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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Feb 29. 2016

인성교육은 실패한다. 그 너머엔?

교컴 ‘인성교육을 넘어 시민성교육으로’ 4

향교문화관엔 열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아무래도 논의가 분분한 주제이니만치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는 ‘인성교육’이란 게 얼마나 비교육적인 처사로 시작되었으며, 그게 어떤 역사맥락에서 출발했는지를 살펴봤다. 그런 이야기를 듣다 보면, ‘교육’의 문제를 가장 전면에서 껴안고 고민하는 교사들이 이렇게 발분하며 한 걸음씩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우면서도 반갑기도 하다. 하지만 단순한 문제가 아니기에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식으로 바꾸는 게 옳은 것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 역사적인 맥락, 그리고 어떤 철학적인 함의에 따라 인성교육이 시작되었는지를 보고 있다.




인성교육은 실패한다 1 - 지식교육/인성교육의 이분법이 낳은 왜곡 

    

권재원쌤은 강의를 계속하며 결과적으로 인성교육은 법안을 발의한 그들이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내지도 못할뿐더러,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소리를 높였다. 이유는 크게 세 가지를 들었다.

첫 째, 인성교육을 지식교육과 나누어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반공주의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인성교육이 중요하다’는 말 속엔 이미 지식교육과 대립항으로 보고자 하는 시각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도 그런 시각으로 교육을 보고 있다. 그래서 ‘지식교육만 강조하다보니, 아이들의 인성이 개판이 됐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쓰며, 학생드라마의 ‘공부는 잘하지만 매정하고 자기중심적인 인물 / 공부는 못해도 의리가 있고 남을 배려하는 인물’이라는 구도를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니 말이다.

이처럼 알지 못하는 사이에 이미 고정관념으로 자리 잡힌 생각이 가장 무서운 생각이라 할 수 있다. 그건 가장 객관적, 보편적이란 탈을 쓰고 의식을 억누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생각에 짓눌리면 짓눌릴수록 왜곡된 시선을 지니게 되어, 본질을 보지 못하게 된다.                



▲ 이런 광고를 봐도 그 안엔 둘을 이분법으로 나누어 놓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성교육은 실패한다 2 - 교육목표를 스스로 위배하며 등장하다  

   

그래서 권재원쌤은 아예 “교과들 속엔 과연 인성을 교육시킬 수 있는 부분이 없는 걸까요? 오히려 그런 교과들 속에 이미 인성을 교육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데 그러지 못하는 건 아닐까요?”라고 문제제기를 했던 것이다.

맞다, 애초에 각 과목이 만들어질 때엔 그런 과목들을 배워 인성을 기르고, 지식을 넓히며, 관계성을 회복하는 것이 기본이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이번에 배포된 교육과정엔 아예 ‘바른 인성을 갖춘 창의융합형 인재’라는 아주 거창한 목표가 설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어떤 목표든 좋은 말들을 모조리 갖다 붙여서 절대로 이룰 수 없는 이상적인 것이긴 하지만, 교육을 하려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그와 같은 ‘사람의 가능성을 확장하기 위한 것’이라 허황되다고만은 할 수 없다.

그런데 그렇게 심혈을 기울여 ‘교육과정’을 만들고, ‘교육과정해설서’를 배포했음에도 그것으로 부족하다며, 다시 ‘인성교육’이란 별도의 항목을 만든 것이 문제라는 얘기다. 그건 자신들이 만든 교육과정의 목표를 부정하는 꼴이며, ‘현실 교육으론 한계가 있다’고 자기비판을 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이미 각 과목엔 인성적인 부분, 지식적인 부분들이 모두 들어있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분과학문이 지닌 한계를 지적할 수밖에 없지만, 여기서는 ‘인성교육’에 집중하기 위해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는 조건에서 말이다. 그러나 현실적인 교육 환경 상 그런 것들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경우, 현실교육에선 그게 잘 되지 않으니, 별도의 과목을 설치한다고 할 게 아니라, 어떤 상황들이 그런 교육이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방해하는지, 현장에서 진행하기에 힘든 부분이 어떤 것인지 찾아내어 환경을 개선해 나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노력을 하기보다 별도의 강사를 배정하여 별도의 커리큘럼을 만들려고만 하니 당연히 실패할 수밖에 없다.       



