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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Dec 31. 2015

『두 개의 문』과 용산참사

자본이 휩쓴 공간을 찾아 2

문제: 수도권에 미군기지가 있는 나라는?               




용산개발 사업

     

답은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누구나 알 것이다. 그것도 금싸라기 땅인 용산에 미군기지가 있다. 6.25 당시 이승만은 한국군에 대한 작전지휘권 일체를 유엔군 사령관에 이양했다. 이 때문에 한국군은 유엔군 사령관의 작전 명령을 하달 받으며, 한국전쟁을 수행하게 됐다. 독립국가가 되려면 작전지휘권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한국은 애석하게도 6.25때 최고 통수권자가 알아서 다른 나라에 자국의 지휘권을 헌납하고 말았다. 과연 한국은 독립국가인가?

용산에 미군기지가 들어설 수 있었던 데엔, 이런 역사적인 배경이 있다. 노무현 대통령 때에 이르러서야 작전지휘권을 찾아오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예비군 장성들은 극렬하게 반대하며 대통령을 ‘빨갱이’로 몰아붙였다. 2002년도엔 용산미군기지 이전 발표가 났고, 용산은 개발열풍이 불기 시작한다. 모든 투기자본이 용산을 향해 집결하는 모양새가 된 것이다. 용산참사는 바로 이런 움직임 속에 언제든 터질 수밖에 없는 사태였던 것이다.                



▲ 미군기지 이전에 따른 노른자위 땅에 불어닥친 개발 열풍이 용산참사의 시작이었다




어민을 거지로세입자를 때쟁이로  

   

용산참사가 일어난 직후, 재개발조합원은 “세입자들은 지금까지 싼 임대료에 장사한 것을 고마워해야지, 보상비가 적다고 하면 안 된다.”라는 말을 했다. 얼핏 들으면 정당한 얘기인 것 같지만, 그건 어느 한 쪽을 일방적으로 편든 얘기일 뿐이다.           



국가는 어민들에게 일정한 보상금을 지급했는데, 그것은 소유권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이용권에 대한 것이었으므로 그 액수가 미미했다. 국가가 일정액의 보상금을 내밀며 바다로부터 떠날 것을 요구했을 때, 우리가 만난 어민은 마치 자신이 국가 바깥에 존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우리는 우리가 국가에 빌붙어 먹었던 거지였음을 깨달았다. ‘바다와 갯벌은 너희 것이 아니라 국가의 것이다. 그동안 그렇게 먹고 살게 해주었으면 된 것 아닌가.’ 그러고는 시혜 차원에서 거주지 이전이나 직업전환 비용이라며 돈을 조금 던져 주었다. 그때 깨달았다. 아, 우리는 국가의 주인이라기보다는 국가에 빌붙어서 생계를 꾸렸던 거지였구나. 우리는 국민이 아니었구나.” 

                                                                                               -고병권, 그린비, 『추방과 탈주』, pp 29~30 


         

노무현 정부는 ‘국익’이 달려 있다는 이유로, 화성 간척 사업을 진행했다. 그러면서 갯벌에서 먹고 살아온 어민들을 쫓아냈다. 그 때 그들은 “아, 우리는 국가의 주인이라기보다는 국가에 빌붙어서 생계를 꾸렸던 거지였구나. 우리는 국민이 아니었구나.”라고 절규를 했다. 국가가 국민을 ‘왕따’시킨 것이다. 

이처럼 재개발은 이익이란 명분으로 그곳에서 잘 살고 있던 세입자들을 쫓아내는 것이다. 그들은 ‘남일당 건물에 빌붙어 살았던 때쟁이’였을 뿐, 인권이나 주권을 지닌 세입자는 아니었던 것이다.      



▲ 방조제로 막힌 곳에는 호수가 생기고 갯벌은 육지가 되었다




살기 위해 망루에 오르다

     

억울하게 쫓겨난 사람들은 남일당 건물에 올라 농성을 준비한다. 

