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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Jan 18. 2016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본 영화 ①

제14회 전주국제영화제 여행기 1

봄이 서서히 깊어지는 4월의 마지막 주에 영화팀은 전주를 찾아간다. 전주는 ‘예향의 도시’로 불릴 정도로 한옥마을에선 일 년 내내 축제가 끊이질 않는다. 가족과 함께 전주를 찾고자 한다면, 국제영화제가 열리는 4월 마지막 주나 대사습놀이가 열리는 6월 둘째 주, 세계소리축제가 열리는 10월 첫째 주에 가면 좋다. 그 땐 다양한 예술의 흥취를 한옥마을 곳곳에서 누릴 수 있으며, 다양한 사람과 함께 어우러져 노는 우리네 문화의 진면목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전주여행을 떠나려는 사람은 전주의 맛집과 멋 곳(역사가 스민 멋진 곳)을 알아야 한다. 이 글은 전주를 여행하려는 사람을 위한 설명서다. 14회 전주국제영화제 소개는 덤이다.                



13회 영화제에 이어 두 번째 전주영화제를 찾았다.




개막식 전경

     

유명배우들이 레드카펫을 걸어 무대에 등장하고 사람들의 환호성이 여기저기에서 울려 퍼진다. 아마도 개막식에 참석하려 했을 땐 이러한 광경들을 떠올렸던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내가 알만한 배우들은 손에 꼽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래서 조금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이런 실망도 어찌 보면 잘못된 생각에 근거한 것이다. 영화제가 영화인들의 축제이지 유명배우만의 축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다양한 나라의 감독과 배우들이 왔음에도 내가 아는 유명배우가 몇 되지 않는다하여 실망한 것은 ‘영화의 상업화’가 심어놓은 편견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취재 열기가 장난이 아니다.



전현무 전 아나운서와 강예원 영화배우의 사회로 개막식은 시작되었다. 전현무씨의 재치 있는 진행으로 개막식 분위기는 한껏 고조됐다. 방송국이라는 큰 무대에서 역량을 키워온 사람이라 하나의 행사를 이끌어 가는데도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했다. 그에 비해 강예원씨는 어색하다는 게 몸소 느껴질 정도였다. 정해진 역할에서 어떻게든 실수하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으니 말이다.



개막식은 하나의 잔치였다. 영화인과 관람객이 하나되는 축하 잔치.



전자 바이올린의 격정적인 연주가 무대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가며 시작된 개막식 공연은 정우성을 심사위원으로 소개할 때 극에 달했다. 훤칠하게 키도 크지만, 정말 잘 생겼더라. 개막식장이 술렁술렁이는 게 너무도 당연하게 느껴졌다. 그 후 다비치가 노래 두 곡을 불렀으며, 개막작 「폭스파이어」의 로랑캉테 감독과 케이티코시니 주연배우가 무대에 나와 몇 마디 얘기를 나눈 후 개막작 관람이 시작되었다.                




다비치가 나왔다. 두 곡의 노래를 불렀으나, 무대 음향이 좋지 않아서 좀 그랬다.




폭스파이어 1 - 대략적인 내용

     

개막작으로 선정되었다는 건, 전주국제영화제의 특색을 가장 잘 드러낸 작품이라는 뜻일 게다. 그렇기 때문에 「폭스파이어」를 이해한다는 것은, 전주국제영화제를 어느 정도 이해한 것이라는 말도 된다.

이 영화는 소녀들의 성장담을 담고 있다. 195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처음에는 파편화 되었던 여학생들이 똘똘 뭉쳐 남성우월주의 사회의 부조리에 대항한다는 이야기다. 소녀들이 만든 단체의 이름이 바로 ‘폭스파이어’이며, 집을 구해 공동체 실험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하며, 그것보다 더욱 큰 문제는 돈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돈을 벌기 위해 택한 방법은 남성들이 돈으로 여성을 짓밟는 방식을 역이용하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꽃뱀 전술로 남성들의 가식을 낱낱이 드러내 돈을 내놓고 가게 만드는 것이다.                



<폭스파이어>의 감독과 주연배우와의 인터뷰.




폭스파이어 2 - 역사적인 아이인 폭스파이어와 영원한 아이인 써니

     

「써니」 또한 소녀들의 성장담을 다룬 영화라는 점에서 두 영화는 공통점이 있지만, 두 영화가 ‘소녀-사회’를 바라보는 방식은 180도 달랐다.

「써니」에서는 ‘사회가 퍼뜨린 주류적인 관점에 휩쓸린 소녀’라는 관점으로 1980년대 한국 여학생들을 풀어낸다. 그들은 그래야 할 이유도 없으면서 다른 학교 학생들과 패싸움을 하며, 미국문화에 심취하여 빠져든다. 80년대 한국사회의 마초적인 분위기와 친미성향을 맹목적으로 흡수하여 그대로 재현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반해 「폭스파이어」는 ‘사회의 부조리를 넘어서려는 소녀’라는 관점으로 1950년대 미국 여학생들을 풀어낸다. 그들은 사회나 어른이 틀 지워 놓은 ‘소녀’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건 ‘역사적인 아이’를 ‘영원한 아이’로 가둬놓으려는 폭력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박차고 나가 그들만의 공동체를 만들어 부조리 없는 사회를 구현하려 했던 것이다.