▲ 현행 교육과정 자체가 아주 좋은 목표들로 설정되어 있다.


         

인성교육은 실패한다 3 - 교육 효과에 대해 합의된 내용이 없다     


그렇다면 백보 양보해서 인성교육을 할 수 있도록 훈련받은 사람들이 인성교육을 한다고 하자, 그렇다면 인성교육을 하고 난 후에 아이들의 인성이 나아져서 어른을 어른으로 대접하고, 자신을 존중할 줄 알며,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으로 거듭나게 될까? 이렇게 말하고 나니 인성교육이 얼마나 종교적인 색채와 많이 닮아 있는지 명확하게 보이긴 한다.

그런데 교육의 효과라는 게 지식영역의 경우 금방 확인할 수 있고 당장 효과가 나타나긴 하지만, 그 외의 것들은 무수히 많은 시간이 필요하며, 또한 어떤 영향을 통해 그런 변화가 있었다고 단정 지어 말할 수 있지 못하다. 막상 인성교육을 하려 많은 돈을 집행했고 그로 인해 활발하게 인성교육은 이루어졌지만 그 누구도 그 결과에 책임지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이런 경우를 흔히 ‘돈 놓고 돈 먹기’라고 하는데 교육의 영역에서 가장 빈번히 행해지는 악습이라 할 수 있다.

이와 비슷한 예는 22조라는 엄청난 돈을 쏟아 부었지만, 그 결과에 대해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또는 강바닥의 흙을 어느 정도 파냈는지도 더 이상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사대강 사업을 들 수 있다.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갔지만, 그 과정이 얼마나 투명했는지도 그 결과가 얼마나 사대강 살리기와 관련이 있었는지도 지금은 전혀 상관없는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그런 일을 집행한 사람들은 이 사업 자체가 눈 먼 돈을 쉽게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여 진행한 걸 거다. 그처럼 인성교육도 어떤 결과가 나와야 한다고 합의된 적도 없을뿐더러, 혹 합의됐다 하더라도 그 결과가 나오는지 안 나오는지는 누구도 신경 쓰지 않기 때문에, 무책임하게 진행될 수밖에 없다.  



▲ 인성교육 학원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뉴스는 어찌 보면 별스럽지 않은 뉴스라 할 수 있다.

   


           

권재원쌤에게서 발견한 우치다쌤의 향기  

   

그래서 권재원쌤은 두 가지를 제안했다. 첫째는 인성교육이 아닌 민주시민교육을 얘기할 때라는 것이고 둘째는 예술 교육을 하자는 것이다. 제안을 두 가지로 했지만, 결국 두 가지는 하나로 통합된다고 볼 수 있다.

우선 이 이야기를 풀기 전에 다른 이야기를 잠시 하도록 하자. 우치다쌤은 ‘동아시아의 평화와 교육’이란 강의에서, 공동의 이익을 중시하고, 미래의 가치를 찾기보다 지금 당장의 먹고 사는 문제에만 매달리게 만드는 교육을 비판했다. 그러면서 ‘평시의 논리를 강요하지 말고 위기 시의 논리로 가르쳐야 하며, 그러기 위해선 오감이 활짝 열리는 교육을 해야 한다’는 제안을 했다. 얼핏 들으면, ‘뭔 현실적이지 않은 공상과학 같은 말장난이야’라는 생각도 들 법도 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공생의 필살기’라는 강의에서도 이와 비슷한 제안을 했기 때문이다. 우린 당연히 제안할 땐, ‘함께 살기 위해 이러이러한 것을 하고, 저러저러한 것들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아주 직접적인 방법을 듣길 원한다. 특히 학교 현장은 늘 상황이 일어나고 그럴 때 즉각적인 해결책이 필요한 곳이다 보니,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건 아주 당연하다. 하지만 우치다쌤은 ‘공생의 감각은 인간인 이상 자연히 키워지는 능력인데도, 오히려 학교는 공멸의 방법만을 가르치고 있다’고 질타하며, ‘자본주의 사회의 해악이 학생에게 영향을 주지 않도록 학교는 온실과도 같은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제안을 했다.

