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치다 타츠루의 ‘동아시아의 평화와 교육’ 2
2012년에 하자센터에서 있었던 우치다쌤의 첫 강연을 듣고, 멘붕에 빠졌다. 이건 노래가사로 유명한 ‘점점~ 멀어지나봐’였던 거다.
이럴 때 잠시 한 템포 쉬었다 가는 것도 괜찮다. 열정에 사무쳐,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파묻혀, 무작정 달려들었다간 질려버리기 십상이다. 그래서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잘 모른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천천히 배워나가려는 마음만 있으면 된다. 우치다쌤이 말한 배우는 사람의 세 가지 자세인 “저는 모르는 것, 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가르쳐 주세요”, “잘 부탁하겠습니다”가 지금 이 순간 가장 필요한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봇물 터지듯 깨달음이 임박해오는 날도 있을 테니 말이다.
그 후 2년 만인 2014년 6월에 우치다쌤이 서울에서 다시 강연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기간 동안 동섭쌤이 올려준 우치다쌤의 여러 편의 글을 읽다 보니, 나름의 흐름을 꿸 수 있게 되었고, 3년차 교사로 접어들면서 어느 정도 여유도 생겨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첫 강연 때 넉다운을 당한 경험이 있으니 지레 겁부터 나더라. 아무래도 이렇게까지 강연 울렁증이 돋는 데엔, 왠지 있어 보이고 싶은 방어기제가 작용하는 것 같았다. 쥐뿔도 없는 것이 있는 채를 하려니, 자꾸 불안하고 맘이 싱숭생숭하고 그랬던 것이다. 그렇다고 도전조차 하지 않고 그만두기는 싫었다. 왠지는 모르지만 우치다쌤의 우물 속을 들여다보고 싶었고, 그 우물에서 샘솟는 물을 한 모금이라도 마시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치다쌤이 『교사를 춤추게 하라』에서 “가르치는 입장에 있는 사람이 지금 이 순간도 계속 배우고 있는 배움의 당사자가 아니면 아이들은 배우는 법을 배울 수 없습니다”라고 했던 말이나 고미숙씨가 『호모쿵푸스』에서 “이 척박한 현실에서 희망을 일구는 길은 단 하나, 교사가 먼저 공부에 미치는 것뿐이다. 설령 입시를 위한 것일지라도 선생님이 공부에 미치면 자연스럽게 그 배움의 열정이 아이들에게 전달된다. 따지고 보면 본래 교사란 그런 직업이다. 자신이 평생 뭔가를 가르치고자 한다면 자신이 평생 공부의 즐거움을 누려야 마땅하다. 자신은 공부를 좋아하지 않으면서 학생들에게 공부를 하라고 한다면, 그것 자체가 억압이고 명령에 불과하다.”라고 했던 말은 일맥상통하는 말이다. 그저 앎의 파토스를 맘껏 느낄 수 있도록, 배움의 과정을 축복으로 여길 수 있도록, 교학상장의 역동적인 흐름을 감지하도록 그만두지 말고 모름 자체에 투신해보라는 얘기이니 말이다.
이미 강연장엔 사람들이 가득 찼다. 2012년 강연 때도 좌석에 가득하게 사람들이 찼었는데, 그건 이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만큼 우치다쌤이 한국에서 어느 정도의 인지도를 지녔는지, 강연장을 한 바퀴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느껴질 정도였다. ‘나야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무림의 고수와 만나 합을 겨뤄보며 실력을 가늠하기 위해 온 거지만, 과연 이들은 어떤 말을 듣고 싶어, 어떤 이유들로 이 자리에 오게 된 걸까?’가 궁금하기도 했다.
드디어 강연이 시작되었다. 두 눈 동그랗게 뜨고, 정면을 응시하며, 귀를 쫑긋 세웠다. 2012년의 강연장인 하하허허홀은 극장처럼 경사가 있어 우치다쌤을 내려 보는 구조여서 연극과 같은 공연을 보기엔 좋을지 몰라도, 강연을 듣기엔 별로였다. 그에 반해 이곳 서울여성플라자는 큰 강당 같은 곳이어서 고개를 들면 우치다쌤과 자연스럽게 눈이 마주치는 구조이고, 동섭쌤의 통역은 맛깔스럽고도 다양한 예(강연자가 한 마디를 하면 통역자가 세 마디를 하는 통역이라 모로유지 교수가 말함)를 들어주니 훨씬 이해하기가 편했다.
