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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Jan 04. 2016

돌베개 출판사와의 마주침

돌베개 책과 독립영화의 만남 2 - 돌베개출판사와의 인연

실상 대학생 때는 책을 거의 읽지 않았다. 공부를 해야 한다는 핑계로 책은 거의 읽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나라 공부 풍토 상 책읽기와 공부는 별개였고, 나 또한 그런 고정관념을 그대로 받아들여 읽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졸업과 동시에 임용에 합격하겠다’는 만용과도 같던 꿈이 좌절된 후가 되어서야 드디어 책을 읽게 된 것이다. 현실의 고통을 받아들이기 위해선 나의 역량을 키워야만 했고, 그 역량을 키우기 위해선 나보다 앞서서 산 선배들의 조언과 응원이 필요했다. 

그렇지만 책을 거의 읽지 않던 시기에도,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시기에도 나와 자주 마주쳐 공명하던 출판사가 있었던 것이다. 그 출판사가 바로 ‘돌베개 출판사’다. 그 인연론을 한 번 들어보자.                



▲ 파주출판단지에 있는 돌베개 출판사의 모습. 1층엔 '행간과 여백'이란 북카페가 있어 놀기에 좋다.




한문이란 전공이 만들어준 인연  

   

전공이 한문학이었기에 임용고시를 보기 위해서는 전공서를 많이 보아야 했다. 그런 책들을 주로 보다보니, 대부분 같은 출판사에서 나오는 책들이어서, 자연스레 ‘돌베개’, ‘태학사’, ‘소명출판사’, ‘통나무’ 등의 출판사를 자주 접하게 되었다. 그 당시엔 그저 한문학 관련 서적을 많이 만드는 출판사 정도로만 생각했다. 



▲ 책을 읽지 않던 시절에도, 자연스레 돌베개출판사의 책들을 읽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맺어진 인연은 결코 가벼운 게 아니었다. 임용고시를 접고 인문학 서적을 열심히 읽기 시작할 때도 ‘돌베개’와의 인연은 계속 되었기 때문이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통해 ‘앉아서 유목하는 법’을 배웠고 『예수전』을 통해 종교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이 때에 이르러서야 출판사의 출판 방향이 나의 생각과 많은 부분에서 일치하는 출판사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 돌베개의 책들은 마음 갈피를 잡지 못하던 시기에,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출판사 이름을 멋대로 해석하다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의미부여를 한다는 것이다. 의미부여는 어떨 때 하느냐면, 보편적인 의미 외에 나만의 의미를 심고 싶을 때 그와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이다. 일례로 애인끼리 서로에게 애칭이라는 것을 짓는 행위를 들 수 있다. 굳이 이름이 있음에도 ‘귀염둥이’, ‘탱이’, ‘뿡뿡이’와 같은 애칭을 짓는 이유는, 나만의 유일한 사람unique으로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즉, 내가 그의 이름만 불렀을 땐 그는 뭇 사람 중 한 명에 지나지 않았지만, 내가 그의 애칭을 불렀을 땐 그는 나에게로 와서 ‘나만의 그대’가 되었다는 뜻이다. 

이처럼 애칭을 지을 때도 이와 같은 의미를 지니는데, 출판사 이름을 지을 땐 더 심하게 고민이 들 수밖에 없다. 짧은 이름 속에 자신들의 출판하려는 의지, 지향점을 모두 녹여내야 하니 말이다. 

‘돌베개’란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야곱의 이야기가 먼저 생각났다. 아마 그 당시엔 기독교에 심취하고 있던 때라 모든 것을 성경적인 맥락에서 이해하려 했기 때문일 것이다.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곳의 한 돌을 취하여 베개하고 거기 누워 자더니,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느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하고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느님이요 이삭의 하느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창세기 28:10~14   



▲ 야곱은 고단한 여행 중 꿈을 통해 계시를 받았다. 돌베개의 이름이 여기서 연유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야곱은 하느님의 입장으로 보자면, 선민이었다. 그는 형 에사오에게 당연히 넘겨질 장자長子의 권리를 얻기 위해 교묘하게 형인 것처럼 몸에 털을 붙이고 아버지(아버진 눈이 멀어서 감촉만으로 자식을 구분하던 때였음)에게 가서 장자의 권리를 얻었다. 이러한 사실이 형에게 들통 나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자 야곱은 하란 지방으로 도망쳤고 위의 장면은 도망치는 과정 속에 하느님으로부터 계시를 받는 장면인 것이다. 

야곱은 어찌 보면 생명의 질서를 위배한 사기꾼이며 이기적인 사람일 뿐이지만, 하느님이 보기엔 ‘자신의 계명을 충실히 지킬 선한 자’로 보였나 보다. 그래서 그에게 복을 내려주겠다고 계시를 하고 있다. 

