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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Oct 16. 2016

우리에겐 한 명의 영웅이 아닌, 다양한 사람이 필요하다

우치다 타츠루의 ‘동아시아의 평화와 교육’ 11 

사회든, 사람이든, 어른이든, 노인이든, 교사든, 학부모든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평상시의 가치관’을 자라나는 어린이에게 강요하고, 그런 사람이 되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 모두 다 아이들을 위한다며, 자식을 위한다며 시작된다. 그렇게 '평상시의 가치관'은 공고해진다.




너 공부 열심히 안 하면 나중에 저렇게 된다는 말의 의미

     

이런 상황은『부산행』이란 영화에 적나라하게 나온다. 기차 화장실 문이 잠겨 있다며 승객들이 불만을 제기하자 직원은 화장실 문을 연다. 거기엔 노숙자가 잔뜩 겁에 질린 채 쭈그려 앉아 있는 거였다. 그 상황을 함께 지켜보던 버스회사 전무인 용석과 어린아이인 수안의 대화를 보면, 어떻게 아이들을 평상시의 가치관에 매몰되도록 하는지 충분히 엿볼 수 있다.      


용석: “야~ 꼬마야! 너 공부 열심히 안 하면 나중에 저 아저씨(노숙자)처럼 된다”

수안: “우리 엄마가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랬는데?”

용석: “니네 엄마가 공부를 열심히 안 하셨나 보다야~”    



▲ 우리 사회에 계급은 없다. 하지만 돈에 따라 잠재적인 계급은 나누어져 있다.


 

이 대화 하나만으로 판정 지을 순 없지만, 적어도 이 대화에 드러나는 말을 통해서 보면 용석의 마인드는 ‘평상시의 가치관’을 대변하고 있고, 수안이 엄마의 마인드는 ‘비상시의 가치관’을 대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누가 뭐라 해도 일반적인 상황, 평상시의 상황에서 모두의 지지를 받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평상시의 가치관’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용석은 아무렇지도 않게 맞받아친 수안이에게 ‘비판적인 시선을 갖는 것=공부를 열심히 안 하는 것’이라 단정 지어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 [설국열차]에 묘사된 '평상시의 가치관'은 기차에서 나가면 얼어 죽는다는 것이다. 교사는 그걸 끊임없이 아이들에게 주입한다.



           

우리에겐 한 명의 영웅이 아닌다양한 사람들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치다쌤의 진단은 그런 현실과는 매우 다르다. 평상시의 가치관이 지금은 큰 힘을 발휘하고 있고, 모든 논의를 덮어버릴 정도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평상시의 가치관일 뿐이라는 것이다. 어느 때고 위기 상황은 찾아오며, 평상시의 가치관은 와르르 무너져 내릴 것이다. 그럴 때 필요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그 경우(파국적인 상황- 천재지변, 공중납치 등 위급한 상황)에 홀로 있는 것과 다수의 사람이 함께 있는 것 중에서 어느 쪽이 생존 확률이 높을까요?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많은 사람과 함께 위기 상황에 던져지는 편이 혼자 있는 것보다 연명할 확률이 훨씬 높지요. 그것은 보이는 것, 들리는 소리, 냄새, 촉각은 사람이 많을수록 정보량이 많아지기 때문이지요. 정보 수집에 대한 참고자가 많은 만큼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에 대한 이해는 깊어집니다. 

바꿔 말하면, 그때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이 가져온 감각 정보를 종합한 ‘통일 감각’을 지닌 하나의 협동신체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혼자서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혼자서는 듣지 못하던 소리가 들리고, 혼자서는 감지하지 못하던 것을 감지할 수 있는 것은 ‘그 자리의 모든 이를 구성요소로 한 키마이라적 신체’가 그곳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배움은 어리석을수록 좋다』, 우치다 타츠루, 샘터사, 2015년, 142쪽     



▲ 시대가 암울하면 암울할수록 영웅을 바라는 심리는 높아진다. 조선의 '정감록'이나 유대교의 '성경'은 그런 심리의 반영이다.

     


우치다쌤은 위기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존재는 출중한 능력을 지닌 슈퍼맨 같은 개인 한 사람이 아니라, 보통의 능력을 지닌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라고 봤다. 그래야 그 사람들의 여러 정보를 통해 ‘통일감각’을 지닌 하나의 거대한 협동신체를 완성할 수 있고 그럴 때 위기상황에 대해 좀 더 빠르게 지각할 수 있으며, 다양한 방법을 고안하여 헤쳐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렇게 다양한 존재가 하나의 공신체共身體를 구성하는 것이기에,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키마이라chimaera의 특징을 빌려 ‘키마이라적 신체’라고 명명한 것이다. 