1월 19일, 그 날은 칼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이었다. 옥상에 망루를 설치하며 최후 항전을 준비하는 그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 현실이 답답했을 것이고 어떻게든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길 바랐을 것이다. 그들은 ‘죽으러’ 옥상에 올라간 것이 아니라, ‘살러’ 올라간 것이다.      




누굴 위한 국가기관인가?

     

그런데 그들의 모습을 보는 경찰의 태도는 예사롭지 않았다. 19일에 경찰버스가 도로한복판에 서며 자꾸 세입자들을 자극했다. 철거민들은 경찰차가 선 것을 보며, 골프공이나 화염병을 던지며 억울함을 표시했다. 

남일당 건물 곁에는 용역들이 서서 온갖 욕설로 농성자들을 자극했고, 2층과 3층에선 가죽소파에 불을 붙여 유독가스를 옥상으로 피워 올렸다. 매서운 추위와 숨까지 막히게 하는 가스는 죽음의 공포를 더욱 부추겼다. 불이 붙은 것을 보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소방서에 연락을 하기도 했지만, 소방서는 공사장 인부들이 피운 불이라며 출동했다가도 그냥 돌아갔단다. 누구 하나 자신들의 처지에는 관심도 두지 않았으며 모든 관공서는 한 통속이 되어 철거민들을 압박했다.      






신속한 출동 명령 

    

농성에 들어간 지 딱 하루 만에 강제진압이 시작되었다. 이렇게 속전속결로 사태 해결에 나선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명분은 ‘철거민들이 시민들을 향해 골프공과 화염병을 던지기에, 치안 유지를 위해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철거민들은 경찰을 향해서만 저항의지를 보였을 뿐이다.               



▲ 골프공을 던지며 저항하는 철거민들.




테러 작전을 수행하러 용산에 왔수다

     

20일 새벽, 경찰특공대는 출동했다. 경찰특공대는 88올림픽 때 만들어진, 대테러 임무를 수행하는 특수부대다. 그렇다면 경찰이 철거민들을 어떤 존재로 보는 지도 명확해졌다. 

경찰특공대는 남일당 건물 밑에 대기하고 있었고 해가 뜨기 전인 새벽시간에 일제히 작전에 돌입했다. 건물 밑에선 겨울 날씨 같은 건 아랑곳없이 물을 계속 해서 뿌려댔고 컨테이너는 망루를 향해 움직였다. 농성에 들어간 지 15시간 만에 철거민들은 사망자와 부상자가 되어 남일당 건물을 내려왔다. 살기 위해 올라갔으나, 관계 당국의 중재하려는 노력도 없이 싸늘한 시체가 되어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두 개의 문 

    

영화프로젝트팀은 이 다큐를 보며, 용산참사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겼다. 

다큐는 진압에 참여했던 경찰의 육성을 들려주며, 용산참사가 얼마나 우발적으로 진행된 것인지, 얼마나 사건 은폐를 위해 분주했는지 보여준다. 

왜 하필 다큐의 이름을 『두 개의 문』이라고 했을까? 그냥 단순히 두 개의 문은 진압작전이 우발적으로 이루어졌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4층에서 바라보면 옥상으로 올라가는 문은 두 개가 있다. 그 중 한 문은 망루로 올라갈 수 있는 반면, 한 문은 창고로 이어지는 문이었다. 그런데 특공대는 어느 문이 망루로 이어지는 문인지 몰라 그곳에서 한참을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작전에 투입되기 전에 건물 구조도를 숙지하고 오는 것이 기본이련만, 얼마나 막무가내로 진행된 작전이었으면 두 개의 문 앞에서 경찰은 멈춰 설 수밖에 없었을까.

