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컴 ‘인성교육을 넘어 시민성교육으로’ 5
권재원쌤의 강의는 여러 학문으로 접근하여 파헤쳐 봄으로 ‘인성교육의 본질’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그래서 ‘지금 교육부가 추진하려는 인성교육이 얼마나 비교육적이며, 얼마나 폭력적인 관점에서 출발했는지 아십니까?’라고 문제제기를 우리에게 던져줬다.
그런 흐름을 이은 이은진쌤의 강의는 ‘인성교육의 밑바탕은 인권’이란 사실을 천명함과 동시에 그게 현장에선 어떻게 적용되는지 실제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현장에선 어떤 인성교육을 해야 할까요? 그건 바로 인권교육입니다’라고 방법을 제시해줬다.
이은진쌤은 작년 여름에 섬쌤이 주도한 모임에서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다. 초등학교쌤들, 대안학교쌤들, 그리고 학부모까지 다채로운 사람들이 모여 ‘교육’이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하지만 대부분은 처음 만났을 뿐만 아니라, 서로의 생각도 거의 모르며 시간까지 짧아 깊이 있는 얘기를 나눌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만큼 서로에 대해 탐색 아닌 탐색을 하는 시간이었다. 단재학교를 설명하면서 “어떤 목표를 정하지 않고 개인의 역량에 따라 정해진 커리큘럼이 없이 진행하고 있어요. 그 때 교사는 최대한 뒤로 물러서 상황을 지켜보려 노력하죠”라고 얘기하니, 은진쌤은 “왜 목표를 정하는 게 문제가 되죠?”라고 곧바로 직구를 던졌다. 잘 모르는 만큼 그 시간은 말과 말이 충돌하고, 생각과 생각이 뒤엉키는 시간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사람도 많은 데다, 시간도 짧아 거의 제대로 얘기를 나누지 못하고 헤어져야 했다. 그러니 어떤 생각으로 교육을 바라보는지, 현장에선 어떻게 적용하며 생활하는지 더 궁금해졌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엔 전주에서 이렇게 강의를 듣게 되니, 이은진쌤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 기대했다. 과연 어떤 앎의 파토스를 선사해줄까?
강의를 들을 때면 마음을 가다듬고 눈에 불을 켜고, 귀를 쫑긋 세우며 그 흐름에 집중하려 한다. 머리가 좋진 않으니 들으면 바로 잊어버리기 십상이고, 아는 게 별로 없으니 낚아챌 수 있는 지식이 별로 없다. 그래서 초창기엔 강의를 들을 때마다 잔뜩 긴장했고, 하나도 놓치지 말고 들어야 한다는 강박에 휩싸이기도 해서, 강의를 듣는 것 자체가 곤욕스러웠다.
하지만 이젠 그렇게까지 긴장하지 않는다. 모든 말을 100% 모두 들었다 할지라도 그걸 그대로 반복할 수 없을뿐더러, 반복하는 게 아무 의미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저 큰 흐름을 감지하고 받아들이며, 그 흐름 속에 나에게 포근히 안겨오는 어떤 미세한 울림을 안으려 할 뿐이다. 그 울림이야말로 나의 의식에 균열을 일으키는, 여태껏 당연하다고만 얼버무렸던 ‘건너뛴 삶’을 직면하게 하는 것이니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강의란 ‘영화를 보듯 그 상황에 몰입하며 감정이입하는 시간’이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강의를 듣는 건 하나의 재밌는 간접체험을 하는 장이자,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물론 꼭 강의만 그런 것은 아니다. 사적인 만남 속에서도 사람 책을 읽을 수 있고, 그 속에서도 미세한 울림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적인 대화는 편안한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던져준 말들 속에 자신에게 의미 있는 말을 건져내는 것인데 반해, 강의는 강연자가 메시지를 분명하게 던져준다는 차이가 있다. 그래서 공적 대화의 장에 선 강연자는 잔뜩 긴장할 수밖에 없다. 나도 살짝 떨리는 마음으로 강단 앞에선 이은진쌤을 바라봤다.
