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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Feb 25. 2016

인성교육엔 교육은 없고 폭력만 있다

교컴 ‘인성교육을 넘어 시민성교육으로’ 2

우여곡절 끝에 향교문화관에 자리 잡고 앉을 수 있었다. 자세를 곧추세우고 나눠준 자료집을 본 후 한 바퀴 둘러본다. 60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강의실인데 아직도 많은 자리가 비어 있더라.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일까? 

2시가 지나 드디어 然在쌤의 사회로 첫 번째 강의가 시작되었다. 그 때 휙 둘러보니, 아까와는 달리 많은 자리가 빼곡하게 차 있더라. 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이 순간만은 함께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이 위안처럼 느껴졌다. 보통 이런 프로그램의 경우 직무연수로 인정되어 점수도 받고 연수시간도 인정되지만, 교컴 연수는 직무연수가 아니니, 순수하게 배우고자 하는 마음, 함께 나누고자 하는 마음으로 참여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여기 모인 쌤들이 대단해 보였다.                



▲ 강의실은 넓고도 넓었다. 사람들이 이곳을 다 채울까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앎의 유쾌한 여정을 선사해주다 

    

권재원쌤이 단상에 올라서 섰다. 강의를 하는 사람이라면 시작하기 전이 가장 힘든 순간일 것이다. 열심히 준비는 해왔지만, 단상에 서서 많은 사람들이 나를 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머리가 새하얘지기 때문이다. 더욱이 오늘의 강의는 지금 교육계의 뜨거운 화두인 ‘인성교육’이지 않은가. ‘인성교육’의 필요성과 의의에 대해 전달해주는 것이라면 오히려 쉬울 것이다. 교육부에서 강조하고 있는 내용이니만치, 이미 나와 있는 자료집에 내 목소리만 얹으면 되니 말이다. 하지만 주제는 ‘인성교육이란 인성교육은 없다’로, ‘인성교육’ 자체를 비판하고 있기에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미 여러 책을 펴내고 강의도 여러 번 해본 실력자답게 2시간을 종횡무진 사실과 상황, 그리고 지식을 엮어내며 ‘앎이 주는 유쾌함’을 맘껏 선물해줬다. 권재원쌤은 다방면의 지식을 꿰고 있어, 그걸 ‘인성’이라 명시된 카테고리 안에 적재적소에서 풀어내며 논지를 전개했다. 그러니 들으면 ‘아하!’하고 알게 되는 부분과 너무도 당연하여 더 이상 비판거리조차 되지 않는 일상적인 것(‘교과교육&인성교육’의 대립구도 / ‘마을이 학교다’는 말)을 비틀어보며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하고 깨닫게 되는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짧지만 강인한 인상을 남긴 강의였다.                



▲ 권재원 쌤이 강단에 섰다. 경험자의 여유가 보인다.




세월호 사건은 인성의 결여 때문에 발생한 것인가?

     

‘인성교육법’이 제정되고 ‘인성교육’이 교육계의 뜨거운 이슈가 되었다. 이와 같은 흐름을 알기 위해선 ‘세월호 사건’에 대해 알아야 한다. 

2014년 4월 16일에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던 세월호는 진도부근 해상에서 침몰됐다. 아침부터 모든 언론은 경쟁적으로 세월호가 서서히 기울어지며 침몰하는 상황, 구조대원들이 구조하지 못하고 완전히 침몰된 상황 등을 실시간으로 보여줬다. 그 장면을 보는 부모의 마음은 두 말할 나위 없고, 조금의 이해관계는 없지만 ‘저 정도면 충분히 구할 수 있어’라고 생각하며 지켜보던 일반인에게도 씻지 못할 트라우마를 남겼다. 기울기 시작할 때부터 거의 1시간 30분 정도 물 위에 떠있었음에도, ‘구조할 마음이 없었다’고 느껴질 만큼 제대로 된 구조 활동은 없었기 때문이다. 