이 글에서 보다 집중해서 봐야 할 것은, 도망가던 도중 야곱이 베고 누운 것이 바로 ‘돌’이라는 사실이다. 이 때의 ‘돌베개’는 고난의 상징이며, 결코 편안한 삶을 살 수 없다는 징표이기 때문이다. 먼 훗날의 축복을 약속해줬지만, 현실은 고달플 수밖에 없음을 ‘돌베개’를 통해 드러낸 것이다. ‘돌베개 출판사’의 이름을 들었을 때, 난 위의 구절을 생각했고 출판사 대표는 절실한 기독교 신자이며 현실에선 핍박 받을지라도, 먼 훗날 한국에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출판해내겠다는 의지로 그와 같은 이름을 지은 것이라 생각했다.                




출판사 이름을 제대로 알게 되다

     

‘출판사 이름의 연유가 그럴 것이다’고 짐작하며 시간을 지내왔다. 임용공부를 하던 시기를 지나 대안학교 교사를 하고 있는 지금까지 페이스북으로 출판사의 소식을 간간이 들으며 인연을 계속 지속해왔다. 그러던 중 ‘돌베개 책과 독립영화의 만남’을 보러 인디스페이스에 갔다가 『돌베개 2014 도서목록』이라는 책을 보고 나서야 출판사 이름을 어떻게 지은 것인지 알게 된 것이다. 그 순간 내가 생각한 이상으로 더 웅대한, 그러면서도 절실한 의미부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창피했다.

장준하 선생이 유신 시대로 접어드는 암울한 시기에 항일 운동을 했던 기억을 되살펴 펴낸 수필집의 이름이 바로 『돌베개』였던 것이고, 그 제목을 따서 출판사 이름을 지은 것이다. 그러한 정황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돌베개 출판사’가 추구하는 정신이 무엇인지 어렴풋하게 감이 잡혔다. 정권을 비호하며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얄팍한 상술로 책을 펴내는 것이 아니라, 정의가 무엇인지를 물으며 때론 기득권에 반할 지라도 그게 옳은 일이라면 정의로 책을 펴낼 수 있다는 마음가짐을 담았다고 말이다. 



▲ 돌베개 이름은 바로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원대한 뜻을 느낄 수 있다.



역시나 출판사 소개면을 보니 79년에 ‘운동으로서의 출판’을 하기 위해 설립되었다고 나온다. 금서목록이 지정되고 대부분의 책들이 검열을 받아 만들어지지 못하던 시대였기에 그와 같은 의지로 출판사를 설립할 수밖에 없었음이 이해가 된다. 하지만 90년 이후 문민정부가 들어서며 표면적으로 민주적인 사회가 된 것처럼 사회가 변하자 ‘문화로서의 출판’을 하는 것으로 출판 방향을 바꾼다. 그건 어찌 보면 변하는 시대를 선구할 수 있는 방향성을 정한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이름이 정해진 연유와 출판사가 추구하는 이상을 보고 있노라니 더욱 ‘돌베개 출판사’에 대한 애착을 느꼈다. 임용을 그만두고 삶을 고민하던 순간에도 ‘돌베개’의 책들은 든든한 동지와 같은 느낌으로 힘이 되어줬지만, 단재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에도 여전히 내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일깨워주고 새로운 상상을 할 수 있는 통찰을 주는 고마운 친구가 되어 주고 있다. 『열하일기』를 읽으며 시대의 한계를 넘어서며 새로운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는 기상에 흥분했으며, 『서울은 깊다』를 읽으며 신시神市인 서울은 어떤 철학적 사유에 의해 건설되었으며 거기에 어떤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지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 

    

돌베개 출판사와의 인연을 이런 식으로 정리를 하다 보니, 문득 떠오르는 속담이 있다. 바로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란 속담이다. 옷깃만 스치던 작은 마주침이 인생의 향방을 결정짓는 거대한 사건이 될 수 있다는 깨달음은 어찌 보면 인생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꼭 클리나멘Clinamen처럼 말이다.      



에피쿠로스는 세계 형성 이전에 무수한 원자가 허공 속에서 평행으로 떨어졌다고 설명한다. 원자는 항상 떨어진다. 이는 세계가 있기 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을, 동시에 세계의 모든 요소는 어떤 세계도 있기 이전인 영원한 과거로부터 실존했다는 것을 함축한다. 이는 또한 세계의 형성 이전에는 어떤 의미Sens도, 또 어떤 원인Cause도, 어떤 목적Fin, 어떤 근거Raison나 부조리Deraison도 실존하지 않았다는 것을 함축한다. 의미비선재성意味非先在性은 에피쿠로스의 기본적인 테제이며, 이 점에서 그는 플라톤에도 아리스토텔레스에도 대립된다. Clinamen이 돌발한다. …… 클리나멘은 무한히 작은, ‘최대한으로 작은’ 편의偏倚(Deviation, 기울어짐)로서, 어디서, 언제, 어떻게 일어나는지 모르는데, 허공에서 한 원자로 하여금 수직으로 낙하하다가 ‘빗나가도록’, 그리고 한 지점에서 평행 낙하를 극히 미세하게 교란시킴으로써 가까운 원자와 마주치도록, 그리고 이 마주침이 또 다른 마주침을 유발하도록 만든다. 그리하여 하나의 세계가, 즉 연쇄적으로 최초의 편위와 최초의 마주침을 유발하는 일군의 원자들의 집합이 탄생한다.  - 알뛰세 「마주침의 유물론이라는 은밀한 흐름」


