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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Oct 12. 2016

윗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아랫사람은 더 좋아한다

 우치다 타츠루의 ‘동아시아의 평화와 교육’ 7

자민당 일당 독재에 가깝던 일본에서 54년 만에 평화적인 정권 교체가 이루어지며 하토야마 정권이 탄생했다. 정권이 바뀐 만큼 지금까지의 강경노선에서 탈피하여 유화적인 제안을 하기에 이른다. 하나는 미군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는 오키나와의 미군 기지들을 축소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동아시아 공동체를 만들어 군비경쟁을 하지 않고 평화 분위기를 조성하자는 것이다.                     



▲ 강연이 진행될 수록 열기는 더욱 뜨거워지고, 일본의 정세를 듣지만 '왜 이리 판박이지?'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대미자립을 외친 총리, 쫓겨나다

     

총리의 제안은 어떤 면에선 분명히 진일보한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얘기가 나오자마자 일어난 일련의 일들은 일본인들의 미국에 대한, 강대국에 대한 강박증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미국은 총리의 제안에 가타부타 아무런 코멘트도 달지 않았지만 일본의 언론계와 정계, 재계 어느 것 할 것 없이 총리를 성토하며 몰아세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급기야 그들 스스로 총리를 자리에서 끌어내리기에 이르렀다.



▲ 민주당이 들어서자, 아주 전향적인 자세에서 미일관계를 만들자는 발언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런 걸 흔히 ‘알아서 긴다’고 한다. 이런 얘기를 듣기 전에는 사대주의事大主義를 좋아하는 한국인만이 알아서 강대국에 설설 기며 복종하는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일본도 다르지 않았다. 일본 권력자 중에도 미국의 눈치를 보며 비위를 알아서 맞춰주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어찌 보면 단순히 한국과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 어느 사회나 있었던 문제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맹자孟子』라는 책엔 “윗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아랫사람은 더 좋아한다(上有好者, 下必有甚焉者矣. 「滕文公章句上」2)”라는 말이 보이기 때문이다. 윗사람이 골프를 좋아하면 아랫사람들은 더욱 맹렬히 골프를 치려하고, 술을 좋아하면 더욱 열심히 술을 마시려 한다. 그렇게 눈치를 살살 보고 맞춰줘야만 더 많은 영달의 기회가 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이다 보니 아예 관료 중에선 대놓고 “그런 말을 하면 미국 대통령이 싫어할 거다”라고 미국 대변인이 된 듯한 발언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미국이 나중에 공개한 문서를 통해 총리를 끌어내리는 데 전면에 나선 기관이 외무성과 국방성임이 밝혀지기도 했단다. 관료 중에 ‘검은 머리 미국인’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우리도 그에 뒤질세라 대통령이 직접 카트를 끌며 외교를 한 적이 있다.




대미종속만이 살 길이라 외치는 한국과 일본 

    

이런 사건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더 이상 일본은 미국이 ‘어떻게 하라’는 지시를 내리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척♬ 스스로♪’ 미국의 입장을 대변해주는 나라가 되었다. 예전엔 그래도 ‘대미종속을 통한 대미자립’을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였지만, 어느 순간부턴 학계나 언론계 할 것 없이 ‘대미종속만이 살 길’이라 외치는 분위기로 변한 것이다.



▲ [캡틴아메리카: 시빌워]의 한 장면. 우린 영화나 방송을 보면서도 무의식 중에 '대미종속만이 살 길'을 세뇌받고 있다.



당연히 이 얘기에서도 일본을 한국으로 바꾼다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한국은 625가 발발하며 부산까지 몰리게 되자 이승만 대통령이 알아서 맥아더 장군에게 전시작전통제권戰時作戰統制權(이하 전작권)을 넘겼다. 그 후 긴 세월동안 주권국가임에도 전작권이 없는 상태로 지내왔다. 그러다 2012년 4월 17일로 돌려받기로 되어 있었지만, 역대 국방장관이나 예비역 장성들은 “전시작전권을 돌려받아서는 안 된다”고 외치기 시작했고, 그런 상황에 화가 난 노무현 대통령은 “(국방비 지출이 북한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인데도 전시작전권을 받지 말라는 건) 자기들이 직무유기 아닙니까?”라고 울분을 터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논의는 이명박 정부에 들어서 연기를 요청하여 2015년에 돌려받는 것으로 늦춰졌고, 박근혜 정부에 들어서는 다시 연기를 요청하여 2020년으로 밀렸다. 이뿐만 아니라 박근혜 정부에선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인 사드THAAD를 성주군 일대에 배치하겠다는 발표하기까지 했다.