세월호 사건은 어찌 보면 한국 사회가 그동안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묻어왔던 것들이 어떤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선박회사는 경제적 이득을 위해 과적을 하며 평형수를 빼냈고, 국정원은 유독 세월호에 한해서 휴지 하나까지 철저하게 관리했으며, 침몰 중임에도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방송을 하여 학생을 비롯한 승객들이 옴짝달싹 못하게 했고, 구조대원들이 현장에 도착하여 구조에 몰두하기보다 중요단서들을 먼저 빼내고 선원들부터 구조했으며, ‘다이빙벨’로 한 목숨이라도 구하겠다고 현장에 온 사람을 사기꾼으로 몰았고, 조사과정에서 피의자 신분인 선장을 경찰의 집에 잘 수 있도록 배려해주기까지 했다. 이런 일들은 도무지 상식으론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어떤 꿍꿍이가 있어서 이렇게 비상식적으로 구조하지 않으려 하며, 진상규명까지 가로 막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이 문제는 ‘인성(인간성)의 문제’와는 별개라는 것쯤은 알 수 있다. 



▲ 세월호 사건은 총체적인 의혹 덩어리지만, 거기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조차 금지되고 지겨운 것이 되고 있다.



하지만 세월호 사건 이후 교육계에서 이루어진 후속조치는 일반인의 생각과는 너무도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선원들이 배를 버리고 도망갔던 것이 ‘인성이 부족해서 그랬다’고 결말을 내놓고, 그렇기 때문에 ‘인성교육을 통해 다시는 세월호 사건과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해결책을 제시했으니 말이다. 이 말은 곧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학생이 과도한 게임중독으로 현실과 이상을 구분하지 못하여 저지른 것이다’고, 가정폭력이 발생하면 ‘알콜중독이 폭력적인 성향을 낳았다’고 판단하는 것과 같았다. 진상은 사라지고 껍데기만 남았으며, 본질은 사라지고 말단만 남았으니 말이다. 결과를 이미 정해놓고 과정을 껴 맞추니, 결과도 왜곡되고 본질은 완벽하게 사라지는 기현상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 차와 먹을 것이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다. 역시 먹을 게 있다는 건 좋다.




교육만능주의에 기댄 인성교육

     

‘세월호 사건’과 ‘인성’ 사이엔 아무런 관련도 없음에도 교육으로 접근하면 ‘인성교육’과 같은 황당한 발상이 가능해진다. 학교 폭력이 발생하면 ‘상담이 부족하여 아이들의 폭력성을 잠재우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되며 ‘상담교사 증원설’이 등장하고, 정권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얘기하면 “잘못된 역사 교육으로 청년들 입에서 ‘헬 조선’이란 말이 회자되고 있다”며 ‘역사교육 정상화’가 등장한다. 이런 식으로 ‘기-승-전-교육’의 패턴이 가능한 이유는 두 가지다. 



▲ 한 교회의 합창단이 부른 노래. 섬뜩하지만 아마도 이렇게 조형할 수 있다는 생각에 교육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이게 올바른 역사교육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첫째는 ‘교육만능론’이다. 교육에 대한 정의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강의식 수업과 주입식 수업을 가능하게 하는 기반에는 ‘쇳물을 틀에 부어 제품을 만들 듯, 인간에게도 같은 것을 주입하면 같은 인간이 된다’는 주형론鑄型論적 교육관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한국 사회처럼 지식 위주의 교과가 모든 과목을 압도하는 힘을 발휘하고, 그걸 얼마나 잘 암기하고 있느냐가 성적을 좌우하는 사회에선 더욱 그렇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것이 바로 ‘인성교육법’이고, 그 밑바탕엔 ‘교육을 통해 인성을 키울 수 있다’는 ‘교육만능론’이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교육을 통해 단순한 지식은 알려줄 수는 있겠지만, 감정적인 부분을 바꾸거나 변화시킬 수는 없다. 그런 식의 의도적인 교육을 통해 변화된다기보다 잠재적인 교사의 행동이나 언어를 통해, 사회구조를 통해 더 많은 변화가 촉발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육에 대한 논의 중엔 ‘밖에 있는 완벽한 진리를 채워 넣는 게 아니라, 사람이 지니고 태어난 완벽한 것을 끄집어낸다’고 정의하기도 하는 것이다.