이로써 첫 강연 때 느꼈던 두 가지 어려움이 말끔히 해결되었고, 그간 열심히 글을 읽으며 준비해오기도 했으니, 이번엔 조금이나마 나아진 부분이 있겠지.
이게 영웅전기쯤 된다면, ‘그런 시련과 고난을 거쳐, 난 완전히 이해할 정도로 성장했다’고 해피하게 마무리 지을 테지만, 현실은 전혀 아름답지도 비약적인 성장이 있지도 않았다. 첫 강연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절망의 늪에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솔직히 2년 전에 비하면 많은 내용이 들렸고, 흐름을 놓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전체적인 흐름을 꿸 수는 없었다.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성숙에 대한 것’이라는 건 알겠는데, 중간 중간 등장하는 예들에선 역시나 ‘이게 뭔 소리다요?’라는 한숨이 절로 나왔으니 말이다.
그때 건진 말은 ‘성숙의 반대말은 트라우마다’라는 거였다. 지금까진 당연히 성숙의 반대말을 ‘미성숙’으로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우치다쌤은 ‘미성숙은 성숙하지 않았다’라는 말로, 부정적인 뉘앙스를 담고 있는 단어는 아니라고 알려주시더라. 그러면서 ‘트라우마’란 앞으로 나아가려 하기보다 자꾸 과거로 회귀하려 하고, 현재의 상태로 묶어두려 하는 것이기 때문에 성숙의 반대말이라 알려주셨다. 그 한마디를 듣는 순간 멍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 말 외엔 너무도 방대하고도 어려운 내용이었기에, 후기를 남기지는 못하고 정리글을 쓰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두 번의 강연을 들으며 알 듯 모를 듯 알쏭달쏭하기만 했다. 그런데 바로 그런 상태가 지적 작용이 가장 활발해지는 때이기도 하다.
불연 듯 예전에 한문을 처음 배우던 때가 생각났다. 사자소학으로 시작한 한문공부는 그렇게까지 힘들진 않았다. 일상의 아주 자잘한 예의범절에 관한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용』, 『맹자』를 공부하면서는 어떤 벽에 부딪힌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도, 그리고 어떤 맥락에서 나온 말인지도 모르는데 그걸 배워야 했기 때문이다. 『중용』의 첫 구절엔 “하늘이 명령한 것을 ‘본성’이라 하고, 그 본성을 따르는 것을 ‘길’이라 하고, 도를 닦는 것을 ‘가르침’이라 한다(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脩道之謂敎)”는 말이 나오는데 이게 무슨 ‘개 풀 뜯어 먹는 소리’인지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성경도 예수님의 비유는 쉽게 풀어지지 않지만, 그 말을 고민하며 여러 번 읽어보고 이해하려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진한 맛이 우러나오는 것처럼 『중용』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당장 이해되지 않으니 짜증도 나고 ‘굳이 이런 데에 시간을 빼앗겨야 하나?’라는 착잡한 심경으로 분하기도 하지만 분명 그런 시간을 보낸 만큼 제대로 알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처럼 우치다쌤 또한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강연을 들으며 어떤 부분들은 나의 의식을 할퀴며 지나갔고, 어떤 부분들은 이해도 되지 않아 듣자마자 사라져 버렸다. 첫 강연 때와는 조금이라도 달랐다는 것을 상기하며, 강연이 끝나자마자 그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물론 맘먹었다고 높은 산이 동산처럼 느껴질리 만무하다. 그래도 어려운 경서를 읽은 경험도 있으니, 그런 경험을 밑바탕 삼아 무모하더라도 조금씩 올라볼 뿐이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월터 미티처럼 모르기에 그냥 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