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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Jan 18. 2017

여행의 컨셉이 ‘민폐 끼치기’라고?

2009년 국토종단 16 -  4월 26일(일)

이미 말했듯이 오늘 목표는 익산을 지나서 시간이 될 때까지 걸은 만큼만 가는 거다. 지금껏 일주일동안 걸었지만 어떻게든 도시를 목표로 하루 걸을 양을 정해왔다. 도시를 목적지로 정한 이유는 아무래도 잘 곳을 구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물론 여관이나 찜질방 말이다. 

하지만 바로 그 생각이 여행의 의미를 반감시키고 있었다. 잘 곳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경험도 못해봤고 예기치 못한 상황에 처해보지도 못했는데, 그건 이처럼 안전한 여행만을 하려는 소심함 때문이었다. 다양한 경험을 해보기 위해, 다양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떠났지만, 어느덧 그 의미는 사라지고 걷는 것에만 치중하는 극기를 위한 여행이 되었던 것이다. 이런 여행의 형태를 계속 고수하는 건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그런 생각들을 쉴 새 없이 하며 만경강을 지나가고 있었다.                



▲ 만경강을 건너며 익산에 들어섰다. 오후의 일정도 신나게.




치대기와 민폐 끼치기

     

바로 그 때 갑자기 함열에 산다던 후배가 생각났다. 대학교 때 크로스 선교 합창단이란 동아리에서 활동을 하며 알게 된 후배다. 아무래도 일주일에 두 번 진행되는 합창 연습 시간과 예수병원으로 나가는 찬양 봉사활동까지 함께 하노라면, 동아리 아이들과는 정말 가까워질 수밖에 없었다. 그때의 인연으로 한참이나 연락을 하지도 않았지만, 한번 연락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익산을 지나고 있다는 문자를 보냈다. 분명히 처음에 문자를 보낼 때만 해도 ‘안부만 물어야지’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문자를 주고받다 보니 ‘한번 교회에서 자도 되는지 물어볼까?’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더라. 뭐 이번 주 여행의 컨셉이 ‘치대기 & 민폐 끼치기’이니, 실례가 되는 줄은 뻔히 알지만 보내보기로 했다. 잘 된다면 모처럼 후배도 만나볼 수 있고 그에 따라 자는 문제도 한 큐에 해결되니 말이다. 

그런데 그 문자를 보내고 한참이나 시간이 지나도록 아무런 문자가 오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심장은 두근 반, 세근 반 하게 되더라. 가능하다는 문자가 오면 당연히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도 후회하지 않아야겠다고 마음을 추스르고 있었다. 어찌 되었든 이렇게 할 수 있는 용기이니, 이런 식으로 용기를 낸 나에게 박수를 보내며 말이다. 

그러다 결국 문자가 왔다. 시간상으론 몇 분 정도만 흘렀을 뿐인데, 몇 시간을 보낸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역시나 시간은 상대적이다. 과연 어떤 내용일까? 걱정과 기대를 하며 문자를 확인해 보니, 다행히도 “괜찮을 것 같아요”라는 문자더라. 히야~ 오늘 억세게 운이 좋다.                



▲ 꿈도 많고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던 20대 중반에 함께 활동하며 연락 한 번 없던 후배와 오랜만에 연락을 해봤다.




인간이어라 그대여

     

이번 여행을 하면서 처음으로 누군가가 기다리는 곳으로 간다는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이들은 엄마와 같이 놀 때 혼자 재밌게 놀다가도 한 번씩 엄마가 있는 쪽을 쳐다본다고 한다. 엄마가 그 자리에 있는지 그리고 자신을 보는지 확인해야지만, 맘 편안하게 놀 수 있기 때문이란다. 

