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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Jan 02. 2016

1038회 수요집회에 참가하다

‘위안부’ 문제와 수요집회 2

12시부터 집회 시작인데, 우린 카자흐스탄어 공부를 하고 오느라 학교에서 10시 50분쯤 나올 수 있었고, 5분 정도 늦게 도착했다. 어젠 비가 왔는데 비가 갠 후의 날씨는 전형적인 가을 날씨였다. 약간 서늘한 기운이 감돌고 하늘은 높고 파랗게 보이니 말이다. 흔히 하는 말로 ‘나들이하기 딱 좋은 날’이었다. 



▲ 친구들이 직접 만든 피켓엔 센스가 묻어난다.




달은 차면 기운다(月滿卽虧)  

   

2012년 여름은 연일 계속 되는 불볕더위로 ‘이 여름이 언제나 지나가려나?’ 원망 아닌 원망까지 했었는데, 거짓말처럼 이렇게 순식간에 가을이 찾아온 것이다. 달이 차면 기울 듯, 불볕더위도 맹렬하면 힘을 잃게 마련이다. 이렇게 축복받은 날에 단재학생들은 수요 집회에 참석한다.      



▲ '과거를 책임질 수 없다면 미래는 책임져라.'




경찰은 일본대사관을 지키고우린 위안부’ 할머니를 지킨다

     

일본 대사관으로 향하는 길에 경찰들은 경계의 눈빛을 보냈다. 우리가 가는 길을 막아서더니, “어디 가십니까?”라고 꼬치꼬치 묻기도 했고 피켓을 보며 빼앗으려 하기도 했다. 우리는 그 순간 잠재적인 테러리스트가 되었던 것이다. 

이미 일본대사관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소녀상 바로 앞에 중학교 학생들은 자리 잡아 앉아 있었고 학생들을 둘러싸고 많은 사람들이 피켓을 들고 있었다. 하지만 대사관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대사관은 경찰들의 철통 보호 속에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경찰은 도로를 불법 점거하지 못하도록 ‘폴리스 라인police line’을 쳐놓았다. 우리의 집회는 인위적으로 설정된 그 안에서만 평화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록 힘을 받는다. 뭉칠 때 힘이 넘친다.




위안부’ 문제의 시작과 수요 집회

     

수요 집회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라는 단체 주관으로 이루어지는 집회다. 1991년 12월에 김학순 할머니가 얼굴과 이름을 공개하고 일본을 상대로 소송을 한 것이, ‘위안부’ 문제의 시작이었다. 

그 일을 시작으로 1992년 1월 8일 미야자키 총리의 한국 방문을 계기로 수요 집회가 열렸다. 총리에게 직접 문제를 제기하고자 하는 움직임이었지만, 그 시작은 매우 미미했다. 그렇게 시작된 수요 집회는 2011년 12월 14일에 1000번째 수요 집회를 맞이하게 된다. 

연애를 하는 사람이나, 보통 사람에겐 어떤 일을 시작한 지 1000일이 지났다는 의미는 깊을 것이다. 하지만 수요 집회가 1000번이나 열렸다는 것은 결코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다. 만약 정부가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풀려는 의지가 있었다면, 아니 일반 시민들이 함께 힘을 모아 이 문제를 더욱 부각시켰다면 이렇게까지 긴 시간 할머니들을 일본대사관 앞에 내몰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 몰라라 하는 사이, 해결은 더욱 멀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참여한 수요 집회는 1038회를 기록하고 있었다. 이건 결코 자랑할 수 없는 수치이자 아픔이다(학생이 쓴 수요집회 후기보기).  


▲ 1000번째 수요집회 때 소녀상이 제막되었다.



    

화냥년이란 국가의 무능을 개인에게 덮어씌우는 말 

    

그런데 위의 글을 읽으면 당연히 의문이 생길 것이다. ‘왜 46년 만에 일본을 상대로 문제를 제기하게 된 걸까?’하는 의문 말이다. 이걸 뒤집어 말하면, 왜 46년간이나 숨겨와야만 했냐는 것이다. 

여기에 우리나라의 여성 인권에 대한 비극이 숨어 있다. 위정자들의 잘못으로 자국의 백성이 해외에 나가 ‘위안부’가 되어야만 했음에도, 그들이 돌아오자 아무도 그들을 위로해주지도 않았고 적극적으로 대책을 마련해주지도 않았다. 위로는커녕 ‘화냥년還鄕女(인조 때 정묘&병자호란이 일어나 많은 조선 땅의 여인들이 청으로 끌려가 수모를 당했다. 그녀들이 낯선 이국땅에서 살다가 돌아오자 국가와 가족은 그녀를 오랑캐에 몸을 더럽힌 여자라는 비하의 의미를 담아 ‘화냥년’이라 부르며 낙인찍었다)’이라며 온갖 욕설을 퍼붓고 모든 치욕을 그들의 죄인 양 덮어 씌웠다. 심지어 그녀의 가족들도 가문의 수치라며 그녀들에게 자살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녀들은 다른 나라의 무자비한 횡포에 이미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지만, 당연히 자신의 처지를 알아줄 줄 알았던 자신의 나라와 가족의 태도에 삶의 의미마저 잃게 되었다. 이런 상황인데, 누가 자신의 실명과 얼굴을 드러내며 일본의 만행을 떠들며 다닐 수 있겠는가. 그걸 얘기한다는 것은 자신의 무덤을 파는 일이기에 ‘위안부’ 문제는 무려 46년간이나 묻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위안부’ 문제가 가려져 있었던 데엔 국가의 무능함과 더불어, 남성중심 사회의 잔악함이 숨어 있다.      



▲ 단재영화팀의 센스 가득한 팻말들.




수요 집회에 참석한 특별 손님 

    

수요 집회는 주요 단체에서 참여한 사람들의 발언과 자유 발언을 하는 것으로 꾸며진다. 오늘 가장 이색적인 무대는 일본 사람들이 한국노래를 부르며 할머니에게 사죄하는 의식을 갖는 거였다. 그 광경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일본 사람 전체가 ‘위안부’ 문제를 망언이라고 치부하는 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단지 일본 정치인들이 ‘위안부’ 문제가 전면에 떠오를 경우 파급력이 엄청 나기에 쉬쉬하고 있을 뿐이다. 


(이 글은 2012년 9월에 쓴 글로, 2015년 12월 28일에 있었던 ‘위안부’ 문제의 협상 타결이 얼마나 어이없는 것인지 밝히기 위해 브런치에 업로드함)



▲ 소년이여, 그만 일어나 어른이 될 시간이야!






목차     


1. 애써 기억해야만 하는 것들                                             

기억의 속성은 망각이다

서울에서만 할 수 있는 일들

가까운 사람이 삶의 나침반이 되다


2. 1038회 수요집회에 참가하다                                                     

달은 차면 기운다

경찰은 일본대사관을 지키고, 우린 ‘위안부’ 할머니를 지킨다

‘위안부’ 문제의 시작과 수요 집회

화냥년이란 국가의 무능을 개인에게 덮어씌우는 말

수요 집회에 참석한 특별 손님     


3. 우리 모두의 문제인, ‘위안부’ 문제 

요시미 문건과 고노담화

‘위안부’ 문제, 과연 일본만의 문제인가?

그렇기에 우린 똘똘 뭉쳐 소릴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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