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섭 교수 강의 후기
준규쌤의 건의에 의해 강의를 듣게 되었다. 6강으로 구성된 강의는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더욱이 배운다는 자세가 있긴 했던 걸까?
산만한 정신을 부여잡고 후기를 쓰다
6강의 강의가 끝나는 순간 든 생각은 ‘이제야 끝났다’는 안도감이었다. 내용이 그렇게 어렵다거나, 힘이 부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내 마음이 딴 데에 가있었다. 요즘 방향도 잡지 못하고 붕 떠있는 상태다보니, 정신도 산만해졌던 거다.
이런 상태이기에 6강 동안 치열하게 알고자 했지만 헛수고였다. 불량주부님의 ‘관점이 있어야 상이 맺힌다’라는 말처럼 무언가 나만의 관점이 있어야 할 텐데, 아무 것도 없으니 맺힐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내 특기는 무조건 열심히 듣는 것이다.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는 심정으로 열심히 들었는데, 내 귀는 어찌나 뻥뻥 잘 뚫려있던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말았다. 흘리는 과정 속에 뇌를 거쳤기에 뇌에 잔상이 남아 있을 만도 한데, 별똥별처럼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이럴 때 도움이 되는 건 순간순간 끼적거려 놓은 글일 텐데, 지금 들여다보면 도무지 무슨 말을 듣고 이런 글을 써놨나 싶기도 하다. 아~ 참새보다 약간 좋은 나의 기억력이 한스럽다ㅠㅠ
기억은 추억을 배반한다
그런데 이런 넋두리도 사실 부질없는 짓이다. 언제나 기억은 추억을 배반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잘 기억했다 한들, 그러한 기억은 왜곡된 사실일 수밖에 없다. 강의를 듣는 순간, 나에게 의미 있는 내용만을 취사선택하여 기억한다. 그걸 글로 적거나 남에게 이야기할 땐, 모두 다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또한 취사선택하게 마련이다. 두 번의(또는 그 이상의) 취사선택 과정을 거치며 표현하다보면 어느새 강의 내용과 표현 내용은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다. 『메멘토』란 영화는 이러한 기억의 속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렇기에 ‘객관적인’ 비고츠키 강의 후기를 쓰려는 욕심은 버리련다. 그저 느낌 그대로, 필feel을 살려서 나에게 비고츠키는 어떻게 다가왔는지 써보려 한다.
人間 그리고 삶
사람이란 결코 혼자 살아갈 수 없다. 사람과의 관계, 도구와의 관계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을 한자로 표현하면 ‘人間’이 되는 것이다. 사람은 무엇과 무엇의 ‘사이’에서 살아간다는 뜻이고 그 때문에 사람은 그런 것들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간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 안에 있는 지식이 나의 독창적인 것일 수 없으며, 내가 살아가는 방식도 사회문화적으로 구성된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런 것들을 고려하지 않은 채, “만날 놀기만 하니 공부를 못하는 거야”, “집 안에만 틀어 박혀 게임만 하고 있으니, 친구가 없지”라고 개인만 탓하는 게 말이나 되는가.
대추가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서서
붉게 익히는 것일 게다.
저렇게 저 혼자서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린 몇 밤
저 안에 땡볕 한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이 들어서서,
둥글게 만드는 것일 게다.
대추나무야!
너는 세상과 통하였구나!
「대추 한 알」, 장석주
대추가 동그란 모양새가 되고 붉어지기까지 환경과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해야 했다. 어떤 것이 형성되기까지는 선천적인 것과 맞물려 후천적인 상호작용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어디 대추만 환경과 통하였겠는가. 어찌 보면 사람이야말로 더 크게 환경과 통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을.
한 개인에게 책임지우는 ‘개체환원주의’의 오류
우리를 구성하는 수많은 관계들은 생각지도 않은 채, 모든 문제점을 한 개인으로 환원하여 생각하기 쉽다. 예를 들면 능력의 유무, 성실성 유무, 장애의 유무 등을 말이다.
