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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Apr 13. 2016

지각이 트래킹 기분을 망치다

어린이대공원 트래킹 2 (16.04.08)

이번 트래킹은 이전의 트래킹과 다른 점이 있다. 이번 학기 들어 두 번의 트래킹을 했었다. 첫 번째 통인시장 때는 아이들 태반이 나오지 못했고, 두 번째 롯데월드 때는 그걸 방지하고자 학교에서 함께 자는 방법까지 썼다.                



▲ 두 번의 트래킹을 가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지각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 

    

하지만 이제 습관을 형성해야 하는 어린 아이가 아닌, 중고등학생을 데리고 학교에서 함께 자는 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젠 자신의 자발적인 힘으로 시간을 조절해야 할 때이지, 누군가의 강제로 인해, 누군가의 노력으로 인해 시간을 조절당해야 하는 때는 지났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학교에서 함께 자고 출발하는 건 그 순간에만 효과가 있을 뿐, 근본적으로 아이들의 생활습관이 바뀌거나 책임감이 생기거나 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어제 회의할 때 초이쌤은 자주 지각하는 아이들에게 “학교의 규칙에 꼭 맞추라는 말은 더 이상 무의미한 것 같으니, 이젠 자신이 지킬 수 있는 조건을 정하고 그걸 한 달 동안 지켜보는 것으로 하자. 물론 그 조건은 무작정 쉬운 걸로 정하기보다 양심에 따라 정해야 해”라고 제안하셨다. 그건 더 이상 아무리 학교 규칙을 말하고, 여러 방안(벌금제, 상담제 등)을 마련한다 해도, 개인이 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으면 아무런 소용도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다. 

누군가에겐 제 시간에 나온다는 게 쉬운 일이고, 맘만 먹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기 쉽다. 그러니 초이쌤의 제안에 대해 ‘아예 늦어도 된다는 빌미를 주는 거 아니냐?’는 볼멘소리를 하게 된다. 솔직히 나의 입장에선 늘 강박적으로 시간을 지키며 살아왔기에(특별히 잘난 것도 없고, 집이 부유하여 나를 뒷받침해줄 수 없다 보니, 성실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단재학교에 온 첫 해엔 그런 아이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나와는 완벽히 다른 사고방식과 습관을 지닌 아이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고, 아이가 스스로 바뀔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지 누군가가 윽박지르거나 제재를 가해서는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오히려 이 때 초이쌤이 내놓은 제안은 아이들에게 매우 적합하다고 생각했고, 이걸 아이들이 좀 더 진지하게 받아들여 4월 한 달간 스스로 정한 기준을 지킬 수 있다면 하나의 계기가 될 거라 기대하게 됐다.                



▲ 아이들이 각자의 상황에 따라 꼭 지킬 수 있는 약속을 했다.




자신만의 지각 목표치를 정하다

     

그래서 아이들은 자신의 상황에 따라, 가장 양심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최저한의 기준을 정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진지하게 기준을 정했고, 마음을 다잡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 때 지훈이는 “그럼 제대로 오기로 한 날 외엔, 지각해도 되는 거죠”라고 장난치듯 말한다. 예전에 준영이와 지각 문제로 얘기할 때 학교 규칙과는 달리 준영이 상황에 맞는 규칙을 정하려 하자, 준영이가 “‘10시까지 오기’, ‘11시까지는 꼭 오기’ 등으로 규칙을 정할 경우, 오히려 늦을 빌미를 주게 되니, 한 달 동안은 믿는 셈 치고 학교 규칙대로 실천할 수 있도록 놔두는 게 좋을 거 같아요”라고 했었는데, 지훈인 준영이가 우려했던 그 부분을 그대로 활용하고 있었던 셈이다. 지훈이의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승태쌤은 “가장 기본적인 규칙은 8시 50분까지 등교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정한 것은 학교 규칙만으로 적용하지 않겠다는 것이지, 그렇기 때문에 늦어도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라고 꼭 집어서 말씀하셨다. 

