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군 흑천여행 1 (15.08.17~18)
‘8월의 어느 날 갑자기 걸려온 의문의 전화, 그리고 전화로 모든 게 시작되었다.’
공포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런 멘트와 관련된 일이 최근에 일어났기에 이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빡빡한 스케줄과 ‘낙오는 곧 죽음’이란 압박 속에서 살아야 21세기의 한국인들에겐 여행도 계획에 따른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휴가철이 정해져 있고, 그 날에 맞춰 몇 달 전부터 예약을 하고 일정을 짠다. ‘모든 건 계획 하에’ 이게 바로 현대 한국인들의 모토인 셈인데, 나도 이러한 생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계획에 없던 일이 생기면, 긴장하고 초조해져서 거부하기 일쑤였으니 말이다.
무계획이 곧 계획이야
‘지금 나의 삶이 내 계획 하에서 완벽하게 이루어지며 살아온 것일까?’
생각해보면, 전혀 그렇지 않았다. 계획에 따라 살아가려 발버둥을 치고 애써본 적은 있지만, 그럴수록 계획은 처참히 깨지고 스스로에 대한 실망만 커져갔다. 누군가는 그걸 ‘운명’ 내지는 ‘신의 계획’이라 표현할 테지만, 난 그저 ‘삶’이라 부르고 싶다. 계획은 어디까지나 이상 속에서 만들어진 어떤 길일 수밖에 없고, 그건 현실이란 다양한 욕망이 뒤엉킨 공간에선 당연히 어긋날 수밖에 없다. 그런 어긋남이 특별한 상황이라기보다 오히려 당연한 상황이라 보아야 맞다.
물론 그런 ‘당연함’을 받아들이게 되기까지 ‘난 왜 이 모양이야?’라는 자책을 무수히 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모든 순간이 지나고 생각해보니, 계획에 따를 때 얻게 되는 것보다 계획도 없이 무언가를 했을 때 얻게 되는 것들이 더 많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계획을 내세우면 당연히 그 계획안에서만 활동을 하려 하니 행동이 제약될 수밖에 없다. 내가 생각한 틀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완고함만 자리하는 까닭이다. 하지만 계획이 없다면 모든 가능성에 마음을 열고 부딪치게 된다. 애초에 계획이 없었는데, 닥쳐오는 상황들에 무에 겁을 낼 것인가.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사건과 얽히고설키며, 다양한 인연과 엮인다.
당황하지 않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대답하면 끝!
이 날 진규의 갑작스런 제안은 어찌 보면, 계획대로 살길 바라는 내 마음에 돌맹이 하나를 던진 것과 같았다.
“내일 뭐하냐?” / “특별한 일이 없어.” / “그럼 오늘은 뭐하는데?” / “굴러다니고 있는 중이야.” / “(전화를 마무리 짓는 뉘앙스로) 알았다.” / “뭐냐? 전화를 했으면 속히 용건을 밝혀라.” / “용건 없어. 그냥 심심해서 해본 거야.” / 몇 번의 보챔이 계속된 후 이실직고한다. “시간 되면 놀러갈려고…… 근데 부산 친구에게 아직 연락을 안 해봐서, 연락한 후에 정해지면 다시 연락 줄게.”
나처럼 무언가 확실히 정해지면 연락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 친구처럼 계획은 없지만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연락을 하는 사람도 있다. 아마도 ‘반대되는 성향의 사람이 만나면 티격태격 많이 싸우지만, 잘 산다’는 옛 이야기가 단지 이성끼리의 얘기가 아닌 관계에 대한 얘기라고 한다면, 이런 관계를 말하는 게 아닐까. 좀 있으니 다시 연락이 왔다.
“지금 친구는 일이 있어서 4시쯤 도착할 거 같대. 올 수 있으면 오고, 그렇지 않으면 안 와도 돼.” / “(내일 가는 줄만 알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던 나는 ‘4시 출발’이란 말에 어안이 벙벙했다. 하지만 당황하지 않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목소리를 다듬은 후에 말하면 ‘끝!’) 어? 그~ 그래~~~ 그래서 어~ 어디로 가는데?” / “강원도 홍천 쪽?” / “잠은?” / “텐트?” / “뭐야 하나도 안 정한 거야?” / “그냥 가보는 거지.” / “준비물은?” / “그냥 옷만 챙겨서 와”
우리의 대화는 이런 식으로 끝났다. 말인 즉은, ‘정해진 게 없지만 간다’였다. 애초부터 갑자기 여행 계획이 잡혔고, 정해진 게 하나도 없지만 떠날 마음이 있으면 가자는 것이다. 이처럼 8월의 어느 날 갑자기 걸려온 친구의 전화로 이 여행은 시작되었다.
