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건빵 Jan 04. 2016

인의 존재가 되어 인연을 향해

돌베개 책과 독립영화의 만남 10 - 맺음글 ①

지금까지 우연한 마주침이 일으킨 변주로 인해 ‘돌베개 출판사’와 마주쳤고, 출판사와의 마주침이 빚어낸 연쇄작용으로 『탐욕의 제국』, 『다이빙벨』이란 영화와 마주친 이야기를 했다.                



▲돌베개 출판사는 물론, 이러한 좋은 영화 보게 해주신 홍리경, 이상호 감독님께도 감사를.




우연 속에 인연이 싹튼다

     

이러한 마주침을 통해 ‘인연因緣’이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인연은 내가 계획한 상황 속에서 일어나지 않으며 우연한 상황 속에서, 그것도 그 당시엔 어떠한 의미인지도 모르던 상황 속에서 일어난다고 말이다. 

왜 우연한 상황에서 인연이 만들어지는지 아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의도한 상황이란 건, 그 밑바탕에 계산에 따른 정신의 과잉이 깔려 있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끊임없이 그 상황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조작하려는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상황을 상황대로 느끼고 이해하려 하기보다 자신의 마음이 상황을 앞서나가려 하기 때문에 끊임없는 불안하고 초조할 수밖에 없다. 즉, 이미 고정된 생각 속에 상황을 집어넣으려고만 하니, 어떠한 변화도 어떠한 마주침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우연한 상황에선 ‘나의 생각’이 필요 없게 된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내 생각이 비집고 들어갈 시간과 공간 자체가 없는 것이다. 이미 상황이 벌어진 뒤라, 그 상황에 적응하기도 바쁘다. 그건 곧 갑자기 눈을 떠보니, 내가 무대 한 가운데 서 있고 사람들은 나에게 ‘노래해~ 노래해~’라고 외치는 상황과 같다고 생각하면 쉽다. 그런 상황이라면 나의 관념과 의도는 내려놓고 상황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다. 그렇다 보니 상황이 나에게 주는 메시지에 귀 기울이게 되고 상대방의 생각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그와 같이 앞뒤 재지 않은 ‘내맡김’ 속에서만 인연이 싹튼다.          



비정할 정도로 합리적인 바둑의 세계. 그러나 결정적인 선택은 왜 기세나 직관, 본능이나 운명 같은 비합리적인 것들의 몫일까.  -『미생』, 107수, 박치문 기보 해설   


       

위의 글은 『미생』이란 만화책에 나오는 바둑을 박치문씨가 해설한 것이다. 바둑은 지극히 합리적인 세계다. 지금 놓는 수가 다음 수에 영향을 주며, 한 부분이 전체에 영향을 준다. 그렇기 때문에 박그래(주인공)를 가르친 사범은 “(한 수를 두고서 둔 의미를 설명하지 못하자) 바둑(인생)에 그냥이란 건 없어. 어떤 수를 두고자 할 때는 그 수로 무엇을 하고자 하는 생각이나 계획이 있어야 해. 그걸 ‘의도’라고 하지. 또 내가 무얼 하려고 할 때는 상대가 어떤 생각과 계획을 갖고 있는지 파악해야 해. 그걸 상대의 ‘의중을 읽는다’라고 해. 왜 그 수를 거기에 뒀는지 말할 수 있다는 건 결국 네가 상대를 어떻게 파악했는지, 형세를 분석한 너의 안목이 어떠했는지를 알게 된다는 뜻이야. 그냥 두는 수라는 건 ‘우연하게 둔 수’인데 그래서는 이겨도 져도 배울 게 없어진단다. ‘우연’은 기대하는 게 아니라 ‘준비’가 끝난 사람에게 오는 선물 같은 거니까.”라고 말한다. 

