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박동섭의 ‘트위스트 교육학’ - 모든 것이 메시지, 다섯 번째
5월 28일 오후 5시 57분,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고치던 19살 김군은 역으로 진입하던 전철을 미처 피하지 못하고 전철과 스크린도어 사이에 끼어 사망하게 된다. 이 사건 이후 벌어진 일들은 지금 우리가 얼마나 교환의 논리가 횡행하는 곳에 살고 있는지를 실감케 했다.
스크린도어 수리는 원칙적으로 2인 1조로 작업을 해야 한단다. 하지만 이날 구의역엔 김군만 작업을 하고 있었고 스크린도어 안쪽 센서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고 혼자 들어가 고치다가 사고가 난 것이다. 현실이 이러니 메트로 관계자는 ‘원칙을 지키지 않은 정비업체 직원의 부주의’ 때문에 사고가 난 것이라며 모든 책임을 전가했다.
하지만 김군이 소속된 ㈜은성PSD라는 회사의 시스템은 사고접수를 받으면 1시간 내에 해당역에 도착해야만 하고 그러지 않으면 벌점을 줬다고 한다. 이날 구의역에서 작업을 할 때에도 을지로4가역에서 새신고가 접수되어 시간은 매우 촉박했고, 함께 작업해야 할 파트너는 경복궁역에서 작업 중이어서 ‘2인 1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이 사건이야말로 극단적인 자본주의 사회, 교환만이 최상의 가치가 된 사회의 진풍경을 보여준다. 원청업체는 계약을 체결할 때, 최저가 입찰방식으로 공모를 하여 하청업체를 선정한다. 최저가란 결국 하청업체 소속의 직원들에게 불합리한 대우(신고 후 1시간 내에 도착해야 한다)와 열악한 처우(박봉)를 해야지만 겨우 맞출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김군은 언제 신고가 들어올지 몰라 밥 먹을 시간도 없어, 그의 가방엔 ‘컵라면 하나와 공구’들이 뒤섞여 있었다고 한다.
구의역 사고가 발생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6월 1일에는 4호선 남양주 공사 현장이 붕괴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철근 용단 작업 중 인화물질과 닿으며 폭발하여 붕괴된 것이다. 이로 인해 4명이 죽고, 10명이 다쳤다. 그런데 이 때 지하 15m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모두 일당 16만원을 받고 일하는 일용직 노동자였다고 한다. 이건 곧 구의역 사고나 남양주 사고나 원가절감만을 추구하고 사람을 부속품쯤으로 여기는 사회시스템에 의해 발생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이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사고를 당한 것일 뿐, 누구든 그런 일을 당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그래서 구의역에서 포스트잇을 붙이며 추모하던 사람들은 ‘너는 나다’라는 글을 쓴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고 소식을 접할 때 사람들은 “저 봐 저 봐. 저러니까 열심히 공부해서 버젓한 직장에 들어가야 한다니까”라고 혀를 차며, 오히려 열악한 작업 환경 속에서 일하며 변을 당한 사람들을 욕보인다. 이런 말은 한 편으론 공부의 민낯을 여지없이 드러내는 말이기도 하다. 그건 다름 아닌 사회의 부조리엔 완전히 눈을 감고, 아니 눈을 감는 정도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용인하고 부추기며 ‘나만 아니면 돼’라는 극도의 이기적인 욕망이 분출된 것이니 말이다. 이런 공부의 어두운 면을 여실히 보았기에 황경민 시인은 “세월호가 침몰한 뒤 집회를 하고 서명을 받고 촛불을 켜면서도 내 아이는 바로 그 학교에 보내고 있는, 내 아이는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내 아이는 성적이 올라야 하는, 내 아이는 좋은 대학에 가야 하는, 이 내면화된, 체제의 이데올로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한 것이다.
결국 우린 교환의 논리만이 활개 치는 사회가 되도록 은연중에 돕고 있었으며, 이젠 유지되도록 힘을 보태주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완벽하게 나누고, 정규직이란 이유로 비정규직을 깔보거나 착취하는 걸 너무도 당연하게만 생각했으니 말이다. 그러니 전철이 수시로 드나드는 것을 알면서도 스크린도어 안쪽으로 김군을 밀어 넣었고, 폭발의 위험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용직 노동자들만 지하공사장에 쑤셔 넣었으며, 소수만이 성공하여 다수는 실패의 쓰라림과 멸시의 고통을 당할 것을 알면서도 ‘너만은 승자가 되라’며 경쟁에 끌어넣었다.
이제야 자식을 잃은 김군의 어머니는 자신 또한 그렇게 이 사회를 유지하며 살아왔음을 인정하며 “하지만 둘째는 그렇게 가르치지 않을 것이다. 책임감 있고 반듯하게 키우지 않겠다. 책임자 지시를 잘 따르면 개죽음만 남는다. 산산조각 난 아이에게 죄를 다 뒤집어 씌웠다. 둘째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첫째를 그렇게 키운 게 미칠 듯이, 미칠 듯이 후회가 된다.”고 절규하기도 했다.
