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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Oct 12. 2016

이득만 된다면 전쟁인들 어쩌랴

우치다 타츠루의 ‘동아시아의 평화와 교육’ 6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국가란 오명을 벗기 위해 ‘평화헌법’을 만들었지만, 아베정권이 들어서며 개정하기에 이른다. 이미 한국에서도 일본의 평화헌법 개정이 제국주의적인 야욕을 만방에 드러낸 것임을 알기에 각계각층에서 반대운동을 펼쳤던 것이다.                



▲ 일본의 평화헌법 개정에 많은 사람들이 우려를 했다.




평화가 오래 지속되다 보니평화의 소중함을 잊다

     

평화헌법이 만들어지고 70년간 일본은 평화를 유지했다. 아이러니하게도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에게 패망을 안겨준 미국이 원조해주는 구호물자로 일본은 재건될 수 있었고,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다. 



▲ 히로시마에 터진 원자폭탄과 그 후의 모습. 종군기자는 이 참혹한 모습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런 경우 보통 사람이라면 ‘이렇게 누리게 된 평화를 어떻게 해야 계속해서 유지해나갈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하지만 정부 관료들은 상식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보다. ‘왜 국제적인 분쟁이 있는데 우리만 가만히 있어야 하는가?’, 또는 ‘우리 젊은이도 피를 흘리며 국제분쟁을 해결하려 한다면, 세계적인 경의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여, 지금의 평화 상태를 오히려 부끄럽게 여긴다는 것이다. 

이런 이해할 수 없는 정부 관료의 생각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화가 오래 지속되다 보니 평화의 소중함을 까먹었고, 국제적인 평화감각도 상실해버렸다’고 평가를 한단다.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을 해온 결과 평화가 찾아온 것이 아니라, 의도치 않았음에도 평화를 누리다보니 소중함을 전혀 느끼지 못하게 됐다는 말이다.    



           

▲ 일본의 관료들처럼 우리나라 관료들도 명분 없는 전쟁인 이라크 전쟁에 한국군을 파병했다. 미국의 경의를 받기 위해서?



  

전쟁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전쟁불사를 외치다 

    

그래서 우치다쌤도 “‘전쟁을 해야만 한다’는 그 마음은 오래도록 평화로웠기에 나오는 마음입니다”라고 덧붙였다. 일상이 단조로울 때 변화를 원하듯, 평화란 안정된 상태를 깨기 위해 전쟁이란 혼란 상태를 그리워 한다는 말이다. 심지어 어떤 재계인은 6개월 전에 “이제 슬슬 전쟁을 해야 하지 않나?”라는 말까지 서슴없이 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 발언이 가능했던 이유는 전쟁을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하거나 정당 지지도를 올릴 수 있는 방안(911로 부시정권의 지지도는 급속히 상승했으며, ‘테러와의 전쟁’이란 이름으로 통제는 가속화되었음) 쯤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란다. 



▲ 전쟁으로 이득보는 세력들이 있다. 그런 세력은 어떻게든 긴장 상태를 만들려 한다. 우리나라에선 '총풍사건'이 있었다.



이런 얘기를 듣다 보면 이게 결코 남의 얘기가 아니란 생각이 강하게 든다. 우리나라도 북한이 어떤 징후(핵실험, 미사일 발사)만 보이면 언론인, 정치인 할 것 없이 ‘전쟁불사戰爭不辭’를 외쳐대며, 나이 드신 분 중에는 아예 대놓고 “한 번 붙어서 빨갱이들 씨를 다 말려버려야 해”라고 스스럼없이 외쳐댈 정도이니 말이다. 이들에겐 전쟁이 우리가 일방적으로 공격만 퍼부어 우리는 전혀 피해를 보지 않고, 자신들이 죽이고 싶은 세력만 말끔히 죽일 수 있는 가상게임처럼 느껴지나 보다. 하지만 전쟁의 피해는 너무도 막심하고, 실상은 너무도 끔찍하다. 너만 죽이는 것이 아니라 나도 죽고, 우리 모두 자멸하는 아수라장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전쟁’, ‘안보’를 드높게 외치는 사람치고 제대로 된 사람은 하나도 없다. 왜냐 하면 이명박근혜 정권이 들어섰을 때 가장 많은 군미필자 고위공무원들이 요직을 차지하고서, 끝없이 ‘안보’를 외쳐대는 어처구니없는 광경을 목도할 수 있었고, 만원이면 살 수 있는 USB를 100만원에 사는 방산비리를 넋 놓고 구경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치다 쌤은 “일본의 정책결정자 가운데 전쟁을 경험한 사람은 한 명도 없는데, 그들이 지금 전쟁을 하자고 부추기고 있습니다”라고 일갈했는데, 여기서 ‘일본 정책결정자’를 ‘한국 정책결정자’라 바꾸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 전쟁 경험도 없고, 심지어 군대 경험도 없는 사람이 오히려 강경한 발언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




전쟁과 폭력이 합리화되는 방식

     

그렇다면 전쟁을 경험해본 적이 없는 정책결정자들이 그렇게 목소리를 높여서 전쟁을 해야 한다고 외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건 바로 소위 윗대가리들이 일본의 관점이 아닌 미국의 관점을 내면화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정의이고 그 정의에 대항하는 것은 당연히 악이 된다. 그렇기에 정의를 실현하는 미국과 함께 행동할 때 일본도 정의로운 국가가 되고 건재할 수 있다고 믿게 된 것이다. 

