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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Jan 18. 2016

전주의 맛을 먹다

제14회 전주국제영화제 여행기 4

한옥마을의 은행나무길을 걷다보면, 낯선 모양의 건물이 나온다.                



한옥마을에 있는 전혀 한옥스럽지 않은 가게이름과 모양을 가진 레스토랑.




Cafe 76-11 

    

분명히 지붕은 한옥인데, 건물은 나무를 덧대어 전원주택 같은 분위기가 난다. 그런데 더욱 특이한 것은 이곳의 이름이다. 한옥마을이라는 정체성에 맞게 한국적인 이름을 지을 수도 있었을 텐데, 버젓이 영어로 이름을 지었으며 의미 또한 알 수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예전에 이곳을 지나다닐 때 가게 이름이나 건물의 모습을 보고 ‘한옥마을의 정체성과 맞지 않다’며 못마땅해 하기도 했었다.

그랬던 이곳에서 밥을 먹게 될 줄이야. 이건 전혀 꿈도 꾸지 못했던 일이다. 아마 누군가가 초대하지 않았다면 이곳을 들어올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외지 학생들이 영화제에 참석하겠다고 하자 ‘전주시 영화영상산업과’에서 적극적으로 도와주게 되어 이곳에서 밥을 먹게 된 것이다. 좋은 음식을 대접해주고 위에서 얘기했던 부채 만들기 체험 기회를 준 전주시청 관계자에게 다시 한 번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우리는 이탈리아 돈가스(이하 이돈)를 시켰다. 이미 카페 안은 사람이 가득차서 시끌벅적 했다. 하지만 우리의 자리는 예약되어 있었기에 기다리지 않고 자리에 바로 앉을 수 있었다. 돈가스가 나오기 전에 나온 샐러드는 푸짐했으며 이돈도 맛있었다. 그런데 백미는 따로 있었다. 보통은 그냥 맨밥이 나오게 마련이지만, 이곳은 해물이 잔뜩 들어 있으며 적당히 간이 밴 볶음밥이 나왔기 때문이다. 식욕을 북돋는 볶음밥을 먹으며 이돈까지 먹으니, 원래 갖고 있던 나쁜 인상도 눈 녹듯 녹아 내렸다. 또한 이날 비가 내리는 날씨 덕에 비로 물든 한옥마을의 거리를 내다보며 운치 있는 점심 식사를 할 수 있어 더욱 좋았다.

한옥마을의 분위기를 만끽하면서 여유롭게 식사를 하고 싶다면, 이곳에 예약하고 점심을 느긋하게 먹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렇게 맛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기회를 준 전주시청 관계자와 허정님에게 감사를^^



돈가스 추천- ‘돈가스닷컴’은 전주에서만 맛볼 수 있는 돈가스집이다. 터미널이나 한옥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게 흠이지만, 특별하게 스프가 아닌 깨죽이나 호박죽이 나오며 돈가스와 함께 미역국을 준다. 돈가스 가격도 6~8천원대로 부담 없는 가격에 특별한 맛을 느끼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분위기는 이렇고 미역국도 충격이긴 하지만 막상 가보면, 괜찮은 곳이라 느낄 것이다^^




엄마손 해장국

     

피순대의 맛을 보고 싶다면, 남부시장에 가야 한다. 이곳엔 피순대의 맛을 볼 수 있는 곳이 많은데, ‘조점례남문피순대(이하 조점례)’집은 여러 방송을 통해 홍보되고 여러 사람들의 블로그를 통해 알려진 덕인지, 조점례에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다. 홀이 엄청 넓음에도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밥을 먹어야 할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난 그런 번잡함도 싫고 예전부터 단골로 갔던 곳이라 ‘엄마손 해장국(이하 엄마손)’으로 간다.

두 음식점의 순대국밥과 피순대를 먹어보면, 왜 ‘조점례’에만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나의 주관적인 미감으로 판단해 봤을 때, 순대국밥은 엄마손이, 피순대는 조점례가 낫다. 조점례의 순대국밥은 엄마손의 순대국밥에 비해 조미료맛이 심하게 나며 조금 밋밋하다. 그러나 조점례의 피순대는 엄마손의 피순대에 비해 부드럽고 잡냄새가 덜 나서, 피순대를 처음 먹는 사람도 부담 없이 당면순대와는 다른 피순대의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 여기에 덧붙여 조점례엔 사람들이 북적북적 붐벼 느긋하게 담소를 나누며 먹을 수 없다는 단점도 있다. 사람에게 쫓기듯 밥을 먹어야 하니 말이다. 선택이야 나름이지만, 전주에서 순대국밥을 먹고자 한다면 ‘엄마손’에 가길 권한다(1년 전 전주음식기록 보기).                



