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덩이 프로젝트 모임 후기-15.08.26(수)
때는 바야흐로 2015년 8월의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날이었다. 얼마나 더우면 개도 땅바닥과 합체하여 세상에 대한 관심을 거둔 지 오래고, 나 또한 방학의 무료함에 장판과 일체가 된 지 오래였던 그 때, 섬쌤은 ‘한 여름에 눈덩이를 굴리겠다’는 화끈하고도 야릇한 발상(?)을 전해주었다. 당연히 귀 쫑긋, 눈엔 힘 팍팍 들어갈 수밖에. 아마도 한 여름의 무더위로 무생물처럼 더위와 동화되어 있던 때라, 그런 제안은 오랜만에 내가 생물이라는 사실을 느끼게 할 정도로 짜릿했다.
한 여름의 밀짚모자, 꼬마 눈덩이 프로젝트
섬쌤은 ‘민들레 읽기 모임’에서 몇 번 본 것 외에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없다. 얼핏 알기로는 목포에서 초등학교 선생님하다가 교원대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는 내용이 전부였다. 하지만 현실에선 모르는 사람이어도 페이스북에선 나름 북유럽 여행기를 읽다보니, ‘친한 듯, 친하지 않은, 친한 너’라고 할 수 있는 복잡미묘한 관계였다. 그런데 선뜻 ‘눈덩이 프로젝트’를 제안한 것이다.
솔직히 누군가에게 갑자기 “우리 뭐 해봅시다”라는 제안을 들으면, 거부감이 들어 후다닥 도망갈 것이다. 왜냐면, 무언가를 하자는 건 단순히 뜻만 있어선 되지 않고 열정도 필요하고 추진할 수 있는 의사도 필요하니 말이다. 목적이 뚜렷한 일일수록 초반에 모이는 힘이나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열정은 클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옥신각신하며 좌초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 부담스러운 일엔 짐짓 당황하지 않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목소리를 다듬은 후에 “전 돈이 필요해서 교사하고 있지, 교육에 대해 관심 없어요.”라고 말하면 ‘끝!’.
하지만 섬쌤의 ‘눈덩이 프로젝트’는 그와 같은 부담감이 전혀 없었다. 왠지 제안을 듣는 순간 ‘재밌는 거 하나 생겼다. 꺄오~’라는 외침이 절로 나왔다. 세상의 일이란 게 부담감으로 시작되는 일들도 있겠지만, ‘징한 놈의 이 세상, 한판 신나게 놀다 가면 그뿐’이란 마인드로 시작되는 일도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건 클리나멘clinamen이다. 직선으로 떨어지기만 하던 원자가 아주 미세한 차이로 비스듬히 떨어지게 되면서 옆에 있던 원자와 부딪히고, 그 원자는 또 옆의 원자와 부딪히며 우연히 우주가 형성되었다는 이야기다. 우주라는 게 어떤 거대담론에 의해 탄생한 것이 아닌 우연에 의해 탄생되었다고 볼 수 있다면, 우리의 프로젝트도 거대담론이 아닌 미시담론으로, 구호가 아닌 삶으로 구현해 내면 되는 게 아닐까. 그래서 ‘눈덩이 프로젝트’는 꼬마 눈덩이들이 만들어져 그게 어느 접점에서 합쳐지기도 흩어지기도 하며 굴러갈 것이다.
모여라, 그러면 어떤 이야기든 흘러 나온다
‘눈덩이 프로젝트’ 모임이라곤 할 수 없지만, 섬쌤이 한국에 오던 8월 26일에 번개 모임이 만들어졌고 그 자리에 나도 참석하게 되었다. 워낙 계획대로 살아온 인간인지라 갑작스런 모임을 좋아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지금은 그런 ‘뜬금없음’을 사랑한다. 생각해보면 날 키운 건 ‘8할이 우연’이었다. 계획은 세우지만, 계획은 수시로 어그러졌고 그 속에서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며 여기까지 왔으니 말이다.
모두 8명이 모였다. 나를 포함한 2명은 대안학교(고양 자유학교) 교사, 5명은 초등학교 교사, 1명은 학부모였다. 이 조합 은근히 맘에 든다. 여기에 학생까지 함께 한다면 완전 ‘치킨 & 맥주’의 환상 조합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5시 40분쯤 용산역에 도착하여 식당을 둘러보고, 돈가스집에 자리를 잡았다.
과연 우린 어떤 얘기를 나눴을까?
교육은 교육의 논리로,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
돈가스집엔 사람들이 가득 차서 시끄럽기에 8명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고 주위 사람들과만 이야기를 나눴다. 이 때 섬쌤의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들을 수 있었다. 그 얘기 중 가장 놀라웠던 것 “북유럽의 선생님들이라 해서 한국과 다르지 않아요. 어찌 보면 수업방식이나 태도는 거의 똑같다고도 할 수 있죠. 그런데도 사회적으로 미묘하게 다른 것들이 있다 보니, 그게 차이를 만드는 것 같아요”라는 이야기였다.
