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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Oct 06. 2016

우치다 타츠루는 어려워

우치다 타츠루의 ‘동아시아의 평화와 교육’ 1

박동섭 선생은 2011년 공간 민들레에서 강연이 있었을 때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준규쌤이 함께 들으면 좋은 강의가 있다고 알려주어서, 민들레출판사에 처음으로 찾아가는 길이었다.

그땐 아무 준비 없이 강의를 듣다가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하나는 영화를 ‘종합예술’이라 표현하듯, 동섭쌤의 강의도 종합예술 방불케 하듯 영상과 자료, 음악을 넘나들며 다채롭게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익히 알고 있던 텍스트 위주로 진행되는 강의와는 달라, 흥미진진하게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다른 하나는 임용시험을 보기 위해 열심히 달달 외웠던 비고츠키 이론이 ‘속빈 강정’처럼 실질적인 내용은 사라지고 누군가에 의해 왜곡된 내용만 남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때 비로소 느꼈다. ‘구성주의 & ZPD & 협력학습이란 단어에 갇힌 비고츠키, 그를 조심!’라고 말이다.                



▲ 학교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정식 외부활동이었다. 그런데 그 이상의 인연이 있었다.




우치다에게 배우다

     

“생의 길섶에는 무수한 우연들이 숨겨져 있는 법. (...) 마음이 통하면 천 리도 지척이라고, 보이지 않는 인연의 선들이 작동하기 시작하면 아무리 광대한 시공간도 단숨에 주파할 수 있다는 것”이라는 고미숙씨의 말마따나 동섭쌤과의 인연은 다른 인연으로 이어졌다.

그 인연은 이왕주 교수와의 인연으로 이어져, 익히 알고 있던 단어인 ‘소통’과 ‘교육’을 새롭게 정의할 수 있도록 충격을 줬다. 그뿐인가, 보이지 않게 작동하는 인연의 선은 급기야 국경을 넘어 현해탄을 건너더니 우치다 타츠루 선생과의 만남으로까지 확장되었으니 말이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던데, 한 번 이어진 인연은 우치다쌤의 사상을 여러 방면에서 접할 수 있게 했다. 그러니 이건 단순한 인연이라기보다, ‘사숙하는 관계’라 보아야 맞다.



▲  2012년도 교사 연수로 이왕주 교수를 만나 부산대에서 이야기 나누고, 이날 모임은 해운대로까지 이어졌다.



사숙이란 단어가 생소한 사람들도 많을 것이기에, 지금부턴 이 단어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사숙이란 단어를 처음 쓴 사람은 맹자다.           



“군자의 은택도 오대(한 세대를 30년으로 잡는다. 그러니 오대는 150년이다)를 넘기지 못하고, 소인의 은택도 오대를 넘기지 못한다. 나는 공자의 학단에 들어가 배우지는 못했으나, 그걸 전수받은 다른 사람(공자의 손자인 자사의 무리)에게서 배웠다”라고 맹자가 말했다.

孟子曰:“君子之澤五世而斬, 小人之澤五世而斬. 予未得爲孔子徒也, 予私淑諸人也.”

-『孟子』「離婁章句下」 22   


       

아무리 좋은 가르침이 있고, 그가 남긴 원대한 뜻이 있더라도 150년이란 시간이 지나면 자취조차 없이 사라져 버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가르침을 영영 받을 수 없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가르침을 이어받은 제자는 있으니, 그에게 배운다면 직접적으로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지 않았어도 배운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맹자孟子(BC 372~BC 289)는 공자孔子(BC 551~BC 479)보다 100년 정도 후에 태어난 사람이다. 즉, 150년이 지난 것은 아니니 공자의 가르침은 아직 남아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공자에게 직접 배운 것이 아닌, 그를 따르던 무리에게서 배운 것이기에, “사숙했다”는 표현을 쓴 것이다.



▲ 우리가 유교를 '공맹사상'이라 부르게 된 까닭은, 맹자가 공자의 가르침을 계승하려는 움직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맹자가 이런 식으로 사숙이란 말을 씀으로, 이후부턴 스승에게 직접 배우진 못했지만, 책을 통해서, 강의를 통해서 배우거나, 직전제자直傳弟子에게 배운 경우에 ‘사숙했다’는 말을 쓰게 됐다. 이와 마찬가지로 나도 우치다쌤의 책과 강연을 통해서만 배우고 있으니 ‘사숙하는 관계’라 표현한 것이다.

하지만 사숙하는 관계라 해서 직전제자보다 어설프게 알고, 두루뭉술하게 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우치다쌤의 책을 읽고 고민하며, 강연을 통해 그런 생각들을 정리하고, 생각을 가다듬을 수 있으니, 나름의 깊이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이 후기는 ‘자칭 우치다 타츠루를 사숙한 건빵이 풀어내는 우치다의 강의’라 해도 좋을 것이다.   


▲ 이 글은 '건빵식 우치다 읽기'라고 할 수 있다. 왜 그게 가능하냐고? 난 사숙했으니까^^. 위의 사진은 2013년 부산 강연 사진.

