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섬 & 춘천여행 8
제이드 가든에서 걸어서 펜션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가까워서 걸을 만했다.
들어와선 곧바로 저녁 준비를 했다. 이번 저녁은 저번에도 말했다시피 ‘여행 마지막 밤엔 고기파티’라는 일반적인 흐름을 깨고 아이들이 직접 요리를 하여 함께 먹는 것이다.
여행 기간 중 함께 요리를 하고 함께 나누어 먹게 된 시작은 12년 4월에 단재 식구들이 함께 떠났던 천리포 수목원에서였다. 그 후로 한동안 전체여행을 가서 요리를 만들어 먹은 적은 없었고 각 팀별 여행에서나 요리를 하여 먹는 정도였다. 그러다 작년 9월에 격포로 전체여행을 갔을 때, 둘째 날 아침을 팀별로 준비하여 함께 먹으며 3년 만에 부활되었다. 그 때부터 여행을 갈 땐 이런 식으로 요리를 함께 하고 나누어 먹게 된 것이다.
지금처럼 직업이 분화되고 셰프라는 이름이 ‘요리사’보다 더 광범위하게 쓰이며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시대엔, ‘요리사가 되려는 사람만 요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삶의 삼요소를 ‘의식주衣食住’라고 할 정도로, 입는 것과 먹는 것, 그리고 머물 공간은 살아가는 데 있어서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그런 것들을 돈으로 대체할 수 있다 하더라도, 자신이 조금이라도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안정감에 엄청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특히나 먹는 것의 경우는 단순히 만드는 것만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다른 사람과 나누어 먹는 즐거움까지 함께 누릴 수 있다. 내가 만든 음식이, 남에게 어떤 기쁨을 주는지 즉각적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요리를 만들어 함께 나누어 먹는 것은 무척이나 중요하다.
흔히 공부를 하는 이유에 대해 ‘배워서 남주자’라거나 ‘나의 배움이 사회에 유용하게 쓰였으면 좋겠다’라는 나눔의 관념, 공유의 관념으로 말하곤 한다. 물론 ‘더 공부하면 마누라 외모(남편의 직업이)가 바뀐다’와 같은 개인적인 욕망을 부채질하거나 ‘대학은 나와야 사람 구실을 한다’는 사회적 편견을 부추기기도 하지만, 공부의 본래면목은 이와 같은 원대한 꿈과 이상적인 비전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공부를 통해 나눔의 기쁨을 느끼고 함께 행복해지는 순간을 느끼기까지 엄청나게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설혹 어떤 변화가 있다 할지라도 나로 인해 그런 변화가 왔다고 단정 짓기는 힘들다. 배움을 통한 변화는 풍화 작용에 의하여 아주 느릿하게 산이 깎여 나가듯, 매우 천천히 진행되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요리는 짧은 시간에 내가 만든 결과물이 나오고, 그걸 함께 먹으며 직접적인 감상평까지 들을 수 있다. 이처럼 ‘나눔의 기쁨, 공유의 즐거움’을 곧바로 누릴 수 있는 것 중에 요리만한 것도 없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전체여행을 하는 동안에 함께 요리를 만들고 함께 나누어 먹는 건, 누군가 애써 가르쳐주지 않아도 공부의 본래면목을 자연히 느끼는 살아 있는 교육의 장이라 감히 말할 수 있다.
펜션에 도착하자마자 아이들은 쉬지 못하고 바로 요리를 해야 했다. 그러니 좀 쉬었다 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을 것이고 짜증도 날 법 하지만, 누구 하나 그런 소리를 일절 하지 않고 각 팀별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민석이와 현세와 성민이네 팀은 볶음밥을, 준영이와 규빈이네 팀은 떡볶이를, 지훈이와 지민이와 태기네 팀은 짜장면을 만들기로 했다.