그러면서 “북유럽에선 인건비가 가장 비싸다 보니 사람을 통해 하는 일들이 가장 돈이 많이 들어요. 그래서 되도록 외식을 하지 않고, 밤이 되면 거의 불이 꺼져서 바로 잠을 자는 분위기예요”라고 덧붙인다. 그 말인즉, 어찌 보면 북유럽엔 사람에 대한 가치를 그만큼 인정하는 사회이며 ‘돈이면 사람을 노예처럼 부릴 수 있다’는 생각과는 거리가 먼 사회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건 한국과 정반대다. 한국에선 가장 싼 게 사람을 부리는 비용이니 말이다. 그러니 24시간 편의점을 운영할 수도 있고, ‘총알배송’이라며 속도경쟁을 펼치게 할 수도 있으며 문자 한 통으로 해고통지를 할 수도 있다. 왜냐 하면 일할 사람은 널려 있고, 그만큼 사람보단 돈이 더 우위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그런 ‘사람 경시’, ‘물질만능’에 대해 비판하면서도 그런 것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이야기한들, ‘최저인금의 현실화’를 이야기한들 빈 구호 밖에 되지 않는다. 그랬기에 섬쌤은 “최저임금을 인상하면 우리도 북유럽처럼 불편해질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해요”라고 말했던 것이다. 교육은 사회를 비추는 프리즘이다. 사회의 모순이 교육의 모순으로, 교육의 방향이 사회의 방향으로 밀접하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흘러가고 있다.
눈덩이 굴릴 사람, 여기 여기 붙어라!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겨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초반엔 학부모님이 이야기를 거의 주도했다. 지금 교육부 앞에서 ‘한자병기 반대’ 집회를 하고 있으며, 아이들에겐 ‘최대한 자유를 존중해주는 선에서 교육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신 것이다. 학부모로서 사회운동가로서 사회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무언가 하려 하는 자세가 남달라 보였다. 하지만 자신의 스토리가 많은 분이라 이야기를 끊임없이 하시는 바람에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거의 듣지 못했던 부분은 아쉬웠다.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이 처음 보는 사람들이기에 서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는데, 그걸 들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제비꽃님이 말한 ‘모모’가 된다는 게 그 순간 어떤 것인지 조금 알 것 같았다.
학부모님이 가시고 난 후엔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이 때 섬쌤의 이야기도 제대로 들을 수 있었는데, 다른 무엇보다 ‘큰일을 한다는 사명감’이나 ‘자신만이 할 수 있다는 자부심’ 같은 게 보이지 않아서 좋았다. 사명감이나 자부심은 어찌 보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기반은 될지 모르지만, 그런 마음이 강한 만큼 사람을 한 없이 무겁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니 처음의 말랑말랑한, 그래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상력이 어느 순간엔 굳어져 하나의 도그마가 되어버린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눈덩이 프로젝트’는 ‘눈덩이’라기보다 ‘돌멩이’라고 부르는 게 맞을 것이다. 섬쌤은 이번 번팅처럼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모이게 하고 그 가운데 어떤 식으로든 공명하거나 꿈틀거리는 게 있으면 그것으로도 충분하다는 주의였다. 그게 맘에 들었다.
衆口鑠金 - 함께 떠들면 쇠마저 녹일 수 있다
아무래도 첫 모임이라 자세한 이야기를 나눌 순 없었다. 이 때 첨예하게 대립된 이야기는 ‘목표를 정하는 게 왜 문제가 되나?’라는 거였다. 이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단재학교를 설명하며 “어떤 목표를 정하지 않고 개인의 역량에 따라 진행하고 있어요. 그리고 교사는 최대한 그 상황에서 뒤로 물러서 지켜보려 노력하죠”라고 말했더니, 그에 대해 다른 선생님께서 그런 질문을 던져주신 것이다. 그런 생각이 정리되기까지 8월에 떠난 자전거 여행이 한 몫 했지만, 그런 과정을 모르니 당연히 나올 수 있는 질문이었다.
그 질문에 섬쌤은 “학교에서 학기 당 일괄적으로 정해놓은 목표, 성취가 잘못된 것이며, 그에 따라 당연한 듯 평가해야만 하는 시스템이 문제라는 거예요”라는 말로 그 이유를 명확히 해주셨고, 나도 “개인마다 능력이나 성취기준이 다르기에, 목표를 없앤다는 말이 아니라 개인에 따라 목표를 정하고 그에 따라 교육한다”고 말을 정리했다.
섬쌤은 한국에 귀국하여 낮잠을 잠시 잔 상태에서 나왔기에 시차 적응으로 컨디션이 정상일 수 없었고, 시간도 이미 늦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이런 식으로 모여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오는 길엔 풍납초에서 근무하는 선생님이 왕십리 근처에 산다고 하여 함께 올 수 있었다. 선생님도 섬쌤을 만난 적은 없는데, 이번에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막상 만나서 얘기 들어보니 더욱 좋았어요”라고 이야기를 하더라. 나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눈덩이프로젝트’라는 배치
2011년에 <수유+너머>에 왔을 때도 배치에 대해 생각했고 이번 모임을 통해서도 그런 생각을 했다. 어떤 무리에 내가 있느냐, 그리고 거기서 날 어떤 존재로 규정되느냐가 결국 ‘나’라고 할 수 있다. 이번 같은 경우, 또는 저번 민들레 모임 같은 경우 그 상황들은 배치로서 작용한다. 그런 자리에선 내가 대안교육을 대변하는 사람이기도 하며, 어떤 교육에 대한 고민을 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배치가 나를 만들고, 나도 그 배치 하에선 그렇게 행동한다.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의 거친 생각들이지만, 그럼에도 이런 식으로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게 좋았다. ‘눈덩이’는 그렇게 조그마하게 뭉쳐지기 시작했다. 단지 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