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재학교와 광진Iwill 콜라보 4
단재학교는 영화팀과 연극팀으로 나누어져 있다. 2009년에 개교한 이래 2012년에 크나큰 변화를 겪었다. 외부적으론 서울시 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의 네트워크 학교가 되었고, 비영리민간단체가 되었으며, 내부적으론 영화팀과 연극팀으로 나누어져 영화팀은 각종 영화제에 참석하고 영화 후기를 쓰며 영화를 제작하고, 연극팀은 연극을 관람하고 대본을 각색하여 관중 앞에서 연극을 한다.
그런데 여기엔 단재학교만의 비밀이 숨어 있다. 연극팀을 맡게 된 교사도, 영화팀을 맡게 된 나도 그와 같은 과목을 전공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런 상황이고 보니 누군가는 ‘전공은 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연극무대에 서거나 영화를 찍거나 하는 활동들은 다채롭게 해봤겠지’라고 생각해볼 수도 있다. 실제 실력은 없으면서 자격증만 있는 사람보다, 다양한 활동을 하며 실제로 실력이 있으되 자격증이 없는 사람이 낫다고 보기도 하니 말이다. 재야에 고수가 있듯이, 학위 너머의 실력자는 언제나 있었던 것과 같다.
학위로 증명되고, 간판으로 실력을 검증 받는 세상에서 ‘자격증은 없으나 실력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맞아요. 저흰 공인된 전문가는 아니지만 재야의 고수들이죠”라고 당당히 외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만은, 현실은 그렇지도 못했다. 자격증도 없고 실력마저 없으니, 의구심 가득한 눈초리로 ‘뭔가 이상하고 불안한데~’라고 생각하는 건 너무도 당연했다.
아무래도 우리 사회에선 아무나 교사를 할 수 있는 게 아닌, 사범대나 교대를 나와 공부해야만 자격을 인정해주는 교원제도를 시행하고 있고, 그에 따라 ‘교사는 전문가여야 한다’는 생각이 팽배하다. 그건 영화와 연극과 같은 과목을 맡게 될 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하지만 이런 생각의 기본엔 ‘교사가 많이 알고 있고, 경험도 풍부해야만 아이들에게 학습의 의욕을 고취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그런데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학창시절을 보내오며 나보다 많이 알고 있다고 해서, 나보다 다양한 경험을 했다고 해서 배움의 파토스가 일렁이는 건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느껴왔다. 교사의 열정과 학생의 열정, 교사의 전문지식과 학생의 배우고자 하는 마음 사이엔 약간의 관계는 있을지언정,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고 볼 수 있다. 오히려 교사의 전문지식이 때론 아이들과의 소통을 가로막기도 하고, 전문가로서 승승장구했던 삶은 대부분의 아이들을 들러리로 세우고 극소수의 뛰어난 아이들만을 우대하는 걸 당연시하기도 한다.
바로 그런 부분들이 오히려 배움에 대해 왜곡시키고, 교사에 대해 편견을 갖게 한다고 할 수 있다. 배움이든 교사든 여러 가지 양상과 형식이 있을 수 있음에도 오로지 하나의 생각(존 로크의 교육관)만을 중시하며 그것만이 절대적인 양 교육제도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우고자 하는 마음은 누군가 강제하지 않아도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난다. 그러니 교사는 그 옆에 함께 서서 아이의 마음의 결을 따라 함께 걸어갈 수 있기만 하면 된다. 열 걸음 앞서 걸어서 끌어줘야 하는 것이 아니라, 반보 뒤에 서서 지켜보며 함께 걸어갈 수 있는 용기만이 필요하다. 그럴 때 아이는 교사의 지지에 힘을 얻고 자신의 힘으로 우뚝 서서 걸어갈 수 있으며, 자신의 지적 능력을 믿고 자신의 끼를 맘껏 펴나갈 수 있는 것이다.
단재학교에서 비전공자들이 영화와 연극을 맡게 된 데엔 이런 생각들이 기반이 되었다. 교사가 앞서서 가르치고 이끌어가려 하는 게 아니라, 함께 배워가는 중에 서로가 서로에게 ‘교학상장’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그 당시 대표교사는 “잘 모르는 분야, 거의 해보지 않은 것으로 시작했으면 합니다. 그래야 가르치려 하지 않고, 못 한다고 나무라지 않으며, 함께 북돋워주며 한 걸음씩 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한 것이다.