바둑은 지극히 계획에 따른 합리적인 게임이지만, 자신의 합리에만 매몰될 경우 오히려 상대방에게 간파당해 패하기 쉽다. 합리적이면 합리적일수록 법칙과 사례에 얽매여 패턴화된 방식으로 두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실질적으로 바둑의 승패를 결정짓는 것은 직관과 기세 같은 비합리적인 부분들이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하물며 바둑이 그럴진대,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 인간의 삶은 오죽할까. 의도를 읽으려 하면 상대방의 마음을 놓치게 되고, 자신의 의도대로 하려 하면 그 상황 자체를 잃게 되니 말이다. 그러니 마음은 비우고 감성을 누르려는 이성을 견제하며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합리적인 게임인 바둑. 하지만 그 승패는 비합리적인 자신의 기질에서 나온다.




인연을 만들고 싶거든인이 되어라

          

하지만 우연에 몸을 내맡긴다는 말을, ‘그냥 될 대로 살라’라는 말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우연’은 기대하는 게 아니라 ‘준비’가 끝난 사람에게 오는 선물 같은 거니까.”라는 사범의 말이 그래서 중요하다. 즉, 상황에 몸을 내맡길 수 있으려면, 충분히 자신의 역량을 키워야만 한다는 뜻이니 말이다. 어떻게 하면 키울 수 있을까? 그건 바로 내 자신이 ‘인’이 되는 것이다.           



“언제나 그 스스로가 농사짓는 농부가 되라. 이 존재세계의 因이 되어라. 주인이 되라.”

우리 모두가 인이 될 때, 이 인과 인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걸 因緣이라고 합니다. 그렇지 않은 인연, 이거는 인연이 성숙되지 않았거나 인연이 넘었다, 인연이 끝났다 그럽니다. 그래서 인연이 성숙되지 않은 중생은 부처도 구제하지 못한다 그러죠. 사무치게 한 번 생각해봅시다. 緣이 되지 말고, 因이 되라는 소리. 이게 바로 ‘닦는다’는 개념입니다. -농담 「삶과 수행」 


         

‘인’이 된다는 것은 무슨 말일까? 그건 대체 불가능한 본연의 가치를 길러야 한다는 뜻이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어찌 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어려운 주문인지도 모른다. 

자본주의 사회는 끊임없이 ‘남과의 스펙을 비교하며 대기업이 원하는 인간상, 일류대가 원하는 인간상에 맞추도록 강요하는 사회’라고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장점, 하고 싶은 것을 묻기보다 사회가 원하는 상에 맞추도록 강요한다. 영어와 수학과 과학을 배우며 주말에는 각종 박물관과 미술관을 찾아다닌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아이의 성숙’을 위해서가 아니라 ‘엘리트 코스’를 밟기 위해서다. ‘영어유치원⇒사립초⇒국제중⇒특목고⇒명문대(좀 더 직접적으로 말하면 ‘자본과 교육의 결탁이 만들어낸 교육코스’)’에 안착하기 위해서 아이에게 끊임없이 장점을 거세하고 사회가 원하는 모습이 되도록 강요한 것이다. 



▲고유한 내가 아닌, 사회가 원하는 나여야 한다. 그건 어려서부터 강요당한다. (사진 출처: 한국일보)



이를 우치다 타츠루는 “생산주체, 소비주체를 균일화시켰으며 남녀의 욕망 또한 균일화되었다. 남녀 모두 지위와 돈을 추구하며 좋아하게 되었다. 경제계가 만들고자 하는 사회의 모습은 욕망이 균일화되는 사회인데 결국 그런 사회가 된 것이었다. 제조단가가 떨어져 이윤이 오르며 소비자가 균일화되어 구매력이 높아지니 기업의 입장에선 좋은 일이다. 남자만 가던 곳(노래방, 술집, 스키장)을 여자도 가게 된다.(관련 내용보기)”라고 분석하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당연히 ‘주인의 덕목’을 지니기보다 ‘노예의 비굴함’을 먼저 받아들이며 ‘나의 생각을 추구해선 안 된다’라는 관념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결코 ‘인’이 될 수 없기에, ‘인연’ 또한 만들어낼 수 없다. 그러니 허구한 날 ‘권력’과 ‘돈’에 맹목적으로 집착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현실이 자꾸 ‘인’이 되기를 방해한다면, 당연히 뿌리칠 수 있어야 한다. 그건 어찌 보면 ‘세상이 정해놓은 틀에 맞춰 살지 않고 나답게 살겠다’는 선언이기도 하기 때문에,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갈 수 있는 강인함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럴 때 고민이 되는 건 ‘과연 나다움이란 뭘까?’일 것이다. 이것 또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니 말이다. 자칫 잘못하면 ‘부모나 사회의 욕망을 나의 욕망이라 착각하며 맹렬히 추구하는 바보 같은 짓’도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위의 글에선 ‘닦아라’라고 말을 덧붙인 것이다. 