▲ 키메라적 신체란 말에 대해 어렵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신체처럼 된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럴 때 가장 불필요한 사람은 ‘나만 잘 살면 돼’라는 평상시의 가치관에 매몰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그 이유를 위에서 인용한 책에서 “100년에 걸쳐 정성껏 지은 건물이 하룻밤의 화재로 잿더미로 돌아가듯이, 혹은 10년에 걸쳐 쌓아 올린 신뢰관계가 건성으로 툭 던진 말 한 마디로 순식간에 무너지듯이, 만드는 것은 어렵고 부수는 것은 간단합니다. 따라서 상대적 우열ㆍ강약ㆍ승패에 지나치게 집착하면 사람은 무의식중에 같은 길을 나아가는 수련자들의 성장을 방해하게 됩니다.(103쪽)”라고 밝히고 있다.                



▲ [부산행]에 전무의 행동을 보면 그야말로 같이 살 수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방해하고 죽여가며 살려고 하는지 잘 나타난다.




오감을 활짝 열 수 있는 교육환경 만들기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위기상황이나 일상이 흔들리는 상황이 오지 않으면, 평상시의 가치관을 가르치는 건 괜찮은 거 아니예요?’라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우치다쌤도 이런 식의 오해가 있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던지 “오감이 자극될 때 마음이 열리고 다른 것도 받아들이려 하기에, 배움의 자세를 갖추게 됩니다”라고 쐐기를 박았다. 

사람이란 원래 가만히 놔둬도 오감을 활짝 열고 외부와 소통하려 하는 존재고, 모르는 것을 배우려하는 존재다. 하지만 지금처럼 평상시 가치관이 지배하는 시대엔 상대적 우열ㆍ강약ㆍ승패에 지나치게 집착하기에 배움과 담을 쌓고 오감을 최대한 둔화시키며 살아가려 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교육을 한다고 하면서 반교육적인 행태가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 아이들을 만나는 교사가 해야 할 일은 너무도 자명하다. 그건 ‘오감을 활짝 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 구본희 선생님 말처럼, 학교의 체육은 '단합심을 키우는 것'이지만, 실제는 '평상시 가치관'의 내면화를 위한 장치다.



이에 우치다쌤은 재밌는 일화 하나를 들려줬다. 강연을 할 때 갑자기 “뒤에 내 말 들립니까?”라고 물었던 적이 있단다. 그러자 조금 있다가 “안 들립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잘 들리지 않는데, 어떻게 사람들은 ‘들리지 않습니까?’라고 물은 것을 알 수 있었을까? 그건 바로 ‘들’ 정도밖에 들리지 않았는데, 강연자의 표정, 몸짓, 정황 등을 추론하여 판단할 수 있었던 것이다. 즉 사람에겐 조각난 앎의 단편을 하나로 끌어 모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이다. 그런 능력이 발동하려면 당연히 ‘저 사람은 지금 뭔가 의미 있는 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여, 잘 들리진 않지만 그럼에도 들으려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런 모든 건 오감이 발달될 때 가능해진다.



▲ 메러비언 차트가 보여주는 건, 사람은 알려는 마음만 있으면 어떻게든 알게 된다는 내용이다. 그러기 위해선 오감을 활짝 열어야만 가능하다.



이때 교사는 권위, 지적 자부심, 나이를 통한 위화감 같은 것이 아니라 학생들과 공감이 되는 부분들을 활짝 열고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하면 된다. 그러면 학생들은 교사 앞이라 해서 쭈뼛거리거나 난처해하지 않고 오감을 활짝 열 수 있다. 

그래서 우치다쌤은 수업을 시작할 때 “춥네. 난방을 좀 올려주지 않을래?”라거나, “눈이 부시니 커튼을 쳐주지 않을래?”라는 말을 함으로, 학생들이 신체로 느껴지는 감각들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게 신체 감각에 민감해 질 때 마음을 활짝 열 수 있기 때문이다. 오감이 활짝 열리면 비로소 몸이 개방되며, 꽁꽁 감싸 안고 있던 자의식의 껍질은 벗겨진다. 

다음 후기는 ‘동아시아의 평화와 교육’의 마지막 후기로, 몸을 개방한다는 것의 의미와 ‘동아시아의 평화와 교육’ 후기를 마무리 짓는 소감에 대해 쓰겠다. 



▲ 길고 긴 전주 강연 후기도 끝을 향해 가고 있다. 마지막까지 힘을 내어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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