피순대는 호불호가 있지만, 그래도 먹어볼만 하다.




베테랑 칼국수

     

칼국수가 특별한 음식이 되리라곤 생각도 못했다. 더욱이 ‘베테랑 칼국수’집이 이렇게 유명해지리라곤 더욱 더 생각하지 못했다. 예전엔 성심여중고에 다니던 학생들이 다니던 분식집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그 땐 여느 학교 앞에 있는 분식집처럼 고소한 칼국수를 싼 값에 푸짐하게 먹을 수 있어서 인기가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지금은 절대적인 지지자였던 여중고 학생들의 모습을 찾기 힘들다. 한옥마을이 유명해지면서 사시장철 관광객들로 북적이게 되었고 그런 만큼 칼국수도 비싸졌기 때문이다. 비싼 가격과 북적이는 관광객으로 여유와 낭만이 없는 공간이 되면서 더 이상 학생들이 찾지 않게 되었다. 유명해지는 만큼 최초의 단골손님과 멀어진다는 것이야말로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개발되면 원주민들은 쫓겨나는 것처럼 말이다.

이와 같은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칼국수가 나왔다. 이곳 칼국수는 고소하면서도 짭조름한 맛이 일품이다. 한 그릇 가득 나오는 푸짐한 양도 허기를 채우기에 부족함이 없다. 물만두는 특별할 것이 없지만 칼국수와 함께 먹으면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 정신없이 빨리 먹고 나와야 한다. 색다른 칼국수를 먹고 싶어서 찾을 수는 있겠지만,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며 먹고 싶은 사람에겐 추천하지 않는 장소다.      



고소하고 양도 많다. 하지만 예전 인심만 못한 게 사실이다. 그게 아쉬울 뿐.



소바, 콩국수집 추천- ‘진미집’은 40년 전통의 집이다. 그만큼 양도 많이 주며 콩국수의 시원한 맛이 일품인 집이다. 남부시장 근처에 있기에 한옥마을을 찾는다면 걸어갈 수 있는 집이기도 하다.      

중화요리집 추천- ‘교동집’은 내가 어렸을 때 할머니의 하해와 같은 은덕(?)으로 특별한 날 짜장을 먹던 곳이다. 이렇게만 말하면 ‘어렸을 때 향수 때문에 추천하나 보다’라고 생각할 테지만, 분명히 지금까지 이렇게 번성하게 된 데엔 비결이 있다. 지금은 물짜장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난 그냥 기본이 되는 짜장이나 짬뽕도 맛있다고 생각한다.                




풍년제과 1 - 대기업 빵집 속의 명맥을 잇는 빵집

     

각 지역을 대표하는 빵집이 하나씩은 있게 마련이다. 전북에는 최초의 빵집으로 유명한 군산의 ‘이성당’과 초코파이와 센베 과자로 유명한 전주의 ‘풍년제과’가 있다. 솔직히 고백하지만, 전주에 있을 때엔 풍년제과에 와서 빵을 사먹지 않았다. 그냥 시내 한 복판에 있던 빵집이라 지나다니며 보는 정도였지, 왜 인기가 있는지, 왜 사람들이 많은지 관심이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단순히 시내에 있는 ‘풍년제과’로만 보이지 않는 게 사실이다. 두 대기업 빵집이 골목골목을 휩쓸면서 지역을 대표하는 빵집들도 서서히 문을 닫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처음엔 동일한 메이커의 빵집이 많아져 적립도 할 수 있고 표준화된 맛을 볼 수 있어 좋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게 얼마나 무서운 획일화인지 알게 됐다. 다양한 빵집이 많을수록, 자신에 맞는 다양한 빵을 먹을 수 있고, 그 빵집이 특색으로 내세우는 새로운 빵을 먹을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하기 때문이다.

