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치다 타츠루의 ‘동아시아의 평화와 교육’ 9
쓰나미로 인해 원자력 발전소가 통제 불능 상태에 놓이며 나라 전체가 들썩였지만, 일본 정부는 4년 만에 안정성 여부와 상관도 없이 손해가 막심하다며 재가동을 시켰다. 그뿐인가, 국익에 도움이 된다며 미국과 무역협정을 맺어, 중공업을 육성하고 농업을 포기하기도 했다.
이런 일들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익이 된다면 해도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당장에 이익이라면, 나중에 어떻게 되든 말든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심지어 아무도 문제로 삼지도 않는다.
이런 생각은 당연하게도(불행하게도) 교육에 그대로 영향을 끼쳤다. ‘윗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아랫사람은 더 좋아한다(上好下甚)’는 말처럼, 이제 더 이상 아이들에게 ‘원대한 꿈(세계평화, 남북통일, 자족하는 삶 등)을 위해 공부해보자’라고 말하는 건 아무런 소용도 없게 됐으며, 오로지 ‘열심히 공부하면 좋은 대학에 갈 거야’라든지 ‘열심히 공부하면 많은 돈을 벌게 될 거야’라는 말처럼 즉각적으로 이해되는 이익의 관점에서만 말해야 소용이 있으니 말이다. 이렇듯 교육의 문제는 사회의 문제와 결부되어 있고, 이 시대의 가치관은 교육 속에 교묘히 숨어 있다.
이런 경향성에 대해 우치다 쌤은 “교육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평상시의 논리에 매몰되어 있습니다”라고 진단했다. 평상시의 논리란 지금 이 순간이 변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고, 그러다 보니 당연히 ‘지금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관, 그것에 따라 행동하라’는 것이다. 그러니 교사는 당연히 어떻게 하면 사회적인 지위를 획득할지, 명예를 얻을지, 많은 급여를 받을지에 초점을 맞춰 ‘그런 것을 얻기 위해 친구에게 한 눈 팔지 말고, 이성에게 맘 뺐기지 말고, 공부만 해’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게 된다. 또한 요즘 학생들이 사용하는 노트엔 아예 딴 생각을 하지 못하고 공부만 하도록 자극적인 문구가 쓰여 있는데, 그곳에 쓰여 있는 말이야말로 아주 적나라하게 평상시의 논리를 설파하고 있다.
“대학가서 미팅할래? 공장가서 미싱할래?”
“10분만 더 공부하면 남편의 직업이 바뀐다”
“열공해서 성공하면 여자들이 매달린다”
나 또한 지금까지 학교에서 이런 말들을 교사에게 주구장창 들어왔고 현실에서 직접적으로 경험하며 자라왔다. 그리고 한 번도 다른 생각을 해본 적도, 다른 가치관에 대해 궁금해본 적도 없으니, 교사가 된 이 순간에도 ‘사회는 원래 그래’라던지, ‘그냥 열심히 하라는 대로 하면 돼’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하게 되었다. 사회가 그런 모양새고, 어른들이 모두 한결같이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 학교의 교사까지 그걸 거들고 있으니, 학생들이 평상시의 논리에 갇히는 건 너무도 당연하다.
이에 우치다쌤은 “어떤 집단이든 어느 사회든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은 있었을 거예요. 그곳에선 무엇을 가르쳤을까요? 아마도 ‘살아남는 법’을 가르치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그 살아남는 법을 가르치기 이전에 어린아이에겐 ‘위기가 접근해 올 때 위기상황임을 파악하는 능력’을 길러줬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우치다쌤은 이와 비슷한 얘기를 책에서 이미 한 적이 있다.
자기 이익의 추구를 최우선하고, 승패를 다투고 강약에 집착하는 이기적 개체는 평상시 자원 배분의 경쟁에서는 유리합니다. 따라서 평시가 계속 이어지면, 사람들은 자기 이익의 안정적인 확보를 추구하여 점차 반-병법자(사람들을 모으지 못하고 흩어지게 만드는 존재)가 되어 갑니다. 이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평시는 오래도록 이어지지 않습니다. 어디에선가는 반드시 파국이 찾아오고야 말지요. 그때에 반-병법자적인 사람들은 파국을 더욱 파국적인 상태로 이끄는 최악의 위험요소가 됩니다.
