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건빵 Jan 18. 2016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본  영화 후기

제13회 전주국제영화제 후기 2

영화제는 내가 대학교 1학년이던 2000년에 시작되었다. 첫 시작은 미약했던 게 생각난다. 그 땐 사람들이 잘 알지도 못했고 나도 친구와 영화를 보러 나왔다가 영화제라는 게 하는 줄 알았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12년이 흐르는 동안 전주영화제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 이런 자리매김이 없었다면, 단재친구들과 4월의 어느 날 전주를 찾을 일은 없었겠지.                





구름 위에서 

 



   

영화를 소개하는 문구가 매력적이어서 고른 영화다.           



상업영화가 시도할 수 없는 주제를 과감히 다루는 일본 독립영화의 새로운 기수 도미타 가츠야 감독. 페드로 코스타 감독이 소형 DV로 찍은 <반다의 방>에서 많은 영감을 얻은 이 8mm 영화는 감독이 트럭운전으로 제작비를 충당해가며 5년여에 걸쳐 만든 영화다. -JIFF 소개 책자에서-  


   

어떤 영화를 만들기 위해 트럭운전으로 제작비를 벌어가며 무려 5년간이나 제작한 영화는 과연 어떤 영화인지 궁금했다.

그건 조선 후기의 사회현상으로 대두된 ‘치’와 ‘벽’같은 느낌을 주었다. 치나 벽은 굳이 일본어로 표현하면 ‘오타쿠おたく’가 될 텐데, 그건 어떤 취미에 몰입하여 하나의 경지에 이른 것을 말한다. 이옥은 담배에 푹 빠져 연경煙經(담배를 체계적으로 연구한 책)이란 색다른 보고서를 썼으며, 이덕무는 책에 푹 빠져 ‘간서치看書癡(책만 보는 바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처럼 『구름 위에서』의 감독도 영화라는 장르에 푹 빠진 것처럼 보였다. 도대체 어떤 매력을 느꼈기에 감독은 힘들게 일하며 긴 시간동안 영화를 만들 수 있었던 걸까?



이덕무의 모습. 그는 서얼 출신이었지만 정조에게 실력을 인정받아 규장작 검서관이 될 수 있었으며, 서적의 편찬 교감에도 참여할 수 있었다.



실제로 8mm 영화는 큰 화면으로 보기에는 흐릿하게 보일 정도로 화질이 좋지 않았다. 처음엔 인물조차 구분되지 않을 정도여서 집중이 되질 않았다. 하지만 서서히 그런 화질에 익숙해지고 나니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근데 난 이 영화에서 충격을 받았다. 상업 영화가 지닌 어떤 틀에 박힌 것들이 이 영화에서는 하나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투적인 전개랄지(평이하게 진행되다가 위기를 겪고 눈물 빼게 한 후 결국 승리한다는 영웅소설식 스토리), 자극적인 음악,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장면, 현란한 화면 전환 등 그 어떤 것도 이 영화에는 없었다. 카메라를 한 곳에 고정 시켜 놓고 찍기도 했으며, 음악도 나오는 듯 마는 듯 잔잔했으며 주연 배우들의 개성도 또렷하지 않았다. 지극히 평범하게 보이는 그들의 모습에서 어떤 불쾌감마저 느껴졌다. 이런 느낌은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볼 때마다 매번 느끼는 그런 느낌과 비슷했다. 극사실주의 때문에 오히려 불편함을 느끼게 되는 것 말이다.                




남서쪽 




    

우선 이 영화에 대한 감상평을 보기 전에, 잡지에 실린 글부터 보자.           



여자의 운명에 관한 영화만의 대답을 담은 작품이다. 브라질의 어느 해안 마을에 자리한 여관에서 클라리세란 여자가 아이를 가진 채 죽는다. 산파는 아이를 바다 한가운데에 떠 있는 집에서 키운다. 성장한 아이는 마을 사람들에게 자신을 클라리세로 소개한다. 그곳에서 소녀는 성인이 되고 한 남자의 아이를 가진다. 다시 길을 떠난 여자는 어느새 중년이 되고, 곧 노인이 된다.

