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건빵 Apr 21. 2016

비인정한 사람이 되어라

3. 박동섭의 ‘트위스트 교육학’ - 하품 수련의 역설, 두 번째

태선씨가 강의실 앞에 나와 이 강의를 기획한 취지를 설명하고 자기소개를 하며 강의의 시작을 알린다. 그러고 나서 갑자기 전체가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하자고 제안한다.

올해 초 교컴 수련회 때도 다양한 사람들 앞에서 자기소개를 했었는데, 그 때 엄청 떨며 어버버댔던 경험이 있다. 이번엔 그 때만큼 많은 사람들이 오진 않았지만, 그래도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나를 소개한다는 건 이래저래 부담이긴 하다. 그래도 최대한 마음을 가다듬고 “4년 전부터 알게 모르게 동섭쌤을 따라다니며 배우고 있는 제자 아닌 제자입니다”라고 소개했다.                



▲ 이런 사람들이 모여 강의를 듣는다.




트위스트 교육학 수강생의 특징 1 - 교육 경력이 많은 교사들

     

앞에서 한 사람씩 돌아가며 이름과 근무하고 있는 학교, 그리고 왜 이 강의를 듣게 되었는지 얘기한다. 소개를 듣고 나니, 두 가지 부분에서 깜짝 놀랐다.

첫째, 교육경력이 많은 분들이 대부분이어서 놀랐다. 교육경력이 많다는 건 자신만의 교육 방식이 있다는 거고, 그렇기에 굳이 새로운 것을 배우거나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다. 더욱이 동섭쌤 강의는 당연한 것을 전복시키고 일상을 낯설게 보게 만든 후, 그 위에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러니 아무래도 자기 상이 구축되지 않은 사람에게 더 매력적으로 들릴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젊은 사람들이 많이 올 줄 알았는데, 그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이분들처럼 중견교사임에도 여전히 교육에 관심 갖고 일반적인 흐름과는 완벽하게 다른 흐름을 받아들이려 하는 교사들도 꽤 있으니 말이다. 그만큼 열정이 있다는 얘기고, 알고 싶은 게 있다는 얘기다.



▲ 장애를 당연히 개체의 특성으로 받아들였는데, 동섭쌤의 4년 전 첫 강의를 들으며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 분들은 왜 이 강의를 듣게 된 걸까? 에듀니티의 동섭쌤 온라인 강의를 듣고 오게 됐다는 이야기, 그냥 끌려서 오게 됐다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그 중에서 가장 많은 건 동섭쌤이 번역한 책인 『심리학은 아이들 편인가』를 읽고 관심이 있던 차에 왔다는 이야기였다. 그러고 보니 단재학교와 동섭쌤의 인연도 그 책 덕분이었다. 승태쌤이 그 책을 읽고 나서, 엄청 감동을 받았던지 동섭쌤에게 연락하여 감사를 표시함으로 단재학교와의 인연이 시작되었고 그 여파로 나도 지금까지 ‘제자 아닌 제자’를 자청하며 배울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 강의실 밖은 서서히 어두워지며 여전히 비도 내리고 있다. 그러나 안은 따뜻하고 포근하다.




트위스트 교육학 수강생의 특징 2 - 멀리서 온 교사들

     

둘째 서울 외의 지역에서 오신 분들이 대다수여서 놀랐다. 부산에서 오신 분이 두 분이나 계셨는데, 부산이라면 카페 헤세이티에서 곧 같은 제목의 강의가 개강하는데도 굳이 여기까지 오신 것이다. 그와 더불어 경기 지방에서 오신 분들도 많았고, 서울에서 온 사람은 나뿐이었다. 이에 대해 동섭쌤도 당황스러웠던지 “수강생들 중 두 분이 부산에서 근무하는 교사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아무리 두 분이 연구년이라고는 하지만 어제 강의 날 강사인 저와 똑같이 KTX를 타고 온 사실에 경악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중 한 분은 강의가 끝난 후 뿌듯한 마음을 안고(어디까지나 저의 희망적 관측) 부산으로 돌아가셨다는 겁니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강의가 서울 한복판에서 열렸음에도 수강생 중 서울에서 온 분이 한분 밖에 없었다는 사실입니다.”라고 페이스북에 글을 남겼다.



