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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Jan 18. 2016

전주의 멋을 보다

제14회 전주국제영화제 여행기 3

전주가 비빔밥으로 유명한 것이야 지나가는 개도 알 테지만, 부채로 유명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물론 전주에서 30년을 살아온 나로서도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전라감영 내에 선자청이 있는 게 보인다.




부채박물관 1 - 단오와 부채의 관계

     

전주에서 부채가 유명해진 이유는 대나무가 많이 나며, 질 좋은 한지가 생산되는 곳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전라감영(전라도의 행정을 총괄하던 관청)에 선자청扇子廳을 두어 부채를 만들었고 이렇게 만들어진 부채들은 단오날에 임금에게 진상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단오날에 하필 부채를 진상하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당연히 뒤따른다. 여기엔 조상들의 생활상이 숨어있다. 옛문헌인 『열양세시기』, 『동국세시기』 등을 살펴보면 ‘하선동력夏扇冬曆’이라 하여 ‘단오에는 부채를 주고, 동지에는 책력(달력)을 준다’라고 되어 있다. 단오는 음력 3월 3일, 5월 5일, 6월 6일과 같이 일과 월이 겹치는 날로 길일吉日임과 동시에 양기가 가장 충만하여 최고의 날로 쳐왔다고 한다. 그래서 부채를 왕에게 진상하면 왕은 그 부채를 대신들에게 하사하는데, 하사한 부채에는 금강산의 1만 2천봉이 그려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공조와 호남, 영남의 두 감영 및 통제영에서는 단오가 되면 부채를 만들어 진상하였고 조정의  시종관 이상과 삼영(훈련도감, 금위영, 어영청 및 삼군문을 말함)에까지 모두 예에 따라 차등 있게 받는다. 그러면 부채를 얻은 사람은 다시 그것을 자기의 친척, 친구, 묘지기, 전잭(소작인)에게 나누어준다. 그러므로 ‘시골에서 생색내는 것은 여름에는 부채요, 겨울에는 달력이다’라는 속담이 생겼다. 『열양세시기』 「단오」

工曹及湖南嶺南二監營及統制營, 趂端午, 造扇進御. 朝廷侍從以上三營, 皆例餉有差. 得扇者又以分之親戚知舊塚人佃客. 故諺曰‘鄕中生色夏扇冬曆’.  『洌陽歲時記』 「端午」   


       

이와 같은 의미를 지닌 부채를 전라감영에서 직접 만들었다고 하니, ‘전주=부채의 도시’라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 같다.    



부채는 시원한 바람을 일으키는 도구인 줄만 알았는데 다양한 부채를 보며 또 하나 배웠다.



            

부채박물관 2 - 부채에 자신을 남기다   

  

부채만들기를 체험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비용이 있지만, 전주시청의 도움으로 무료로 할 수 있었다. 체험은 이미 만들어진 부채의 표면에 그림이나 글귀를 남기는 것이다.

선조들에게 있어서 부채는 단순히 바람을 일으키는 도구만은 아니었다. 지금의 명품 핸드백에 버금갈 정도로 신분을 드러내는 ‘문화적 도구’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부채의 표면에 어떤 글귀를 쓰고, 어떤 그림을 그리느냐 하는 것이 중요했던 것이다. 그게 바로 자신의 신분이나 사상을 우회적으로 드러내는 ‘증표’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 부채의 의미 때문에 영화팀이 경험한 것은 단순히 부채표면에 그림을 그리는 행위만은 아니었다. 그건 나를 드러낼 ‘상징’을 만드는 간접체험이었던 것이다. 영화팀 개개인이 만든 작품엔, 바로 그 사람이 들어있었다.



이렇게 몰입하여 하는 모습은 간만이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만든다. 신기 신기~



               

오목대 - 이성계의 흥취를 공유하다     


전주에는 누각들이 많다. 그냥 하릴 없이 있고 싶을 때 이런 곳에 가서 바람을 쐬어도 좋다.

오목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려말 무신이며 조선의 태조인 이성계를 알아야 한다.

조선이란 나라가 만들어지기 전인 고려말에 이성계는 남원 일대에서 왜구인 아지발도阿只拔道의 무리를 정벌하고 전주로 돌아와 바로 이곳, 오목대에서 잔치를 열며 대풍가大風歌를 불러 재꼈다고 한다. 대풍가는 시골출신인 유방劉邦이 명문가출신인 항우項羽를 물리치고 한나라를 세워 영포의 반란까지 진압한 후에 고향인 풍패(전주객사의 현판에 쓰여 있는 ‘풍패지관豊沛之館’이란 말도 ‘한나라 태조인 유방의 집’이란 뜻으로 일반적으로 하나의 나라를 창업한 사람의 고향을 일컫는 말로 쓰였음)에 들러 읊은 노래다.



