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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Jan 18. 2016

떠나야만 비로소 깨닫는 것

제14회 전주국제영화제 여행기 5

흔히 듣는 말. 그게 뭐냐 하면, ‘파랑새는 가까이에 있다’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을 듣다보면, 참 허무해질 때가 있다.                



파랑새는 어디에 있을까?




파랑새는 가까이에 있다?

     

그렇게 가까이에 있는 행복을 왜 알지 못한 채 살았냐는 것이며, 그렇다면 늘 가까운 곳만 예의주시하면 된다는 말처럼 들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말은 자칫, ‘파랑새는 가까이에 있으니, 멀리 나갈 생각은 하지도 마라’라는 말로 비약되어 ‘라푼젤’처럼 방안퉁수로 만들 소지도 있다.

그런데 이쯤에서 「행복한 시한부 인생」에서 했던 ‘자신을 바꾸고 싶은 자, 현실의 반복에 지겨움을 느끼는 자 미련 없이 떠나라.’라는 얘기로 결론을 맺어도 될 것 같다. 파랑새는 가까이에 있었던 게 아니다. 애초에 파랑새는 아예 있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왜 ‘파랑새는 가까이에 있다’고 사람들은 말하는 것일까?               



맘껏 다니자. 그 속에서 내 생각이 나를 배신할지라도.




파랑새는 없다?  

   

‘파랑새가 있다’는 것은 하나의 착각이다. 그건 현실에 대한 불만족을 해소하기 위해 ‘어딘가에 행복이 있을 거라는 바람’을 심어놓은 것뿐이다. 현실이 불만족스러운데 다른 삶이 만족스러울 수는 없다. 그런데도 어딘가에 불만족이 완전히 사라진 환경이 있다고 생각하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수많은 곳을 여행하며 느끼게 되는 건 무엇일까?

아무리 돌아다녀 봐도 내가 바라던 것은 어느 곳에도 없다는 깨달음이지 않을까. 그건 ‘내가 만든 비현실적인 생각’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 깨달음은 좌절일 수도 있지만, 오히려 반대로 생각해보면 ‘나의 착각이 부른 환상’임을 알고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새 희망을 꿈꿀 수도 있다.                




당연한 것에 대한 배신

     

어느 곳을 돌아다녀 봐도 파랑새는 없다. 그런 씁쓸한 결론 뒤에 ‘여태껏 내가 살아왔고 내가 만나왔고 내가 경험해왔던 모든 일이 바로 특별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당연시 되었던 수많은 것들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으며, 오히려 잘 안다고 치부해왔던 것들에 대해 얼마나 몰랐는지를 여실히 알게 된다. ‘당연한 것에 대한 배신’ 그게 바로 ‘파랑새’였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장면이 이준익 감독이 만든 「라디오스타」라는 영화에서도 나온다. 김양은 어린 나이에 집을 나와 다방에서 일하게 된 젊은 아가씨다. 영월 방송국에서 디제이를 하게 된 최곤은 라디오 진행 중 김양에게 다짜고짜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이 때 김양이 하는 말이 ‘파랑새의 비밀’을 여지없이 파헤쳐 준다.           



엄...엄 엄마, 나 선옥이. 엄마 잘 있나? 들리나? 엄마... 비오네... 기억나? 나 집 나올 때도 비 왔는데... 엄마 그거 알어? 나 엄마 미워서 집 나온 거 아니거든.

그때는 내가 엄마 미워하는 줄 알고 있었는데, 집 나와서 생각해 보니까, 세상 사람들은 다 밉고 엄마만 안 밉더라. 그래서 내가 미웠어. (강조- 필자)       


   

파랑새를 찾아 떠났지만, 세상에 파랑새는 없음을 알게 된다. 그때 착각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되며, 비로소 지금껏 놓치고 살아온 삶의 진면목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려면 당연히 날 짓누르는 현실에 굴복하지 말고, 떠나야만 한다. 떠날 때에야 비로소 내가 어떤 착각으로 세상을 잘못 인식하며 살아왔는지 알게 되기 때문이다.

전주로 영화 여행을 떠났던 우리도 이와 같은 깨달음을 얻기 위해 길을 나선 것이다. 내가 딛고 선 지반이 어떤 지반이고 그게 얼마나 나의 착각 속에 만들어진 왜곡된 지반인지 느끼기 위해 길을 나선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어느 순간 ‘엄마만 밉다’에서 ‘엄마만 안 밉더라’라는 사고의 전복을 기대했다면, 너무나 과한 의미부여라고 하려나. 그러나 믿는다, ‘떠나본 사람만이 현재의 중요성을 안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은 다 밉고 엄마만 안 밉더라. 그래서 내가 미웠어.







목차     


1. 영화

개막식 전경

폭스파이어 1 - 대략적인 내용

폭스파이어 2 - 역사적인 아이인 「폭스파이어」와 영원한 아이인 「써니」

폭스파이어 3 - 너의 인식이 비뚤어졌나? 나의 행동이 비뚤어졌나?     


2. 영화

행복한 시한부 인생 - 평행선의 마주침을 그리는 로드무비

샤히드 1 - 할리우드, 발리우드, 코리우드?

샤히드 2 - 변태의 장소, 감옥

샤히드 3 - 정 맞는 국가권력에 맞선 자

샤히드 4 - 규정된 시대에 살기 or 시대를 규정하며 살기     


3.

부채박물관 1 - 단오와 부채의 관계

부채박물관 2 - 부채에 자신을 남기다

오목대 - 이성계의 흥취를 공유하다

풍남문 - 오래된 미래를 지키려는 노력

전동성당 -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본다

전주와 완주의 통합에 대한 견해 - 見小利則大事不成     


4.

Cafe 76-11 (돈가스닷컴)

엄마손 해장국

베테랑 칼국수 (진미집, 교동집)

풍년제과 1 - 대기업 빵집 속의 명맥을 잇는 빵집

풍년제과 2 - 전주에서만 맛볼 수 있는 그 맛

청라회관 1 - 비빔밥의 유래와 철학

청라회관 2 - 비빔밥 가격에 관해

청라회관 3 - 합리적인 비빔밥집     


5. 맺음말- 떠나야 비로소 깨닫는 것

파랑새는 가까이에 있다?

파랑새는 없다?

당연한 것에 대한 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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