이처럼 사람은 근원적으로 함께 어우러져 살아야 하는 존재다. 그래서 사람을 한자로 표현하면, 그저 ‘人’이라고만 써도 될 것을 굳이 ‘人間’이라 표현하는 것이다. 사람은 존재와 존재 사이에 있을 때 비로소 사람이 되는 거다. 그러니 아무리 홀로 살아가는 존재라 할지라도 사람 사이에 있어야 하며, 그런 위안으로 살아가야만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자기 안으로만 침잠해 들어가 자신을 파괴하는 자폐가 될 가능성이 크다. 

오늘은 오전부터 지금까지 사람과 어우러질 수 있었다. 그러니 당연히 행복할 수밖에. 이게 바로 관계의 끈을 확인한 데서 오는 행복이라 할 수 있다. 나 혼자 떠난 여행을 통해 나 자신과 어느  정도 화해할 수 있었고 그 힘으로 세상과 사람을 향해 맘을 열 수 있었다.                



▲ 누군가 기다리는 곳으로 가니, 마음이 한결 가볍고 행복하다. 그런데~~~~




전속력으로 익산 통과하기 

    

그런데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바람에 간과한 게 하나 있었다. 이미 시간은 2시가 넘었고 이제 막 익산에 들어섰다는 거다. 여기서 함열까진 25km를 더 가야 한다. 사람은 일반적으로 한 시간에 1리(4km)를 걸어갈 수 있다고 한다. 그 단순한 계산법으로 계산하더라도 6시간을 더 걸어야 겨우 함열에 도착할 수 있는 것이다. 

오후에 접어들면서 몸은 지쳐가고 있었으니 그 시간은 더욱 늦춰질 수밖에 없었다. 허걱! 이건 완전히 판단 미스다. 이래서 어떤 일이든 ‘+’와 ‘-’가 함께 있다고 하는 건가? 이제부턴 ‘적당히’ 걸어선 안 된다. 아주 맹렬히, 전투적으로 걸어야만 한다. 

정말 빠른 속도로 걸어서 익산 시내를 관통하기 시작했다. 그 때만해도 발바닥도 양호했고 몸도 많이 힘들진 않았다. 그래서 익산역에서 컨셉 사진도 찍고 원광대 앞에선 잠시 구경도 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ㅋ 황등을 지나 함열로 향하는 23번 국도를 탈 때부터 발바닥이 조금씩 아파왔다. 아직도 꽤 걸어야 했기에 양말을 갈아 신었다. 지금껏 아침에 신은 양말을 중간에 갈아 신는 경우는 없었다. 오늘처럼 완벽하게 무리하며 걸은 경험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은 오전엔 쉬엄쉬엄 걷다가 오후에 무리하며 걷는 것이기에, 땀에 젖은 양말을 갈아 신어 발바닥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해야만 했다. 

도무지 거리 감각이 없었던 지라 무작정 걸었다. 4차선 국도의 횡포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힘내서 걸었다. 함열에 거의 다 왔는가 싶으면 또 새로운 길이 나오고 그게 계속 되풀이 되더라. 몸은 이미 지칠 대로 지쳤고 길은 끝이 없는 듯 계속 되어 맘은 급하기만 했다. ‘그만 멈추고 싶다’는 생각이 나의 몸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이럴 때가 고비이긴 한데, 누군가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으로 유혹을 뿌리칠 수 있었다.                 



▲ 지금은 선상역사로 바뀌어 유리궁전을 방불케 하지만, 그땐 오히려 특색이 있는 건물이었다.




빅터 프랑클이 말한 의미요법을 몸소 체험하다

     

걷다가 7시가 넘어서야 함열에 도착했다. 최대한 빨리 걸은 탓에 조금 일찍 함열에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이다. 후배는 “길을 오다 보면 오른쪽에 석매교회가 보일 거예요. 그러면 연락을 주세요”라고 말해줬기에, 걷는 내내 석매교회를 찾으려 무진장 노력했다. 그런데 함열에 다 도착했는데도, 석매교회는 코빼기도 안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함열 가기 전에 교회가 있는 게 아니라 읍내에 있는 교회인가 보다’라고 생각하며 읍내에 들어가 교회를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그런 교회는 없었다. 

