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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Oct 11. 2016

‘동아시아의 평화와 교육’이 뭣이 중헌디?

우치다 타츠루의 ‘동아시아의 평화와 교육’ 4

어떤 강연을 듣던지, 그걸 후기로 남기고 싶은 생각은 늘 있었다. 하지만 ‘잘 알지도 못하면서’ 후기를 쓰다보면 막상 진의가 왜곡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멈칫했고, ‘아는 것도 없으면서’ 후기를 쓰려고 보면 뭘 써야 할지 막막하기만 해서 머뭇거렸다. 그래서 호기롭게 달려들었다가 한 자도 쓰지 못하고 멈췄으며, 그렇게 한 달, 두 달 시간이 흘러 아무 것도 남기지 못하게 됐던 것이다.                



▲ 막상 쓰려고 달려들었다가 쓰지는 못하고 하얀 밤을 지샌 적이 몇 번이던가?




우치다에 맛들인 시간만큼자신감도 붙다

     

그러다 나름대로 방법을 찾은 게, 내 생각을 곁들여 후기로 쓰기보다 그냥 우치다쌤의 강연 내용을 보기 좋게 편집하여 올리는 것이었다. 

2014년의 서울 강연은 현장에서 메모를 한 후 그걸 편집하여 올리는 정도로, 2015년 개풍관에서 들은 내용은 녹음파일을 받았기에 녹취록을 작성한 후 그걸 편집하여 올리는 정도로 만족했다. 후기를 써야 한다는 건 너무 부담스러웠기에, 이런 식으로라도 남기려 한 것이다. 그런데 막상 녹취록을 정리하여 올리는 것임에도 필요한 사진을 찾고, 문구를 가다듬다 보니 꽤나 많은 시간이 들어가더라. 하지만 그 시간이 아깝거나 그러진 않았다. 그렇게 애정을 쏟은 만큼 우치다에 대해 좀 더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번과 같이 녹취록을 만들고 편집해서 올릴 생각이었는데, 그때 불연 듯 ‘이번엔 한 번 강연 후기에 도전해볼까?’라는 생각이 스쳤다. 아마도 여러 편의 우치다쌤의 강연을 정리하다 보니, 나름대로의 자신감이 붙어서였던 것 같다.     



            

▲ 강연 내용을 그대로 편집하여 남기게 되면서, 좀 더 우치다쌤에 대해 알게 됐다. 그러니 자신감이 붙었다.




자신감은 부담감 앞에 흔적도 없이 사그라들어 

    

하지만 현실은 늘 기대를 배반하게 마련이다. 녹취록은 만들었지만 이걸 후기로 작성하려 하니, 눈앞은 캄캄하고 심장은 벌렁거리며 조바심에 몸 둘 바를 모르겠는 거다. 쓰고는 싶은데 어떻게 써야할지, 무슨 내용으로 시작해야 할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점심을 먹고 맹렬히 쓰려고 책상에 앉았지만, 부담인지, 설렘인지 모를 감정에 한 자도 쓰지 못하고 몇 시간이 그렇게 흘렀다. 그쯤 되니 ‘시작도 안 했는데, 포기한다고 해도 아무도 모를 거 아냐’라는 합리화까지 들더라. 

그런데 가만히 이 상황을 보고 있으니, 임용시험을 준비할 때가 생각났다. 임용시험은 1년에 한 번씩 있고, 그 끝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여러 번 낙방하여 공부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이쯤에서 그만둘까?’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막상 시작한 공부를 그만두기는 쉽지가 않다. 그럴 때 계속해나갈 수 있도록, 그 순간을 이겨낼 수 있도록 힘을 주었던 문장이 바로 아래에 인용한 문장이다.       



▲ 임용공부를 하던 때, 힘이 되었던 문장이 있었다.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그 문장을 곱씹었다.


    

무엇인가를 하려는 것은 우물 파는 행위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아홉 길까지 파내려갔는데 미처 한 길을 더 파지 못해 물이 나오지 않는다고 포기하는 것은, 우물을 버리는 것과 같다.

有爲者辟若掘井, 掘井九軔而不及泉, 猶爲棄井也. 『孟子』 「盡心 上」 29 


         

위의 문장에선 무언가를 하는 것을 우물파기에 비유하고 있다. 이 문장을 읽을 때마다 나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해주는 말 같아서, 화들짝 놀라곤 했다. 그래서 ‘과연 얼마만큼 우물을 판 것일까?’라는 생각을 했었고, ‘과연 정말 우물물이 나오긴 할까?’라는 불안감이 들기도 했다.                



▲ 우물물이 나오기 전까진 이 곳이 맞는지, 얼마만큼 팠는지 알 수가 없다.