이은진쌤은 시작하자마자 숫자를 보여준다. ‘36, 13, 2’라는 숫자들을 하나하나 보여준다. 그건 곧 자신을 나타내는 숫자였는데, 숫자퀴즈를 통해 강연자와 청중과의 거리를 좁히고자 하는 마음이 보였다.
우리가 보통 알던 일방적으로 전달해주는 강의와는 다르게 진행됐다. 물론 일방적으로 전달해주는 강의는 깊은 주제를 다룰 때, 그리고 전혀 모르는 내용을 전할 때 무척 유용하다. 하지만 그러려면 그 쪽 분야에 있어서 다방면의 지식을 꿰뚫고 있어야 그 흐름을 놓치지 않고 설득력 있게 전달할 수 있다. 그에 반해 은진쌤은 초등학교 교사로서 쌓인 수업경력을 십분 발휘했다. 모둠학습, 역할놀이를 적당히 활용하여 강의의 역동성을 더했기 때문이다.
사진을 띄워주고 조별로 묶어준 후 사진을 본 소감을 조별로 함께 나누게 한 후, 전체에게 설명하게 했다. 이 과정을 통해 같은 조 사람들의 생각을 알게 됐고, 전체가 거의 같은 생각을 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런데 다들 너무 같은 생각만 하다 보니 너무 무색무취해 보였고, 오히려 앞쪽 교감 선생팀에서 들려준 로맨스 얘기가 확 끌렸다. 역시 해석은 창의적일수록, 판에 갇히지 않고 어긋날수록 좋다. 물론 강사입장에선 대략난감일 테지만 말이다.
또한 역할극을 하기도 했다. 두 사람이 한 팀으로 교사와 학생역할을 맡는다. 여학생이 짙은 화장을 하고 학교에 등교하여 교사에게 걸린 상황이다. 학생은 ‘화장은 나의 힘’이라 생각하여 ‘화장 없인 죽음을 달라’고 외치는 타입이다. 이 때 교사는 ‘학생에게 화장은 안 되는 일’이라 생각하며 지도를 하려 하는데, 첫 번째 교사는 강압적이고 권위주의적이어서 학생의 의견 따윈 상관없이 밀어붙이는 성격이고, 두 번째 교사는 학생의 눈높이에 맞춰 의견을 들으며 얘기를 하려는 성격이다.
나는 섬쌤과 한 팀이 되어 역할극을 할 수 있었다. 섬쌤은 완벽하게 두 타입의 교사를 체화한 듯 연기했다. 권위주의적인 교사를 연기할 땐 한 마디 말도 나오지 않도록 쉴 새 없이 일장연설을 늘어놓았고, 소통하는 교사를 연기할 땐 들어주고 이해해주려는 마음으로 학생이 말을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했다. 이 과정을 통해 『더 엑스페리먼트The Experiment』라는 실화를 바탕에 둔 영화가 갑자기 생각났다. 평범한 사람을 실험대상으로 모집한 후 한 팀에겐 교도관 역할을, 한 팀에겐 죄수 역할을 하게 한다. 모두 다 ‘이건 실험일 뿐, 현실이 아니다’라는 것을 충분히 안 상태에서 실험은 시작된다. 하지만 머지않아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몰입하게 되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몰입이 아닌 도취하는 상황에까지 이른다. 그러니 죄수들이 집단 반항을 하거나, 자신에게 항변을 하면 ‘교도관 전체를 모욕했다’, ‘신성한 법체계를 모독했다’는 생각까지 하기에 이르러 그들에게 아무런 가책도 없이 폭력을 행사하게 된 것이다. 그 순간 그들은 ‘이건 실험이 아닌, 현실이다’로 받아들인 것이다. 아마도 처음에 은진쌤이 “이 역할극에 몰입하면 할수록 그 마음을 제대로 느낄 수 있어요”라고 주문했기 때문인지, 우리 모두 그 역할에 완벽하게 빠져들었다.