이렇게 상습 지각생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규칙이 만들어졌다. 이렇게까지 각 아이들을 배려했고 그 아이가 책임질 수 있도록 했는데, 과연 얼마나 그 시간에 맞추려 노력할까? 아마도 이번 대공원 트래킹에서 그런 노력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 14년 5월 30일에 영화팀과 아차산으로 산행을 가면서 천호대교를 건널 때의 사진. 이 날은 미세먼지가 있었지만, 날씨만은 좋았다.




늦는 아이들은 언제나 늦는다 

    

10시에 아차산역 4번 출구에서 만나기로 했다. 집에서 자전거를 타면 30분 정도 걸린다고 하여 자전거를 타고 9시 20분에 집을 나섰다. 천호대교를 건너 천호대로만 쭉 따라가면 되는데, 거기서부턴 오르막길이다. 워커힐입구 교차로는 3년 전에 왔을 때도 공사 중이었는데, 지금도 그렇더라. 산을 깎아 도로확장 공사를 하는 것 같은데, 규모가 커서인지 몇 해에 걸쳐 계속 하고 있다.  



▲ 다음의 로드뷰 중. 벌써 몇 년에 걸쳐 공사 중이다. 이건 15년 7월에 찍은 사진이란다.



아차산역에 도착하니 9시 50분이 넘었더라. 천천히 달렸더니, 시간이 많이 흐른 것이다. 모이기로 한 시간이 거의 임박했는데 그 자리엔 초이쌤만 계시더라. 조금 기다리니 민석이와 지민이, 규빈이가 모였다. 시간을 잘 지키는 아이들은 역시나 야외에서 모일 때도 시간을 잘 지킨다. 

이미 모이기로 한 시간이 지났기에 아이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랬더니 현세는 다시 감기가 도졌다며 오늘 나오기 힘들겠다는 비보를 전해왔고, 지훈인 못 일어났으면 어쩌나 걱정을 하던 차에 지금 천호역을 지나고 있다고 말했으며, 준영이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여기까진 자주 지각하는 아이들이니 그러려니 했지만, 의외는 단연 태기였다. 약속 시간을 여태껏 잘 지켰으며, 학교에도 제일 먼저 올 때가 많으니 말이다. 그래서 초이쌤이 전화를 걸어봤더니 10시 20분이 되어서야 일어났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한 번도 없었고, 평소 등교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늦게 모이는 대도 이런 상황이 발생하니 황당할 뿐이었다.                



▲ 화사한 봄날 답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 하지만 정작 단재 아이들은 오지 않고 있다.




지각은 약속을 지킨 사람들의 기운을 빠지게 한다

     

오히려 일찍 온 아이들만 시간을 낭비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약속시간을 어긴다는 건, 단순히 ‘시간을 맞추지 못해 죄송한 일’이라기보다 ‘약속을 지킨 사람들에게 피해를 줘서 죄송한 일’이라 보아야 한다. 누군들 조금 더 자고 싶고, 조금 더 여유를 피우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그럼에도 약속한 시간이기에 그 시간에 맞추려 일어나 정해진 시간에 나온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 늦게 되면 그런 아이들은 두 가지로 피해를 입게 된다. 그 아이들이 올 동안 다시 시간을 손해 보아야 한다는 게 첫 번째 피해이고, ‘이럴 바에야 다음부턴 약속 시간에 지킬 필요가 없어’라는 비관론에 빠지게 한다는 게 두 번째 피해다. 

이런데도 늦게 온 아이들에게 왜 늦었냐고 물으면, 장난처럼 “시간은 상대적인 거라~”, “뭐 하러 시간 맞춰서 나와요~ 이런 날은 좀 여유 부려도 되지”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솔직히 그런 대답은 제 시간에 나와 기다린 사람의 입장을 생각한다면, 절대로 뱉을 수 없는 대답이다. 그건 그 만큼 아직도 자기 위주로 생각하며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못하는 것이라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제 시간에 온 아이들의 불만은 높아져만 갔기에, 무작정 아이들이 올 때까지 기다리자고는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늦은 아이들은 승태쌤과 내가 데려갈 테니, 먼저 올라가서 쉬고 있으라고 말했다. 트래킹 시작부터 삐걱대고 있다. 여러모로 내 기분도 최악이다.                



