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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오래된 미래’로 만드는 방법

서대문 형무소 탐방기 1

by 건빵

서대문 형무소는 꼭 한 번 가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건 애국심 때문에도, 순국선열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도 아니다. 어디까지나 역사가 어떤 현재적인 관점으로 서술되어 있으며, 그걸 우린 어떻게 기억하고 계승해야 하는지 보기 위해서다.



3.jpg ▲ 서대문 형무소에 들어간다. 들어갈 때만 해도 '이미 와 봤는데 별 거 있겠어?'라는 생각을 했는데, 기우였다.




볼거리는 많지만, 억지 비감을 강요하다


이미 재작년에 서대문 형무소에 방문했으니, 이번에 방문한 것까지 하면 두 번째 방문이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지난번엔 그다지 감흥은 없었는데 이번엔 훨씬 많은 것들이 느껴졌다. 그 때나 지금이나 시설이 크게 달라진 것은 없지만, 하나하나 곱씹듯이 보게 되니 그와 같은 변화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관람방향을 따라 가면서 전체를 빠짐없이 관람하니 볼거리와 함께 생각할 거리도 상당히 많다는 사실을 새로 알 수 있었다. 넓은 공간을 둘러봐야 할 때 관람방향을 지정해주지 않으면 중간 중간 빼먹고 관람하게 되며, 제풀에 지쳐 조금 보다가 포기하게 되기 때문이다.

처음에 왔을 땐 건물에서 느껴지는 비감悲感보다, 감방에서 인위적으로 흘러나오는 “대한독립만세”라는 스피커 소리가 왠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정성스레 만든 요리에 라면 스프를 양념으로 뿌린 것 같다고나 할까. 이미 이 건물 자체만으로도 생생한 역사의 장인데 저렇게 인위적인 소리를 덧보태어 오히려 의미나 감상을 방해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오늘도 여전히 그곳을 지나갈 땐 쓴웃음이 절로 났다.



4.jpg ▲ 간접적으로 감방체험 및 독립운동 체험을 할 수 있는 장소다. 기획은 좋았으나, 너무 허접한 퀄리티에 웃음이 절로 났다.




차가운 콘크리트 건물 안에 어떻게 따뜻한 인간미를 채워 넣을 것인가


하지만 그곳을 지나쳐 12옥사에 들어서는 순간 가슴 뭉클한 어떤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건 어찌 보면 그립던 사람을 차가운 건물 안에서 만났기 때문에 느껴지는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순간 알게 된 건, 아픔이 스민 공간을 남겨 놓는 것도 미래세대를 위해서 중요한 거지만, 그 차가운 공간에 어떻게 따스한 인간미를 채워 넣느냐가 중요하다는 사실이다(이에 대해서는 이 글의 3부에서 심도 깊게 살펴보도록 하자).

이런 생각은 2011년에 ‘사람여행’을 하며 느꼈던 것이다. 길 위에 사람이 있다. 하지만 길만 있으면 풍경에 불과하고, 사람만 있으면 인물화에 불과하다. 길 위에 사람이 있고, 그 길을 걷다가 사람과 마주칠 때 길은 사람의 이미지가 덧씌워져 깊은 감상을 불러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 당시 여행 도중 사람과 마주쳤던 장소들은 포근한 이미지로 기억에 남았던 반면, 사람과 마주치지 못한 장소는 아스팔트의 차가운 이미지만 남은 것이다.

이처럼 서대문 형무소도 마찬가지였다. 예전에 왔을 땐 이곳에서 사람을 발견하지 못해, 사람의 이야기를 듣질 못해 ‘나와는 상관없는 과거의 장소’에 불과했었다. 하지만 이번에 돌아보며 옥고를 치렀던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니 ‘나와 관련 있는 오래된 미래의 장소’라 느끼게 되었다.



2.jpg ▲ 서대문 형무소의 구조는 이렇게 생겼다.






목차


. 여는 글: 과거를 오래된 미래로 만드는 방법

볼거리는 많지만, 억지 비감을 강요하다

차가운 콘크리트 건물 안에 어떻게 따뜻한 인간미를 채워 넣을 것인가


. 서대문 형무소와 독립 선언

조금은 특이한 강화도조약 제1조

서대문 형무소가 보여주는 조선 독립의 실체

서대문 형무소는 왜 의주로에 만들어졌나?


. 차가운 형무소 안엔 따뜻한 사람이 있었다

서대문 형무소보단 『남영동 1985』

『남영동 1985』보단 서대문 형무소

서대문에서 만난 리영희 선생님 1 – 상위 10%를 위한 나라

서대문에서 만난 리영희 선생님 2 – 상위 10%를 위한 나라에서 살아남기

서대문에서 만난 리영희 선생님 3 – ‘낙오자’라는 화두 받아들이기


. 닫는 글: 역사를 기억으로 남게 하는 법

정체성은 무엇으로 보장되는가?

역사가 추억으로 밀려나느냐, 기억으로 계승되느냐의 갈림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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