전주객사 현판엔 '풍패지관'이라 쓰여 있다.



그렇다면 이성계는 대풍가를 불러재낀 이 때부터 조선이란 나라를 창업할 마음이 있었던 게 아닐까. 위화도 회군의 싹은 아마 이 때부터 싹트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지금의 오목대는 전주한옥마을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명소로 사람들이 많이 찾고 있다. 대사습놀이가 열릴 때엔 판소리 공연장소로도 활용된다. 그때에 오목대에 오른다면 이성계가 대풍가를 부르며 느꼈을 법한 흥취와 가슴 벅참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바람 쐬며 역사를 만끽하고 떠난다. 오목대여 잘 있으라.



청연루는 남천교를 증축하면서 최근에야 만들어진 다리 위에 세워진 누각이다. 전주천의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작년에 이곳에서 영화팀은 승빈이가 산 과자를 나눠 먹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한 번 앉았다 가는 정도 스쳐지나갔다.               



남천교의 누각인 청연루에 앉으면 천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만끽할 수 있다.




풍남문 - 오래된 미래를 지키려는 노력  

   

전주읍성의 남쪽 문이다. 서울의 남문과 같은 의미다(2008년 화마에 휩쓸린 숭례문이 2013년 5월에 개방된다고 함). 당연하겠지만, 규모의 차이는 있다. 영조 때는 명견루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고 하지만, 불에 탄 누각을 영조 44년에 다시 지으며 지금의 이름인 ‘풍남문’으로 불렀다고 한다. 지금의 풍남문은 순종 때 도시계획에 따라 성벽과 성문이 많이 훼손된 것을 1978년에 보수하여 조금이라도 원형에 가까운 모습을 되찾은 것이라 한다.

개발논리에 의해 과거는 사라지고, 관광산업이나 전통을 지키자는 논리에 의해 과거가 복구되는 기싸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사대강 공사도 새만금 공사, 청계천 복구도 바로 이런 논리에 의한 싸움의 한 단면이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개발논리가 이겨서 본래의 모습이 많이 훼손되었지만, 개발논리가 커지면 커질수록 원형보존에 대한 절실함도 당연히 커진다. 그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과거를 발전적으로 계승하는 일일 것이다.

과거를 거부하며 발전한 나라나 개인은 얼마 가지 않아 뼈저린 패착에 빠질 수밖에 없다. 과거 또한 나의 살아 숨 쉰 흔적이기에, 나의 한계와 가능성 그 모든 게 응축되어 있게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는 망각해야 하는 것이 아닌, 안고 가야 하는 것이다. 그럴 때 미래로 박차고 나갈 추진력이 생긴다. 그게 어찌 한 개인만의 이야기이겠는가. 그건 역사를 안고 있는 모든 것들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과거 또한 나의 살아 숨쉰 이야기다. 그게 좋은 것이든, 그렇지 않든 말이다.




전동성당 -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본다

     

전동성당과 경기전에 대해서는 작년 영화제 후기 때 쓴 글이 있기 때문에 전동성당의 역사를 알고 싶은 사람은 그 글을 보면 된다.

전동성당을 볼 때, 변하지 않는 것의 소중함을 느낀다. 빠르게 변해가고, 빠르게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는 압박이 있는 현시대에 경종과도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전동성당은 나에게 “빠른 것만을 추구하는 현시대의 패러다임도 수많은 패러다임의 일부일 뿐이야. 그런 패러다임을 절대적인 진리인양 받아들이며 그렇게 살아갈 필요는 없어.”라고 이야기를 던져 주는 것만 같다.

언젠가 준규쌤이 “과학도 하나의 이야기일 뿐이예요.”라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우린 과학의 눈으로 세상을 보며 세상을 완벽하게 이해했다고 생각할 테지만, 과학도 하나의 이야기에 불과하다면 이 세상을 해석하고 바라보고 이해하는 것도 각자의 개성만큼 다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건 곧 천동설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과 지동설을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같은 세상에 살았으면서도 전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것과 같다는 얘기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 주류적인 관점이 있고 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음을 되짚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가장 무서운 이야기 중 하나는 “난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은 객관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이야.”라는 말일 것이다. 그 사람의 그런 말이야말로 얼마나 자신을 기만하며 다른 사람을 농락하는지 모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주류적 관점만이 진리인양 유포되는 획일화된 사회’가 될 수밖에 없다.