후배에게 전화를 해보니, 이미 지나쳤다고 알려주더라. 세상에 내가 얼마나 온 신경을 집중하고 찾으면서 왔는데, 그걸 어찌 놓쳤을까. 나중에 알고 보니, 도로에 바짝 붙어 있지 않고 약간 떨어져 있었던 거다. 그래도 환한 대낮에 왔다면 충분히 볼 수 있었는데, 어두워진 저녁에 오다보니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게 바로 대략난감이다. 무리하며 걷기도 했고, 교회를 찾는다고 한참이나 읍내를 걸어 다녔기에 체력은 완전히 바닥이 난 상황이었다. 후배의 말에 기진맥진하여 한 걸음도 걸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이래서 사람에게 ‘희망’이 중요하다고 하나 보다. 희망이 있을 땐 저력이 생기더니, 그 희망이 사라지자 서있는 것조차 힘들었으니 말이다. 만약 후배가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서 오세요”라고 말을 했다면, 나는 “그냥 여기서 잘 곳을 알아볼게”라고 대답을 했을 것이다. 그만큼 움직일 힘이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행히도 후배는 차가 있기에 태우러 온다더라. 그 말을 듣는 순간, 언제 절망에 빠졌나 싶게 얼굴이 화색이 감돌며 밝아졌다~ 

곧 후배가 왔다. 차에 타자마자 오랜만에 만나서 반갑고 이런 몰골로 만나게 되어 좀 미안하다고 말을 건넸다. 그래서 이런 식으로라도 만날 수 있으니 기분은 정말 좋았다. 이제 하루의 무거운 짐을 놓고 푹 쉬면 되니 말이다. 오늘은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던 계획이 생기며 무리를 하게 됐다. 예기치 않은 일들이 이렇게 하나 둘씩 생겨나고 있다.                



▲ 바로 오른쪽에 보이는 교회가 석매교회다. 그땐 어두울 때 걷다 보니, 놓쳤나 보다.




거리의 인연 – 예기치 못한 상황의 결정판

     

교회에 짐을 놓고 후배가 밥을 산다고 해서 길을 나섰다. 난 돈가스를 먹고 후배는 이미 밥을 먹었다며 녹차를 시켰다. 몇 년 만인지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 오랜만에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꼭 꿈만 같은 느낌이었다. 

후배는 동아리 단장을 맡던 시절에 새내기로 입학했었다. 그렇게 1년 동안 동아리에 최선을 다하다가 단장직을 넘겨준 후엔 임용공부만 한다는 핑계로 아예 동아리엔 발길을 끊었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과의 관계는 흐지부지 될 수밖에 없었다. 그새 시간이 흘러서 벌써 이 아이도 졸업을 했다는 거다. 꿈도 여전히 많았고 생각하는 것들도 많아서 우린 쉴 새 없이 이야기를 편하게 나눌 수 있었다. 

밥을 먹고 다시 교회로 왔다. 문자로 이야기할 땐 기도실이나 작은 방에서 혼자 자는 것으로 이야기가 됐었다. 혼자 자는 거야 이미 이골이 났기 때문에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교회에 도착하니 아까와는 다른 말을 하더라. 전도사님이 머무는 곳에서 같이 자야 한다고 말이다. 

솔직히 그 말을 들었을 때도 난 대환영이었다. 전도사님이면 오랜만에 종교에 대한 생각을 들어볼 수 있겠구나 했기 때문이다. 젊으니 종교관도 통통 튈 것이고 그런 만큼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거니 기대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후배가 한마디 덧붙인다. 바로 그 전도사님이 외국인이라는 것이다. 

