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건빵 Jan 26. 2017

낯선 사람 집에서 잠을 잔다는 것

2009년 국토종단 21 -  4월 28일(화)

뉘엿뉘엿 저물어 가는 해를 보며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노인회 회장님이 오실 때까지 무작정 기다려 마을회관에서 잘 수 있도록 허락을 받을 생각으로 말이다. 

하지만 해는 완전히 저물고 차디찬 바람이 옷깃을 파고들어 온 몸을 움츠러들게 만드니, 절망이 싹터오기 시작했다. 온갖 비극과 비관을 한 몸에 안은 양, 무인도에 홀로 남겨진 사람인 양, 그렇게 무기력하게 가만히 있었다. 과연 잠을 잘 수는 있는 것일까? 이러다가 아예 노숙을 하게 되는 건 아닐까?               



▲ 오늘은 많이 걸은 것도 아니다. 일찍 도착했지만, 아직 잠자리를 구하지 못해 가만히 있어야 하니 죽을 맛이다.




최초로 민가에서 자다

     

7시 30분쯤 되었을까? 4시에 이곳 경천리에 도착했으니 벌써 3시간 30분 째 이러고 있었다. 한 분이 내 앞을 지나가신다. 바로 옆이 슈퍼이니 무언가를 사러 오시는 것이다.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분이 묻기도 전에 먼저 인사를 건네며 왜 여기에 계속 앉아 있는지 말했다. 그건 낯선 사람에 대한 긴장을 풀어도 된다는 구실이었지만, 실제로는 상황이 된다면 집으로 초대해주십사하는 마음에서 그리한 거였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집으로 불러들인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 줄을 알기에 크게 기대는 하지 않았고, 약간의 가능성이라도 믿으며 그리한 것인데, 역시나였다. 안쓰럽게 생각해주시긴 했는데, 그냥 지나가셨기 때문이다. 

그 후 두 번째 분도 쭈뼛쭈뼛 내 앞을 지나가신다. 그래서 역시나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랬더니 “아까부터 여기 계속 있던데 무엇 때문에 그러세요?”고 먼저 물어보시는 게 아닌가. 그건 진짜 궁금해서 묻는 것이기에, 물 만난 고기처럼 사정없이 사정을 얘기하기 시작했고, 거기에 덧붙여 묻지도 않은 여행의 목적지까지 단숨에 말했다. 그제야 그 분이 “우리집이라도 괜찮다면 가보겠어요?”라고 제안을 하시는 게 아닌가. 그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아니 오히려 이런 어마어마한 제안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신다는 사실이 긴가민가했다. 그때의 어리둥절함이란, 그리고 미처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이란~



우리집이라도 괜찮다면 가보겠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고민해볼 필요도 없이 좋다고 말했다. 잠이나 잘 수 있으련지 막막하던 차에 일이 그렇게 한 순간에 풀리더라. 이게 정말 꿈이냐 생시냐? 밥을 먹었냐고 물어보셔서 안 먹었다고 대답을 하니, 슈퍼에서 라면을 산 후 따라오라고 하시더라. 조금 전까지만 해도 온갖 비극을 다 안은 양 꿍해 있었는데,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역시 인생은 언제 어디로 어떻게 튈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그 우연 속에 몸을 맡기고 가야만 하는 거다.                



▲ 의자에 앉아 있으니, 마을 사람들이 슈퍼에 한 분씩 오시더라. 여기서 인연이 이어졌다.




낯선 존재를 가족처럼 자연스레 품어주다

     

집에 가기 전까지만 해도 홀로 사시는 분인 줄 알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낯선 사람을 집으로 데려갈 순 없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집에 도착하니 사모님, 손녀, 조카 손녀, 친척 언니가 계시는 게 아닌가? 나도 그 순간 적잖이 당황했고, 그 분들도 눈이 휘둥그레졌다. 처음 본 사람을 집으로 데려온 뜻밖의 상황이니 말이다. 그러니 잠시 적막이 흐를 수밖에 없었다. 아저씨는 멋쩍게 사모님에게 나를 데리고 온 이유를 말씀하셨고 그제야 사모님도 좋은 일을 했다며 나를 반겨주셨다. 