장소, 그 까이꺼 대충
3시 30분쯤 친구집에 도착하니, 짐이 한 가득이더라. 이미 고기와 밑반찬, 텐트, 낚시대 등을 모두 챙긴 후였다. 나에겐 ‘옷만 챙겨와’라고 해놓고선 자기가 모든 짐을 다 챙긴 것이다. 주승이가 오자마자 짐을 차에 싣고 출발하니, 4시 30분이 넘었다. 계획도 없이 갑작스레 추진된 여행, 그것도 아침도 아닌 저녁이 가까워서야 출발하는 여행은 난생 처음이다.
이런 상황이니 목적지라고 제대로 조사해봤을 리가 없다. 진규는 ‘양평 회현리 쪽에 낚시하기 좋은 곳이 있다’는 단서만을 듣고 ‘흑천’을 검색하여 찾아갔으나 이게 웬 걸 ‘상수원 보호구역’이란 팻말이 가드레일 곳곳에 떡하니 설치되어 있더라. 물도 맑고 낚시하기에 좋은 곳이었기에 한참 주위를 찾아다녔지만 팻말이 붙어있지 않은 곳을 찾기는 힘들었다.
주승이는 운전을 하기에 이런 상황이 못마땅하여 장난치듯 화를 냈지만, 나는 솔직히 이런 상황에 신이 났다. 그만큼 현장에서 수많은 상황에 부딪치며 만들어갈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도보여행을 할 때도 정해진 계획은 없이 현장에서 만들어 갔었는데, 오랜만에 그 때의 감흥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더욱이 도보여행 때에 비하면 잠자리를 구해야 한다던지,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인가 하는 등의 문제로 불안할 이유도 없으니, 맘껏 옥신각신하는 이 상황을 즐기면 됐다.
총각들의 저녁식사
도착하고 보니 이미 시간은 7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고 서서히 어둠이 찾아오고 있었다. 우리는 차에서 짐을 내리고 텐트를 쳤으며, 주변의 돌들을 모아 화덕을 만든 후에, 땔감으로 쓸 나무들을 찾아다녔다. 우리가 자리 잡은 곳은 용문역 근처이고 흑천의 좀 더 상류지역이라 할 수 있다.
처음엔 ‘뮤지엄교’라는 다리 밑에 자리를 잡으려 했는데, 아무래도 물의 깊이가 얕고 주변에 쓰레기들도 많고 해서 철교 밑에 자리를 잡았다. 기차와 전철, 화물열차가 수시로 왔다 갔다 하여 철교의 진동이 느껴질 정도로 시끄럽긴 했지만, 그래도 기차소리 자체가 정겹기 때문인지 참을 만 했다.
번개탄은 없이 장작들을 쌓아 올리고, 그 위에 숯을 놓았다. 이런 식으로 불을 붙이는 것은 처음이라 어떨지 기대가 되었다. 하지만 불이 쉽게 붙지 않더라. 나무에 불이 붙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고, 화력 조절이 되지 않으니 고기가 순식간에 타기도 했다. 그래서 하는 수없이 2근의 고기(목살과 삼겹살이 각각 1근씩)를 아예 불판에 다 올리고 한 번에 구워야만 했다. 한꺼번에 철망에 올려 고기를 구우니, 뒤집기도 힘들었고 자칫 잘못하면 철망을 고정하려 놓은 돌에 고기가 닿기도 했다. 그 때문에 모래범벅인 고기가 만들어진 것이다.
어찌 되었든 우여곡절 끝에 고기를 다 구웠고 5ℓ짜리 맥주와 함께 먹었다. 주승이가 ‘점보캔’을 먹어보고 싶었는데, 혼자 먹기엔 엄두가 나지 않아 때를 기다렸다가 오늘 가져왔다고 말을 하더라. 처음 보는 물건이라 되게 신기했다. 이미 사위엔 어둠이 짙게 깔렸기 때문에 맥주와 함께 고기를 먹는 건 지상 최대의 만찬이었다. 그런데 모두 다 처음으로 점보캔을 사용하기 때문에, 설명서가 붙어 있어도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었다. 어찌저찌 맥주를 따르는데, 뭔가가 잘못되었는지 거품만 한가득 나오더라. 그 땐 ‘원래 이게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하고 맛있게 먹었다. 하지만 다음날 확인해보니, 레버를 ‘딸깍’소리가 날 때까지 돌려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카더라.
3명이서 고기를 2근 가까이 먹었다. 그것으로도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라면을 끓이기까지 했다. 역시 사람은 밖에만 나오면 갑자기 식성이 좋아지는 것 같다. 먹어도 먹어도 배고프니 말이다. 불이 약하기 때문에 익힌다기보다는 거의 불린다는 표현이 맞았다. 오랜만에 군대에서나 맛보던 뽀글이의 정겨운 맛을 보았다고나 할까. 세 명이서 몇 번 젓가락이 오고 가니 순식간에 동이 났고 국물도 얼큰하니 좋았다.
