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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Jan 18. 2016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본 영화 ②

제14회 전주국제영화제 여행기 2


행복한 시한부 인생 - 평행선의 마주침을 그리는 로드무비  

   

이 영화는 단순히 얘기하면 로드무비다. 길을 떠나, 사람을 만나고 그 길 위에서 새로운 환경과 마주치면서 한 개인이 어떻게 변해가고 성장해 가는지 보여주는 영화라는 뜻이다. 로드무비 중 추천하고 싶은 영화는 단연 「멋진 하루」다. 2008년에 개봉한 한국영화인데, 평행선을 그리던 두 선분이 어떻게 마주치고 공명하며 변화하는지 이 영화는 하루 동안의 여행을 통해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행복한 시한부 인생」의 주인공은 킬러다. 그런 그가 암에 걸려 시한부 인생이 되었고 병원에서 남은 생을 보내기 싫었던 그는 몰핀을 미녀 간호사에게 대량 구입한 후 여행을 떠난다. 어찌된 영문인지 마지막 킬러로서의 임무는 완수하지 못한 채 떠돌아다니게 된다.

이 때 한 여자를 만나게 된다. 그녀의 아버지는 개들을 이종교배하여 최고의 품종을 만들어 파는 사람이다. 당연히 어설픈 개가 태어나면 아무렇지 않게 죽인다. 그녀는 그런 아빠가 싫어 집을 뛰쳐나왔다. 생명을 죽이는 것에 죄책감도 없는 남자라는 선분과 생명의 소중함을 아는 여자라는 선분은 평행선이 되어 여태껏 흘러왔지만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마주친 것이다. 평행선이 마주치며 빚어내는 사건들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몰핀 때문인지 흐리멍덩하게 묘사되는 부분이 많아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친절하지는 않지만, 나름 로드무비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영화였다.

로드무비를 볼 때 드는 생각은 ‘자신을 바꾸고 싶은 자, 현실의 반복에 지겨움을 느끼는 자 미련 없이 떠나라’라는 것이다. 이런 생각에 관해선 에필로그에서 더욱 자세하게 다룰 것이니, 지금은 이 정도로만 이해하고 넘어가도록 하자.                



로드무비의 매력을 물씬 느낄 수 있었던 두 영화.




샤히드 1 - 할리우드, 발리우드, 코리우드? 

    

「샤히드」는 인도영화다. 미국의 영화산업에는 할리우드라는 도시가 중심에 있어 미국 영화를 통칭할 때 ‘할리우드’라고 부르듯이, 인도영화산업에는 봄베이라는 도시가 중심에 있어 인도 영화를 통칭할 때 ‘발리우드Bollywood’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말은 무엇일까? ‘코리우드kollywood’ 또는 ‘서리우드seollywood’라는 말을 억지로 만들 수는 있지만 그 말은 역시나 ‘할리우드의 아류’라는 인식만 낳을 뿐이다. 그보다 영화 제작의 메카인 ‘충무로Chungmuro’를 한국영화를 통칭하는 말로 쓰는 게 나을 것이다.

처음으로 본 인도영화는 한국에서도 흥행에 성공하여 ‘알 이즈 웰(ALL is WELL)’이란 유행어를 퍼뜨린 「세얼간이」란 영화였다. 한국과 다르지 않은 사회의 흐름과 그 흐름을 거부하며 ‘알 이즈 웰’을 외치는 세얼간이의 힘겨루기가 코믹하게 묘사된 영화이다. 또한 노래와 춤을 중간 중간에 넣는데 적게는 수 명에서, 많게는 수 십명이 함께 한다. 발리우드 영화의 매력이 「세얼간이」에 고스란히 들어있다.                



유쾌, 상쾌, 통쾌한 영화다. 나 답게 외칠 수 있는 말, 알! 이즈! 웰!




샤히드 2 - 변태의 장소, 감옥 

    

「샤히드」는 정지영 감독의 「부러진 화살」, 「남영동 1985」를 섞어 만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노래와 춤이 나오지는 않는다. 아마도 흥겨운 이야기가 아닌, 사회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는 이야기이니 노래와 춤을 넣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지하드 훈련에 참석한 전력과 테러범의 수첩에서 그의 전화번호가 나왔다는 이유로 국가기관에 체포되어 협박과 고문, 그리고 회유를 받게 된다. 한 줄의 자술서만 쓰면 자유의 몸이 된다는 회유에 속아 자술함으로 감옥에 갇히고 만다.