그러나 나의 생각과는 달리 감독은 두 개의 문이란 ‘진실의 문’과 ‘망각의 문’이라고 이야기 했다. 진실의 문으로 다가가지 않으면, 망각의 문으로 다가가게 된다는 것. 즉, 용산참사의 진실을 찾으려 노력하지 않으면 모든 사건은 어둠의 골방에 묻히게 된다는 것을 표현했다는 것이다.      






용산사태를 묻기 위한 조처들 

    

법원은 검찰의 수사기록을 전부 공개하라고 했다. 하지만 수사기록 중 1/3인 3천여 쪽은 공개하지 않았다. 

또한 시신을 수습하자마자, 경찰은 유족들의 동의도 없이 부검을 했다. 그런 일은 민주화 투쟁 당시에 고문으로 숨진 사람들을 부검하여 사건의 진상을 은폐시키려 할 때 그랬다고 한다. 새 천년에 들어선 지 한참이나 지난 시기에 경찰은 구태를 답습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청와대는 부천에서 일어난 연쇄 살인범을 활용하여 용산참사의 불씨를 막으려 했다. 뉴스에서 연일 살인범에 대한 이야기만 하게 하여 물타기를 한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의 비상한 머리 덕에 일반국민의 머리 속에선 2009년 새해에 일어난 MB정권의 진면목이 금세 잊히고 말았다.     



▲ 정권유지를 위한 파렴치한 짓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욕심이 화를 낳다

     

그렇다면 의문이 들 것이다. 왜 이렇게 속전속결로 진압하려 했던 것일까?

여러 정황들이 있지만, 여기서는 두 사람을 집중해서 봐야 한다. 무엇보다도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의 욕심이 있었을 것이다. 그는 경찰청장이 되기 전에, 서울 도심 한 복판에서 일어나는 사태를 깨끗이 청소하여 파란 기와집에 있는 분의 인정을 받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무리한 진압인 줄 뻔히 알면서도, 강경진압을 하도록 한 게 아닐까.

또한 MB를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다. 2009년 신년 연설에서 MB는 “확고한 국가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며 “국가정체성을 훼손하는 굉장히 폭넓고 뿌리 깊은 상황이 있다”고 언급했다. 이건 곧 선전포고였던 것이다. 국가가 추진하는 정책에 반대하는 세력이 있다면, ‘정체성을 훼손하는 상황’으로 보고 강력히 법으로 제재하겠다는 것이다. 용산참사는 ‘정체성을 훼손하는 상황의 본보기’였다. 일벌백계의 심정으로 모든 언론이 달려들어 맹비난하고 모든 공권력이 달려들어 무리한 작전을 감행했으니 말이다.      



▲ 과잉진압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그는, 지금 오사카총영사가 되어 있다.




준비되지 않은 작전 

    

과연 경찰 수뇌부는 이렇듯 무리한 작전이 얼마나 위험하다는 것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을까? 만약 인지하고 있었다면, 자기 부하들을 사지로 몰아넣은 수뇌부가 책임을 져야 하며 인지하지 못했다면, 그런 작전을 명령한 사람이 사퇴해야 한다. 

준비되지 않은 진압이었다는 것은 크레인이 한 대만 현장에 왔다는 사실을 통해 알 수 있다. 안전한 작전을 위해서는 두 대의 컨테이너가 작전을 펼쳐야 한단다. 그래야 경찰도 안전하게 진압할 수 있고 철거민들도 보다 안전할 수 있단다. 그래서 두 대의 크레인을 요청했으나 막상 당일이 되자 크레인 기사 한 명이 잠적을 해버렸다. 그 때문에 한 대의 크레인으로 무리하게 진압 작전을 펼친 것이다. 

이 뿐 아니라 망루 안에 얼마나 많은 시너가 있는지, 구조는 어떻게 되는지도 몰랐다고 한다. 오산세교지구 철거민 농성 당시에는 54일간 대치하며, 망루의 구조는 어떻고, 위험물질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용산에선 망루가 설치된 지 하루 만에 진압작전에 나섰으니, 어떤 구조이며 어떤 위험 요소가 있는지 모르는 게 당연했다.           