여긴 그래도 부엌이 두 군데에 있으니, 두 팀이 동시에 요리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준영팀과 지훈팀은 야채를 다듬고 요리를 하기 시작했고, 민석팀은 웬만큼 요리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준영이와 규빈이는 떡볶이를 하기 위해 양배추와 양파와 당근을 서로 역할을 분담하여 다듬었다. 두 아이 모두 요리에 관심도 많고 많이 해봤기 때문에, 여느 팀에 비해 빠르게 만들 수 있었다. 야채를 다듬는 게 끝이 나자, 마트에서 사온 떡볶이 소스를 넣고 약한 불로 서서히 졸여가기 시작한다. 야외 부엌엔 향긋한 냄새가 감돌았다.
지민이와 태기는 감자와 당근, 양파를 다듬었다. 매주 금요일마다 요리 수업을 하며 야채를 여러 번 다듬다 보니, 이젠 능수능란하게 하더라. 그 때 지훈이는 ‘강 건너 불구경’하듯 자기 팀이 요리를 함에도 거의 참여하질 않았다. 다듬어진 야채를 냄비에 담아 잘 볶은 후에, 짜장소스를 부어 간을 맞췄다.
이렇게 서서히 두 팀이 완성되어 가자 민석팀도 야외 부엌의 빈 공간에 투입되어 야채를 다듬고 볶음밥을 만들 준비를 했다. 야채와 햄을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르고, 드디어 볶을 차례가 온 것이다. 그런데 이 때 결정적인 실수를 하고야 말았다. 프라이펜에 양파만 먼저 넣고 볶았기 때문이다. 아무 생각 없이 양파를 넣고 볶고 있는데, 그 때 구세주가 등장했다. 규빈이는 그 상황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가 화들짝 놀라며 “양파부터 넣으면 어떻게 해? 빨리 불을 끄고 양파를 건져내!”라고 알려준다. 그러면서 “당근이나 감자 같이 잘 익지 않는 것부터 볶다가 맨 마지막에 양파를 넣어야 해”라고 야채를 볶는 순서까지 알려주며 그 상황을 일단락 지었다. 규빈이가 마지막 말을 던지는 장면이 왠지 낯설지 않다. 이 모습은 마치 고추 심기를 도와주고 이장님이 수고비를 챙겨주자 그걸 받지 않고 “나중에 고추 딸 때나 불러 주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미련 없이 길을 떠났던 어느 사내의 발언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렇게 준비된 요리들로 저녁을 함께 먹었다. 변산에서 요리를 했을 땐 아침이었기에 남기는 음식이 많았지만, 이 날 저녁엔 거의 남기지 않았다. 세 가지 요리 중 무엇 하나 빠지지 않을 정도로 맛있었다. 그래서 말도 거의 하지 않고 음식 맛에 취해 먹기 바빴다. 서로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서 요리를 만든 아이들은 뿌듯한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행복이 있다면 아마도 이 순간의 충만한 기분 같은 게 아닐까.
저녁을 거의 먹어가던 그 때 아이들은 수상한 눈빛을 교환하기 시작했다. 그건 마치 뭔가 비밀접선을 하는 눈빛이었고, 그에 따라 몇 명의 아이들은 방으로 들어가 무언가를 하기 시작했다. 곧 있으면 식사가 끝나고 치워야 함에도 방에 들어가 노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모두 나와서 저녁 먹은 건 치우고 놀아라’라고 말할까도 했지만, 아직 먹는 사람들이 있기에 기다리기로 했다.