그러나 그 시절 감옥은 하나의 배움터이기도 했다. 재야의 거물급 인사들이 대테러법 때문에 종종 감옥에 들어와 있곤 했기 때문이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도 너무 바빠 공부할 시간이 없을 때 “감옥에 한 번 더 가야겠다”고 농담을 하곤 했다던데, 감옥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이미지보다 훨씬 복합적인 이미지를 지닌 게 사실인 것 같다. 시련을 통한 성장이 있을 수도 있고, 관계 단절을 통한 새로운 만남이 있을 수도 있는 공간이니 말이다.

그처럼 샤히드도 자신의 운명을 바꿔 줄만한 인연을 그 곳에서 만난다. 정치범의 배려로 배울 수 있었고 다양한 것들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이다. 궁지에 몰렸을 때, 누구나 희망을 찾게 마련이다. 그 때 보는 모든 것, 듣는 모든 것, 하는 모든 것은 그대로 자신에게 들어와 박힌다. 익혀야 하기 때문에 익히는 게 아닌, 살기 위해 익혀지는 것이다. 그 순간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하며 성장하게 된다. 사회적인 잣대로 이해할 수 없었던 샤히드의 약자에 대한 배려, 진실에 대한 추구에는 이와 같은 변태變態의 시간과 변태를 가능하게 하는 장소가 있었던 것이다.  



<남영동 1985>가 생각나는 포스터다. 모진 고문에 가짜 고백을 하여 감옥에 갇힌다.



              

샤히드 3 - 정 맞는 국가권력에 맞선 자     


기한을 채우고 감옥에서 나오자마자 그는 변호사가 된다. 정부가 공표한 대테러법으로 무고한 시민들이 ‘테러범’으로 몰리자, 그들을 변호하기 시작한 것이다. 증거가 빈약하면서도 검찰 측은 ‘국가권력의 무능’이 드러날까 두려워하며 애먼 사람을 몇 년이고 구금한다. 그런 그들을 위해 따지고 또 따진다. 국가권력에게 샤히드는 위험분자다. 다된 밥에 재를 빠뜨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검찰측은 증거로 샤히드를 궁지에 몰아가기보다, ‘테러리스트들과 한 패가 되어 그들을 대변하는 악랄한 사람’이란 유언비어로 궁지에 몬다. 국가권력의 야비함을 단적으로 드러낸 예가 아닌가 싶다.

약자의 편에 서면 설수록, 공권력은 그를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제거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한다. 이런 경우는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흔히 있었다. 용산참사의 경우, 투쟁에 같이 참여한 전철련(전국 철거민 연합) 회원들을 공권력은 ‘외부 불순세력’으로 규정하여 감옥에 가뒀으며,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반대운동의 경우, 환경단체 회원들을 ‘국가 안보를 내팽개친 세력’으로 규정하여 그와 같이 대우했다.                



외부 불순세력 때문에 용산참사가 났다고 주장하는 것인가? 사람이 죽었다. 그런데도~




샤히드 4 - 규정된 시대에 살기 or 시대를 규정하며 살기

     

샤히드는 변호 요청을 위해 찾아온 사람을 만나기 위해 이른 아침인데도 사무실로 들어간다. 그때 총소리가 사위에 울려 퍼지고 샤히드는 쇼파에 기대어 죽어 있다. 권력편에 선 자들은 승승장구하며 세상의 단맛을 모조리 볼 때, 샤히드는 특권을 내려놓고 가시밭길을 걸으며 냉소와 협박을 온 몸으로 맞서 싸워왔다. 그러다 결국 싸늘한 시체가 되었던 것이다. 이 대목에서 떠오른 사람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조선 건국 이래로 600년 동안 우리는! 권력에 맞서 권력을 한 번도 바꿔보지 못했다! 비록 그것이 정의라 할지라도 비록 그것이 진리라 할지라도! 권력이 싫어하는 말을 했던 사람은... 혹은 그런 진리를 내세워 권력에 저항했던 사람들은 전부 죽임을 당하고 그 자손들까지 멸문지화를 당하고 패가망신했다!