라면을 맛있게 끓여주시고 맥주도 주셔서 허겁지겁 먹었다. 거기에 토마토까지 간식으로 챙겨주시며 “맥주 한 캔 더 하실래요?”라고 물으시더라. 말로는 할 수도 없는 행복이 깃드는 순간이었고, 그토록 바라던 여행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밥을 다 먹고 나선 따뜻한 물로 씻고 빨래도 했다. 그러고 나선 사모님과 이야기를 좀 더 할 수 있었다. 도보여행을 떠나며 그저 걸어서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만나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고 싶었다. 그런 바람이 지금 이 순간 이루어진 것이니, 더 이상 무얼 바라랴.                



▲ 낯선 사람을 집에 들인다는 건 힘든 일인데, 그걸 하셨다. 그래서 고맙다.




거리의 인연 5 - 아픔을 지닌 사람이어야 한 길로 가지 않는 사람을 받아들일 수 있다

     

사모님의 들려 준 이야기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파란만장한 삶’이라 할 수 있다. 그분들은 순탄한 삶을 살아오신 게 아니라, 삶의 파도 위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살아오신 거였다. 아마도 나의 이런 모험 자체를 긍정해주실 수 있었던 데엔, 맘처럼 되지 않는 삶을 살아온 내력이 작용하는 듯했다. 

한창 잘 나갈 땐 계룡산 밑에 소 100마리를 키우기도 했단다. 그런데 소 값이 나날이 떨어져 똥값이 되자, 한순간에 쫄딱 망하셨다는 것이다. 삶은 그렇게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급변했다. 그건 정부와 농협이란 괴물의 공동작품이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마음을 잡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살아갈 방법을 마련해야 했기에, 집이 있는 자리에 별채를 세워 장사를 하기로 했단다. 

이 건물을 세우려면 융자를 받아야 했는데, 그걸 받는 과정이 압권이었다. 어떻게든 재기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야 하니 말이다. 농협에 가서 아무리 통사정을 해봐야 그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는 하나의 안타까운 이야기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니 강하게 자신의 입장을 어필해야만 했다. 그래서 사모님은 소똥 묻은 장화를 신고 조합장실로 나흘간이나 찾아갔다고 한다. 그러면서 “당신들의 장난으로 우리가 망했으니, 저리 융자로 돈을 빌려달라”고 외친 것이다. 처음엔 전혀 관심도 보이지 않다가, 4일째 되는 날 조합장이 “아줌마처럼 이렇게 억척스런 사람은 처음 보네요”라는 한 마디를 내뱉으며 일처리를 해줬다고 한다. 



아줌마처럼 이렇게 억척스런 사람은 처음 보네요



그 억척스러움이 이해가 되었다. 이미 삶은 극단으로 내몰렸고, 여기서마저 방법을 찾지 못하면 모두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떻게 해서라도 이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그러니 좀 과격하게 보일지라도 그렇게 하는 게 맞다. 그래서 건물을 지을 수 있었고 이곳에서 정육점을 시작해 여태껏 장사를 해오셨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여태껏 얼마나 편안하게 그러면서도 별 다른 걱정 없이 살아왔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무언가를 하기 위해선 그와 같은 절실함과 강인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도 알 게 됐다.  