▲ 동섭쌤도 강의를 마친 후, 강의에 참석한 분들을 알고 난 후 놀랐나 보다.



나만 하더라도 서울이 아닌 경기권에 강의를 들으러 갈 일이 있으면 괜스레 망설여지곤 한다. 그건 거리의 문제라기보다 심리적 장벽, 즉 마음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멀다는 생각이 먼저 들고, ‘이렇게까지 시간을 감수하면서까지 갈만한 강의인가?’를 따져보기 때문이다. ‘투입-산출’의 예측 가능한 결과만을 생각하는 방식은 동섭쌤의 강의 내내 비판 받는 것이지만, 여전히 나는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분들은 그런 식으로 따지지 않고 듣고 싶은 강의라는 이유로 거리에 상관없이 이렇게 달려온 것이다. 그건 곧 이분들의 열정이 대단하다고도 할 있고, 동섭쌤의 강의가 그만큼 매력적이라고 할 있다.

이렇게 상식을 깨는 다채롭고 다양한 사람들이 만나, 동섭쌤 강의를 듣는다. 정말 다양한 타자들이 하나의 강의를 통해 어우러지는 것이다. 그러니 이 강의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어, 어떤 이야기들이 흘러넘칠지 기대가 될 수밖에 없다.                



▲ 이제 1강으로 후다닥 들어갑니다.




강의실에 쩌렁쩌렁 울려 퍼진 동섭쌤 목소리의 비결

     

드디어 첫 강의가 시작되었다. 강의가 시작될 때 나는 강의실 뒤편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동섭쌤의 목소리가 강의실 뒤편까지 쩌렁쩌렁 울렸다. 우치다쌤은 고베여학원대학의 건물을 소개하며 “건물은 비록 오래되었지만 목소리가 울려서 작은 목소리로 얘길 해도 전부 알아들을 수 있고 목소리에 자신 없는 사람이 말해도 목소리가 부드럽게 들리게 되어 있다.”고 평가했었다. 건물 자체가 울리도록 설계되어 강의를 하기 좋은 구조라는 얘기다. 설마 에듀니티의 강의실이 그 건물처럼 울림이 좋은 곳이어서 동섭쌤의 목소리가 울리는 건 아닐 것이다. 여긴 오피스텔을 개조하여 강의실로 꾸민 곳으로 울림까지 신경 쓰진 못했을 테니 말이다.

그건 어디까지나 동섭쌤이 복식호흡을 하며 자기 몸을 하나의 울림통으로 만들어 말을 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이에 대해 동섭쌤은 “대구에서 강연을 할 때 해산물을 너무 많이 먹어 그 다음날 설사가 멈추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때 설사제를 먹어가며 6시간 강의를 했었는데, 그 때 이후로 체력이 엄청 좋아져서 지금은 몇 시간 강의를 해도 끄떡없습니다.(일동 웃음)”라고 농담처럼 말하신다. 나는 단순히 한 고비를 넘어서서 그리 되었다기보다 예전에 연극을 하며 익숙해진 발성법과 250배를 하며 몸이 다져져서 힘차게 발성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 때문인지 몇 마디 얘기만 들었는데도 몸에 절로 힘이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 강의실을 아주 경쾌하게 울린다. 목소리엔 힘이 실려 있고, 자신감이 실려 있다.




박동섭과 이타미 주조, 그리고 디오게네스

     

익숙한 사람들 앞에서 강의를 하는 게 아닌, 대부분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강의를 해야 하니 한편으론 되게 떨렸을 것이다. 하지만 목소리엔 떨리는 기색이 하나도 없었고, 행동도 전혀 부자연스럽지 않았다.

웃음과 진지함 사이에서 적당히 줄타기를 하며 강의가 진행되었다. 동섭쌤은 우선 자신이 누구인지 사람에게 알리기 시작한다. 일반적인 자기소개는 판에 박혀 있다. 출신학교, 근무하는 곳, 그리고 각종 저서들을 열거하며 자신의 실적을 뽐내기에 분주하니 말이다.