학교에서 가르친 것과 학생의 생각이 엇나간 사례들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 중 대표적인 예가 바로 1972년 유신헌법에 따른 교육과정에 대한 얘기다. 1972년 10월에 유신헌법이 선포되고 전국의 학교가 유신체제를 옹호하고 분배를 공산주의 사상으로 받아들이게 하여 오로지 성장제일주의만을 가르쳤다. 더욱이 그 때는 언론마저 모두 장악되어 있는 상태였기에 하나의 생각을 가르치기에 좋은 환경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정부 우호주의자’가 되거나, ‘완벽한 반공주의자’가 되어야 맞지만, 오히려 사회적인 발언을 많이 하며 정면에 서서 맞섰던 것이다.                



▲ 교련, 권위주의적 학교 체제, 국민교육헌장 등 수많은 교육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부마항쟁 땐 전면에 나서 정부를 비판하고 의견을 냈다.




교육은 장기적인 안목을 요하지만즉각적인 해결책만을 제시하려 한다

     

둘째는 ‘교육의 결과가 단기간에 나온다’는 생각이다. ‘세월호 사건이 사람들의 인성이 부족해서 일어났다’는 결론을 받아들인다 할지라도, 그에 대한 해결책으로 ‘인성교육을 해야 한다’고 운운하는 것은 교육의 효과를 완전히 매도하는 말이라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교육의 효과는 지금 당장 나오지 않으며,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에 드러날지, 그 때 어떤 결과로 발현될지 그 누구도 모른다. 그래서 우치다쌤은 “교육은 공들인 것과는 다른 모양새로 다른 시간, 다른 곳에서 되돌아오는 시스템입니다. 비유적으로 표현하자면, 자판을 두드리면 화면에 문자가 뜨는 게 아니라 사흘 후에 그림엽서가 도착한다든지 삼 년 뒤 호박을 두 개 받게 된다든지 하는 식으로, 그게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 도통 알 수 없는 흐름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사를 춤추게 하라』, pp32”라 표현한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교육을 쥔 사람들은 이런 장기적인 안목을 깡그리 잊어버렸고, 오로지 ‘투입input-산출output’의 경제적 교육관만이 전면에 떠오르게 되었다. 이런 현실이기에 교육전문가를 자임하며 고민을 하는 교사가 연수에서 강사에게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그래서 해결책은 뭔가요? 또는 학교에선 어떻게 적용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던지며, 교육주체의 한 축으로 ‘돼지엄마’라 불릴 정도로 여러 정보를 알고 있는 부모는 “학원에 보낸 지 반 년이나 넘었는데, 성적이 좋지 않으니 학원을 옮겨야겠어”라는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하게 된 것이다. 이 모든 건 교육을 교육으로 본다기보다, 지금 당장 효과가 나는 ‘공장의 제품 생산과정’으로 보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일이 발생할 때마다 ‘교육이란 이름의 폭력’을 행사하는데 전혀 주저하거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게 된 것이다.                



▲ 교육이야말로 눈 앞의 것에 현혹되는 게 아닌, 장기적인 안목을 갖추고 높은 시좌를 지녀야 하는 일인데, 현실은 반대다.




한껏 무르익어가는 분위기

     

이런 교육에 대한 잘못된 생각들을 토대로 등장한 것이 바로 ‘인성교육’이다. 전혀 교육적이지 않은 ‘인성교육’이 교육이란 이름으로 포장되어 거부감 없이 학교에서 수업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니 전혀 교육적이지도 않을뿐더러, 단순히 폭력적이라 표현해도 되는 것이다. 

강의실의 분위기는 한껏 무르익었다. 권재원쌤이 목소리를 높여 이야기를 전달하는 만큼 ‘단순히 생각할 문제는 아니다’는 게 전해졌으니 말이다. 권재원쌤은 ‘왜 인성교육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얘기와 ‘인성교육이 아닌 어떤 교육이 지금 필요한가?’에 대해 얘기를 이어갔다. 그에 대한 얘기는 다음 후기에서 본격적으로 하도록 하자. 