능력의 경우
학교에서 공부 잘하는 학생을 보고선 ‘능력이 있다’고 판단하고, 그런 학생일수록 ‘역시 난 놈은 뭘 해도 잘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반면 공부 못하는 학생을 보고선 ‘능력이 떨어진다’고 판단하고, 뭘 조금이라도 잘 한다면 ‘어쩌다 보니 그런 것 뿐’이라고 단정 짓기 쉽다. 이런 판단을 통해 우린 ‘능력’을 ‘개인의 특성’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자. 여기서 ‘유능’이라는 판단 근거는 무엇인가? 바로 ‘추상적 사고 능력의 뛰어남’이다. 바로 그런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니, 기준에 맞는 사람은 유능한 사람이 되고, 맞지 않는 사람은 무능한 사람이 된다. 그런데 학교 시스템 자체가 ‘운동 능력이 좋은 사람이 유능한 사람’이라는 기준을 가지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되면 지금의 유능한 사람들은 무능한 사람으로 낙인찍힐 것이고, 반면에 무능한 사람들은 순식간에 ‘유능한 사람’으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결국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개체가 지닌 능력이란 개인이 지닌 게 아닌 사회 시스템에 의해 구성되었다는 사실이다.
▲ 박동섭 교수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 우치다쌤의 얘기를 통해 능력이란 것의 다양한 층위를 알 수가 있다.
장애의 경우
능력은 그렇다 쳐도 장애 또한 사회시스템에 의해서 정해진다는 말엔 반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눈이 멀었거나 귀가 들리지 않는다면, 그건 장애이지 정상은 아니지 않은가?’라는 물음이 가능하니 말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이미 푸코의 책 『광기의 역사』를 통해 밝혀진 바 있다. 광기 또한 근대 이전엔 ‘좀 남다른 사람’이라는 인식만 있었을 뿐 사회에서 배제하거나, 정신병원에 가둬야 할 질병으로 인식되진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성적 사고와 효율이 사회 전면의 가치로 떠오른 근대에 이르러선 광기가 있는 사람은 정신병원에 격리되고 치유되어야만 하는 질병을 지닌 존재로 취급받기 시작한다. 이처럼 개인의 정신 상태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장애로 취급될 수 있다.
이런 예에 빗대어 박동섭 교수님은 노라 엘렌 그로스Nora Ellen Groce가 집필한 『여기서는 모든 이들이 수화로 말하였다Everyone Here Spoke Sign Language』라는 책을 소개했다. 미국 근해에 위치한 비니어드 섬엔 유전적 청각장애인들이 많이 태어났는데, 이 곳 사람들은 ‘수화’를 기본 언어로 익혔기에 청각장애인들이 차별 받지 않고 지낼 수 있었다고 한다. 문화인류학자가 “그러면 그동안 살면서 할머니가 만났던 청각장애인들은 전부 몇 명이었습니까?”라고 묻자, 할머니가 대답을 하는데 이 대답이야말로 장애도 사회 시스템에 의해 구성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오! 그들은 장애인이 아니었어요, 단지 듣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지만요.”
‘단지 듣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인식과 ‘장애인’이라는 인식엔 레테의 강만큼의 격차가 있다. 현대엔 ‘심리학’이 주요 학문으로 떠오르면서 현대인은 모두다 ‘정신병자’가 되고 말았다. 과연 우린 ‘정신병자’인가, ‘팔팔 끓는 감정을 지닌 사람’인가? 교정이나 치유는 한 개인을 ‘장애인’이나 ‘돌연변이’로 인정할 때만 사용할 수 있는 용어이다.
우린 결코 닫혀 있는, 완결형의 존재들이 아니다. 환경과 끊임없이 소통하는 열려 있는 존재인 것이다. 그런데도 우린 왜 개체환원주의를 의심하거나, 되묻지 못한 채 사회나 학교가 규정지은 특성이 나의 모습인양 착각하며, 그런 기준으로 남까지 판단하며 살아가는 것일까? 그건 무언가를 묻고 새롭게 디자인할 힘이 없기 때문은 아닐까?