‘지켜볼 수 있는 마음’이 어찌 보면 단재학교의 특색이라 할 수 있다. 이번에도 광진센터와 협업을 하게 되면서 영화를 제작하게 되었다. 미경쌤은 매주 아이들과 모여 영화의 컨셉, 시나리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때 가장 전면에 나서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낸 사람은 현세와 규빈이였다. 현세는 여러 영화를 봐왔고, 평소에 창의적인 스토리(『아이덴티티』란 영화의 내용을 듣고 거기에 착안하여 만든 영화가 『Fakebook』임)를 많이 생각해왔기에 거침없이 스토리를 이야기해줬고, 거기에 규빈이가 살을 덧붙여주면서 신선한 시나리오가 금세 만들어졌다. 그걸 토대로 규빈이가 혼자서 끙끙대며 콘티까지 완성함으로 일사천리로 영화 제작을 위한 사전 작업은 완료가 되었다.
그때만 해도 ‘올해는 한 학기에 영화 한 편씩 만들어서 총 두 편을 완성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할 정도였다. 그만큼 아이들이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알아서 해나가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전체 감독을 맡았던 현세가 프랑스로 유학을 가게 될 상황에 처하며 모든 계획은 흐지부지 되었다. 프랑스에 가기 전까지는 두 달 가까운 시간이 남아 있었기에, 책임을 지고 마무리까지 짓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이미 맘이 떠버린 현세는 더 이상 개입하려 하지 않았고, 그렇게 영화 제작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작년에 『GAME OVER』란 영화를 제작한 경험이 있는 민석이를 대타 감독으로 세우기로 했지만, 중간에 이어받게 되면 내용도 잘 모르고 뭘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기에 헤맬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단순히 “이미 영화를 제작해본 경험을 살려서, 이 영화를 편집까지 마무리 지어봐”라고 닦달할 수는 없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민석이 입장에선 이렇게 떠넘겨져 받게 된 상황이 억울해질 것이고, 그렇게 울분이 쌓이면 “내가 뒤처리하는 사람인 줄 아세요”라고 화를 내며 아예 손 놓게 될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선 어쩔 수 없이 밀어붙이거나, 해야만 되는 당위를 설명하기보다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민석이가 마음을 가다듬고 이걸 ‘내가 아니면 할 사람이 없다’라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그리고 잘 끝맺을 수 있도록 묵묵히 지켜보는 것이다.
물론 민석이를 잘 알지 못했다면, 이렇게 하는 건 매우 힘들었을 것이고 중간 중간에 개입하여 내가 원하는 그림대로 돌아가게 하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민석이와 5년을 생활하며 처음과는 달리 많은 부분이 성숙해졌고, 책임감까지 강해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이다.
2013년에 지리산에 등반할 때나, 그걸 다큐멘터리로 만든 『그 날의 생존자들』을 편집할 때만 해도 지금처럼 책임감이 있거나 많은 부분이 성숙하진 못했었다. 그러니 편집을 하면서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았고, 그저 한 장면씩 붙여서 묶기에만 바빴던 것이다. 오죽했으면 렌더링도 잘 되지 않아 학습발표회 때 다큐가 멈추는 사고까지 발생했을까?
그런데 그런 시간들을 함께 하며 점차 책임감도 커졌고 성숙해졌다. 작년에 떠났던 자전거 여행 중에도 민석이는 영화팀을 챙기려 무진장 애썼고, 작은 발표회 당시엔 아카펠라를 연습하기 위해 여러 아이들을 모으려 애썼다. ‘나의 일’이라 생각하니, 누군가가 잔소리를 하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척 스스로’ 하게 된 것이다. 이런 과정들을 모두 봐왔었기 때문에, 크게 여러 말 하지 않고 지켜보고 응원해줄 수 있었다.
그렇다고 일사천리로 촬영을 진행하고 편집을 하는 건 아니었다. 발표회는 11월에 있기에 2학기를 시작할 당시엔 ‘아직 시간은 많다’고 생각하는 게 역력했다. 그러니 학교가 끝나고 아이들과 피씨방에 갈 시간은 있었어도, 촬영할 시간은 없었던 것이다.
