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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Nov 22. 2015

부모의 기대와 교육의 기대

단재학교 2013년도 1학기를 준비하며 - 학부모 간담회 후기

2013년 1월 19일부터 20일까지는 단재 가족의 모임이 있었다. 신년 모임의 성격으로 한 해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함께 얘기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학부모 모임 일정 진행  

   

교사들은 단재학교에서 모여 함께 출발했다. 1시에 모여 이것저것 챙긴 후 20분쯤 길을 나섰다. 웰리힐리파크(구 성우리조트)는 강원도 횡성에 있기 때문에 고속도로를 타고 가는데도 많은 시간이 걸렸고 4시가 되어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도착하니 먼저 온 가족들은 스키를 타러 가거나, 삼삼오오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조금 기다리니 스키를 타러 갔던 아이들이 하나 둘 들어오더라. 

모두 모이자 이향 아버님이 예약하신 식당으로 이동하여 삼겹살을 배불리 먹었다. 역시 고기엔 술이 빠질 수 없다. 술이 테이블마다 세팅되고 한 잔씩 입에 들어가기 시작하자, 평소엔 볼 수 없었던 다채로운 이야기의 향연이 펼쳐졌다. 아무래도 학부모 모임은 공적인 자리이기에 이야기를 가려가며 하게 되는데, 술이 들어가 긴장이 풀리니 인간미 넘치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이다. 건호 어머니와 혜린 어머니와 한 테이블에 앉아 편하게 이런 저런 세상사는 이야기를 나눴다. 건호 어머니는 전주소리축제에 다녀온 소감을 들려주시며, 내년 소리축제 때엔 학부모님들과 함께 가고 싶다고 하시더라.

식당에서 나와 다시 리조트로 돌아와 이야기를 이어갔다. 식당에선 자리에 앉은 사람하고만 이야기를 나눴다면 여기선 삥 둘러 앉아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이 때 평소엔 듣지 못했던 학교에 대한 바람과 자식에 대한 기대를 들을 수 있었다. 이런 이야기는 새벽까지 쉴 틈 없이 진행되었고 중간에 건호 아버님과 밖에 나가 바깥바람을 쐬며 아버지의 개인사도 들을 수 있었다. 그 분의 인생사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도전과 응전’이라 할 수 있는데, 다양한 경험담이 도전욕을 자극하더라. 

새벽엔 민석이와 건호가 자고 있는 침대에 끼어 잠을 잤지만, 세 명이서 자기엔 비좁았기에 자는 듯 마는 듯해야 했다. 

아침에 일어나니 부엌은 이미 분주하더라. 건호 어머님께서 바쁘게 황태해장국을 끓이고, 계란말이를 만들었다. 술을 마시며 쓰린 속을 황태해장국으로 달래며 아침을 먹었다. 그 후 교사들과 새벽까지 나눴던 이야기에 대해 잠시 의견을 나눈 후 11시 20분에 리조트를 나왔고 1시 50분에 집에 도착했다.                



▲  사람이 정말 많았다. 이렇게 콘도에서 보는 스키장은 멋지긴 하다.(사진출처- 규혁 부)




장소가 바뀌면 이야기도 바뀐다 

   

새벽까지 나눴던 이야기는 평소에 듣지 못했던 이야기였다. 어쩌면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였을 것이다. 특히 평소엔 나오지 않았던 연중 아버님과 혜린 아버님이 말문을 열었고 어머니들도 진심어린 이야기를 해줬다. 

학부모 모임이든, 총회든 학교라는 장소에서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 그 장소가 주는 압박감에 눌려서든, 평소에 잘 참여하는 사람이 쥔 주도권에 눌려서든, 자기의 입장을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더욱이 오랜만에 참석해서 다수의 주장과 반대되는 주장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세상에 극소수일 것이다. 하지만 장소가 바뀌고 분위기가 바뀌면(거기에 술이 약간 들어가면), 평소에는 하지 못했던 이야기도 가감 없이 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이야기란 본디 장소성을 무시할 수 없으며, 모인 사람들이 뿜어내는 분위기를 타게 마련이다. 

