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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Apr 14. 2016

어린이대공원과 ‘역사적인 아이’

어린이대공원 트래킹 3 (16.04.08)

아이들이 지각을 하여 기분은 별로였지만, 내 기분과 별도로 날씨만은 화창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학생 시절에 공부를 시작할 때부터 마지막 임용을 보던 그 순간까지 늘 소원은 ‘도서관에 갇혀 있지 않고 날씨가 풀리면 밖으로 나가 계절을 만끽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거였다. 17살때부터 30살때까지 13년을 공부에 매달리고 있으니, 그런 여유로움은 먼 훗날의 얘기거나, 나와는 영영 상관없는 얘기라고만 느껴졌다. 

그런데 단재학교에 들어온 이후엔 너무도 자연스럽게 그 꿈이 이미 이루어진 것이다. 이젠 내가 간절히 바라지 않아도 이렇게 트래킹이란 커리큘럼을 통해 누릴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것이야말로 ‘복에 겹다’라는 거다.                



▲ 일을 하며 이런 봄날을 만끽할 수 있다는 건 축복이다.




태기의 독특한 캐릭터는 사람을 즐겁게 한다 

    

늦게 온 태기와 함께 공원 정문에 들어섰다. 아이들이 정문을 통과한지 무려 1시간 20분이나 흐른 후의 일이다. 태기를 기다리며 보니, 정말 많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공원으로 들어가더라. 학교에서 소풍을 온 학생들부터 야유회를 나온 유치원 아이들, 봄을 만끽하러 손을 꼭 잡고 입구에 들어서는 연인들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렇기에 대공원의 봄은 수많은 사람들의 발소리와 함께 온다고 할 수 있다. 



▲ 대공원의 봄은 수많은 인파의 발소리와 함께 온다.



먼저 들어간 아이들은 그늘에 돗자리를 펴고 있노라고 했다. 대공원이 크기 때문에 한참이나 찾아 헤맨 끝에 드디어 찾을 수 있었고, 그러다 보니 벌써 30분이나 훌쩍 흘러 있었다. 그 때 태기는 자리에 앉기도 전에 민석이를 부르더니, 도서상품권을 가져 왔다며 거저 줬다. 그냥 막 주긴 아쉬웠던지 우승상품을 건네주듯 포즈를 취하고 주긴 했지만, 거기엔 아깝다는 생각 따윈 없어 보였다. 상품권은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기에 가지고 있으면 언젠가 쓸 곳이 생길 텐데도, 지금은 쓸 곳이 없다며 준 것이다. 자신은 필요가 없다며 주는 모습이나, 그것도 손수 챙겨 와서 군소리 하지 않고 주는 모습에서 태기의 캐릭터가 남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 포즈는 영락없이 로타리클럽 이태기 회장님의 상품 수여식 같은 포즈다.



그런 퍼포먼스 후에 태기는 다른 사람 앞에 꿇어앉으며 오늘 늦은 것에 대해 정중히 사과하기 시작했다. 한 사람 한 사람 손을 잡고 장난인 듯, 진실인 듯 잘못을 빌었으며,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거라는 걸 확실히 했다. 



   

▲ 단재 로타리 회장님과 회원님의 정겨운 한 컷~



            

도시락 만찬이 그리워지는 대공원의 점심시간

     

벌써 시간은 12시가 넘었기에 우린 모이자마자 점심을 먹으러 가는 황당한 상황을 연출해야 했다. 이런 자초지종을 모르는 사람이 이 광경을 보면, ‘밥 먹으러 대공원에 왔나 보다’라고 충분히 오해할 만한 상황이었다. 