우물은 끝까지 파봐야만 알 수 있듯후기도 그렇다 

    

결국 우물물이 나오기 전까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느 정도를 파야 우물물이 나오는지, 그리고 제대로 수맥을 보고 판 게 맞는지를 말이다. 그러니 의심은 걷어두고 하던 그대로 열심히 해나가야 하고, 마지막 한 길을 파지 못해 결과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묵묵히 해나가기만 하면 된다. 결국 임용에는 실패하여 우물물을 길지는 못했지만, 그런 과정들로 인해 단재학교 교사가 되어 교육 한 복판에 서있게 됐으니, 이것 또한 우물을 버린 건 아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처럼 이때도 ‘한 번 우물을 파기로 작정한 이상, 시작도 하기 전에 도전도 하기 전에 멈춰서는 안 된다’고 마음을 다졌다. 그건 누가 뭐라 해도 ‘우물을 버리는 것’이며, ‘나 자신의 다짐을 아무렇지 않게 짓밟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기로 한 이상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하기로 맘먹었으며, ‘잘 써야겠다’는 생각은 내려놓고, 강연 내용을 잘 이해하여 나의 언어로 천천히 풀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 이런 과정들이 도움이 되어 단재학교에서 아이들과 신나게 살 수 있었다. 우물을 버리지만 않으면 된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도 뻔한 강연 제목?

     

강연 제목이 무려 ‘동아시아의 평화와 교육’이다. ‘세월호와 인성교육’이란 제목만큼이나 거부감이 드는 제목이다. 너무도 거대담론이어서 자칫 잘못하면 정작 핵심은 건들지도 못하고 변죽만 울리다가 화려한 말잔치로 끝날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 전주교대에서 열린 강연회장의 모습.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더욱이 지금의 한국 사회는 ‘내 한 목숨 추스르기 힘든 사회’이기에, ‘헬조선hell+朝鮮’이란 자조적인 신조어까지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어떤 여당 정치인은 “잘못된 역사 교육으로 청년들 입에서 ‘헬조선’이란 말이 회자되고 있다”며 “역사교육(그래서 역사책을 국정화해야 한다고 주장함)을 바로 해야 나라가 산다”는 인식의 천박함을 보이기도 했다. 얼마나 삶과 정치가 괴리되어 있으며, 기득권을 지닌 사람들의 생각과 서민들의 생각이 멀찍이 떨어져 있는지를 볼 수 있던 순간이다. 

정치가 민의를 대변하지 못하고 사회가 집단을 갈기갈기 찢어놓아 ‘공동체가 사는 건 중요하지 않아. 그저 각자 어떻게 살아 남을지만 걱정해’라고 철저한 경쟁만을 부추기는 이 시대에 ‘함께 살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보자. 그것도 너 혼자만이 아닌, 한국이란 국경 단위의 공동체만이 아닌, 동아시아의 공동체의 평화를 모색해보자’라고 외치는 꼴이니, 황당할 수밖에 없다. 오죽했으면 2016년 여름에 한국 영화계를 강타한 『부산행』이란 영화에서 할머니에게 자리를 양보한 딸에게 아빠가 “양보 말야. 지금 같은 때는 자기 자신이 제일 우선이야. 알았어?”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오게 했을까. 이게 결코 영화적인 픽션만은 아니고 지금 한국 사회의 단면을 제대로 보여주는 장면이기에 섬뜩했다.  



▲ 사회가 개인을 중시하도록 부추기고, 어른들이 혼자만 '너만 잘 되기를' 강요한다.



이렇듯 사회가 공동체를 무너뜨리고 각자도생만을 강요하는 이때에 “뭐시 그리 심들어 혀. 사람은 지 먹을 것 타고 나니께. 긍께 지 걱정 고만혀고 남이나 챙겨”라고 현실을 무시하고 이상적으로 하는 말한들, ‘뭐시 중헌디..뭐시..뭐시 중허냐고’라는 볼만이 절로 나온다.

현실과 상관없이 강연 제목이 이와 같이 정해졌다면 그건 아마도 상아탑의 이상적인 마인드와 관계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소크라테스의 철학이나 사색이 그 당시의 노예제를 묵인한 상태에서 등장한 것으로 현실의 비루함은 가리고 이상의 고상함만을 극대화한 것이었듯, 한국 사회의 혼란은 감추고 ‘세계평화’ 운운하는 말잔치처럼 보였다. 더욱이 주제 또한 ‘평화’라 한다면, 강의 내용도 천편일률적일 가능성이 높았다. 소위 유학에서 끊임없이 회자되는 ‘군자는 화합을 추구하고 소인은 편 가르기를 좋아한다(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 『論語』 「子路」 23)’ 식의 말을 인용하며 ‘악을 끌어안아야 한다’는 결론으로 치닫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 제목을 듣고 한 동안, 깊은 시름을 느꼈다. 과연 이 제목으로 우치다쌤은 어떤 말을 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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