개체의 관점이 변하면 학습이란 관점도 변해야 한다
박동섭 교수님이 말해준 ‘마리의 요리 만들기’라는 이야기는 충격을 넘어 혼란의 도가니였다. 그건 지금까지 지녀왔던 ‘학습=획득’의 공식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며 ‘학습=실천’이란 새로운 관점을 갖게 했기 때문이다. 물론 앞으로도 끊임없이 화두로 삼아야 할 이야기이지만 말이다.
마리는 중증장애인이다. 그래서 몸조차 가누기 힘든데 글쎄 요리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만 듣고 보면, 누구나 ‘마리가 직접 요리 재료를 샀고 직접 손을 움직여 요리를 했다’는 정도로 이해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마리는 여러 사람의 도움을 빌려 요리를 만들었다. 마리는 재료도 직접 사지 못했으며 요리도 손수 만들지 못했다. 단지 고개를 끄덕이거나 손을 미묘하게 움직이는 동작을 통해 요리 만들기를 선두지휘 했을 뿐이다. 즉, 그녀는 의지만으로 요리를 만든 것이다.
과연 이걸 학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야기를 듣고 나선 잠시 멍해졌다. 이건 학습에 대한 관념을 완전히 뿌리째 뽑지 않고서야 도무지 생각할 수조차 없는 이야기이니 말이다. 보통 정의하는 학습이란 ‘개인의 내면에 어떤 능력을 획득하는 것’인데, 마리는 어디에서도 그런 능력을 획득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관점으로 나를 보면, 나 또한 여러 문화적 도구와 성취물의 도움을 통해 무언가를 해왔을 뿐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컴퓨터를 개발한 사람들의 도움, 전기를 발명한 사람의 도움, 끼적거릴 종이를 발명한 사람의 도움 등 수많은 사람의 도움을 등에 업고 있다. 마리와 나는 다양한 도구(물론 사람의 도움도 포함된다)를 사용하여 자신이 원하는 일을 했다는 점에서 같은 게 아닐까?
더욱 현실적인 예로 대기업 회장들은 어떤가? 그들이 직접 반도체를 만들기를 하나, 각 계열사의 일들을 일일이 알아서 할 수 있길 하나. 회장은 자신의 어떤 의지만을 직원들에게 보일 뿐이고 실제 일을 하는 사람들은 부하직원들이다. 마리와 대기업 회장의 모습은 비슷한 게 아닐까. 하지만 마리는 중증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요리도 만들 수 없는 무능력자로 낙인찍히고 회장은 최고경영자라는 이유로 존경(?)과 대우를 받는다. 이와 같은 부조화를 어떻게 재평가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학습‧능력‧사회와 인간의 관계를 보는 눈도 달라질 것이다.
안다는 것, 그건 끊임없는 투쟁의 길이다
관성대로 살 때 우리의 삶은 편하다. 더 이상 머리 아프게 공부할 필요도, 내가 발 딛고선 현실을 부정할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불편함에 익숙해진 결과이고 왜곡을 합리화한 결과이지 않을까? 학교에서 정한 성적 따위로 사람을 판단하고, 기업이 정한 기준으로 나만의 가치를 죽이고 스펙으로 가득 찬 기계덩어리로 변해가는 것이 과연 편하고 좋은 것일까. 그렇기에 박동섭 교수님은 “어떤 사실을 알았다는 것만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긴장감을 유지하고 살아야 합니다.”고 말했던 것이리라.
현실의 부조리를 아는 순간, 어떻게 살지 막막해졌다. 하지만 그 순간의 혼란은 ‘짜릿한 황홀감’이었다. 내가 살아 숨 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떻게 끊임없이 긴장감을 유지한 채 디자인된 현실의 그물망에 걸려들지 않을지, 그게 고민이다. 밑에 인용해 놓은 구절은 바로 이와 같은 긴장감을 잘 보여주는 글이다.