600년간 한국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하는 사람들은 전부 권력에 줄을 서서 손바닥을 비비고 머리를 조아려야 했어요! 그저 밥이나 먹고 살고 싶으면! 세상에 어떤 부정이 저질러져도 어떤 불의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어도! 강자가 부당하게 약자를 짓밟고 있어도! 모른 척 하고... 고개 숙이고.... 외면했어요..... 눈감고 귀를 막고! 비굴한 삶을 사는 사람만이 목숨이나 부지하면서 밥이나 먹고 살 수 있었던 우리 600년의 역사.......!

제 어머니가 제게 남긴 제 가훈은! “야 이놈아 모난 돌이 정 맞는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눈치 보며 살 거라”

80년대 시위하다 감옥 간 우리 정의롭고 혈기 넘치는 우리 젊은 아이들에게 그 어머니들이 간곡히 간곡히 타일렀던 그들의 가훈 역시 “야 이놈아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고만둬라.” “너는 뒤로 빠져라.”

이 비겁한 교훈을 가르쳐야 했던 우리 600년의 역사 이 역사를 청산해야 합니다! 권력에 맞서 당당하게 권력을 쟁취할 때만이 비로소 우리 젊은 아이들에게 떳떳하게 정의를 얘기할 수 있고! 떳떳하게 불의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 수 있다!

 2002.12.10 서울 힐튼 호텔 출판기념회 및 후원회



어떤 절절함. 하지만 그 세상은 그가 대통령이 되었음에도 아직도 여전히 오지 않았다.


          

이 울분에 찬 울림을 어찌 그냥 들을 수 있을까. 가슴이 아파오는 구구절절한 말이다.

그래도 그 땐 ‘정 맞는다’라고 해도 나서는 젊은이들이 많았나 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조차 없는 사회가 되고 말았다. 경쟁 위주의 사회로 재편되면서, 누구나 취업준비에 여념이 없기 때문이다. 내 한 목숨도 부지하기도 힘든데, 어찌 감히 사회를 논하며, 정치를 논하며, 불의를 논할 것인가. 20, 30대의 투표율이 가장 낮다는 보도는 이와 같은 현실을 잘 드러내 준다.

아마 이와 같이 ‘생각이 사치가 되고 행동이 만용이 되는 시대’를 만들고 싶었던 세력들은 따로 있을 것이다. 그런 세력들이 활개 치며 살 수 있도록 방조한 사람 중에 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있다는 사실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생각의 끈을 놓는 순간 시대의 흐름에 맞게 사는 게 아니라, 어느 세력이 만들어 놓은 흐름에 휩쓸려 살아가게 되기 때문이다.

샤히드는 ‘대테러법’이 모든 악을 종용하고 규정하던 시대에, 흐름에 휩쓸려 산 사람이 아닌 시대를 규정하며 정의를 고민하며 산 사람이었다.



전주여행설명서-프롤로그, 영화      영화제 개막식 밤. 휘영청 보름달이 떴다.







목차     


1. 영화

개막식 전경

폭스파이어 1 - 대략적인 내용

폭스파이어 2 - 역사적인 아이인 「폭스파이어」와 영원한 아이인 「써니」

폭스파이어 3 - 너의 인식이 비뚤어졌나? 나의 행동이 비뚤어졌나?     


2. 영화

행복한 시한부 인생 - 평행선의 마주침을 그리는 로드무비

샤히드 1 - 할리우드, 발리우드, 코리우드?

샤히드 2 - 변태의 장소, 감옥

샤히드 3 - 정 맞는 국가권력에 맞선 자

샤히드 4 - 규정된 시대에 살기 or 시대를 규정하며 살기     


3.

부채박물관 1 - 단오와 부채의 관계

부채박물관 2 - 부채에 자신을 남기다

오목대 - 이성계의 흥취를 공유하다

풍남문 - 오래된 미래를 지키려는 노력

전동성당 -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본다

전주와 완주의 통합에 대한 견해 - 見小利則大事不成     


4.

Cafe 76-11 (돈가스닷컴)

엄마손 해장국

베테랑 칼국수 (진미집, 교동집)

풍년제과 1 - 대기업 빵집 속의 명맥을 잇는 빵집

풍년제과 2 - 전주에서만 맛볼 수 있는 그 맛

청라회관 1 - 비빔밥의 유래와 철학

청라회관 2 - 비빔밥 가격에 관해

청라회관 3 - 합리적인 비빔밥집     


5. 맺음말- 떠나야 비로소 깨닫는 것

파랑새는 가까이에 있다?

파랑새는 없다?

당연한 것에 대한 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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