하지만 동섭쌤은 다짜고짜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는 인물인 이타미 주조伊丹十三(1933~1997)선생의 일화를 소개한다. 잡지사 기자가 인터뷰를 하며 썬그라스를 벗어달라고 요청하자, 이타미 선생은 “이타미쥬조라는 사람은 이럴 때 이런 선글라스를 끼고 이런 모자를 쓰는 남자로 지금까지 밥을 먹어 왔습니다. 그것을 당신이 그만두라고 말씀하십니다. 좋습니다. 그만두죠. 하지만 그 대신에 앞으로 나의 남은 일생 나와 나의 가족을 먹여 살릴 각오가 되어 있습니까?”라고 말한 것이다. 이타미 선생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다움을 추구할 줄 안다. 하지만 그걸 누군가 지적하면 위의 대답처럼 유머러스하게 대응하여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자신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었다.



▲ 이타미 주조 선생의 이야기를 통해 자기를 소개하는 동섭쌤.



이처럼 동섭쌤도 이타미 선생을 패러디하여 “몰상식과 부조리에 저항하고 대들고 그리고 사람들을 선동하는 태도로 글을 쓰고 대학에서 강의하고(물론 그로 인해 여러 아픔들도 많았지만) 지금까지 밥을 먹어왔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그런 태도로 쓰고 싶은 것을 쓰고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고자 합니다.”라고 말한다. 이 말을 통해 ‘동섭다움’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동섭쌤이 지향하는 것은 ‘게재불가’될지라도 자신의 언어로 논문을 쓰는 것이며, ‘그래서 현장에선 어떻게 적용하나요?’라는 질문을 들을지라도 삶과 철학, 그리고 문학을 누비는 강의를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당연히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때도 있으며 자신이 상처를 받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눅 들거나 눈치 보지 않고, 여전히 지금처럼 동섭다움을 지켜가겠다고 기개 있게 소개하는 것이다.



▲ 자기소개를 하는 건데도 역시 기개 넘치신다.



동섭쌤의 이런 결기 어린 소개를 듣고 있으니, 디오게네스Diogenes의 일갈이 떠올랐다. 드럼통에 살던 거리의 철학자, 삶의 철학자인 그에게 알렉산더 대왕이 찾아온다. 세상의 모든 이가 부러워하는 권력, 돈, 사람들의 환호까지 모든 걸 다 가진 사내인 알렉산더 대왕과 더러운 드럼통을 집 삼아 살며 제 한 몸 추스르기에 버거워 보이는 사내인 디오게네스의 만남은, 그 자체만으로도 흡사 송혜교와 송중기가 갑자기 결혼을 발표하는 것 이상의 핫이슈였다. 그 때 알렉산더 대왕은 갖고 싶은 게 뭐냐고 묻는다. 세상의 모든 걸 가진 사내가, 아무 것도 없는 사내에게 아량을 베풀고 있는 것이다. 그런 아량 나에게 베풀어줄 사람이 있다면 나는 간도 쓸게도 다 빼줄 각오가 되어 있는데, 슬프게도 내 곁엔 알렉산더 같은 사람이 없다. 그런데 디오게네스는 요즘으로 치면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유일한 박사처럼, 사회적 금기를 가볍게 여기며 “대한민국 학교 모두 엿 먹으라 그래!”라고 외치는 권상우처럼 의연하고도 당당하게 “거참! 햇빛 가리잖소. 쫌만 비켜주쇼~”라고 자신의 권리가 침해당했다는 것에 분개하며 일갈했다. 바로 이런 모습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디오게네스와 박동섭, 그 둘은 묘한 동일감이 있다.