이 모든 게 단 하루 동안에 벌어진다. 두 여자의 이야기인 동시에 한 여자의 이야기고, 일생을 그리는 영화인 동시에 아침부터 저녁까지의 하루를 담은 <남서쪽>은 영화만의 시간과 공간을 탐구한다. 영화에서 시간은 편집을 통해 확장될 뿐만 아니라 소녀와 엄마와의 관계, 소녀를 둘러싼 사람들의 말들을 통해 다른 차원에서 흘러가고 또 다른 시간을 상상하게 만들고 있다. 1:3.66비율로 촬영된 영상은 영화의 시간을 다시 공간 속에서 확장시킨다. 압도적으로 넓은 이 영화의 공간에서는 눈 깜빡할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이 영화를 본다는 건, ‘관람’이 아니다. 체험이다.  -『씨네21』소개글 중  


        

이 영화는 산파가 수레를 타고 가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된다. 비 올 듯 구름이 가득 낀 날씨, 바람이 어찌나 많이 불던지 집의 문들이 삐걱거리고 풍차의 날개는 사정없이 돈다. 바람에 풍차가 도는 소리와 문이 삐그덕 거리는 소리는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난 이 영화야말로 수많은 해석이 가능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건 확실히 ‘관람’이 아니라 ‘체험’에 가까웠고 사람의 일생, 특히 여성의 일생이 무엇인지 체험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다. 클라리세는 하루란 시간에 평생을 산다. 하지만 그렇게 성장해 가는 그녀를 주변의 사람들은 이상하게 여기거나 배척하지 않는다. 늘 알던 사람처럼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챙겨주기도 하니 말이다. 영화가 끝나고 감독과 대화하는 시간이 있었지만, 시간이 너무 늦어 그냥 나와야 했다.      



처음 봤을 땐 멘붕에 빠졌다. 그런데 감독의 말을 들으니,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원 맨스 워(One Men's War)  

 



 

이 영화는 기존에 있던 뉴스나 영상들을 짜깁기 하여 만든 영화다. 에른스트 윙거라는 독일의 철학자가 써놓은 글을 나레이션으로 깔며 영상이 나온다.

이 영화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전쟁이란 것이 엄청 잔인하다는 것이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라는 광고 문구가 딱 맞다. 전쟁을 하는 순간, 누구도 왜 싸워야 하는지 모른다. 이미 벌어진 싸움이니 그냥 싸운다는 식이다. 사람들끼리 싸울 때도 마찬가지다. 처음엔 무슨 이유로든 싸우게 됐겠지만, 싸우다보면 어느 순간 그 의미는 온데간데없고 지는 게 쪽팔려 죽도록 싸우게 되니 말이다. 전쟁이든 싸움이든 생각을 멎게 하고 감수성을 무디게 하기에 무서운 것이다.

지금도 북한에서 미사일이라도 쏘아 올릴라 치면, 전쟁이라도 불사해야 한다고 목청 높이는 부류들이 있다. 하지만 그들이 진정 전쟁이 어떤 의미인지 알기나 할까. 그리고 과연 그들은 전쟁이 나면 선두에 설까? 모르긴 몰라도 그들 대부분은 우연히(?)도 병역면제를 받았을 것이며, 전쟁이 나면 제일 먼저 다른 나라로 내뺄 것이다. 그렇기에 전쟁이 나면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사람들은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소시민들이고, 군대에 끌려가야만 하는 힘없는 사람들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영화는 그 끔찍한 참상을 영상으로 보여준다.               



전쟁은 어떤 이유로든 정당화 될 수 없다.




나나




     

대환이가 선택한 영화다. 무슨 내용인지 모르고 봤지만, 영화제에서 본 영화 중 가장 만족하며 봤다. 첫 장면부터 충격적이었다. 돼지 한 마리가 막대에 다리가 묶여 막대를 삥삥 돌며, 두 사람은 그 돼지를 감싸고 있다. 그 옆엔 아이들이 그 장면을 구경하고 있다. 곧 한 사람이 돼지 앞에 서더니 머리에 총 한 방을 쏜다. 그 한 방에 돼지는 꼬꾸라지고 경련을 일으킨다. 한참이나 그렇게 심하게 떨던 돼지의 목 부위를 칼로 찌르니 피가 콸콸 쏟아진다. 내가 보기에도 끔찍한 그 장면을 영화 속의 아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보고 있다.

나나는 엄마와 함께 살지만 홀로 놀 때가 많다. 혼자 문제를 풀고 혼자 채점을 하는가 하면, 혼자 옷을 입겠다고 낑낑대기도 한다.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아이가 스테이크를 먹기 위해 칼질을 하는 장면이었다. 낑낑대며 썰어 보지만 썰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엄마는 옆에서 그걸 지켜보기만 할 뿐 간섭을 하거나, 도와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 엄마였으면 바로 직접 잘라줬을 것이고, 아예 처음에 줄 때부터 이미 칼로 잘라 아이 접시에 덜어주지 않았을까.



