좀 더 색다른 것을 생각해보고 해보는 것이다. 그래서 2학기 시작과 함께 회의를 할 때, “이번 학기는 지금까지 해보지 못한 것을 중심으로 생각해보고 그걸 수업 시간에 해보자”고 전제를 달았던 것이다.
그러자 봇물 터지듯 정말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다. “팀별로 색종이 접기를 해서 거대한 조형물을 만들어보자”라던지, “그림책을 만들어보자”라던지, “다과회를 하며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눠보자” 등등의 의견이 나온 것이다.
역시 이런 상황을 통해 볼 때마다 우치다쌤의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부터 말하고 싶은 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도중에 말하고 싶은 게 만들어진다’는 통찰이 얼마나 탁월한 것인지 알게 된다. 아마도 누구도 회의를 시작하기 전부터 ‘이런 계획을 말해야지’라고 생각하는 아이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평소에 ‘이러 이러한 것을 하고 싶다’고 생각해왔던 아이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그런 자리가 마련이 되고,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하다 보니 말에 말이 덧붙여지며, 여러 의견들에 자신의 생각을 첨가하며 이런 다양한 의견들이 만들어졌으니 말이다. 어찌 보면 급조됐다고도 할 수 있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만큼 자연스런 분위기속에서 계획이 만들어졌다고도 할 수 있다. 이렇게 팍팍 튀는 여러 아이디어 속에 바로 바로 ‘보드게임 만들기’가 있었고 그 덕에 우린 완전히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었다.
‘보드게임 만들기’는 10월 4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막상 ‘보드게임 만들기’라는 주제로 시작하긴 했지만, 난처하긴 매 한가지였다. 카드 형식의 게임을 만들건지, 블루마블 형식의 게임을 만들건지, 젠가 형식의 게임을 만들건지 아무 것도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제한된 선에서 무언가를 만드는 것은 쉽지만, 아무런 지침도 없이, 아무런 틀도 없이 만드는 것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한계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에 다양한 것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아도, 오히려 사람은 그럴 경우 너무도 혼란스러워 시작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느 정도의 틀은 필요하다.
아이들은 열띠게 토론을 했고 결국 카드 형식의 게임을 만들기로 했다. 그리고 여기에 요즘 『부산행』이란 영화로 핫한 ‘좀비’라는 소재를 얹기로 했다. 아무래도 여학생들은 겁도 많고 무서움을 많이 느끼면서도 짜릿한 쾌감 때문인지 ‘공포’를 무지 좋아한다. 그래서 학교에서 여행을 가면 꼭 ‘공포체험’을 하려하고, 영화를 볼 때에도 꼭 ‘공포영화’만 보려 한다. 오죽했으면 최근에 롯데월드에선 좀비특집을 했는데, 색다른 경험이라며 거기에도 갈 정도이니 말이다. 이런 상황이니 공포가 카드게임에 반영될 것은 뻔하디 뻔한 거였다. 이쯤에서 주제는 ‘좀비가 이기냐, 사람이 이기냐 그것이 문제로다’라 할 수 있다.
드디어 아이들의 두뇌가 풀가동되기 시작했다. 그래도 무언가를 만들어 간다는 느낌은 나쁘지만은 않다. 거기엔 ‘창조성’이란 인간의 욕망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모래사장에 나가보면 아이들은 모래에 손을 넣고 두꺼비집을 만든다. 그건 머지않아 바람에 부서질 것이고, 파도에 씻겨 흔적도 없이 사라지지만 아이들은 전혀 속상해하지 않고 계속해서 두꺼비집을 만들고 부수고를 반복한다. 어른의 관점으로 보면 ‘참 의미 없는 짓’이라 단정 지을 테지만, 이것이야말로 인간의 창조성을 가장 극명히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부서질지라도 한낱 의미 없는 게 될지라도, 끊임없이 만들고 싶어 하는 마음이, 그 하나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처럼 카드게임의 아이디어를 내야 하는 그 순간 아이들은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을 테지만, 무언가를 만든다는 뿌듯함에 표정은 해맑았다.