▲ 박근혜 정부, 국가보훈처의 인식. 일본 관료들의 인식과 매우 같다.


이렇게 미국 의존적으로 정책이 결정될 수 있는 표면적인 이유는 북한의 무력침공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지만, 그 실질적인 이유는 미국과의 우호관계를 위한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우리 또한 ‘대미종속만이 살 길’이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득세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가능한 광경들이다.                



▲ 쩌렁쩌렁한 노무현 대통령의 외침. 사무친다.




금기어가 된 독립, 도그마가 된 종속

     

‘대미자립’이 배제된 ‘대미종속’만을 외치는 씁쓸한 사회가 되기까지 역사적인 흐름이 있었다고 한다.

일본이 미국에게 패망한 후 얼마간은 일본인들이 ‘주권을 상실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었다. 더욱이 긴 시간동안 진행된 전쟁으로 일본의 기간산업은 붕괴되었고 전국은 폐허가 되었으니, 일본인들 사이에선 ‘대미종속을 통해 사회를 안정시키고 발전시킨 후에 대미자립을 해야 한다’는 관점에 폭넓은 지지를 보냈다고 한다. 당연히 이런 관점을 채택할 때 방점은 ‘대미자립’에 찍히지만, 그 과정에서 ‘대미종속’은 어쩔 수 없는 선택지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미국의 말을 들음→미국과 신뢰획득 & 경제적 원조→경제 성장을 통한 독립쟁취’라는 큰 그림을 그렸던 것이다.



▲ 한국전쟁은 일본 재기의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런 밑그림은 그 당시엔 꽤나 유용하여 1951년엔 ‘샌프란시스코조약對日講和條約’으로 일본의 주권을 회복할 수 있었고 경제성장에도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가시적인 성과들이 맺어지자 일본인들의 의식 속엔 은연중에 ‘대미종속은 필요하다’,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은 옳다’란 생각이 스며들기 시작한 것이다.

어디 그 뿐인가?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 당시에 일본은 미군의 전진 기지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단맛을 실컷 보게 된다. 그래서 한국전쟁 특수로 다 쓰러져가던 일본이 기사회생할 수 있었고 덤으로 오가사와라 제도까지 반환받게 되었으며, 베트남전쟁으로 경제성장에 탄력을 받게 됐을 뿐만 아니라 1971년엔 오키나와까지 반환받게 된다. 미국과 동맹을 맺어 열심히 미국의 지시에 따르다 보니 생각보다도 훨씬 많은 이득이 돌아온 것이다. 그러다 보니 급기야 일본인들의 심층엔 ‘대미종속만이 살 길’이란 관념이 뿌리내리게 되었다고 한다.                



▲ 미국과 일본은 한층 더 가까워졌고, 급기야 한 몸이 되려 하고 있다.





반미를 품은 친미로 

    

분명히 얘기하지만 ‘대미종속’이 필요하지 않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일본도 그랬지만 한국도 연합군의 개입으로 대한민국이란 나라를 만들 수 있었으며, 베트남 전쟁의 특수로 고속도로 등 기간산업을 발전시켜 경제성장의 디딤돌을 놓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한 동안은 미국의 도움을 받아 안정을 찾고 경제를 성장시킬 수 있는 기반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 연합군의 상륙은 한국전쟁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고 상황이 달라지고 있음에도 그때의 생각을 고수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건 흡사 임진왜란 당시에 명나라의 도움을 받았다는 이유로, 신흥 주자로 떠오르는 후금(통일 이후엔 청)을 ‘오랑캐의 나라’라고 치부하며 적대시했던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광해군은 중립외교로 명과 후금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노력했지만, 조정을 휩쓴 친명배금파親明排金派 세력들에 의해 폐위 당하게 된다. 그 후 인조는 후금의 심기를 건드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으로 조선 땅은 쑥대밭이 되고 만다.



▲ 석촌호수에 놓여 있는 삼전도비. 바뀐 상황을 인정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다.



이처럼 국제정세는 수시로 바뀌고 그에 따라 우리가 해야 하는 역할들도 자꾸만 변해 가는데 예전의 틀에 갇혀 그 생각만을 고수할 경우, 격변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치다쌤이 “‘미국은 일본을 맘대로 부릴 수 있다’는 생각이 뿌리를 내리면서, 더 이상 미국의 정책에 대해 어떤 비판도 할 수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라고 말한 것처럼, 우리도 그런 상황에 빠지지 않도록 ‘대미자립’을 늘 염두에 두며 ‘대미종속’을 외칠 수 있어야 한다.



▲ 친미 속에 반미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각자의 이야기를 할 수 있고 하나의 생각만을 주장하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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