이번 트래킹 준비물을 공지할 때, “도시락을 꼭 싸서 오세요”라고 누누이 말했다. 하지만 도시락을 싸온 아이들은 한 명도 없더라. 모두 돈만 챙겨왔고 사 먹는다는 거였다. 아이들 입장에선 모처럼 야외 활동을 하는 것이니 집에서 싸온 도시락보다 돈을 내고 사먹는 게 훨씬 편하게 느껴질 것이고, 학부모의 입장에서도 번거롭게 도시락을 싸주기보다 돈을 주고 사먹게 하는 게 손쉽다고 생각할 것이다. 나들이를 나와서 그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것을 사 먹는 것도 하나의 추억이 될 수 있기에, 뭐라 할 수는 없다. 



▲ 도시락을 아무도 싸오지 않았다. 아무도~



하지만 그럼에도 도시락을 굳이 싸오라고 말했던 것은, 어머니가 자식을 생각해서 정성스럽게 싸준 도시락을 먹으며 어머니의 마음도 느껴보고, 그걸 함께 나누어 먹으며 이 때만 누릴 수 있는 행복을 만끽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더부룩한 날들 ♬ 약간의 조증 폐쇄 공포증 ♬ 혼자 뿐인 넓은 집 ♬ 냉장고엔 인스턴트 식품 ♬ 혀 끝에 남은 조미료 맛이 ♬ 너무 지겨워 ♬ 그가 간절하게 생각나는 건 바로 ♬ 어어어어어어 어머니의 된장국 ♬ 담백하고 맛있는 그 음식이 그리워 ♬ 그 때 그 식탁으로 돌아가고픈 ♬ 어어어어어어 어머니의 된장국’이란 다이나믹 듀오 노래의 가사처럼 그 때가 아니면 누릴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 당시엔 그게 지겨울 수도 있고, 조미료 팍팍 들어가 자극적인 맛이 끌릴 수도 있지만, 지나고 보면 그 순간은 그 때만이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팀은 등산이나 라이딩을 갈 때마다 도시락을 싸와서 함께 나누어 먹곤 했는데, 마지막으로 함께 도시락을 먹은 지도 벌써 1년 가까이 흘렀다. 도시락을 나누어 먹던 순간이 아련한 추억처럼 갑자기 떠오르며, ‘그 때가 좋았지’라는 생각이 물씬 들었다. 



▲ 도시락을 먹던 순간이 그리워질 때도 있을 거다.



역시나 사 먹는 음식은 가격에 비해 질도 맛도 형편없었다. 아무래도 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곳에서 음식의 질을 얘기한다는 게 이상할 수밖에 없다. 몰려드는 주문 때문에 정성스럽게 만드는 것이 불가능할뿐더러, 애초에 빨리 만들 수 있는 음식만을 취급하기에 맛을 기대할 수도 없으니 말이다. 고속도로 휴게소나 놀이공원의 음식점에서 어쩔 수 없이 밥을 먹긴 하지만, 그 땐 한 끼 때우기 위해 먹는 것일 뿐, 제대로 맛있는 것을 먹기 위해 먹는 경우는 없다.                



▲ 정말 배를 채우기 위해 먹었다. 그나마 벚꽃이 날려서 나름 운치가 있다는 위안이라고나 할까.




준영이의 지각을 바라보며

     

점심을 먹고 있으니, 준영이가 왔다고 하더라. 준영이는 어제 스스로 지킬 규칙을 정하면서 ‘12시 이전에 오겠다’고 정했다. 그런데 정한 지 하루 만에 그걸 어기게 된 것이니, 당사자는 물론 다른 사람까지도 겸연쩍어지는 상황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함부로 ‘영영 지키지 못할 거야’라던지, ‘그럼 그렇지’라고 판단해선 안 된다. 왜냐하면 여기엔 나름 변수가 있기 때문이다. 준영이네 집은 최근에 이사를 갔다. 예전엔 강동 명일동에 살아 학교에 오는 게 힘들지는 않았는데, 지금은 하남 풍산지구로 이사하여 오고 가는데 더 많은 시간이 걸리게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교통편에 적응하랴, 새 집에 적응하랴, 자신의 아침 시간 패턴을 바꾸랴 여러모로 두 배, 세 배 힘이 들게 되었다. 어찌 보면 준영이는 지금 이런 변화된 상황에 적응하며 자신의 패턴을 만드는 중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이번 한 달 동안 스스로 정한 약속을 지키는 것부터 시나브로 나아질 거라 기대해본다. 