그런데 이젠 그마저도 그만 두시려고 하신단다. 정부가 대규모 사업자에게 정육점을 할 수 있도록 허가했기 때문이다. 기업형 정육점이 등장한다는 말씀되시겠다. 대기업 슈퍼가 곳곳에 들어서면 경쟁력이 없는 영세 슈퍼는 문을 닫아야 하는 이치와 같다. 자본가의 손만을 들어주고 영세 상인들을 내치는 정부의 속내를 알 수 있다(여담으로 2009년 6월 25일에 이 대통령은 재래시장을 ‘투어’하면서 대기업슈퍼에 불만을 표시하는 상인들에게 정부가 어떻게 할 수 없다는 말로 상처 난 곳에 염산을 뿌려대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이런 뻔뻔한 대통령의 모습은 자본주의 사회의 한 단면에 불과하다).                



▲ 누군가에게 시장은 삶의 터전이지만, 누군가에겐 투어의 장소이며 이미지 정치를 구현하는 장소다.




이야기를 듣기 위해 걷는다

     

바로 이런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민폐를 끼치더라도 민가에서 자고 싶었던 거다. 책이 한 사람 인생의 결정체라는 사실을 모두 다 인정하듯이, 한 사람의 인생담도 그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오늘은 도보여행을 한 날이자, 책 한 권을 제대로 읽은 날이기도 하다. 

오늘처럼 단순히 스쳐 지나가며 느끼는 여행을 하기보다 여러 사람을 만나 그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온기가 깃든 풍경을 들여다보는 여행을 하고 싶다. 어느 곳을 다녀왔다고 자랑 삼아 말하는 여행보다 그곳에 살던 사람들을 만나 함께 공명하는 여행을 하고 싶다. 그런 여행을 도보여행을 시작한 지 10일이 지나고 나서야 처음으로 해볼 수 있었다. 이를 계기로 앞으로의 여행도 적극적으로 민폐를 끼치며 관계를 창조해나갈 것이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다보니 시간이 많이 흘렀다. 난 잠자러 들어왔다. 이 방은 아들 방인데 작년에 결혼을 해서 빈 것이란다. 이제 편안히 자면 된다. 두 분에게 얼마나 감사한 마음이 들던지. 지금 누워있는 아늑함이 꼭 꿈만 같다. 그리고 이 일을 통해 ‘궁하면 통한다窮則通’란 말도 제대로 터득할 수 있었다. 두 분 오래 오래 건강하고 행복하셔요.               



▲ 사람의 이야기엔 삶의 절정이 담겨 있다. 고로 오늘 책 한 권 잘 읽었다.




시골에 대한 편견

     

도시 사람들은 시골에 대해 많은 편견을 가지고 있다. 시골은 정을 중시하는 곳이고, 공동체가 살아있는 곳이어서 모두가 가족처럼 지낸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 말만 들으면 정말 좋은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그렇게 밀착될 수밖에 없는 관계가 도를 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개인의 대소사를 다 알고 있기 때문에 뒷말이 많을 수밖에 없다. 나에 대해 사람들이 좋은 이야기를 한다면 백번 환영할 테지만, 실상은 정 반대다. 사람들에게 나의 이야기는 하나의 가십거리가 되고, 그게 아무렇지 않게 퍼져 나간다. 그러니 자꾸 남의 이목에 신경 쓰게 되고, 더 심해지면 노이로제까지 걸리게 된다. 그리고 모임이나 마을 행사에 불참하기라도 하면 노골적으로 불이익을 주기도 한단다. 

공동체가 좋아서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이길 강요하니 어쩔 수 없이 관계를 맺어야만 한다. 사모님은 이와 같은 시골의 지극히 이기적인 모습을 불만스러워하셨다. 누구나 그러하듯이 잘 나갈 때 일이 잘 풀릴 때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건 행복한 일이지만, 궁지에 몰릴 때 누군가의 입방에 오른다는 건 불행한 일일 수밖에 없다. 이 이야기를 듣다 보니, 시골에서 사는 것의 힘겨움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잡채밥 5.000원, 과자 3.000원 / 총합 8.000원)



▲ 곤하게 자고 있는 손녀. 천사가 따로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잠자리 얻기의 버거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