이미 이것만으로 ‘충격’의 도가니탕인데 이쯤에서 놀라기엔 아직 이르다. 그래도 한국에 전도사님으로 오실 정도면 한국말은 어느 정도 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 전도사님은 한국말을 한마디도 못하신다는 거다. 뭐 이 정도는 되어야 ‘예기치 못한 상황’의 결정판이라 할 만하다. 나 지금 진땀 흘리고 있니~ 솔직히 그 순간 혼자 자겠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새 환경에 맞서기로 맘먹은 날에 바로 그 다짐을 깨긴 싫었기에 잠자코 상황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 후배 도움으로 이번엔 편안하게 잘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 펼쳐졌다. 늘 바라던 그 상황이~




거리의 인연 – 필리핀 전도사님과 영어로 대화를 나누다 

    

전도사님이 계신 방으로 들어가니 이미 사모님과 따님이 전도사님에게 한국말을 가르치고 계시더라. 난 바로 자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조금 후에 교회 식구들이 2명 더 와서 화기애매(?)한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솔직히 모두 영어로 대화를 나누는데 난 낄 수가 없었다. 알파벳도 보지 않고 산 지 몇 년이 흘렀으니 영어를 할 수 없는 게 당연했다. 비교적 쉬운 단어로 이야기 하는 데도 난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있어야만 했다. 아~ 영어가 오랜만에 나에게 도전심을 심어주는 구나.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다 가고 난 다음엔 나와 전도사님만 방에 남게 된다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되면 우린 등을 돌리고 어색하게 잠을 자는 척하게 될지도 모른다. 애고~ 어떻게든 이런 예기치 못한 상황을 잘 보내야 할 텐데~~ 

결국 모든 사람들이 가고야 말았다. 정말로 아무 이야기 없이 어색하게 등을 돌리고 잤을까? 아니면 나름대로 재밌는 시간을 보냈을까? 

이런 어색함을 몸소 느끼려 여행을 했다지만 외국인과 한 방에서 자게 될 줄이야~ 내가 그렇게 꿈꾸던 예기치 못한 상황에 닥치고 만 것이니, 인생 참 기가 막힐 정도로 신기하다. 

잠시 어색했다. 그래서 생각나는 몇 개의 단어를 나열하고 전세계 공용어인 바디랭귀지를 ‘기똥차게’ 섞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간혹 말이 통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말이 통하지 않아 둘이 먼 산만 바라보았다. 전도사님의 말을 난 바짝 긴장하며 들었는데, 내 짧은 영어 실력 때문에 그것마저 제대로 해석이 안 되었다. 오 마이 갓뜨!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대답이란 ‘OK!’ 밖에 없었다. 이 궁색한 대답이여~ 사람이 옆에 있음에도 답답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해보니 어느 정도 전도사님에 대해서 알겠더라. 전도사님의 이름은 ‘Wilter Cortez’ 이며 나이는 25살이란다, 그리고 필리핀 출신이며 성결제단에서 필리핀에 선교학교를 세웠는데 그 학교를 졸업하여 한국에 실습(?)하러 왔다는 것이다. 왜 기독교를 믿게 됐는지 그게 궁금했지만, 짧은 영어 실력으로 물을 순 없었다. 어느 정도 개인 상황을 알게 되니까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같이 사진을 찍자고 제안했고 사진을 찍은 후엔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누가 보면 사진 찍으려고 친해진 줄 알겠다^^

이것이야말로 예기치 못한 만남이다. 비록 제대로 이야기해보진 못했지만 외국인과 이야기를 나눈 내 생애 최초의 기념비적 사건임엔 틀림없다. 나도 조금씩 언어의 소중함을 느끼고 있다. 다른 건 몰라도 간단한 의사소통은 할 수 있을 정도로 영어는 익혀야겠단 생각을 하며 잠을 청했다.      


(헌금 1.000원 / 총합 1.000)


▲ 젊은 전도사님과 사진을 찍으며 그나마 어색함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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