『배움은 어리석을수록 좋다』, 우치다 타츠루, 샘터사, 2015년, 145쪽
평상시가 계속 쭉 이어진다면 이와 같은 교육, 그리고 단기적인 이익만을 중시하는 태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고 위기상황은 ‘칠흑 같은 어둔 밤의 도적과 같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우리가 최근에 겪었던 세월호 사건이나, 경주 지진은 언제고 위기 상황에 내몰릴 수 있다는 사실을 여지없이 보여줬다. 바로 그때 승승장구하던 사람들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공동체 전체를 위기에 빠뜨린다는 것 또한 목격했다. 애초에 독식하는 것, 남을 짓밟는 것에만 익숙해져 있으니 막상 하나로 힘을 모아야 할 때에는 걸림돌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면 선뜻 이해가 되기보다 ‘도대체 무슨 말이야?’라고 황당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천재지변, 전쟁과 같은 비상사태가 일어날 것에 대비하여 교육을 설계하고 가르치라는 말인가?’라고 헛갈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이해하면 그건 우치다 타츠루의 본의를 1/10 밖에 이해하지 못한 게 될 뿐이다.
우치다쌤이 말하는 비상시란 ‘평시(현재의 가치관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 지금의 가치관만을 추구하며 교육하고 살면 된다)는 오래도록 이어지지 않’기에 ‘평상시의 가치관’만을 가르쳐서는 안 된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평상시의 가치관’이 아닌 다른 가치관을 알기 위해선 전혀 새로운 것을 찾아다닐 것이 아니라, ‘교육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던질 줄 알아야 하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당장의 이익 앞에 초연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막상 현실에서 “교육이란 무엇입니까?”라고 물을라치면 그런 ‘씨잘데기 없는 질문’을 할 시간에 공부나 하라며 한심한 사람으로 취급하고, 멀리 볼 수 있는 혜안을 ‘정신승리’ 정도로 폄하한다. 왜 이러한 일들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는지는 우치다쌤이 쓴 책에서 아주 명쾌하게 묘사되어 있다.
교육을 둘러싼 다른 모든 것들은 ‘여기’에 속합니다. 정부, 교육위원회, 학부모, 지역사회, 대중매체, 시장, 이 모든 것들은 ‘여기’를 지배하고 있는 동일한 가치관이라는 대기압의 지배를 받습니다. 예를 들면 지금은 모든 아이들에게 큰 권력, 명예, 풍부한 재화와 문화자본을 획득하여 상위계층에 올라서기 위해 가혹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고 요구합니다. 부모들에게 전면적으로 교육을 맡기면 아마 ‘이기는 아이’를 만들려고 할 겁니다. 대중매체에 부탁해도 문부성에 부탁해도 재계에 맡겨도-실은 맡기려고 해도 그쪽에서 거부할 테지만-역시 ‘여기의 가치관에 매몰된 아이’를 만들려고 할 것입니다.
-『교사를 춤추게 하라』, 우치다 타츠루, 민들레출판사, 2012년, 44쪽
이글에선 ‘평상시의 가치관’이 ‘여기의 가치관’으로 쓰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제대로 교육하겠다며 정부, 교육부, 교육청, 교사, 시장, 매체 등 모든 기관이 달려들지만, 오히려 애쓰면 애쓸수록 제대로 교육되긴커녕, 제대로 망가지게 된다는 사실이 놀랍기까지 하다. 이들이 외치는 ‘제대로 교육하겠다’는 말의 속내는 ‘여기의 가치관에 충실한 인간으로 만들겠다’는 것이고 그건 ‘제대로 비교육적인 존재로 만들겠다’는 것이니 말이다. 그러다 보니 교육 관료들이 ‘공교육 정상화’를 외치면 외칠수록 ‘공교육 붕괴’는 가속화되며, ‘참교육’을 외치면 외칠수록 ‘반교육’이 광범위하게 퍼진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교육을 하려는 모든 기관이나 개인은 앞서려는 마음은 내려놓고, 애쓰려는 열정은 식혀두고 “교육을 정상화시키지 않기”, “학교를 학교답지 않은 곳으로 만들기”, “열심히 하는 교사가 되지 말기”라고 외치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다.
그런 다음에 오감을 발달시켜 ‘위기가 접근해 올 때 위기상황임을 파악하는 능력’을 길러줄 수 있어야 한다. 그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후기에서 본격적으로 다뤄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