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치다 타츠루의 ‘동아시아의 평화와 교육’ 5
전주 강연의 제목은 ‘동아시아의 평화와 교육’이다. 이 제목을 보는 순간 ‘너무 거시적이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강연을 다 듣고 녹취록을 작성한 지금 드는 생각은, 제목만 보고 오해하고 걱정했던 것은 한낱 기우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즉, ‘지 주제도 모르는 놈이 제목만 보고 지 맘대로 상상하여 깐 꼴’ 밖에 되지 않았다.
강연은 시종일관 우치다스러웠다. 우치다쌤의 특기인 ‘당신이 무엇을 상상하고, 무엇을 기대하든 그런 판에 박힌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라는 거였으니 말이다. 앞을 향해 나가는 듯하다가도, 어느 순간에 보며 측면에서 쳐들어오고, 측면을 방어할라 치면 후방에서 쳐들어오는 기상천외하고, 천방지축 날뛰지만 깊이는 있는 강연이었다. 그걸 좀 더 쉽게 말하면, 한참 동안 우치다쌤이 경험하신 이야기를 말하다가, 어느 순간 일본의 정치 얘기로 접어들고, 그러다 어느 순간 ‘일본인들의 심리’로 파고들다가, 교육 이야기로 마무리를 하는 식이었다. 당연히 처음 강연을 듣는 사람들은 그런 변화무쌍한 내용에, 재기발랄한 분위기에 당황하게 되고, ‘저리 횡설수설하려 현해탄을 건너오셨나?’라는 실망감이 들 수도 있다.
그런데 그의 이야기에 빠져 하나하나 곱씹어보면, 별개의 이야기로 들리던 것들이 하나의 흐름으로 꿰어지는 경험을 할 수가 있다. 더욱이 놀라운 점은 분명히 일본의 현실, 일본의 정세, 일본의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음에도 마치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들린다는 점이다. 아마도 한국과 일본 사이엔 언어와 문화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정세와 사회적인 흐름은 비슷하다 보니, 그러지 않은가 싶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동아시아의 평화와 교육’에서 했던 우치다쌤의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자.
강연은 일본의 평화헌법개정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일본은 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후 ‘전쟁국가’란 오명을 덮어쓰게 됐고, 그걸 그나마 씻어내고 반성한다는 의미로 ‘군대’가 아닌 ‘자위대(공격권은 없고 방어권만 있음)’를 만들게 됐다. 이런 상태로 ‘제국주의적 야욕’을 완전히 내려놓고 피해를 입혔던 주변국(‘위안부’ 문제, 강제 합병 문제 등)에 사죄하는 마음으로 지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일본은 전혀 그럴 맘이 없었다. 2차 세계대전에 패한 건 자신들이 무능하거나, 전쟁의 명분이 약했기 때문이 아니라 강대국의 개입으로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틈만 나면 빌미(북한의 핵실험, 센카쿠 영토분쟁)를 만들어 자위대를 군대로 전환하려 무진장 애쓰고 있는 것이다.
자민당 정원인 아베 정권이 들어선 이후 일본의 이와 같은 기조는 더욱 분명하고 강경해졌다. 그러다 보니 심지어 ‘평화헌법’까지 손을 대기에 이르렀다. 그 내용은 군대에 공격할 수 있는 권한을 줌과 동시에 분쟁 지역에 파병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에 한국과 같이 제국주의 일본에 의해 수많은 피해를 입은 주변국들은 ‘대동아공영大東亞共榮’을 외치며 조선과 청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놓았던 과거를 떠올리며 비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강경화되고 침략의 야욕을 맘껏 드러내는 일본에 대해 일본 내에서도 의식 있는 학자나 학생들이 함께 비판하고 있노라고 알려줬다. 자신도 ‘배움의 공동체’로 유명한 사토 마나부 선생과 함께 모임을 만들어 ‘개정 저지 운동’을 했단다. 처음엔 3명의 교수들이 의기투합하여 시작했고 그걸 계기로 50인의 발기인이 곧 모이게 됐으며, 만 오천 명의 사람들이 함께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만큼 일본 내에서도 상식적인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자국의 이익보단 평화를 중시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라 할 수 있다.