족대질을 어른이 되어 처음으로 해본 사내
저녁을 먹은 후엔 친구가 물고기를 잡겠다고 나섰다. 이미 주승이에겐 ‘매기를 맨 손으로 잡았다’고 너스레를 떨은 후라 주승이는 “어여 매기 좀 잡아와 라면에 넣어서 함께 끓이게”라고 놀려줬다.
이미 근처 테니스장의 불까지 완벽하게 소등이 되어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렸지만 진규는 “어두워지면 다슬기들이 물 위로 올라와.”라는 말을 남기며 물가를 헤집고 다녔다. 그리고 친구 덕에 처음으로 족대질을 해봤다. 아니 처음으로 개울에서 물놀이를 하는 것이 아닌 물고기를 잡는 경험을 해봤다고 표현해야 맞을 것이다. 처음으로 해보는 것이니 당연히 어설플 수밖에 없지만, 친구가 자세히 알려줘서 차근차근 해볼 수 있었고 물고기도 여러 마리 잡을 수 있었다. 족대를 물살이 센 지역에 설치하고 한껏 몰아온 후, 족대를 들어 꿈틀꿈틀 대는 물고기가 있을 때의 쾌감은 가히 최고였다.
이 때 놀라웠던 것은 피라미를 잡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죽었다는 사실이다. ‘성질이 급하면 일찍 죽는다’는 말을 들은 적은 있어도 지금까지는 피상적인 말로만 다가왔었는데, 이 땐 그 말이 실존의 언어로 다가왔다.
앎이 너를 자유케 하리라
진규는 여기저기 훑고 다니며 고기 잡는 것 자체를 하나의 놀이로 즐기고 있었다. 어디에 가면 무엇이 있다는 것을 아니, 이미 어둠은 짙게 깔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지만 천리안을 지닌 사람처럼 개울을 누비고 다녔다. 돌을 들춰서 물고기가 움직이나 살펴보고 돌을 훑으며 다슬기를 건져냈다.
하지만 난 즐기지 못했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은 낯설다는 느낌을 넘어 두렵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어두운 개울가는 미지의 생물들이 사는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건 흡사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처럼 부해라는 미지의 세계에 곤충이 득실거리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니 내가 모르는 것이 어느 때고 나를 삼켜버릴 것만 같은 공포감에 휩싸였다.
이걸 보면서 몇 년 전의 상황이 떠올랐다. 학과 선배와 완주의 고산을 찾아갈 때, 선배는 아카시아를 따먹고, 산딸기를 따먹었다. 그 중 나에게도 먹어보라고 하나를 줬는데, 난 차마 먹지 못했다. 그건 씻지 않아 위생적이지 않다는 관념 때문이 아니라, 낯선 과일에 대한 트라우마(예전에 과수원에서 직접 딴 복숭아를 먹다가 안에서 애벌레가 나온 일) 때문이었다. 낯선 것, 경험해보지 못한 것은 예측되지 않으니 피하게 된다.
이런 마음상태를 보면서 이번 ‘메르스 사태’도 새롭게 볼 수 있었다. ‘메르스’는 미지의 영역이다. 알지 못하기에 ‘만에 하나’ 내가 걸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낳게 한다. 그러니 벌벌 떨면서 아무 것도 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엔 당연히 ‘아는 게 힘’일 수밖에 없다. 메르스란 질병에 대해 알았다면, 근대화 이후 국가의 질병관리 역사에 대해 알았다면, 바이러스에 대해 알았다면, 그처럼 심각하게 반응하지 않았을 것이다. 좋은 지식이란 사람을 자유롭게 하고 상황에서 놓여나게 만든다. 나 또한 진규처럼 개울에서 놀았던 추억이 있고, 그런 지식이 있었다면 그처럼 불안해하거나 노는 둥 마는 둥하진 않았을 것이다.
이런 상황을 보고 나니, ‘교육이란 앎과 삶이 일치된 것’이란 말이 절실히 다가오더라. 난 아직까지도 삶과 괴리된 ‘허영만 가득 찬 지식껍데기’만을 긁어모아 부둥켜안은 채 살고 있다. 이런 내가 교육자의 역할을 한다고 하니, 어불성설일 수밖에 없다. 좀 더 앎과 삶을 일치시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고 어떤 상황에서건 그 상황에 푹 빠져들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앎이 나를 자유케 할 때까지, 미지의 세계를 맘껏 즐길 수 있을 때까지 말이다.
목차
무계획이 곧 계획이야
당황하지 않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대답하면 끝!
장소, 그 까이꺼 대충
총각들의 저녁식사
족대질을 어른이 되어 처음으로 해본 사내
앎이 너를 자유케 하리라
이야기로 세상을 본다
‘쾅 하는 소리’가 만든 다양한 이야기
한여름 밤에 추위에 벌벌 떨며 잔 사내들
광고기획자에게 듣는 기획이야기
계획되지 않은 旅行, 그래서 餘幸(덤으로 누리는 행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