그런 시간들을 함께 보내며 전체적인 틀을 갖추게 되었고, 종이를 찍어 약식으로 카드까지 만들었다. 막상 게임을 해보니, 나름 전체적인 룰은 꽤 그럴듯하더라. 나름 무기로 좀비를 죽이는 맛도 있고, 좀비가 되어 사람들을 감염시키는 맛도 있어, 긴장감이 넘쳤으니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두 사람이 남았을 때 긴장도는 현격히 떨어지고 시간은 지지부진 길어진다는 점이다. 그래서 게임을 하며 미비한 부분들에 조금씩 다듬으며 게임을 완성시켜 나갔다. 그래서 막상 만들기 시작한지 3주 만에 ‘좀비어택 완전판’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처음 이 게임을 만들 때만 해도 우리끼리 만들어서 함께 재밌게 해볼 생각만 있었지, 다른 곳에 알리거나 소개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뭐든 이루어지려 하면 큰 지장 없이 이루어지곤 한다. 이럴 때 사람은 ‘필연’이란 딱지를 붙여, ‘그건 애초에 될 일이었어’라고 생각하려 한다. 애초에 될 일이었는지, 그렇지 않은 일이었는지는 각자의 판단마다 다를 테니 놔두기로 하고, 그 과정을 들어보기로 하자. 분명한 건 그날 우연처럼 보드게임을 만들었다는 것이고, 그날 미경쌤이 와서 수업을 진행하며 아이들이 만든 게임을 플레이하는 모습을 봤다는 것이며, 그날 미경쌤은 ‘아이디어 발표대회’ 신청원서를 나에게 주면서 “아이들이 게임을 만들었네요. 그거 발표대회에서 발표하면 좋을 거 같은데요”라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우연과 우연이 맞물려 하나의 거대한 상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때까지도 ‘과연 우리가 발표대회에 나갈 수 있는지?’는 예측조차 할 수 없었다. 발표대회는 1차 서류심사, 2차 심사자들 앞에서 발표, 3차 꿈틀이 축제에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으로 꾸며진다. 만드는 것이야 서로 의견을 모아 만들면 되지만, 막상 발표대회에 참가한다는 것은 성격 자체가 완전히 달라진다. 그건 어디까지나 경쟁이기에 어떤 결과가 나오든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하며, 무대에 서야 한다는 부담감도 극복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여러 어려움들이 있으니 얼핏 아이들에게 “이런 좋은 발표대회가 있고, 상품도 준다고 하니까 한 번 나가보는 게 어때?”라고 제안했다가, 아이들은 단번에 “그런 생각일랑 넣어두세요”라고 거절을 당했다. 아무래도 한 번에 끝나는 게 아닌, 발표를 두 번해야 하고 상 또한 나눠야만 하니, 그럴 바에야 하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게임을 만들 때 가장 전면에 나서서 이끌어 간 아이가 바로 규빈이다. 그러니 발표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모두의 동의를 받는 것만큼이나 규빈이의 의사를 듣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규빈이에게 가서 대회의 취지를 설명하고, 우리가 이미 만든 게임이 있으니 한 번 도전해보는 게 어떠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규빈이는 면접이 얼마 남지 않아 정신이 없기에, 그럴 만한 시간적인 여유가 없을 것 같다고 거절하더라. 그 마음이 뭔지는 잘 알고 있었기에 밀어붙이진 못하고, “발표한 사람에겐 그만한 혜택을 더 줘야지”라는 말로 여지를 두었다.
모둠활동을 할 때 가장 주의해야 되는 게 ‘무임승차하는 아이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하는 점이다. 만약 그 부분을 얼버무리며 ‘어쨌든 모두 다 함께 한 것이기에, 모두 같은 점수를 받아야지’라고 했다간, 오히려 열심히 한 사람만 바보가 되어 누구 하나 열심히 하지 않게 되는 상황에 내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모둠활동은 협동심을 높이고 서로에 대한 배려심을 높이기 위해 하는 것임에도 무임승차를 놔두면 오히려 극단적인 이기주의만 판치게 되어 개별활동을 하는 것만도 못하게 된다.
우리도 그런 부분에선 똑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그런 상황이 되지 않도록 발표를 준비하고 막상 무대에 서서 발표한 사람에겐 조금 더 혜택을 줘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랬더니 다른 아이들은 손사래를 쳤음에도 규빈이는 “그럼 한 번 해봐요”라고 말하더라. 바로 이와 같은 극적인 변화 덕에 우리는 아이디어 발표대회에 나갈 수 있었고, 꿈틀이 축제 때는 당당하게 발표까지 할 수 있었다.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발표대회에 나갔고 엄청난 상까지 받게 됐다. 물론 상이 전부는 아니다. 그 과정을 통해 함께 의견을 모으고 서로를 배려하며 만들어갔다는 사실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무대에 서서 상을 받을 때 그걸 보고 있는 나 또한 가슴이 뭉클하더라. 함께 했던 순간들이 머릿속에 스치면서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현모양처 단재팀 모두 모두 애썼고, 모두 모두 자랑스럽다.”
다음 후기는 마지막 후기로 김민석 감독이 만든 『DREAM』에 대한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다. 이 영화엔 김민석의 성장담도 들어 있고, 단재학교 영화팀의 저력도 숨어 있으니, 그에 대해 말하며 ‘단재학교와 광진Iwill센터와의 콜라보 2’편을 끝맺도록 하겠다.
목차
사전적 지성으로 배워왔다
그렇다면 이제부턴 사후적 지성으로 배우라
광진iwill센터와의 인연을 통해 사후적 지성을 느끼다
2016년 꿈틀이 축제, 그 현장으로
제2회 꿈틀이 축제의 기억
마침내 건빵이 꿈틀이 축제에 참석하다
아이디어 발표회 현장 스케치
현모양처 단재팀, 최우수상을 수상하다
‘좀비어택’은 시작은 어땠나요?
‘좀비어택’ 이렇게 탄생했다
발표한다는 부담이 앞을 가로막네
아이디어 발표대회에 당당히 선, 현모양처 단재팀
전문가만이, 교원자격증을 지녀야만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다?
반보 뒤에 서서 함께 가는 존재로서의 교사
『DREAM』은 김민석 감독 작품이 아닌 오현세 감독 작품이었다?
김민석 감독이 두 번째로 메가폰을 잡게 되다
집착력과 책임감으로 영화를 만들다
모르기에 우리는 우연에 몸을 맡긴 채 살아간다
7명의 현모양처 단재팀이 최우수상을 받다
상금 배분의 문제로 골머리 썩다
상금 배분 위원회를 위한 기본 전제 마련하기
무엇을 상상했든 그 이상
제3회 꿈틀이 축제는 선물 보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