김군 어머니의 절규는 어찌 보면 우리 사회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문제제기라 할 수 있다. 우린 교육을 한다는 미명으로 교환의 가치만을 당연한 듯 아이들에게 가르쳐왔고, ‘모난 돌이 정 맞는다’며 여기의 가치관을 정당화하며 강요해왔다.
하지만 그게 결코 우리의 아이를 위한 것도, 내 삶을 위한 것도, 또 우리 사회를 위한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면, 바꿔야 한다. 그건 당연히 교환이 판치는 세상에서 증여의 감각을 길러, 이 악마의 루틴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교환은 돈을 내밈과 동시에 물건을 받는 ‘무시간 모델’이다. 택배거래가 아닌 이상 돈과 물건의 교환은 동시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니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당연히 그 가치를 아는 것을 줘야만 한다. 그래야 그걸 받는 사람은 ‘부채감’을 느낄 수밖에 없고 그 가치에 맞는 것을 주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어야만 교환은 완벽하게 마무리되어 여지가 남지 않는다.
이에 반해 증여는 무언가를 준 후, 그에 대한 답례를 받을 수 있을지, 언제 받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시간 모델’이다. 준 사람은 무언가의 가치나 쓰임새를 잘 알고 있지만, 그걸 받은 사람은 전혀 모른다. 그러니 애초에 등가교환 자체가 불가능하고 그걸 받은 사람도 그 무언가를 선물로 느끼지 않는 한, 답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즉, 선물의 가치는 줄 때부터 내재해 있는 게 아니라 차후에 그걸 받은 사람 중에 ‘귀중한 걸 받았다. 이건 답례해야만 한다’는 ‘반대급부의 의무’를 느낄 때에만 생겨난다고 할 수 있다. 그 때 받은 사람도 답례품을 내밀지만, 준 사람은 그 답례품의 가치를 알 수가 없어 ‘완벽하게 보답 받았다’는 생각은 가질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첫 번째 증여를 계기로 준 사람과 받은 사람 사이엔 증여의 관계가 지속적으로 성립할 수밖에 없다.
교환과 증여의 차이를 분명히 알았다면 이젠 증여의 감각을 지닌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리고 증여의 교육관은 어떤지 살펴보도록 하자.
첫째는, 증여의 감각을 지닌 사람은 ‘착각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무언가 가치는 알 수 없지만, 그 순간 자신에게 매우 유용한 것을 줬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그러니 별볼 것 없는 교사에게 가르침을 받았지만 ‘저 가르침은 나를 위한 것이다’라고 착각하여, 그 교사에게 “가르쳐줘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게 된다. 또한 누군가 전해준 물건이 다른 사람에겐 ‘쓸모없는 물건’이라 생각되더라도 ‘저 물건은 정말 멋진 물건이다’고 착각하여 그 사람에게 “와 이거 정말 필요했는데, 감사합니다”라며 답례를 하게 된다. 그래서 증여의 감각을 지닌 사람은 어떤 상황이든 물건이든 자신을 위한 것으로 착각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로 “감사합니다”는 말을 자주하는 것이다.
동섭쌤은 일본의 싱어송라이터 아라이荒井의 ‘다정함에 감싸 안긴다면やさしさに包まれたなら’이라는 노래의 “커튼을 열고, 조용한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의 다정함에 감싸 안긴다면, 틀림없이 눈에 비치는 모든 것은 메시지(5강의 제목은 여기서 연유했다)”라는 가사를 들으며, “그 노래를 듣고 우리는 마음이 따뜻해졌다. ‘세계는 아직 그래도 살 가치가 있는 곳이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게 해 준 아라이에게 ‘고맙습니다’는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답례의무를 느꼈기 때문에 CD를 구입했다.”고 풀었는데, 이것이야말로 증여의 감각을 지닌 사람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둘째는, 증여의 감각을 지닌 사람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증여 자체가 시간의 흐름 속에서만 그 가치를 알 수 있듯이, 이 사람도 그런 흐름을 기반에 두고 하나하나 생각하려 한다. 이에 대해 동섭쌤은 고베여학원대학神戸女学院大学의 학교를 건축한 윌리엄 메럴 보리스William Merrell Vories를 예로 들었다. 그는 ‘학교 건물이 사람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건물을 지어, 미로 같아서 직접 가보지 않으면 어디가 어딘지 알 수 없게, 그리고 공간 자체가 울려 편하게 강의할 수 있게 만들었다고 한다. 우치다쌤은 이 건물에서 근무하며 ‘이 건물이야말로 배움의 은유’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에 따라 100여년 전의 사람에게 ‘감사합니다’라는 맘을 갖게 됐단다.
이를 통해 증여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진행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고, 그건 ‘증여-반대급부의 의무-증여-반대급부의 의무’의 무한반복을 통해 시간의 흐를 때에 배양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증여의 교육론은 무얼까?