이걸 보면서 ‘교사’라는 역할도 결국은 그와 같다고 생각했다. 직업과 나를 완벽하게 일체화시켜 나를 ‘옷걸이’가 아닌 ‘옷’으로 착각하기에 그런 문제가 생긴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자신은 ‘소통을 잘하는 사람’, ‘아이들을 인격적으로 대우하는 사람’이라 생각하지만 교사의 역할로 학생을 만나는 이상, ‘난 선생이고 넌 학생이야’라고 드라마 『로망스』에나 나오는 달달하고 감성풍만한 대사가 아닌, 악에 잔뜩 받친 말을 퍼붓기에 이를 수밖에 없다. 그건 교사가 어느 순간 학교의 대리인을 자처하며 그 역할에 충실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교사로서 선다는 것은 어찌 보면, ‘교사라는 책임, 역할에서 얼마나 놓여날 수 있느냐?’라는 것과 관계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하마터면 이 때 꽉 막힌 교사 역할을 매우 충실히 연기하며 속사포랩을 무지막지하게 날리고 있는 섬쌤과 멱살잡이 하는 상황(?)까지 갈 뻔했다(이거 나도 학생역할에 너무 몰입했단 얘기군^^;;).
은진쌤은 새 학기가 시작될 때 “나는 여러분들을 힘으로 통제하거나 억누르려고 하지 않습니다”라고 선언을 한다고 한다. 그 선언을 외치며 아이들과 함께 하나하나 규칙을 만들어간다고 한다. 그 규칙엔 당연히 자신들이 누려야 할 권리와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기 위해 지켜야 할 의무가 포함되어 있단다.
이 말을 하던 도중 은진쌤은 “선언을 말로 하지 않으면 내가 ‘좋은 사람’인 것처럼 아이들에게 비춰집니다. 그러니 아이들은 수동적인 상태로 남아 그 교사와 함께 하는 동안에만 권리를 주장하고 지키려 하고 그 외엔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는 거죠. 그러지 않도록 저는 아이들에게 ‘교사 한 명이 특별한 존재이기에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이기에 주장할 수 있다’는 점에 방점을 찍고 강조해줍니다. 바로 그걸 알려주기 위해 새 학기에 아이들 앞에 서서 이런 선언을 외침으로 시작하는 것이죠”라고 말했다.
학생의 인권을 중시한다는 건 힘든 일일 수밖에 없다. 단재학교는 10여명의 아이들이 함께 생활하는 곳이기에 시작과 함께 규칙도 만들고 중간에 수정하는 것 또한 자유롭지만, 일반 학교의 경우 학생 수가 25명 이상이 되다 보니 수많은 난관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아이들 앞에서 함께 선언을 하고 규칙을 만드는 것이기에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애쓰고자 하는 마음에 인권의 핵심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건 ‘어느 순간이고 인권은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라는 처절한 외침이기 때문이다. 그건 교사가 바뀌었다고, 수능이란 절체절명이 시험이 코앞이라고, 심지어 전쟁이 나서 국가의 징집 불호령이 떨어졌다고 무너져선 안 되는 가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현실에서 시시때때로 그런 것쯤은 아무 것도 아닌 양 무너지곤 한다. ‘너를 위해서’라며 극단적인 경쟁의 장으로 아무렇지 않게 밀어 넣거나, ‘교사도 인권이 있다’며 학생을 강압적으로 억누르거나 하는 일들이 발생하니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은진쌤은 “학생과 교사의 인권이 충돌할 때, 저는 약한 사람의 인권을 존중하는 게 진정한 인권이라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강자의 인권은 어떤 식으로든 인정받지만, 약자의 인권은 늘 억압받고 무시당해 왔으니 그 말은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
선언이란 말과 함께 중요했던 말은 ‘지켜볼 수 있느냐?’하는 말이었다. 교사들이 가장 걱정하는 건, 그렇게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했고, 권리를 외칠 수 있도록 했는데 그 때 개판이 되면 어떻게 하냐는 것이다. 예를 들면, ‘교사에게 말하지 않고 화장실에 다녀와도 된다’고 할 경우, 너도 나도 들락거려 수업 분위기가 잡히지 않는다던지, 또는 그걸 역이용하여 아예 다른 곳으로 샌다던지 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 때 교사는 그걸 미리 걱정하여 아예 그런 여지가 생기지 않도록 차단하려 한다. 그래야 서로 얼굴 붉히는 일이 없고, 누이 좋고 매부 좋은 평화로운 학급분위기가 조성된다고 생각하기 쉬우니 말이다.