▲ 태기가 올 때까지 이곳저곳 돌아다녔다.




태기 지각의 의미

     

지훈이는 10시 33분이 되어서야 역에 도착했다. 그나마 지훈이 입장에선 최선을 다한 거라 생각됐다. 승태쌤이 지훈이를 데리고 먼저 올라간 아이들과 합류했으며, 나는 태기가 올 때까지 무작정 기다리기로 했다. 그랬더니 태기는 11시 27분이 되어서야, 무려 모이기로 한 시간보다 1시간 20분 정도가 지나서야 오더라. 

늘 늦는 아이라면 이렇게까지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는데, 제 시간에 거의 나오고 늦어봐야 10분 안짝으로 늦는 아이이기에 무슨 일인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그래서 물어보니, 어제 수영대회 준비를 늦게까지 하느라 힘들어서 그랬고, 어린이대공원은 동물 똥냄새가 심하게 나서 되도록 오고 싶지 않아 그랬다고 말해주더라. 

솔직히 10~20분 정도의 지각이 아닌, 1시간이 넘어서야 나온 건 그만큼 나오기 싫었다는 것을 뜻이다. 두 번의 트래킹을 하며 태기는 무의식중에 늦는 사람 때문에 자신의 시간이 침해당하고, 자신의 권리가 박탈당하는 상황을 봤을 것이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이럴 바에야 나도 늦어도 되겠지’라는 생각을 하게 됐을 것이다. 더욱이 그 전날 단체채팅방엔 누군가 “12시석촌점버거킹ㄱ(go)”라고 올렸고 그 말에 대해 누군가는 “ㅇㅋ”라는 대답을 올렸다. 그 말은 곧 ‘내일 트래킹 가지 말고 그냥 다른 곳에서 시간을 때우자’는 말이었다. 물론 그게 장난이라는 건 누구도 알지만, 이런 정도의 얘기가 아무렇지도 않게 오고 가고 한다는 게, 문제라는 점이다. 그러니 이런 흐름 속에 누군가는 ‘안 가고 싶으면 안 가도 되는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이다. 



▲ 아이들의 장난 가득한 카톡. 하지만 이런 말을 장난처럼 그냥 하는 것이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아이들의 지각 문제로 무려 1시간 30분이나 지나 일정을 진행하게 되었다. 이번 학기 내내 지각 문제는 큰 문제로 대두될 거라는 걸 세 번의 트래킹을 통해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모일 때부터 기분은 최악이 되었지만, 그래도 봄꽃과 동물을 보며 신나게 트래킹을 하다 보면 자가 치유가 될 것이다. 기분도 그런데 대공원이나 실컷 걸어보자~



▲ 이제 드디어 정문으로 들어간다. 마음도 풀리고 기분도 나아지길.






목차      


1. 좌절한 청춘들이 어린이대공원으로 트래킹을 가다

청춘은 아름답지 않다

봄이 오면 마음에도 꽃이 핀다

봄을 누리러, 어린이대공원으로 떠나다     


2. 지각이 트래킹 기분을 망치다

지각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

자신만의 지각 목표치를 정하다

늦는 아이들은 언제나 늦는다

지각은 약속을 지킨 사람들의 기운을 빠지게 한다

태기 지각의 의미     


3. 어린이대공원과 역사적인 아이

태기의 독특한 캐릭터는 사람을 즐겁게 한다

도시락 만찬이 그리워지는 대공원의 점심시간

준영이의 지각을 바라보며

놀이터에서 노는 시간은, 영원한 아이가 아닌 역사적인 아이가 되는 시간     


4. 어린이대공원엔 이야기가 있다

대공원의 아쿠아리움, 바다동물관

사람의 정복욕과 소유욕이 만든 공간, 동물원

여럿이 모이면 평범한 순간도 특별한 순간이 된다

우화- 구름 찾아 삼 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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