이 날 바로 그와 같은 변화가 있었다. 모처럼만에 참여하신 분들도 자신이 평소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했으며, 아이의 미래상에 대한 기대를 한껏 드러냈으니 말이다. 더욱이 놀라웠던 점은 한 자식에 대한 미래상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각각 180° 다른 경우도 있음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결국 어떻게 하실 건가요? 

    

‘자식의 진로’에 대한 이야기로 접어들면 내가 교사가 되려 했을 때처럼 현실과 이상의 괴리가 있는 부분이 있다.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학창 시절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신나게 보냈다가 나중에 아무 것도 못하는 사람이 되면 어쩌나?’하는 불안이 있으니 말이다. 이런 불안의 기저엔 ‘대학진학’이 있다.

학부모들의 주문도 어찌 보면 ‘대학진학’이란 문제에 묶여 있다고 봐도 다르지 않다. 아이들이 대안학교에 와서 잃었던 호기심을 찾고, 밝아지고, 자존심을 찾는 것엔 충분히 동의하지만, 그래서 결국 어떤 결과가 있느냐는 현실론으로 귀착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모처럼만에 모임에 참석하신 학부모님들은 이런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았으며, 아이들의 대부분의 활동에는 만족하지만 학과공부를 거의 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불만족스럽다는 의견을 피력하셨다. 어찌 보면 그 두 가지가 양립하길, 아니 어쩌면 좀 더 학과공부에 최선을 다해주는 학교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보였던 것이다.

심지어 아버지는 아이가 뭔가에 구속된 전형적인 성공케이스가 아닌 협동조합을 만들거나 자유분방한 사고 속에서 미래를 결정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는데 그 말이 끝나자마자 어머니는 대기업에 취직하여 안정된 삶을 살았으면 하는 상반된 바람을 말씀하기도 했다.

부부 사이에도 한 아이를 바라보며 그리는 미래상이 다른데, 교육으로 학생을 만나야 하는 교사의 고충은 오죽하겠는가. 학부모의 기대와 학생의 현상태, 그리고 교사의 교육관까지 얽히고설키면 더욱 복잡한 양상이 되니 말이다. 

대안학교 교사로서 ‘그래서 결국 우리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 어떻게 하실 건가요?’라는 말이 가장 압박이 느껴지는 말이다. 교육철학이 있고, 아이들과 함께 그런 교육철학에 따라 활동하여 아이의 주체성과 독창성을 키울 수 있다 할지라도, 미래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면 도루묵이기 때문이다. 참으로 현실의 한계가 느껴지는 부분이고, ‘학교’라는 네이밍을 달고 교육을 하는 이상 빠져나갈 수 없는 부분이라 비애가 느껴졌다.               



▲ 맛난 고기파티, 그리고 맛깔나는 이야기의 향연. 모임은 그래서 좋다.(사진출처-규혁 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2년차 교사이길

     

이제 겨우 1년을 지내본 것이니, 좀 더 이 문제를 끌어안으며 고민을 하고 무언가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일반학교가 대학 진학을 위한, 상위 10%만을 위한, 단기적인 목표(교내 정기 시험, 일제고사)를 위한 학교의 형태라면 내가 생각하는 학교는 그런 학교를 지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개인의 성숙에 관심이 있으며, 인풋 아웃풋의 단기적인 목표보다 장기적인 학생의 변화를 관찰 기술하는 것을 중시하며, 대학이란 한정된 미래상 외에 학생과 함께 길을 그려나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을 어떻게 부모님들에게 잘 설명할 수 있고, 아이들과 함께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는지가 관건이라 할 수 있다.

햇병아리와 같은 생각으로 시작한 1년이 그렇게 지나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했다. 과연 새로운 해엔 어떤 생각들을 갈무리할 것이며, 어떤 단재학교의 현장을 스케치해나갈 것인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가며 더욱 좌충우돌하고 재미지게 현장을 기술해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주눅 들지 말고 맘껏 밑그림을 그려가 봐야겠다.



▲ 10시가 넘었음에도 사람들이 많다. 우리의 이야기도 시간이 지날 수록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사진출처-규혁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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