풍년제과가 유명세를 다시 타게 된 데엔, 센베와 쵸코파이의 덕이 컸다. 3대째 이어 내려오며 일본의 정통 기법을 살리기 위해 기계를 직접 구입하여 센베를 만든다고 한다. 센베를 안 좋아하기에 먹을 생각은 없었지만, 센베 과자만으로도 빵집이 운영된다고 하니 신기할 뿐이다.                



센베가 풍년제과의 원조라 할 수 있다.




풍년제과 2 - 전주에서만 맛볼 수 있는 그 맛

     

처음으로 쵸코파이를 먹어봤다. 하나의 가격은 1600원. 결코 싼 가격은 아니다. 과연 가격에 걸맞은 맛일까? 맛은 괜찮았다. 情으로 유명한 초코파이와 비교하자면, 빵은 더욱 부드러우며 빵과 빵 사이에 마시멜로우가 아닌 생크림과 딸기쨈이 적당한 비율로 섞여 있어 달지만은 않아 입맛이 핑 돈다. 빵의 크기도 정의 초코파이와 비교하면 두 배 정도 되니, 간단히 요기를 하기에도 부족함이 없다.

실제로 영화팀 친구들도 두 개씩 사서 먹었는데, 꽤 맛이 괜찮았던지 가족에게 준다며 3~4개를 더 사기도 했다. 맛이 없었다면 한 번 맛만 보고 말았을 텐데, 이 광경이야말로 ‘전주에 오면 풍년제과에서 쵸코파이는 한 번 먹어볼 필요가 있다’는 걸 알려주는 예이지 않을까.               



좌: 진짜 풍년제과, 우: 난 데 없이 나타난 풍년제과 / 알기론 가족끼리의 다툼이라 하지만, 어느 곳을 택할지는 각자의 몫.




청라회관 1 - 비빔밥의 유래와 철학 

    

전주하면 비빔밥, 비빔밥하면 전주가 떠오른다. 왜 ‘전주비빔밥’이 유명해진지는 알 수 없다. 그냥 내 생각을 덧붙이자면, 전주는 거대한 호남평야를 끼고 있는 곳이라 먹을거리가 풍부했다. 그러다 보면, 당연히 많은 음식들이 남을 것이고 그걸 처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게 비빔밥이 아닐까 싶다.

비빔밥은 네 가지 유래설이 있다고 있다. 첫째는 농경문화 유래설이다. 새참을 내갈 때 각 반찬 그릇을 모두 가져갈 수 없기 때문에 한 그릇에 반찬들을 담아 내갔고 그때 고추장에 비벼 먹었다는 것이다. 둘째는 제사유래설이다. 야외제사를 지낼 때 음복하기 위해 하나의 그릇에 음식을 모조리 담아 먹었다는 것이다. 셋째는 세시풍속 유래설이다. 겨울을 이겨낸 식물들엔 강인한 기운이 담겨있게 마련이다. 움파(움 속에서 겨울을 난 누런빛의 파), 산갓, 당귀, 미나리 싹, 무 싹 등의 오신채五辛菜를 밥 위에 얹어 먹는 풍속이 비빔밥으로 전해졌다는 것이다. 넷째는 궁중유래설이다. 조선시대에 하필 음식이 떨어질 때쯤 찾아온 손님을 위해 임시방편으로 밥 위에 남은 반찬을 얹어주었다고 한다.

이런 유래설과 더불어 비빔밥에 얹어진 나물들의 색깔이 철학적인 색채를 띠고 있다고 한다. 비빔밥엔 오방색(다섯 방위를 색으로 표현한 것으로, 우주의 기운이 들어있다고 동양인들은 생각함)이 곁들어져 단순히 밥을 먹어 배를 채운다는 게 아니라, 우주의 기운을 받아들인다는 의미까지 부여한 것이다. 조선은 하나의 거대한 철학적인 배경 위에 건설된 나라인데 건축물 뿐만 아니라 비빔밥이란 음식에도 이런 철학적인 배경이 곁들여 있다고 하니 조선의 멋과 풍류를 알만하다.                



비빔밥은 자연이다. 그리고 철학이다. 비빔밥을 먹는다는 건, 자연과 철학을 먹는 거다.