 


             

이 남자 알고 싶다

     

우치다쌤의 첫 강연은 2012년 8월에 있었다. 그땐 막 단재학교에 초임교사로 들어와 적응하고 있던 때라 정신이 없었지만, 학교에선 동섭쌤과 우치다쌤의 글에 대한 이야기가 간간히 나와서 ‘이 두 사람이 단재학교에선 중요한 사람들인가 보다’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 단재학교에 있으면서 박동섭, 우치다 타츠루란 이름을 많이도 듣게 됐다. 그때 읽은 책은 [불협화음론자 비고츠키]와 [하류지향]이었다.



대표교사인 준규쌤은 우치다쌤의 책을 읽으며 “무릎을 치게 됐다”는 말을 여러 번 했었다. 그건 책의 내용이 재밌고,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을 알려주기에 흥분되어 저절로 무릎을 치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다 급기야 “무릎이 남아나질 않는다”라는 말까지 할 정도였으니, 얼마나 재밌게 읽으셨을지 짐작이 간다.

우연이었을까, 필연이었을까? 그때 민들레 출판사에선 연이어 『스승은 있다』, 『교사를 춤추게 하라』 두 권의 책이 나왔다. 두 권의 책은 『하류지향』만큼이나 내용이 쉽고 간결하며, 일상적인 예화(‘운전학원 강사와 F1 드라이버’, ‘대항해시대와 아마존닷컴’과 같은 소제목들은 센스만점이고 무슨 내용일까 궁금해지게 만들었다)를 담고 있어서 한달음에 읽을 수 있었다. 그때 비로소 정마담투로 ‘아~ 이 남자 알고 싶다’는 호기심이 강하게 들었다.                



▲ 책을 통해 매력을 느낄 수 있다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서 한 번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지 모르고, 달려들다

     

그때 운 좋게도 출판기념회 겸 서울 강연까지 잡혔다. 알게 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직접 만날 기회까지 생기니 나 스스로 ‘럭키가이’라는 생각까지 들었고, 그래서 얼마나 강연을 기다렸는지 모른다.

1부는 여러 패널들이 모여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2부는 ‘혼자서도 가능한 교육혁명’이란 제목의 강연회로 꾸며졌다. 그런데 1부에선 너무 많은 패널이 나온 나머지 우치다쌤의 말을 거의 듣질 못했으며, 2부에선 수많은 사람이 모인 하하허허홀에 우치다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내용에서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역시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왜 그렇게 기대하고 기다렸으면서, 막상 현실에선 그러지 못했던 것일까? 이유는 내가 강연을 들을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강연을 듣기 위해서는 저자가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기본상식이 있어야 하는데, 고작 세 권의 책만 간단히 읽은 것만으론 이해되지 않는 게 당연했다.



▲ 번역투의 문장을 듣는 다는 건 나에게 너무도 낯선 경험이었다. 그래서 헤맬 수밖에.



그런 나의 상황과 맞물려 두 가지 현실적인 어려움이 겹쳐 있었다. 외국학자의 강연은 어쩔 수 없이 전문 번역자(길담서원에서 섭외하였음)가 통역한다. 말과 통역 사이엔 틈이 생기게 마련이고 그러다 보니 한 문단을 얘기하는데도 많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그러면 흐름이 자주 끊겨, 앞에서 무슨 얘길 했는지 까먹게 된다. 아마 이런 식의 통역으로 듣는 강의는 처음이다 보니, 적응되지 않아 더욱 어렵게 느껴진 거다.

둘째는 일본과의 문화적인 차이로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우치다쌤이 예로 드는 것들이 일본에서 유명한 것, 일본의 작가, 그의 관심사에 의한 거여서, 단어들이 생소하여 듣는 순간 ‘뭔 말이지?’라는 의문부호가 따라다녔다. 일본의 현재 상황에 대해 잘 알고, 일본 문화에 친숙할수록 강연을 듣고 이해하는데 유리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 2012년 강연회의 모습. 기회만 준비된 사람에게 오는 게 아니라, 강연 내용도 마찬가지다.



하류지향』을 읽을 땐 일상적인 언어로 쉽게 풀어서 설명해주고, 아주 친근한 예를 들어줘서 이해하기가 정말 쉬웠다. 무릎이 남아나지 않을 정도는 감격을 받은 건 아니었지만, ‘소비주체’와 연관 지어 일하지 않으려 하고 공부하지 않으려 하는 세태를 풀어냈다는 게 탁월하게 느껴졌다. 아마도 강연에서 기대한 건 그처럼 쉽고도 깊이 있는 통찰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내 자신이 여러 가지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니 ‘들려오는 건 말이오, 보이는 건 사람뿐’이란 감상만 남았다. 우치다 타츠루는 어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그땐 강연 후기를 쓸 수가 없었다. 그렇게 2012년은 쓸쓸한 추억의 한 페이지로 남았고, 우치다쌤과는 크게 인연이 없는 것처럼 기억에서 희미해져 갔다.



▲ 그렇게 인연이 없는 줄만 알았지만, 알다 모르게도 2015년의 강연까지 듣게 된다. 우여곡절 가득한 이야기는 다음에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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