아마도 그 당시 우치다쌤의 강의를 들었던 사람들은 즉각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 교육에 대한 근본으로 돌아가는 물음을 제기하는 상황을 보고 무척 황당했을 것이다. 실컷 2시간동안 강의를 들으며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해결법을 알게 되어 막힌 속이 확 뚫릴 거라 기대했는데, 오히려 더 심한 체증을 느껴야 했으니 말이다. 이런 경우를 흔히 ‘똥을 싸고 닦지 못한 께름칙함’이라 표현하는데 정말 그런 느낌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질의응답 시간에 한 선생님은 “무슨 얘길 하는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죄송합니다”라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처럼 권재원쌤의 제안도 뭔가를 확 알게 되는 명쾌한 대답이 아니라, 혼란을 부추기는 대답이었다. 그러니 열심히 들었던 선생님은 미궁에 빠져, 뭔가 알기 쉬운 대답을 해주길 바랐던 것이다. 그래서 “에술교육을 하라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요?”라고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 우치다쌤의 강연과 선빵형 통역을 하고 있는 박동섭쌤의 통역은 하나의 하모니가 되어 강연장을 휘저었다.




지적 폐활량으로 알쏭달쏭함에 머물라

     

학교에선 아이들에게 정답이 정해져 있다며 가르치고, 그런 교육의 장에 있다 보면 교사도 손쉽게 누군가에게 정답을 구하곤 한다. 분명 자신이 발 딛고 선 현실은 수만 요소가 얽히고설켜 복잡다단하고 어지러운 형국이며 학생은 도무지 나의 인식으로 들어오지 않는 외계 생물체인데도, 누군가 그걸 한 큐에 꿰어 명료하게 해석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와 같은 알쏭달쏭한 말을 들으면 황당하기도 하고, 시간낭비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바로 그와 같은 상황을 견뎌내며 나 자신에게 ‘예술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말이 무엇이지? 민주시민교육이란 무슨 의미지?’라고 물음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그걸 동섭쌤은 ‘지적 폐활량’이라 표현했는데, 탁월한 표현이라 생각한다. 혼란을 견뎌내고, 갈등을 감내해 나가는 과정,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그 혼란과 갈등 속에 머물고자 하는 결단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공자라는 사람이 말한 적이 있다.           



공자가 “마음으로 분발하지 않으면 일러주지 않고, 말로 표현하지 않으면 일깨우지 않는다. (사각형의 물체가 있다고 할 때) 한 모퉁이를 들어 설명해줬는데 세 모퉁이를 알지 못하면, 다시는 가르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子曰: “不憤不啓, 不悱不發. 擧一隅不以三隅反, 則不復也.” 『論語』 「述而」 8         


 

공자의 교육법은 ‘교학상장敎學相長’의 교육법이다. 스타강사가 흔히 얘기하듯이 “나를 따라오면 너의 모든 게 만사형통한다”는 식의 모든 것을 다 알려주고 그 길을 갈 수 있도록 추동하는 교육이 아닌, 너와 내가 배움의 장에서 얽히고설키며 함께 성장해 나간다는 것을 밑바탕에 깔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사만 열정에 넘치거나, 교사만 모든 진리를 체득한 양 자부심에 차 있거나, 모든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양 전면에 나서는 것을 기피했던 것이다. 교사의 앎에 대한 열정과 학생의 앎에 대한 바람이 함께 어우러질 때에야 비로소 다음 단계로 나갈 수 있으며, 그럴 때 깊이를 더해갈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학생의 발분하려는 마음, 알고자 하는 마음, 한 모퉁이를 들어 설명하면 그 나머지 것에 대해 상상할 수 있는 마음이 있을 때 비로소 가르쳐주려 했던 것이다.                



▲ 두 가지 메타포를 던져주며, 강의는 끝을 향해 갔다.




결론이 아닌 한 모퉁이를 끌어안도록 일러준 강의

     

권재원 쌤이 던져준 ‘민주시민교육’이나 ‘예술교육’이란 메타포는 그런 의미에서 한 모퉁이를 제시하며 교사들에게 세 모퉁이로 확장할 수 있는지를 묻기 위해 던져준 과제라 할 수 있다. 그래도 너무 제멋대로 해석되는 것을 차단하고 싶었는지 “이야기를 통해 다양한 이야기를 이해하고 그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을 익힐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예술교육이란 이미 정해진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니고, 누군가 규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그와 같이 무언가를 풀어가는 과정이며, 그에 따라 합의해 나가는 과정을 함께 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라고 정리했다.