▲ 드디어 준영이가 사진에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런 면에서 보면 현세는 정말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단재학교에 다닌 지 어느덧 3년째가 되어 가고 있는데, 한 번도 등교하는 문제로 힘들다거나, 시간이 너무 빠듯하다는 말을 한 적이 없이 꾸준히 잘 나왔기 때문이다. 집이 신도림(서울의 서쪽 끝부분)이니, 단재학교(서울의 동쪽 끝부분)로 오려면 한 시간 반 정도가 걸린다. 이런 상황이니 당연히 힘들다는 푸념이 나올 만도 하며, ‘등교시간을 늦춰 달라’라는 의견을 제기할 만도 하다. 하지만 그렇게 외부환경을 바꾸려 하기보다 최선을 다해 시간에 맞춰 등교하려고 노력했다. 이런 점이 현세가 더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라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 자전거 여행 당시에 부모님께 영상편지를 쓸 때의 모습. 그렇게 우린 시간을 지내며 성장해 간다.




놀이터에서 노는 시간은영원한 아이가 아닌 역사적인 아이가 되는 시간

     

밥을 먹은 후에 본격적으로 대공원 탐방을 하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론 바로 동물들을 관람하러 갈 것 같은데, 아이들은 의외로 놀이터를 향해 걸어갔다. 아이들부터 청소년까지 많은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지만, 그런 것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여러 놀이기구를 타기 시작했다. 이럴 때 보면 사람들 의식하지 않고 겉멋 들지 않고 자기의 감정에 따라 맘껏 놀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아이들의 그와 같은 마음가짐을 정말로 사랑한다. 

삿갓을 뒤집어 놓은 것 같이 생긴 그네도 타고, 철봉 같은 곳에 매달려 서로 떨어뜨리는 게임도 하며, 철봉에 거꾸로 매달리기도 했다. 그곳에서 노는 그 순간은 ‘역사적인 아이’가 되는 순간이라 감히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 '역사적인 아이'가 되어 역사의 순간을 살아가다.



이번 편에 마무리 지으려 했는데, 어쩌다 보니 또 한 편이 늘어나게 되었다. 다음 편엔 어찌 보면 대공원 트래킹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동물원을 둘러보며 느낀 점과 그 때 발생한 에피소드들, 그리고 대공원을 나가는 길에 갑자기 듣게 된 황당하면서도 재밌는 이야기까지 한 번에 담으며 여행기를 마무리 짓도록 하겠다. 



▲ 다음 장소로 이동하며 지훈이와.





목차      


1. 좌절한 청춘들이 어린이대공원으로 트래킹을 가다

청춘은 아름답지 않다

봄이 오면 마음에도 꽃이 핀다

봄을 누리러, 어린이대공원으로 떠나다     


2. 지각이 트래킹 기분을 망치다

지각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

자신만의 지각 목표치를 정하다

늦는 아이들은 언제나 늦는다

지각은 약속을 지킨 사람들의 기운을 빠지게 한다

태기 지각의 의미     


3. 어린이대공원과 역사적인 아이

태기의 독특한 캐릭터는 사람을 즐겁게 한다

도시락 만찬이 그리워지는 대공원의 점심시간

준영이의 지각을 바라보며

놀이터에서 노는 시간은, 영원한 아이가 아닌 역사적인 아이가 되는 시간     


4. 어린이대공원엔 이야기가 있다

대공원의 아쿠아리움, 바다동물관

사람의 정복욕과 소유욕이 만든 공간, 동물원

여럿이 모이면 평범한 순간도 특별한 순간이 된다

우화- 구름 찾아 삼 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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