개정 저지 운동을 할 때 ‘학생 긴급 민주화 운동을 위한 모임’을 주도하는 3명의 학생들과 만나게 되었고 학생들이 만든 플래카드를 들고 함께 사진을 찍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사진이야말로 정말 압권이었다고 우치다쌤은 열변을 토하셨다. 사토 마나부 선생과 우치다쌤은 앉아서 플래카드 깃대의 밑 부분을 지탱하는 역할을 했고, 학생들은 서서 플래카드를 치켜드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이 모습이야말로 우치다쌤이 생각하는 연대의 모습인 듯했다. 나이든 사람은 기반이 되어주고 젊은 사람들은 그런 기반 하에 실질적인 활동을 하는 것이다.
우치다쌤의 그와 같은 열변이 어떤 의미인지 분명하게 와 닿았다. 지금까진 당연히 기성세대들은 젊은이들이 맘껏 꿈꾸고 활동할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해줘야 한다고만 생각했는데, 현실은 그러지 않기 때문이다. 그 말은 곧 기성세대라 해서 무조건 ‘젊은이들을 위하긴 쉽지 않다’는 말이기도 하다. 여름에 ‘민들레 읽기 모임’에서 제비꽃님은 어린이들을 위한 방과후 학교를 열려고 했을 때, 가장 반대하던 분들이 그 지역의 나이 드신 분들이란 말을 했었다. 솔직히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을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가 극도로 이기적인 사회로 변해가고 있으며, 세대 간에 갈등이 첨예해지고 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런 현실에서 일본의 두 지성인 우치다쌤과 사토 선생은 젊은이들의 버팀목이 되려 한 것이니, 절로 가슴 뭉클해지는 광경이었고, 우리나라에도 이런 어른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그러면서 “개정을 저지하는 건 기존의 정당이나 노동조직이 아닌 새로운 조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고 덧붙였다. 왜 기존의 정당이나 노동조직은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신 걸까?
그건 바로 법 개정 당시에 벌어졌던 일련의 일들을 정리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법을 개정하려면 복잡한 절차가 있기에, 의원 중에 조금이나마 생각이 있는 사람들이 있으면 쉽게 통과될 수가 없다. 그러니 우치다쌤도 다중지성에 의해 제재가 걸리길 기대하셨다는 거다. 그런데 너무도 쉽게 중의원에서 통과되었고, 그 이후엔 모든 게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70년 간 유지되어온 평화국가는 그렇게 순식간에 전쟁국가로 명패를 바꿔 달았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이 펼쳐졌고 국민의 의사를 묻지도 않고 나라가 뒤바뀌었음에도, 아베정권에 대한 일본인들의 지지도는 40%나 된단다. 참으로 절망스러운 일이고, 이해되지 않는 일이다.
이런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역시 일본놈들은 어쩔 수가 없어’라고 비난부터 하고 보겠지만, 그건 일본만의 문제라기보다 정치가 민의를 대변하지 못하는 나라의 공통점이라 보아야 맞을 것이다. 한국에서도 ‘국정교과서 사태’가 있었음에도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는 떨어지기보다 소폭 상승했으니 말이다. 그건 어찌 보면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나 문제로 보일 뿐,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겐 ‘그게 뭐?’라는 정도로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되니 말이다. 그러니 우치다쌤도 ‘도대체 왜 지지도가 떨어지지 않고 40%나 되는 상황이 되었을까?’라고 참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고 말을 했고, 그 말마따나 나도 ‘국정교과서, 미르재단, 사드 등 온갖 악재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지지도가 30%가 넘는 상황이 되었을까?’라고 덩달아 한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