▲ 강의는 다양한 것들을 꿰뚫고 지나간다. 이제 본격적으로 인성교육과 교육과정의 문제로 들어간다.






목차     


1. 건빵이 교컴 겨울 수련회에 참석한 까닭?

대화에도 맛이 있다

전주에서 교컴 수련회가 한다는 소식을 들은 후의 반응은?

외로운 사람이여, 그대 통하였느냐

불청객 1 -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길을 나서다

불청객 2 - 불청객이 청객이 되기까지

교컴도 몰라요, 교실밖교사커뮤니티도 몰라

강의를 맛볼 준비가 되셨나요?     


2. 인성교육엔 교육은 없고 폭력만 있다

앎의 유쾌한 여정을 선사해주다

세월호 사건은 인성의 결여 때문에 발생한 것인가?

교육만능주의에 기댄 인성교육

교육은 장기적인 안목을 요하지만, 즉각적인 해결책만을 제시하려 한다

한껏 무르익어가는 분위기


3. 인성교육의 뿌리는 반공교육이다

인성교육은 어떻게 등장했나?

인성교육의 뿌리는 반공교육이다

‘마을이 학교다’라는 부정적인 뜻

교육개혁은 고장 난 자동차를 운전하며 수리하는 일


4. 인성교육은 실패한다그 너머엔?

인성교육은 실패한다 1 - 지식교육/인성교육의 이분법이 낳은 왜곡

인성교육은 실패한다 2 - 교육목표를 스스로 위배하며 등장하다

인성교육은 실패한다 3 - 교육 효과에 대해 합의된 내용이 없다

권재원쌤에게서 발견한 우치다쌤의 향기

지적 폐활량으로 알쏭달쏭함에 머물라

결론이 아닌 한 모퉁이를 끌어안도록 일러준 강의


5. 인성교육이 아닌 인권교육으로

은진쌤과 첫 만남의 기억

강의라는 흐름에 몸을 맡기며

13년 차 교사의 역량이 유감없이 발휘된 강의

역할극을 통해 내 안에 감춰진 본심을 보다

학생들에게 선언함으로 나를 다잡다

통제가 아닌 지켜볼 수 있는 힘이 있는가?

학교 현장이 아닌 삶이란 현장에선 그대를 응원하며


6. 교컴 토론과 뒤풀이를 기록하다

저렴하면서 맛있는 저녁 식사 시간

아이 엠 그라운드 자기소개 하기

토론 1 - 주제를 듣고 꿀 먹은 벙어리가 되다

토론 2 - 화려한 말잔치, 하지만 그걸로 끝!

토론 3 - 인성교육에 대해 시민성 교육을 이야기한다는 것

뒤풀이 1 - 어떤 평가를 할 것인가?

뒤풀이 2 - 도덕수업이 역사수업에 도움이 된다?

뒤풀이 3 - 너무 열심히 하려 하지 마세요

뒤풀이 4 - 학생이 교사를 때렸다는 것에 대해

 

7. 교육을 바꾸는 15분 

전주한옥마을 1 - 관광지가 아닌 삶의 공간

전주한옥마을 2 - 한옥마을이 건빵에게 던진 메시지

교육을 바꾸는 15분 1 - 자신이 살아온 결을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가

교육을 바꾸는 15분 2 - 72일간 북유럽 4개국을 돌아보고 난 소감

교육을 바꾸는 15분 3 - 핀란드의 교육을 체험하고 난 소감

교육을 바꾸는 15분 4 - 민주적 환경과 혁신학교

    

8. 교육을 바꾸는 15분 와 교학상장에 대해

교육을 바꾸는 15분 5 - 교사의 한계가 느껴지던 그 순간이 뛸 수 있는 그 순간

교육을 바꾸는 15분 6 - 차별은 체계적으로, 일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교육을 바꾸는 15분 7 - 열정, 다양성, 그리고 선입견

자의식을 버리고 해방감을 맛보다

교학상장의 역동적인 흐름에 빠져들다

해방감을 느낀 그대, 교학상장의 가르침을 따라 거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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