세월이 흘러도 그 자리에 변함없이 있는 그래서 소중한 전동성당



               

전주와 완주의 통합에 대한 견해 - 見小利則大事不成

     

올 6월에 전주시민과 완주군민의 주민투표를 통해 전주-완주의 통합 여부를 결정한다고 한다. 전주와 완주는 조선시대만 해도 하나의 행정구역이었는데,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나누어졌다고 한다. 이런 얘기만 듣고 보면, 전주와 완주를 통합하는 것은 당연한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후로 100년 정도의 시간이 흐르며 전주와 완주는 전혀 다른 발전 방향으로 나갔다. 전주는 산업, 상업의 도시 행정 중심으로, 완주는 농업의 농촌 행정 중심으로 나아간 것이다.

전주에서 내세우는 논리는 ‘광역시를 만들자’는 것이다. 전북엔 광역시가 없다 보니 개발에서도 많이 소외됐고, 심지어 광주의 하위 도시로 전락했다는 원성이 자자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기회에 완주를 통합하여 광역시가 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자는 논리다. 일면 그럴 듯한 내용이다.

하지만 완주의 입장에서 보면 별로 좋을 게 없다. 완주군민을 위한 행정을 할 수 있는 군청 등이 사라지고 전주시의 하위 구(지금 전주시는 두 개의 구가 있지만, 통합될 경우 네 개의 구를 신설할 걸 안행부에 4월 17일에 요청했음)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옥구군과 군산시가 통합될 때, 군산시는 옥구군 일대가 개발될 수 있다는 논리를 들었다. 하지만 실제적으로 옥구군민이 누린 혜택이란 버스요금이 단일화 됐다는 것 외엔 없었다. 시가 된 탓에 세금은 올랐고 시내 중심지역의 개발 탓에 옥구군 일대는 개발에서 제외되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이 작고 볼품없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살고 있는 큰 집에 들어가서 살고 싶은 사람은 없다. 아무리 큰 집 주인이 “자기 집처럼 편하게 사세요”라고 할지라도 찬밥 신세가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광역시가 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는 것은 좋지만, 그게 공동체의 해체를 낳고 지역 불균형을 가속화시키는 것이라면 하지 않는 것만 못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전주-완주의 통합은 ‘완주군민을 위한 청사진이 수립되고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을 확실히 한 후에야 가능할 것이다.



지금 전주-완주의 이슈는 통합문제다. 과연 어찌 풀릴 것인가?






목차     


1. 영화

개막식 전경

폭스파이어 1 - 대략적인 내용

폭스파이어 2 - 역사적인 아이인 「폭스파이어」와 영원한 아이인 「써니」

폭스파이어 3 - 너의 인식이 비뚤어졌나? 나의 행동이 비뚤어졌나?     


2. 영화

행복한 시한부 인생 - 평행선의 마주침을 그리는 로드무비

샤히드 1 - 할리우드, 발리우드, 코리우드?

샤히드 2 - 변태의 장소, 감옥

샤히드 3 - 정 맞는 국가권력에 맞선 자

샤히드 4 - 규정된 시대에 살기 or 시대를 규정하며 살기     


3.

부채박물관 1 - 단오와 부채의 관계

부채박물관 2 - 부채에 자신을 남기다

오목대 - 이성계의 흥취를 공유하다

풍남문 - 오래된 미래를 지키려는 노력

전동성당 -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본다

전주와 완주의 통합에 대한 견해 - 見小利則大事不成     


4.

Cafe 76-11 (돈가스닷컴)

엄마손 해장국

베테랑 칼국수 (진미집, 교동집)

풍년제과 1 - 대기업 빵집 속의 명맥을 잇는 빵집

풍년제과 2 - 전주에서만 맛볼 수 있는 그 맛

청라회관 1 - 비빔밥의 유래와 철학

청라회관 2 - 비빔밥 가격에 관해

청라회관 3 - 합리적인 비빔밥집     


5. 맺음말- 떠나야 비로소 깨닫는 것

파랑새는 가까이에 있다?

파랑새는 없다?

당연한 것에 대한 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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