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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Jan 18. 2016

전주의 아름다움

제13회 전주국제영화제 후기 3

첫 날 <구름 위에서>라는 영화를 보고 우린 하릴 없이 전주를 거닐기로 했다. 카페에 들어가 아이스크림을 먹고 객사에 앉아 봄기운을 만끽했다. 난 이런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길 원했는데, 아이들은 이런 시간에 익숙지 않나 보다.                



객사에서 손님이라도 된양, 한껏 여유를 부린다.




아무 것도 안 할 자유! 

    

이럴 땐 어릴 적 내 모습이 떠오른다. 학교가 끝난 후 집에 들어오면 방은 고요했다. 어머니는 일을 나가셨기에 방엔 나 혼자 덩그러니 남아 있다. 냉장고에서 깻잎을 꺼내어 밥을 먹고 배를 깔고 방에 눕는다. 숙제를 하기 위해서다. 슥삭슥삭 숙제를 하다 보면, 어느새 방안 가득 햇살이 들어온다. 몸을 고이 감싸는 햇살의 포근함에 서서히 잠이 온다. 그러면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한숨 자고 일어나 저물어 가는 해를 하릴없이 바라보며 저녁을 맞이하곤 했다.

그 때의 내 모습을 보면 시간을 허비한다고 혀를 끌끌 차는 사람도 있을 거다. 하지만 그 때야말로 온갖 상상의 나래를 활짝 펴며 가슴 속에 웅성거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던 순간이었다.           



공부시간에

창밖을 보다가

꾸중을 들었다.

아이들이 깔깔대고 웃었지만

아무도 모른다.

나팔꽃 고운 꽃술에

꿀벌 한 마리 몰래

입 맞추고 간 사실은                                「몰래 혼자만」 김재수   


       

나 혼자만 느끼고 나 혼자만 알던 순간들을 그 때 경험할 수 있었다. 이런 경험 때문인지 우리 단재친구들도 바로 이와 같은 평온한 일상을 맘껏 느끼길 바랐던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못 견뎌 하더라. 뭔가가 불안한 것인가? 아니면 그럴 만한 여유가 없는 걸까? 그래서 예정에 없던 전주천을 걷기로 했다.



               

왠지 거인을 등지고 선 것 같은 느낌이랄까^^ 잘 나왔다.




천을 걸으며 자연을 맛보다

     

전주천을 걷는다. 늘 걸어 다녔던 이 길이, 이 녀석들과 함께 걸으니 기분이 색다르다. 역시 같은 공간도 누군가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느껴진다. 같이 거닐며 그네도 타고, 운동기구도 타며 놀았다. 이럴 때보면 우린 천상 아이들일 뿐이다. 서로 신나서 뛰어다니고 하늘 가까이 가기 위해 열심히 그네를 힘주어 타고 있으니.        



전주천을 따라 한벽루까지 갔다가 왔다.



건빵의 생쑈!



        

남천교 위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자유를 얻다  

   

새롭게 만들어진 남천교엔 누각이 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지만, 우리도 남천교에 누워 시간을 보냈다. 객사에선 되지 않던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자유’가 여기에선 웬만큼 되었다. 다리를 쭉 펴고 누워 있기도 했고, 승빈이가 사온 과자를 함께 나누어 먹기도 했다. 과자 하나가 사라지는 건 순식간이었지만, 화기애애한 이런 모습은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순간이었다.                



남천교에 올라 한껏 멋도 부려 본다.




전주한옥마을, 과거가 머문 공간을 걷다 

    

한옥마을엔 특이한 점이 있다. 경기전과 전동성당이 붙어있다는 사실이다.

경기전은 조선이란 나라의 상징성을 지닌 건물이고 전동성당은 서양문물이 유입되었음을 나타내주는 상징성이 있는 건물이다. 그러니 당연히 두 건축물이 바로 옆에 있는 건 어색한 일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던 것일까?



한옥양식과 고딕양식의 조화. 이 어색함이 절묘한 멋이 된다.