누구나 시간이 많다고 생각될 땐 분발하지 않게 된다. 임용을 준비할 때도 그 마음은 똑같았다. 분명히 매주 스터디를 했고 매일 공부를 했지만, 아직 1년 가까이 남았다는 생각에 좀 더 느긋하게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그러다 거의 한 달 정도의 시간만 남게 되면 그제야 마음이 조급해지며 부랴부랴 못했던 공부를 하기에 바빠졌다. 이건 민석이만의 문제가 아닌, 거의 모든 사람들의 문제라 할 수 있다.
그러다 10월에 접어들고 나서야 겨우 발표까지는 한 달밖에 남지 않았고, 민석이도 처음으로 편집을 하기 시작했다. 이미 찍어놓은 영상들이 꽤 있었기 때문에 편집하여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막상 영상의 퀄리티를 보니 많은 부분이 떨어졌다. 카메라 위치가 잘못된 영상, 주변의 소음이 너무나 큰 영상, 왜 찍었는지 모르는 영상까지 뒤범벅으로 섞여 있었다. 그러니 그 순간 민석이는 ‘이거 너무 대충 찍었는데’라는 후회가 물 밀 듯 밀려왔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그런 정도의 후회를 느끼는 건 오히려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다음에 찍을 땐 좀 더 생각해보고 찍을 테니 말이다.
그렇게 궁지에 몰리고 나자 정신이 번쩍 들던지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음에도 좀 더 찍어야 할 부분과 내레이션을 따야할 부분을 나눠서 정리하더라. 그리고 그 때부터 재촬영을 하며 뭔가 이상한 부분들을 다시 찍기 시작했고, 말이 씹히는 부분은 후시녹음까지 했다. 분명히 함께 만드는 영화지만, 아이들은 ‘오늘 영화 촬영이 있다’는 말을 가장 듣기 싫어하며 “이미 찍은 거 활용하지 뭘 다시 찍어?”라고 불퉁스럽게 말할 때에도 민석이는 짜증내지 않고 그런 아이들을 잘 챙겨서 마무리까지 지을 수 있었다.
이런 부분에서 작년에 만든 『GAME OVER』와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작년 영화는 출연하는 인물도 많지 않을뿐더러 이틀 동안 집중적으로 완성한 작품인데 반해, 이번엔 단재학교 모든 학생들과 작업을 했고 거의 반년에 걸쳐 완성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건 분명히 책임감이 있었기 때문에 완성이 가능했다. 이런 부분에서 민석이의 책임감과 마무리 짓고자 하는 마음이 가장 빛을 발했던 작품이라 평가할 수 있다.
11월 5일이 영화 상영회를 해야 하는데, 민석이는 11월 4일까지 모든 열정을 퍼부어 작품을 마무리 지었다. 늦게 시작했기에 늦게까지 마무리 짓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마지막까지 이렇게 붙잡고 있는 데엔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어느 정도의 완성도에 다가가려는 집착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다. 이렇게 정성 들여 만들어진 김민석 감독의 2번째 작품이자, 단재학교 영화팀의 5번째 작품 이제 감상해보자.
목차
사전적 지성으로 배워왔다
그렇다면 이제부턴 사후적 지성으로 배우라
광진iwill센터와의 인연을 통해 사후적 지성을 느끼다
2016년 꿈틀이 축제, 그 현장으로
제2회 꿈틀이 축제의 기억
마침내 건빵이 꿈틀이 축제에 참석하다
아이디어 발표회 현장 스케치
현모양처 단재팀, 최우수상을 수상하다
‘좀비어택’은 시작은 어땠나요?
‘좀비어택’ 이렇게 탄생했다
발표한다는 부담이 앞을 가로막네
아이디어 발표대회에 당당히 선, 현모양처 단재팀
전문가만이, 교원자격증을 지녀야만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다?
반보 뒤에 서서 함께 가는 존재로서의 교사
『DREAM』은 김민석 감독 작품이 아닌 오현세 감독 작품이었다?
김민석 감독이 두 번째로 메가폰을 잡게 되다
집착력과 책임감으로 영화를 만들다
모르기에 우리는 우연에 몸을 맡긴 채 살아간다
7명의 현모양처 단재팀이 최우수상을 받다
상금 배분의 문제로 골머리 썩다
상금 배분 위원회를 위한 기본 전제 마련하기
무엇을 상상했든 그 이상
제3회 꿈틀이 축제는 선물 보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