엄마와의 즐거운 한 때의 모습.



잡지에 소개된 리뷰를 보고 감독과 이야기 나눈 이야기를 듣기로 하자.           



<나나>는 아이의 본질에 대한 실험보고서다. 영화가 시작하면 이제 갓 4살 된 여자아이인 나나가 돼지가 도축당하는 광경을 보고 있다. 나나는 할아버지와 함께 숲속에서 덫을 놓아보기도 하고, 새끼 돼지들과 놀기도 한다. 곧 농장을 떠나고 싶었던 나나의 엄마가 ㅆ딸을 데리고 오두막으로 들어간다. 엄마는 나나와 함께 땔감을 만들고, 이불을 말리고, 식사를 한다. 그리고 어느 날, 엄마가 떠나버린다. 이 오두막에는 4살짜리 아이 혼자 남는다. 이제 나나는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나나>에는 나나를 맡은 아역배우의 연기가 없다. 단지 실제 도축당하는 돼지를 보고, 덫을 놓아봤던 아이만이 있을 뿐이다. 사진작가 출신인 발레리 마사디앙 감독이 세운 원칙은 절대 아이를 돕지 않을 것과 끝까지 기다리는 것이었다. 혼자인 나나는 울거나 엄마를 찾지 않는다. 알아서 먹고, 책을 읽고, 땔감을 모으고, 이불을 말린다. 심지어 덫에 잡힌 토끼를 처리하는 것도 자신이 보았던 방식 그대로다. 거의 모든 장면이 롱테이크로 촬영된 <나나>의 리듬과 구조는 이 아이를 지켜보는 관객에게 묘한 긴장감을 느끼게 한다. 아이의 감각만으로 묘사되는 삶과 죽음은 어른이 알고 있는 것보다 더 슬프고, 날카롭다. 해외비평가들 사이에서는 2011년 최고의 데뷔작으로 화제가 된 작품이다. -『씨네 21』 소개글 중-    


      

감독과 대화하는 시간엔 당연히 아까 그 엄마의 태도를 묻는 질문이 나왔고, 감독은 “동양과 서양의 엄마의 마음이 다르진 않습니다. 자식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은 어디든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걸 지켜볼 수 있는 마음에는 아이에 대한 믿음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특히 인상 깊었던 말은 “아이에겐 시간에 대한 인식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에 구애 받으며 무언가를 조급해 하거나 빨리 해냈다는 성취감에 들뜨지 않습니다.”라는 말과 “아이는 강하고 독립적입니다. 어린 아이에겐 모든 게 다 도전일 수밖에 없습니다. 나나가 혼자 옷을 입는 장면에서 보면 옷 하나를 입으면서 엄청 힘들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처음에 나나에게 옷을 혼자 입을 수 있겠냐고 물어봤는데, 그 땐 해본 적이 없다며 거절했으며 막상 시도했다가도 맘처럼 되지 않자 옷을 집어던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찍을 땐 그것에만 집중해선지 힘들어하긴 했지만 입을 수 있었습니다다.”라는 말이었다. 어른의 관점으로 아이들을 연약한 존재로만 치부하거나, 도와준다는 미명으로 무언가 할 수 있는 기회를 자꾸 박탈하는 건 아닌지 반성하게 되었다.



늦은 밤 시간까지 영화를 보느라 수고한 단재 친구들. 밤거리를 거닐어 숙소로 가고 있다.      






목차     


1. 13회 전주국제영화제: 고향 전주로 여행 가다

고향 전주로 여행을 떠나다

영화는 책이다     


2. 13회 전주국제영화제: 영화편

구름 위에서

남서쪽

원 맨스 워(One Men's War)

나나     


3. 13회 전주국제영화제: 관광편

아무 것도 안 할 자유!

천을 걸으며 자연을 맛보다

남천교 위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자유를 얻다’

전주한옥마을, 과거가 머문 공간을 걷다     


4. 13회 전주국제영화제: 음식편

순대국밥(엄마손 해장국)

콩나물국밥(현대옥)

콩국수(진미집)

비빔밥(고궁)

육개장(복자식당)

냉면(함흥냉면)

매거진의 이전글 고향 전주로 여행 가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