     

에피쿠로스는 ‘세계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라는 질문에 ‘신’과 같은 절대권자의 능력을 개입시키지 않는다. 세계에는 이미 무수히 수직으로 떨어지는 원자만이 있었을 뿐이다. 그러던 중 원자 하나가 아주 미세한 어긋남을 통해 살짝 기울어진 상태로 떨어진 것이다. 그렇게 떨어지던 원자는 어느 순간에 옆의 다른 원자와 마주치며 합쳐지고, 바로 그 옆의 원자와도 부딪히는 연쇄충돌이 일어난다. 그런 아주 ‘우연한 마주침’의 작용을 통해 세계가 만들어졌다고 본 것이다. 여기엔 어떤 과학적인 분석 따위를 대입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과학은 ‘하나의 상상력을 통해 세계를 이해하려는 노력’이기 때문이다. 



▲ 세계는 우연적으로 탄생했다고 말한다면, 종교인들은 싫어할 것이다. 하지만 그 우연한 작은 변화에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처럼 나도 내 삶을 살아가고 있었으나, 그 삶의 길목에서 우연하게 ‘돌베개 출판사’와 마주쳤고 그런 마주침과 부딪힘의 결과 난 예전엔 전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새로운 인생의 방향을 정하게 되었다. 모든 게 약간의 어긋남이 빚어낸 삶의 신비에 대한 이야기다. 하지만 여기서 끝난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우연한 마주침은 변주變奏되어 ‘돌베개책과 독립영화와의 만남(이하 책씨)’이란 기획을 통해 『탐욕의 제국』과 『다이빙벨』을 관람하는 것까지 확장되었으니 말이다(2009년 당시의 인연론 보기). 



▲ 이제부터 본격적으로『탐욕의 제국』과 『다이빙벨』과의 마주침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coming soon^^ 





목차     


시작 글인연론

인연에 대한 오해

인연이란 단어의 원의     


돌베개 출판사와의 마주침

한문이란 전공이 만들어준 인연

출판사 이름을 멋대로 해석하다

출판사 이름을 제대로 알게 되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     


탐욕의 제국』 ① 영화와의 마주침

마주침은 거리의 문제가 아닌 마음의 문제

『탐욕의 제국』과의 마주침     


탐욕의 제국』 ② - ‘또 하나의 가족을 외치는 삼성의 민낯

핵가족화를 부추기는 기업, 하지만 ‘또 하나의 가족’이길 바라는 삼성

‘또 하나의 가족’일 수 없는 사람들

‘또 하나의 가족’일 수 없는 사람의 울부짖음

윤리적인 기업은 가능한가?     


탐욕의 제국』 ③ 고전으로 살펴보는 윤리적 기업이란?

『대학』과 ‘경주 최부자의 가훈’으로 보는 기업윤리

진정한 ‘또 하나의 가족’ 삼성이길 바라며     


다이빙벨』 ① - 2014년 4월 16일 그 날의 기억

4월 16일 골든타임을 허비하다

하는 척만 하는 구조기관

두 눈 뜨고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다     


다이빙벨』 ① 세월호에서의 다이빙벨의 의미

세월호에서 다이빙벨의 의미

화제의 『다이빙벨』, 그 前과 後

‘다이빙벨’의 의미 변질

마지못한 ‘다이빙벨’의 투입 승인     


다이빙벨』 ③ 영화를 통해 드러난 진상

논란의 중심에 선 『다이빙벨』과 문화로서의 출판을 하는 돌베개의 만남

‘다이빙벨’은 실패해야만 했다 1 - 투입을 못하도록 막고 또 막고

‘다이빙벨’은 실패해야만 했다 2 - 언론의 반응을 통해 본 다이빙벨

‘다이빙벨’은 실패해야만 했다 3 - 언딘과 해경의 비협조와 위협

언론의 ‘사기꾼 이종인 만들기’     


다이빙벨』 ④ 이 영화는 문화적 짱돌이다

다이빙벨의 진실을 알고 싶으면, 『다이빙벨』을 보라

『다이빙벨』은 77분의 고급화된 욕

문화적 짱돌인 『다이빙벨』     


맺음글 ① 인의 존재가 되어 인연을 향해

우연 속에 인연이 싹튼다

인연을 만들고 싶거든, 인이 되어라     


맺음 글 ② 이제는 취할 시간이다

인이 된 그대들, 취하라

글을 마친 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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