두 시간 여를 종횡무진 누비며 여러 생각과 생각이 엉켰다. 그래도 분명하게 알게 된 건, 무언가 확실한 감은 잡히지 않지만 그럼에도 치열하게 묻고 의문을 가지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장이 있다는 안도감이었다. 교실밖교사커뮤니티가 18년이나 지속될 수 있었던 힘엔 아마 그와 같은 소통의 장이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목차     


1. 건빵이 교컴 겨울 수련회에 참석한 까닭?

대화에도 맛이 있다

전주에서 교컴 수련회가 한다는 소식을 들은 후의 반응은?

외로운 사람이여, 그대 통하였느냐

불청객 1 -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길을 나서다

불청객 2 - 불청객이 청객이 되기까지

교컴도 몰라요, 교실밖교사커뮤니티도 몰라

강의를 맛볼 준비가 되셨나요?     


2. 인성교육엔 교육은 없고 폭력만 있다

앎의 유쾌한 여정을 선사해주다

세월호 사건은 인성의 결여 때문에 발생한 것인가?

교육만능주의에 기댄 인성교육

교육은 장기적인 안목을 요하지만, 즉각적인 해결책만을 제시하려 한다

한껏 무르익어가는 분위기


3. 인성교육의 뿌리는 반공교육이다

인성교육은 어떻게 등장했나?

인성교육의 뿌리는 반공교육이다

‘마을이 학교다’라는 부정적인 뜻

교육개혁은 고장 난 자동차를 운전하며 수리하는 일


4. 인성교육은 실패한다그 너머엔?

인성교육은 실패한다 1 - 지식교육/인성교육의 이분법이 낳은 왜곡

인성교육은 실패한다 2 - 교육목표를 스스로 위배하며 등장하다

인성교육은 실패한다 3 - 교육 효과에 대해 합의된 내용이 없다

권재원쌤에게서 발견한 우치다쌤의 향기

지적 폐활량으로 알쏭달쏭함에 머물라

결론이 아닌 한 모퉁이를 끌어안도록 일러준 강의


5. 인성교육이 아닌 인권교육으로

은진쌤과 첫 만남의 기억

강의라는 흐름에 몸을 맡기며

13년 차 교사의 역량이 유감없이 발휘된 강의

역할극을 통해 내 안에 감춰진 본심을 보다

학생들에게 선언함으로 나를 다잡다

통제가 아닌 지켜볼 수 있는 힘이 있는가?

학교 현장이 아닌 삶이란 현장에선 그대를 응원하며


6. 교컴 토론과 뒤풀이를 기록하다

저렴하면서 맛있는 저녁 식사 시간

아이 엠 그라운드 자기소개 하기

토론 1 - 주제를 듣고 꿀 먹은 벙어리가 되다

토론 2 - 화려한 말잔치, 하지만 그걸로 끝!

토론 3 - 인성교육에 대해 시민성 교육을 이야기한다는 것

뒤풀이 1 - 어떤 평가를 할 것인가?

뒤풀이 2 - 도덕수업이 역사수업에 도움이 된다?

뒤풀이 3 - 너무 열심히 하려 하지 마세요

뒤풀이 4 - 학생이 교사를 때렸다는 것에 대해

 

7. 교육을 바꾸는 15분 

전주한옥마을 1 - 관광지가 아닌 삶의 공간

전주한옥마을 2 - 한옥마을이 건빵에게 던진 메시지

교육을 바꾸는 15분 1 - 자신이 살아온 결을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가

교육을 바꾸는 15분 2 - 72일간 북유럽 4개국을 돌아보고 난 소감

교육을 바꾸는 15분 3 - 핀란드의 교육을 체험하고 난 소감

교육을 바꾸는 15분 4 - 민주적 환경과 혁신학교

    

8. 교육을 바꾸는 15분 와 교학상장에 대해

교육을 바꾸는 15분 5 - 교사의 한계가 느껴지던 그 순간이 뛸 수 있는 그 순간

교육을 바꾸는 15분 6 - 차별은 체계적으로, 일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교육을 바꾸는 15분 7 - 열정, 다양성, 그리고 선입견

자의식을 버리고 해방감을 맛보다

교학상장의 역동적인 흐름에 빠져들다

해방감을 느낀 그대, 교학상장의 가르침을 따라 거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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