이에 대해 은진쌤은 “물론 처음에 지금까지와는 달리 아이들의 권리를 인정해주고 그대로 할 수 있게 하면 여러 문제들이 발생할 거예요. 아이들도 그런 상황에 놓여본 적이 없으니, 그걸 어느 정도까지 활용할 수 있는지 모르는 게 당연한 거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역시 아이들의 권리를 인정해주고 자율성을 주는 건 시기상조이고 학교라는 시스템에선 불가능해’라고 단정 짓고 다시 강압적인 교사의 모습으로 돌아간다면, 그건 서로에게 상처만 줄 뿐이죠. 어찌 되었든 아이들이 자유를 남발하거나, 교사도 어찌해야 할지 몰라 헤매는 건 과도기적 현상이라 볼 수 있어요. 서로 맞춰가는 과정 속에 그런 혼란은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죠. 그러니 그 때 혼란에 빠져 과거로 회귀하기보다 그 상황을 함께 경험하고 지켜보며 접점을 찾으려 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결국 인권의 문제를 이야기할 때, 중심은 ‘지켜봄’이라는 데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얼마나 인내와 끈기를 가지고 지켜볼 수 있는지, 그리고 그걸 응원해 줄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는 말이다. 그러려면 당연히 교사는 ‘학생은 이래야 해’라는 ‘불멸의 아이’가 아닌, 감정이 팔팔 끓고 기분이 들쑥날쑥하는 ‘역사적인 아이’를 받아들이려는 적극성이 필요하다. 그만큼 당연히 교사에겐 힘든 일일 수밖에 없고, 주위 교사들로부터 안 좋은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평상시에 하는 것처럼 권위로 학생들을 짓누르고 그저 정해진 대로 가르치면 조용하며 면학적인 수업분위기를 만들기 쉬운데 반해, 아이들의 억눌린 소리를 들으려 노력하는 순간 정적은 깨지고 수많은 소음과 갈피를 잡지 못해 분위기가 혼란스러워져 난장판이 되기 쉽다. 이걸 얼마나 지켜볼 수 있으며, 얼마나 아이들과 이야기하며 중심을 잡아가느냐가 인권교육의 핵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시간의 강의는 이렇게 끝났다. 은진쌤이 학교에서 얼마나 고군분투하고 있는지, 그리고 오늘 강의에서 얼마나 애썼는지 충분히 느껴진 강의였다. 올핸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육아휴직을 했다고 한다. ‘엄마인 교사’라는 정체성을 올핸 ‘교사인 엄마’라는 정체성으로 바꿔 일 년을 지낼 생각이라고 한다.
며칠 전 초등학교를 다니는 자식을 둔 초등학교 교사가 새벽까지 공부시키는 일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육아란 ‘학습매니저’와 동의어로 취급된 지 오래이기에 특별한 내용이라 할 수는 없었지만, ‘초등학교 교사’라는 단어가 걸렸다. 교육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교사는 현장에서도, 현실에서도 교육이란 이름의 폭력을 아무렇지 않게 휘두를 수 있다는 사실이 경악스러웠기 때문이다.