이런 식의 합리화는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 우리 사회에서도 끊임없이 ‘북한인권’에 대한 생각을 물으며, 그에 대해 얼버무리거나 잘 말하지 못하면 ‘빨갱이’라 낙인 찍어버리기 때문이다. 그 속엔 ‘북한을 부정하지 않음=종북세력’이란 한 가지 사고 패턴만 작동하고 있다. 



▲ 한국은 분단이 되면서, 나와 다른 목소리는 박멸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아주 편향적인 사고 패턴이다.



이런 사고 패턴은 강풀이 그린 『26년』에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전두환을 경호하는 마상열이란 실장은 민주화항쟁 당시에 계엄군으로 참여하여 무차별적으로 시민을 죽인 경험이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 민주화항쟁이 끝난 후에 ‘일반 시민을 죽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나날이 고통스럽게 살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사람이 어떤 경로로 전두환을 경호하는 사람이 되었는지, 그리고 마지막까지 그의 옆에 서서 지켜주는 사람이 되었는지는 그의 입을 통해 나오는 말로 알 수가 있다. 26년 만에 518의 원흉을 제거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을 향해 그는 “이 분이 잘못된 것이라면!! 나의 모든 과거가 잘못된 것이기에!!! 이분은 보호 받아야만 한다!!!!”라고 당당하게 외치는데, 매우 섬뜩한 말이라 할 수 있다. 그가 합리화한 방식은 ‘미국은 정의=미국의 모든 행동은 정의=그 행동을 따르는 게 정의’라는 패턴처럼 ‘전두환은 정의=그가 행한 모든 행동은 정의=518 당시의 자신이 한 일도 정의’라는 것이니 말이다.                



▲ 합리화란 어찌 보면, 자기를 방어하기 위한 거다. 하지만 그게 여러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미국은 동아시아 나라들이 분열되면 이득을 본다

     

2009년에 민주당이 잠시 일본을 맡았을 때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1947~)가 총리가 되었는데, 그때 ‘오키나와 미군기지 축소’와 ‘동아시아 공동체 만들기’를 제안했다고 한다. 

일본에 있는 미군기지 중 76%가 오키나와에 있는데, 수시로 민가 상공으로 전투기와 헬리콥터가 날아다닌다고 한다. 분명히 국적 상 일본 땅이지만 실질적으로 미국 땅이라 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에, 그는 미군 기지를 단계적으로 축소하려 했던 것이다. 



▲ 용산 미군기지를 볼 때에도 만감이 교차하는데, 오키나와는 말이 필요없다. 미국의 아시아 패권이 무언지를 알 수 있다.



그런 제안과 더불어 동아시아 공동체를 만들자고 제안하기에 이른다. 미국에 의지하게 되면 자연히 동아시아엔 긴장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고 끝없는 군비경쟁을 할 수밖에 없다. 황해 건너엔 중국이란 군사대국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악순환을 막고 긴장도를 낮추기 위해서는 주변국끼리 오히려 협정을 맺어 평화무드를 조성하여 상호 협력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 자민당만이 총리를 배출하던 시대를 끝내고 민주당에서도 정권을 잡은 적이 있었다. 그때 꽤 진보적인 정책들이 나오긴 했나 보다.



이런 얘기를 들으니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이 떠올라 한 면으론 동의할 수 있었지만, 다른 한 면으론 약간 부정적인 생각도 들었다. 이미 일본은 제국주의적 야욕으로 주변국을 침탈하고 합병하여 많은 상처를 준 전력이 있었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려 한다’는 오해를 받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당시 우치다쌤은 총리에게 “동아시아 공동체의 정체는 뭡니까?”라는 다소 공격적인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그랬더니 총리는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라는 다소 황당하면서도 ‘평화가 장난입니까?’라는 볼멘소리가 나올 법한 대답을 들려줬다고 한다. 총리가 이런 구상을 하고 있었으면 당연히 TF팀을 가동시켜 구체화해야 하고 현실화하기 위한 여러 방안들을 모색해야 함에도,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는 것이다. 즉, 화려한 말잔치로 끝나고 말았다. 

아마도 여기엔 미국의 반감을 고려하여 대놓고 ‘동아시아 공동체’를 말하지 못한 까닭도 있었을 것이다. 미국은 동아시아가 하나로 연대하는 것 자체를 원하지 않는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미국의 영향력은 낮아지고, 미국의 군수사업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여기에 대해 우치다쌤은 “식민지 통치 방법 중 하나는 ‘분할하고 통치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동아시아의 나라들끼리 전쟁을 하지 않으면서도 서로 불신하게 되고 긴장이 유지되어, 당연히 미국 의존도가 높아져서 통치하기 쉬워지기 때문이죠”라고 진단했다. 



▲ 한국에선 이미 안중근 의사가 족중에서 '동양평화론'을 쓰기도 했다. 혜안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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