청라회관 2 - 비빔밥 가격에 관해 

    

하지만 이런 유래나 철학과는 반대로 지금 전주비빔밥은 기로에 서있는 게 분명하다. 유명세를 타고 가격이 천정부지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만원을 훌쩍 넘는 가격을 치르고 비빔밥을 먹어야 한다. 전주비빔밥이란 유명세가 있기 때문에 한 번 먹어볼 수는 있겠지만, 두 번 다시 먹을 일이 없다는 게 문제다. 그만큼 전주비빔밥의 전망은 밝지 않다는 이야기다.

물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더라도 5000원 이상을 내야 한다. 그건 당연시하면서 비빔밥 가격만 가지고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다. 비빔밥은 싱싱한 나물을 깨끗한 물에 적당히 데쳐야 하기에, 그만큼 좋은 재료를 선별하여 정성을 듬뿍 담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비빔밥은 ‘남은 반찬을 없애기 위해 적당히 비벼먹는 음식’이라는 인식이 있는 한, 비빔밥에 대한 가격 논쟁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건 곧 전주비빔밥이 그만큼 유명하다는 반증이기도 하지만, 그 유명세에만 의존할 경우 영영 전주비빔밥을 찾는 사람은 없어질 수도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괜찮은 가격에 전주비빔밥을 먹을 수 있어서 좋다.




청라회관 3 - 합리적인 비빔밥집

     

그런 이유 때문에 이번에 우리가 찾은 곳은 ‘가격이 적당한 비빔밥집’이었다. 분위기나 깨끗한 곳만을 선호하지 않고, 나름의 맛과 합리적인 가격인 곳을 찾은 것이다.

전주시청 근처에 있는 청라회관은 바로 그런 곳이다. 이곳에서 우리가 먹은 비빔밥은 육회비빔밥이었다. 이미 작년에 꽤 유명한 비빔밥집인 ‘고궁’에서 전주비빔밥을 먹은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번에는 육회비빔밥을 먹으러 찾아온 것이다. 비빔밥 전문 식당은 아니기에 분위기는 대체로 산만하고 식당의 인테리어가 깨끗하진 않았지만 저렴한 가격에 육회비빔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다. 그리고 육회비빔밥도 맛있었다. 나물의 간도, 고추장의 양도 적절했고 거기에 육회까지 듬뿍 들어있으니, 씹으면 씹을수록 감칠맛이 났다(2015년엔 백송회관 비빔밥을 먹었다. 가격도 맛도 합리적이며 육회도 맛보기로 깔아줘서 맘에 들던 곳이다).



이제 전주여행도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다. 역사를 향해 내딛는 걸음들.            






목차     


1. 영화

개막식 전경

폭스파이어 1 - 대략적인 내용

폭스파이어 2 - 역사적인 아이인 「폭스파이어」와 영원한 아이인 「써니」

폭스파이어 3 - 너의 인식이 비뚤어졌나? 나의 행동이 비뚤어졌나?     


2. 영화

행복한 시한부 인생 - 평행선의 마주침을 그리는 로드무비

샤히드 1 - 할리우드, 발리우드, 코리우드?

샤히드 2 - 변태의 장소, 감옥

샤히드 3 - 정 맞는 국가권력에 맞선 자

샤히드 4 - 규정된 시대에 살기 or 시대를 규정하며 살기     


3.

부채박물관 1 - 단오와 부채의 관계

부채박물관 2 - 부채에 자신을 남기다

오목대 - 이성계의 흥취를 공유하다

풍남문 - 오래된 미래를 지키려는 노력

전동성당 -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본다

전주와 완주의 통합에 대한 견해 - 見小利則大事不成     


4.

Cafe 76-11 (돈가스닷컴)

엄마손 해장국

베테랑 칼국수 (진미집, 교동집)

풍년제과 1 - 대기업 빵집 속의 명맥을 잇는 빵집

풍년제과 2 - 전주에서만 맛볼 수 있는 그 맛

청라회관 1 - 비빔밥의 유래와 철학

청라회관 2 - 비빔밥 가격에 관해

청라회관 3 - 합리적인 비빔밥집     


5. 맺음말- 떠나야 비로소 깨닫는 것

파랑새는 가까이에 있다?

파랑새는 없다?

당연한 것에 대한 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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