한 백정이 문혜군 앞에서 소를 잡았다. 그가 손을 놀리고 어깨에 힘을 주며, 발로 밟고 무릎을 굽힐 적마다, 칼질하는 소리가 쓱싹쓱싹 울려 퍼져 음악의 가락에 맞았다. 그 동작은 상림의 춤과 같았고, 그 소리는 경수의 악장을 연상케 하였다.
庖丁爲文惠君解牛, 手之所觸, 肩之所倚, 足之所履, 膝之所踦, 砉然嚮然, 奏刀騞然, 莫不中音. 合於桑林之舞, 乃中經首之會.
문혜군이 말했다. “과연 훌륭하구나. 솜씨가 어찌 여기까지 이를 수 있느냐?”
文惠君曰“譆, 善哉! 技蓋至此乎?”
백정이 칼을 놓고 대답하였다. “제가 좋아하는 것은 道이며, 이는 솜씨 이상의 것입니다. 제가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는 소의 겉모습만 보였습니다. 3년이 지나자 소의 온전한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다만 마음으로 일할 뿐, 눈에 의지하지 않습니다. 감각기관은 멈추고 마음만이 움직이는 것입니다. 큰 틈을 벌리고 그 속에 칼을 넣는 것은 본래의 생김새에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직까지 힘줄이나 근육을 베는 일이 없습니다. 하물며 큰 뼈다귀겠습니까?
庖丁釋刀對曰“臣之所好者道也, 進乎技矣, 始臣之解牛之時, 所見无非全牛者. 三年之後, 未嘗見全牛也. 方今之時, 臣以神遇而不以目視, 官知之而神欲行. 依乎天理, 批大卻 導大窾因其固然, 技經肯綮之未嘗微礙, 而況大軱乎!
노련한 백정도 해마다 칼을 바꾸는데 이는 살을 베기 때문입니다. 보통의 백정은 달마다 칼을 바꾸는데 이는 뼈에 부딪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칼로 19년 동안 수천마리의 소를 잡았습니다. 하지만 아직 칼날은 새로 숫돌에서 빼낸 듯합니다.
良庖歲更刀, 割也. 族庖月更刀, 折也. 今臣之刀十九年矣, 所解數千牛矣, 而刀刃若新發於硎.
원래 소의 뼈마디에는 틈이 있으나 칼날에는 두께가 없습니다. 두께가 없는 것을 틈에 밀어 넣어 여유 있게 놀리는 까닭에 19년이나 써도 칼날은 여전히 숫돌에 간 듯이 예리합니다. 그러나 막상 뼈와 힘줄이 엉겨 있는 곳에 다다르면 저는 늘 긴장합니다. 저는 눈을 그 곳에 응시한 채 동작은 더디게 하고 칼의 움직임은 심히 섬세히 합니다. 그러다가 살덩이가 후두둑 아래로 떨어져, 일이 끝나면 비로소 마음이 놓이게 됩니다. 그때서야 저는 칼을 든 채 일어나서 사방을 둘러보며, 머뭇거리다가 이내 흐뭇해져서 칼을 닦아 넣어 둡니다."
彼節者有閒, 而刀刃者無厚. 以無厚入有閒, 恢恢乎其於遊刃必有餘地矣. 是以十九年而刀刃若新發於硎. 雖然, 每至於族, 吾見其難爲, 怵然爲戒, 視爲止, 行爲遲. 動刀甚微, 謋然已解, 如士委地. 提刀而立, 爲之四顧, 爲之躊躇滿志, 善刀而藏之.”
문혜군이 말했다. “훌륭하구나. 나는 그대의 말을 듣고서 삶을 기르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文惠君曰“善哉! 吾聞庖丁之言, 得養生焉.” 『莊子』「養生主篇」
비고츠키는 백정이다. 이게 웬 막말인가 할 테지만, 내가 볼 땐 두 사람이 지닌 삶의 긴밀도는 같기 때문에 이런 ‘막말’을 한 것이다.