아마도 은진쌤은 ‘인권의식’을 통해 교육을 고민하고 실천해왔기에, 이처럼 비정상적인 육아라는 틀에서 벗어나 일 년을 아이와 함께 즐겁게 보낼 것이다. 그렇기에 학교 현장이 아닌, 삶의 현장에서 자식과 함께 생각을 가다듬고 완성해 가는 실천의 장이 되지 않을까. 일 년간 삶이란 장에서 어떤 생각으로 갈무리할지, 여태껏 해보지 못한 새로운 여행을 떠나는 은진쌤을 응원하며 강의 후기를 마치고자 한다.
목차
대화에도 맛이 있다
전주에서 교컴 수련회가 한다는 소식을 들은 후의 반응은?
외로운 사람이여, 그대 통하였느냐
불청객 1 -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길을 나서다
불청객 2 - 불청객이 청객이 되기까지
교컴도 몰라요, 교실밖교사커뮤니티도 몰라
강의를 맛볼 준비가 되셨나요?
앎의 유쾌한 여정을 선사해주다
세월호 사건은 인성의 결여 때문에 발생한 것인가?
교육만능주의에 기댄 인성교육
교육은 장기적인 안목을 요하지만, 즉각적인 해결책만을 제시하려 한다
한껏 무르익어가는 분위기
인성교육은 어떻게 등장했나?
인성교육의 뿌리는 반공교육이다
‘마을이 학교다’라는 부정적인 뜻
교육개혁은 고장 난 자동차를 운전하며 수리하는 일
인성교육은 실패한다 1 - 지식교육/인성교육의 이분법이 낳은 왜곡
인성교육은 실패한다 2 - 교육목표를 스스로 위배하며 등장하다
인성교육은 실패한다 3 - 교육 효과에 대해 합의된 내용이 없다
권재원쌤에게서 발견한 우치다쌤의 향기
지적 폐활량으로 알쏭달쏭함에 머물라
결론이 아닌 한 모퉁이를 끌어안도록 일러준 강의
은진쌤과 첫 만남의 기억
강의라는 흐름에 몸을 맡기며
13년 차 교사의 역량이 유감없이 발휘된 강의
역할극을 통해 내 안에 감춰진 본심을 보다
학생들에게 선언함으로 나를 다잡다
통제가 아닌 지켜볼 수 있는 힘이 있는가?
학교 현장이 아닌 삶이란 현장에선 그대를 응원하며
저렴하면서 맛있는 저녁 식사 시간
아이 엠 그라운드 자기소개 하기
토론 1 - 주제를 듣고 꿀 먹은 벙어리가 되다
토론 2 - 화려한 말잔치, 하지만 그걸로 끝!
토론 3 - 인성교육에 대해 시민성 교육을 이야기한다는 것
뒤풀이 1 - 어떤 평가를 할 것인가?
뒤풀이 2 - 도덕수업이 역사수업에 도움이 된다?
뒤풀이 3 - 너무 열심히 하려 하지 마세요
뒤풀이 4 - 학생이 교사를 때렸다는 것에 대해
전주한옥마을 1 - 관광지가 아닌 삶의 공간
전주한옥마을 2 - 한옥마을이 건빵에게 던진 메시지
교육을 바꾸는 15분 1 - 자신이 살아온 결을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가
교육을 바꾸는 15분 2 - 72일간 북유럽 4개국을 돌아보고 난 소감
교육을 바꾸는 15분 3 - 핀란드의 교육을 체험하고 난 소감
교육을 바꾸는 15분 4 - 민주적 환경과 혁신학교
교육을 바꾸는 15분 5 - 교사의 한계가 느껴지던 그 순간이 뛸 수 있는 그 순간
교육을 바꾸는 15분 6 - 차별은 체계적으로, 일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교육을 바꾸는 15분 7 - 열정, 다양성, 그리고 선입견
자의식을 버리고 해방감을 맛보다
교학상장의 역동적인 흐름에 빠져들다
해방감을 느낀 그대, 교학상장의 가르침을 따라 거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