이러한 관점의 차이가 가장 명확하게 드러나는 부분은 당연히 결말 부분이다. 「써니」에서는 리더인 춘화가 자본주의 체제를 충실히 따라가 성공한 사업가로 변모하여 옛 친구들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돈으로 구원하는 장면으로 영화를 끝낸다. 사회가 틀 지워놓은 ‘소녀의 상’을 충실히 따르던 소녀들은 결국 자본주의 사회가 베푸는 혜택에 기대어 살게 된 것이다. 그러나 「폭스파이어」에서는 리더인 렉스가 공동체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자본가를 납치하고 협박하다가 결국 총이 오발되어 자본가가 죽자 모든 책임을 홀로 지고 감옥에 간다. 그 후 그녀의 소식은 끊기지만, 친구들이 우연히 본 ‘카스트로 동맹군’ 사진에 렉스가 있는 것을 보며 영화는 끝난다. ‘역사적인 아이’가 되고 싶었던 소녀들은 세상의 부조리에 온몸을 던졌고 결국 부조리와 가장 극렬하게 맞붙고 있는 한 복판에 들어가 살아간다.                



'써니'의 소녀들과 '폭스파이어'의 소녀들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폭스파이어 3 - 너의 인식이 비뚤어졌나? 나의 행동이 비뚤어졌나? 

    

렉스는 심각한 문제가 있는 학생이 아님에도 교장에게 낙인찍힌다. ‘폭스파이어’ 멤버를 못 살게 구는 남학생들을 저지하기 위해 칼을 들어 위협만 했을 뿐인데, 교장은 잘 걸렸다는 듯 재판에 넘기고 만다. 이 때, 렉스의 아버지가 처음으로 등장하는데, 그 분의 한 마디가 이 영화의 모든 것을 말해주며 많은 생각에 잠기게 한다.          


 

더는 자신이 없어요. 더 이상 통제가 안 돼요. 비뚤어져 있어요.   


       

삐뚤어져 있다는 인식. 이건 자식에겐 비수가 되어 꽂힌다. 서로 맞지 않은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는 ‘권력관계’일 수밖에 없는데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쥔 사람이 자신에 대해 부정적인 메시지를 보낸다면, 그 때 안전은 위협 받는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 순간 자신이 지닌 긍정적인 부분마저도 모조리 봉쇄되고 만다. 이런 아버지의 말에 렉스는 “사이가 안 좋았을 뿐인데...”라는 혼잣말로 말을 흐릴 수밖에 없었다. 이 말 속에 감춰진 울분을 이해하지 못하면 ‘폭스파이어’의 행동은 ‘어린 것들의 철없는 반항’정도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청소년기는 활활 타오르는 시기다. 그건 어른의 관점으로 얽어맬 수 없는 다양성이 용솟음치는 시기라는 뜻이다. 하지만 그런 용솟음을 부모, 또는 어른은 ‘위험’으로 간주하며 ‘삐뚤어져 있다’고 판단하기 쉽다. 하지만 판단한 것만으론 끝나지 않으니 문제다. 판단은 행동으로 이어지고 행동은 그런 식으로 대우하여 당사자에겐 주홍글씨로 남기 때문이다.

자신 안에 새겨진 주홍글씨를 보면서 그걸 뛰어넘을 수 있는 청소년은 얼마나 될까? 그건 명백히 폭력일 수밖에 없음에도 그에 대해선 누구도 뭐라 하지 않고, 학생들에게만 ‘철이 없네’, ‘반항기만 가득하네’라며 사회의 촘촘한 잣대를 아무렇지 않게 갖다 댄다. 바로 그러한 폭력적인 상황을 렉스를 비롯한 ‘폭스파이어’ 멤버들은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소녀들의 행동은 ‘근저감(근거 있는 저항감)’으로 해석되어야 옳다.



가운데 있는 사람이 '렉스'다. 이 영화는 청소년의 시점으로 봐야 한다.







목차     


1. 영화

개막식 전경

폭스파이어 1 - 대략적인 내용

폭스파이어 2 - 역사적인 아이인 「폭스파이어」와 영원한 아이인 「써니」

폭스파이어 3 - 너의 인식이 비뚤어졌나? 나의 행동이 비뚤어졌나?     


2. 영화

행복한 시한부 인생 - 평행선의 마주침을 그리는 로드무비

샤히드 1 - 할리우드, 발리우드, 코리우드?

샤히드 2 - 변태의 장소, 감옥

샤히드 3 - 정 맞는 국가권력에 맞선 자

샤히드 4 - 규정된 시대에 살기 or 시대를 규정하며 살기     


3.

부채박물관 1 - 단오와 부채의 관계

부채박물관 2 - 부채에 자신을 남기다

오목대 - 이성계의 흥취를 공유하다

풍남문 - 오래된 미래를 지키려는 노력

전동성당 -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본다

전주와 완주의 통합에 대한 견해 - 見小利則大事不成     


4.

Cafe 76-11 (돈가스닷컴)

엄마손 해장국

베테랑 칼국수 (진미집, 교동집)

풍년제과 1 - 대기업 빵집 속의 명맥을 잇는 빵집

풍년제과 2 - 전주에서만 맛볼 수 있는 그 맛

청라회관 1 - 비빔밥의 유래와 철학

청라회관 2 - 비빔밥 가격에 관해

청라회관 3 - 합리적인 비빔밥집     


5. 맺음말- 떠나야 비로소 깨닫는 것

파랑새는 가까이에 있다?

파랑새는 없다?

당연한 것에 대한 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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