첫째, 최초에 물건을 전해주는 사람처럼 교사는 ‘나는 가르치고 싶은 게 있다’는 생각으로 가르치려 한다는 것이다. 이 때 중요한 것은 가르침에 대한 수요가 있어서, 또는 그런 가르침을 원해서 교사가 존재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답례에 대한 생각은 없이 물건을 부족과 부족 간의 경계지점에 놓고 오듯, 교사는 자신이 가르치고 싶은 것을 학생이 없음에도 가르칠 뿐이다. 왜냐 하면 ‘잣대 혹은 도량형으로 계측할 수 있는 가치만 배우겠다’와 같이 등가교환의 가치는 아무리 많이 쌓여도 사람은 성숙해지지 않지만, ‘계측할 수 없는 가치’를 교사로부터 증여받을 때 아이는 비로소 ‘성숙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둘째, 교사는 개인이 아닌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어야만 한다. 교사 개인마다 성향도 다르고, 가르치고 싶은 것도 다르며, 가르치는 방식도 다르다. 그러니 어떤 교사가 학생에게 ‘엄청난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반대급부 의무를 지니게 할지 아무도 모른다. 그렇기에 교사는 완벽한 개인이 아닌, ‘가르치고 싶은 것’이 있는 다양한 개인들이 모인 집단이어야 한다.
그래서 우치다쌤은 “자기 자신이 혼자서 모든 교육기능을 맡는 완전한 교사가 되려고 바라는 것은 완전히 어리석은 일입니다. ‘좋은 교사’가 되려고 바라는 것도 어리석은 짓입니다. ‘좋은 교사’ 같은 것은 단품單品으로는 존재하지 않아서 ‘좋은 교사’가 있을 수 있다고 하면 다른 교사들과 원만한 협력이 가능한가, 좀 더 파고들어가서 말하자면 ‘다른 교사가 결코 하지 않는 일을 하는 혹은 다른 교사가 결코 말하지 않는 것을 말하는’ ‘다른 사람과 대체 불가능한’ 교사가 되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교사는 교사단敎師團으로만 존재한다’는 이 말에 대해 한 선생님은 “예전에 혁신학교에서 근무할 때 교장은 ‘아침에 오는 학생들은 포옹해줘야 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가지고 있어 모든 교사들이 아침마다 교문 앞에서 오는 학생들을 의무적으로 포옹해야 했다. 그랬더니 아이들 중엔 뒷문으로 돌아서 들어오기도 하더라”고 말하며 혁신적이지 않은 혁신학교의 모습을 비판했고, 교사단을 허용하지 않는 학교의 풍토를 비판했다.
셋째, 교육의 목적은 ‘사람을 성숙으로 이끄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지금껏 교육을 받는 이유를 일신의 영달을 위해, 나 자신을 위해서라고 설명해왔다. 그래서 학교교육의 목적은 ‘학습자가 충분히 노력하였기 때문에 노력에 걸맞은 보상을 얻었다는 합리적인 달성감을 느끼게 하는 것’에 주안점을 뒀다. 바로 이런 생각 자체가 교환을 기반에 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동섭쌤은 “교육의 성과를 개인이 혼자 독차지 하는 게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함께 누리는 것이다”고 목소리를 높여서 말했다. 성숙해져야만 증여의 감각을 터득할 수 있고, 그에 따라 시간의 흐름을 고려한 배움의 역동적인 과정을 이해할 수 있으며, 그 때 ‘모르기에 배운다’며 배움의 즐거움에 몸을 맡길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성숙으로 이끌기 위해 교육해야 하고, 그런 교육을 받기 때문에 성숙해지는 것이다.
드디어 우린 동섭레스트의 정상에 도착했다. 올라오는 과정 속에 힘들었고, 포기하고도 싶었으며, ‘내가 왜 이런 미친 짓을 시작한 걸까?’라는 후회가 들기도 했다. 하지만 ‘뭔지는 모르지만 배우고 싶다’는 생각으로 순간순간 드는 감정들을 이겨내며 오르니, 결국 이곳에 도착했다.
정상에서 보는 세상은 여태껏 옥신각신하며 살아왔던 치열하고 매정한 곳이 아닌, 무수한 생명체가 어우러져 엄청난 비경을 펼쳐내는 곳이었다. 이처럼 높은 시좌로 이륙하여 달라진 세상을 봤기에 더 이상 디자인된 세계에 갇혀 관성적으로 살아갈 필요성은 느끼지 않는다. 물론 이번 한 번 오른 것만으로 완벽하게 바뀌거나 행동의 패턴이 변화하거나 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재디자인할 수 있는 가능성을 봤고, 그 힘을 얻었다는 것만으로도 이번 등반은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정상에서만 느낄 수 있는 청량감과 뿌듯함을 맘껏 누려보자.
이것으로 트위스트 교육학 5강의 후기는 끝났다. 다음 편은 트위스트 교육학 후기의 마지막 편으로 25편의 후기를 쓰면서 느낀 소감을 담으며 마무리 짓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