윗글은 ‘백정, 소와 통하였느냐?’쯤 될 것 같다. 백정이 소에게서 살을 베어낼 때 뼈와 살의 자연스런 흐름에 따라 칼을 들인다. 그러니 칼은 하나도 손상되지 않고 뼈와 살이 자연스럽게 분리되더라는 것이다. 백정은 전문가다. 하지만 처음부터 전문가는 아니었다. 그러니 처음엔 잔뜩 긴장하여 소의 겉모습에 기가 질렸던 것이다. 하지만 3년이 지나자 감각기관 너머의 본질을 볼 수 있게 되었단다.
그쯤에서 글이 끝났다면 이글은 평범한 글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능숙하다 할지라도, 뼈와 살이 엉켜있는 곳(나의 능숙함으로도 도무지 알 수 없는 무언가)에 이르면 모든 자의식을 걷어내고 더욱더 긴장을 해야만 한다고 말을 이어가기 때문에 이 글은 명문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알게 된 것만으로는 절대 끝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건 매순간 긴장 속에서 살아야 하는 출발점일 뿐이다. 그럴 때 우린 관성의 늪에 빠지지 않고 디자인된 세상의 그물망에 걸려들지 않을 수 있다. 그럴 때에야 새롭게 환경을 디자인할 수 있는 힘도 생기는 것이다.
돗대가 아닌 연대로
돗대(담배의 돗대를 말함*^^*)는 외롭다. 아무리 깨어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 배척되게 마련이다. 『눈먼 자들의 나라』에서 눈이 보이는 주인공은 눈먼 자들의 왕이 되긴커녕 배척당했던 것처럼 말이다. 박동섭 교수님이 ‘게재불가’에 울분을 삭히지 못했던 이유도 이 때문이지 않을까.
그렇기에 우린 돗대로 머물러선 안 된다. 디자인된 세상의 부조리함을 알았다면, 좀 더 나은 디자인을 할 수 있도록 함께 모여 힘을 보태야 한다. 돗대로 남기보단 연대(우치다 타츠루식 연대법)해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비고츠키 강의에 모였던 당신들이 소중했고 오래 만나고 싶었던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6강의 시간을 함께 하며 비고츠키 강의를 들었던 수강생들에게 아래의 노래를 바치며 ‘문화적 실천’을 함께 할 수 있길 희망해 본다.
언제든지 누군가가 꼭 곁에 있어
생각해주세요. 그 멋있는 이름을
마음이 울적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밤에
꼭 꼭 누군가가 언제나 곁에 있어
태어난 마을을 멀리 떠나 있어도
잊지 말아주세요. 그 마을의 바람을
언제든지 곁에 있어
비 오는 아침엔 도대체 어떻게 해
꿈에서 깨어나도 역시 외톨이야
언제든지 네가 꼭 옆에 있어
생각해주세요. 멋있는 그 이름을
싸움에서 상처 입고 빛이 보이지 않으면
귀를 기울여 봐요. 노래가 들려와요
눈물도 아픔도 언젠가 사라져가
그래 꼭 너의 웃는 얼굴을 원해
바람 부는 밤엔 누군가를 만나고파, 꿈속에서 봤지. 너를 만나고파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의 엔딩송 ‘いつでも誰かが’
사족: 6시 31분이 되어서야 후기를 올렸다. 이 뿌듯함을 어디에 비할 수 있을까? 난 글이란 내가 주체적으로 쓰는 것이라 믿지 않는다. 어떤 흐름이 나를 타고 흘러들어와 글로 표현되는 것뿐이다. 그렇기에 내가 애쓴다고 써지는 것도, 흘러 다닌다고 안 써지는 것도 아니다. 자연스레 흘러 자연스레 새겨지는 것 그게 글이라 할 수 있는 거다. 어찌 되었든 오랜 시간 6강의 특강이 나를 타고 흐를 수 있었다는 것에, 그런 시간을 감내한 끝에 이 글이 완성되었다는 것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