조선은 유교만을 숭상하는 나라로 불교 뿐 아니라 천주교에 대해서도 가혹한 탄압을 했다. 실제로 정조의 시대가 끝나자 정조의 비호를 받으며 성장했던 남인 세력은 ‘신유박해’라는 천주교 탄압을 당한다. 이 때문에 정약용은 강진으로 유배될 수밖에 없었고 그런 비운의 역사 덕(?)에 오백 권 이상의 저서를 남길 수 있었던 것이다.

천주교 탄압은 전주라고 예외일 순 없었다. 아니 오히려 더 가혹했을 것이다. 지금의 전동성당 자리가 천주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수많은 사람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곳이다. 서울의 절두산, 전주의 치명자산도 이런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미 절두切頭(머리를 자르다)라는 단어와 치명자致命者(목숨을 바친 사람)라는 단어엔 순교의 의미가 들어 있다. 그런 단어가 산 이름이 되었으니, 이것이야말로 종교의 힘이리라.



[편지]라는 영화로 매우 유명해진 성당이다.



하지만 밟으면 밟을수록 뿌리내리는 잡초처럼 종교의 생명력도 탄압받으면 받을수록 더욱 단합되고 강해진다고 했던가. 그 때문에 1914년에 보드네 신부는 순교지였던 이곳에 전동성당을 세웠다고 한다. 핍박의 상처가 상징성이 되어 천주교를 퍼뜨리는 구심점이 되었으니, 이것이야말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까.

전동성당은 호남에서 최초의 세워진 근대식 건축물이라는 의미가 있다. 이외에도 건축물 자체가 작고 아담하며 서양 건축양식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이색적인 느낌 때문에 영화 촬영장소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 단재 친구들도 전동성당의 모습을 보고 한 눈에 반해 몇 번이고 둘러봤다.



홍살문을 통과해서 정전으로 들어가고 있는 단재 친구들



경기전은 태조 이성계의 어진이 봉안된 곳이다. 이씨 조선(이런 명칭을 좋아하진 않는다. 수많은 민초들의 모습은 묻히고 왕의 모습만 남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기전 자체가 이성계의 핏줄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기에 쓴다.)의 상징성이 있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어진을 보기 위해선 홍살문과 외삼문, 그리고 내삼문 총 세 개의 문을 통과해야 한다. 그런데 주의 깊게 바라봐야 할 것은 외삼문부터 어진이 모셔진 경기전 정전까지는 사람이 걸어갈 수 없는 ‘신도神道’가 있다는 것이다. 신도는 신들이 다니는 길로, 당연히 사람이 걸어다녀서는 안 된다.

이성계의 어진을 보고 경기전 옆에 있는 사고로 갔다.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조선왕조실록』은 춘추관, 충주, 성주, 전주의 네 곳의 사고에 보관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임란으로 전주사고를 제외한 세 곳의 사고에 있던 실록은 병화로 소실되고 말았다. 전주사고에 있던 유일본 실록이 살아남은 덕에, 현재까지 조선의 역사가 전해질 수 있었고 1997년엔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수 있었다. 물론 지금 남아있는 전주사고의 모습은 복원된 모습에 불과하지만, 그런 역사적인 의미를 알고 본다면 특별하게 보일 것이다.



정전에 걸려 있는 태조의 어진을 보다.






목차     


1. 13회 전주국제영화제: 고향 전주로 여행 가다

고향 전주로 여행을 떠나다

영화는 책이다     


2. 13회 전주국제영화제: 영화편

구름 위에서

남서쪽

원 맨스 워(One Men's War)

나나     


3. 13회 전주국제영화제: 관광편

아무 것도 안 할 자유!

천을 걸으며 자연을 맛보다

남천교 위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자유를 얻다’

전주한옥마을, 과거가 머문 공간을 걷다     


4. 13회 전주국제영화제: 음식편

순대국밥(엄마손 해장국)

콩나물국밥(현대옥)

콩국수(진미집)

비빔밥(고궁)

육개장(복자식당)

냉면(함흥냉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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