‘닦는다’를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습관, 관습에서 벗어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과정이니 말이다. 완벽하게 벗어날 순 없다. 그게 내가 딛고 선 기반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 기반이 어떤 기반인지 인식하려는 노력이 바로 ‘닦는다’는 것이다. 『미생』 드라마 12화에서 주인공이 “기존의 판이 흔들리는 걸 목격한 후, 나 또한 판 위에 있음을 자각했다.”는 대사처럼, 어떤 관습과 어떤 고정관념에 따라 내가 살아가고 있는지 깨닫는 게 중요하다. 그럴 때 비로소 ‘인’이 될 수 있다. 






목차     


시작 글인연론

인연에 대한 오해

인연이란 단어의 원의     


돌베개 출판사와의 마주침

한문이란 전공이 만들어준 인연

출판사 이름을 멋대로 해석하다

출판사 이름을 제대로 알게 되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     


탐욕의 제국』 ① 영화와의 마주침

마주침은 거리의 문제가 아닌 마음의 문제

『탐욕의 제국』과의 마주침     


탐욕의 제국』 ② - ‘또 하나의 가족을 외치는 삼성의 민낯

핵가족화를 부추기는 기업, 하지만 ‘또 하나의 가족’이길 바라는 삼성

‘또 하나의 가족’일 수 없는 사람들

‘또 하나의 가족’일 수 없는 사람의 울부짖음

윤리적인 기업은 가능한가?     


탐욕의 제국』 ③ 고전으로 살펴보는 윤리적 기업이란?

『대학』과 ‘경주 최부자의 가훈’으로 보는 기업윤리

진정한 ‘또 하나의 가족’ 삼성이길 바라며     


다이빙벨』 ① - 2014년 4월 16일 그 날의 기억

4월 16일 골든타임을 허비하다

하는 척만 하는 구조기관

두 눈 뜨고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다     


다이빙벨』 ① 세월호에서의 다이빙벨의 의미

세월호에서 다이빙벨의 의미

화제의 『다이빙벨』, 그 前과 後

‘다이빙벨’의 의미 변질

마지못한 ‘다이빙벨’의 투입 승인     


다이빙벨』 ③ 영화를 통해 드러난 진상

논란의 중심에 선 『다이빙벨』과 문화로서의 출판을 하는 돌베개의 만남

‘다이빙벨’은 실패해야만 했다 1 - 투입을 못하도록 막고 또 막고

‘다이빙벨’은 실패해야만 했다 2 - 언론의 반응을 통해 본 다이빙벨

‘다이빙벨’은 실패해야만 했다 3 - 언딘과 해경의 비협조와 위협

언론의 ‘사기꾼 이종인 만들기’     


다이빙벨』 ④ 이 영화는 문화적 짱돌이다

다이빙벨의 진실을 알고 싶으면, 『다이빙벨』을 보라

『다이빙벨』은 77분의 고급화된 욕

문화적 짱돌인 『다이빙벨』     


맺음글 ① 인의 존재가 되어 인연을 향해

우연 속에 인연이 싹튼다

인연을 만들고 싶거든, 인이 되어라     


맺음 글 ② 이제는 취할 시간이다

인이 된 그대들, 취하라

글을 마친 소감


매거진의 이전글 다이빙벨 영화는 문화적 짱돌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