비인정한 사람이 되어 누비라

     

이런 이야기는 ‘쓰고 싶은 것을 쓰고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몰인정不人情과 비인정非人情이 있다고 한다. 몰인정한 사람은 남이 자신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 그렇기에 어떻게 행동하길 원하는지 알기에 하지 않는 사람이다. 이에 반해 비인정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 무엇을 기대하는지 애초에 관심이 없기에, 다른 사람의 시선을 행동의 결정적인 요소로 삼지 않으며 자신이 말하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사람이다. 예를 들어보자면, 몰인정한 사람은 친구가 곤란한 일을 겪어 돈을 빌리러 왔을 때 그걸 빌려주지 않는 사람이지만, 비인정한 사람은 빌려준다고 말하나 결국 그걸 잊어버려 빌려주지 못하는 사람이다. 우치다쌤도 동섭쌤에게 이와 비슷한 행동을 했었다고 한다. 우치다쌤이 한국에 강의를 하러 왔을 때 서점에 같이 갈 기회가 있었고 그곳에서 우치다쌤의 책을 사자, 우치다쌤은 “책을 보내줄 테니, 사지 말아요”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들으면 엄청난 미담이지만, 그 후로 우치다쌤은 한 번도 책을 보내준 적이 없다고 한다. 이 말에 강의실은 웃음꽃이 만발했다. 아마도 누군가에게 말한 후에 이런 식으로 잊어버린 경험이 한 번쯤은 다들 있을 테니, 남일 같이 않아 웃음이 나왔을 것이다.

몰인정한 사람이든 비인정한 사람이든, 결과적으론 도움을 주지 못할 수도 있으며 때론 이기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제대로 알지 못하면 ‘몰인정한 사람이야’라고 오해받기 십상이다. 하지만 제대로 알고 보면 근본적인 생각 자체가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몰인정한 사람의 판단기준은 다른 사람인데 반해, 비인정한 사람의 판단기준은 자기 자신이다. 또한 몰인정한 사람은 ‘X를 바라기에 X를 하지 않겠다’는 부정적인 생각이 행동의 동기가 되지만, 비인정한 사람은 ‘X를 하고 싶기에 X를 하겠다’는 긍정적인 생각이 행동의 동기가 된다.



▲ 비인정한 사람은 인정이 없는 사람이 아니다, 인정에 얽혀 있지 않는 사람일 뿐.



비인정한 사람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이미지는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흙탕물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如獅子聲不驚, 如風不繫於網, 如蓮花不染塵, 如犀角獨步行).”는 『숫파니파타』 경구의 사자, 바람, 연꽃 같은 이미지다. 세상의 가치나 타인의 신념이 아닌 자신의 신념으로 오롯이 자신의 말을 하며 자신의 길을 가는 이미지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동섭쌤이 흔히 쓰는 ‘개체식별가능한’이라는 말과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동섭쌤은 “연구자뿐만 아니라 혼자서 뭔가 하려고 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자질은 비인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니 ‘쓰고 싶은 것을 쓰고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기 위해서는 비인정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 우치다쌤과 동섭쌤의 공통점, 비인정한 사람이라는 점.




하품 수련의 역설은 언제 나오나요? 

    

역시 동섭쌤의 강의는 종횡무진 누비고 비틀며, 틈과 틈 사이를 휘저으며 진행됐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1시간 가까이 흘렀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오늘의 강의 주제인 ‘하품 수련의 역설’에 관해선 ‘하’라는 말조차 나오지 않고 있다. 이쯤 되면 ‘설마 동섭쌤이 오늘의 강의 주제를 착각하신 거 아냐?’라는 걱정이 들 법도 하다. 하지만 그 때쯤 동섭쌤도 “아직까지 하품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 얘기는 자연스럽게 말하는 중에 차차 나오게 됩니다”라고 선빵을 날리셨다.

다음 후기에선 동섭쌤의 말처럼 정말 ‘하품 수련의 역설’이 등장하고, ‘자립’과 ‘무지’란 단어의 일반적인 정의가 아닌 완벽하게 다른 정의도 등장하며 ‘『유아교육학개론』도 정치적이다’라는 말이 등장한다. 이런 얘기들을 되새길 수 있다면, 우린 배움에 대해, 그리고 교육에 대해 밑바닥부터 하나하나 재정립할 수 있을 것이다. 부디 다음 후기까지 안녕하시길~



▲ 하품의 하자는 다음 후기에 나온다. 안 나온다고 채널 돌리면 아니 아니 아니 되오~
매거진의 이전글 강의와 여행의 공통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