화재를 막을 수도 있었다  

   

컨테이너를 통한 1차 진압 작전으로 망루 안에 경찰이 진입할 수 있었다. 이미 남일당 건물은 완전히 제압됐고, 최후의 보루인 망루만 남았다. 

경찰 수뇌부는 망루 안에 특공대가 진입한 걸 보고 “영화 같은 장면이네”라며 좋아했고, 박수치며 환호했단다. 그런데 이 때 망루 안에서 짧게 불꽃이 일었다가 사라졌다. 그건 대형화재가 날 수 있다는 신호였다. 하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경찰 증언에 의하면 망루 안에는 시너 냄새가 진동했고, 망루의 2,3층이 꺼져 위험한 상태였다고 한다. 1차 진압작전이 끝나고 10분 정도 대기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위험한 상황에 대해 윗선에 보고조차 할 수 없었단다. 위험한 상황은 그대로 묵인한 채, 작전이 강행된 데엔 이런 구조적인 문제점이 있었다. 

10분을 쉰, 7시 18분에 2차 진압 작전이 전개 되었다. 그 후 2분 뒤에, 망루는 화염에 휩싸였고 철거민 5명과 김남훈 경사는 싸늘한 시체가 되었다. 

이렇듯 진압 과정에 문제점이 있었음에도, ‘떼쓰는 사람의 잘못’으로 모든 것을 몰아가는 언론이나 일반 사람들의 인식은 참으로 안타깝다. 자신도 어느 순간, 망루에 오를 수도 있는 사람들이 평생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을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꼴이 우습다.           



▲ 무엇이 그리도 급했을까? 그리고 왜 안전한 작전보다 속전속결이 필요했던 걸까?




계란으로 바위치기 

    

그 후 상황 전개는 어떻게 됐나? 1심 재판부는 노골적으로 국가권력의 편을 들어주며, 중죄를 선언했고 대법원은 원심을 그대로 확정했다. 농성 주도자 9명 중 7명은 징역 4년을, 2명은 집행유예를 확정한 것이다. 

법은 언제나 강한 자들의 편임을 이렇게 명백히 보여준 판결이 또 있을까. 죽은 영령들, 생존을 위해 투쟁했던 사람들은 패배감과 죄의식을 떠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    



▲ 남일당 건물은 10년 12월에 철거됐다. 지금은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목차     


프롤로그 평범한 삶을 꿈꾸며부속품이 되길 희망하다

평범한 삶이란 목표

궁하면 통한다

생각 없음이 죄다

세상을 열린 눈으로, 생각으로 보자

부속품이 되길 희망하는 자

돈이란 잣대로 획일화된 세상     


Part 1. 두 개의 문과 용산참사

용산개발 사업

어민을 거지로, 세입자를 때쟁이로

살기 위해 망루에 오르다

누굴 위한 국가기관인가?

신속한 출동 명령

‘테러 작전’을 수행하러 용산에 왔수다

『두 개의 문』에서 ‘두 개의 문’

용산사태를 묻기 위한 조처들

욕심이 화를 낳다

준비되지 않은 작전

화재를 막을 수도 있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     


Part 2. 쌍용차 사태용산을 거쳐 평택에 몰아친 자본의 습격

자본이 노동자를 ‘왕따’ 시키다

생각 없는 비판

문제의 원인

이유도 모른 채 일자리에서 잘리다

우리의 억울함을 알리기 위해 점거농성에 돌입하다

‘테러진압’을 위해 용산을 거쳐, 평택에 왔수다

진압 우수 사례??

실패할 줄 알지만, 싸우다     


에필로그 자본이 쳐둔 그물망을 전태일 정신으로 넘기

박근혜의 목숨 〈 28명의 목숨

전태일 정신으로 ‘용산참사’, ‘쌍용차 사태’ 넘어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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