그렇게 저녁 식사가 거의 끝나가던 그 때, 규빈이는 쟁반에 초코파이와 과자를 담고, 초코파이엔 초를 꽂아 우리 쪽으로 가져오는 것이다. 그 순간 ‘오늘 누구 생일인 건가?’라는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규빈이의 선창으로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너무도 익숙한 멜로디지만, 20년 가까이 들어본 적 없는 멜로디였고, 그걸 이 순간에 들을 수 있다는 게 소름이 돋았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우러러 볼수록 높아만 지네♪~”
규빈이는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여행기간이 스승의 날과 멀지 않다는 것을 알았고, 그에 따라 아이들과 어떻게 파티를 할지 기획했던 것이다. 물론 교사들 몰래 점심에 쪽방에 모여 의견도 나누고, 페이퍼도 쓰면서 말이다. 더욱이 이번 여행엔 트렁크 가방을 가져오지 않아도 됐지만, 거기에 파티용 폭죽과 과자들을 넣고 편지까지 챙겨오느라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규빈이의 마음이, 아이들의 정성이 무척이나 고마웠다. 아이들이 정성스레 써준 메모들과 지민이가 써준 편지를 받으니, 그 순간은 미처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이 밀려오더라.
지금까지 스승의 날이 되면 지원이가 학교에 찾아와서 건빵 한 봉지를 안겨 주며, ‘스승의 날 축하드려요’라는 말을 해주곤 했다. 단재학교에서 적응하며 생활하던 첫 해에 고작 반 년 정도만 함께 했던 아이인데, 그런 식으로 챙겨주니 고마웠다. 그런데 이번엔 단재학교의 모든 아이들이 깜짝 이벤트를 열어 그 마음을 전해주는 것이니, 감동은 배가 될 수밖에 없었다. 교사의 자부심은 학생으로부터 비롯된다. 그런 학생들이 교사들을 위해 이벤트를 준비하고 이렇게 마음을 써준 것이니, ‘교사된 행복’을 맘껏 느끼기에 충분했다.
행복한 저녁 시간이 지나고 노래방 기계를 설치해달라고 해서 노래를 불렀다. 작년 유명산 여행 이후에 아이들에게 노래 부르기는 여행 중 필수 코스가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노래방이 아닌 펜션의 노래방 기계를 활용해야 한다는 거였다. 업데이트가 되어 있지 않아 최신곡이 없었고, 기계의 음량을 높이질 못하니 마이크가 아닌 그냥 목소리로 노래 부르는 것처럼 느껴졌고, 조명조차 갖춰져 있지 않아 노래 부르는 흥을 느끼기 힘들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노래를 부를 만한 분위기는 잡히지 않더라. 그럼에도 원래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는 민석이와 현세는 여러 곡을 선곡하여 열심히 노래를 부르더라.
이럴 때 노래를 부르지 않는 사람은 나와 준영이, 그리고 성민이가 있다. 보통 때였으면 옆에서 그저 흥을 맞춰주며 넘어갔을 텐데, 이땐 초이쌤이 “노래를 한 곡이라도 부를 때까진 나갈 수 없어”라고 말하며 배수지진을 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노래를 불러야 했다. 결국 세 사람은 미루고 미루며 버티다가 주위 사람들의 성화와 환호에 힘입어 결국은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이번 여행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담력테스트다. 어제 저녁엔 각 팀의 한 명이 숨고 두 명이 찾는 것이었는데, 오늘은 승태쌤과 내가 숨고 아이들은 교사를 찾는 것이다. 승태쌤을 찾는 순서에 따라 등수가 결정되며, 나는 그런 승태쌤이 바로 걸리지 않도록 아이들을 교란 시키는 역할을 맡았다. 그리고 어제와 다른 게 있다면 아이들은 플래시를 켜고서 찾을 수 있다는 점이다.
시작하자마자 승태쌤은 숙소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건물의 틈 사이로 들어갔고, 나는 좀 더 먼 곳으로 이동했다. 허름한 건물이 보이고 그 앞에 나무 덤불이 보이기에 그곳에 숨었다. 조금 있으니 아이들이 본격적으로 찾아다니기 시작한다. 여기저기 아이들의 소리가 들리고 말소리가 점차 커져 가자 가슴은 콩닥댔다.
하지만 이곳 자체의 부지가 넓기 때문에 아이들은 쉽사리 내가 있는 곳을 찾을 수는 없었고, 나의 미션은 잘 숨는 게 아니라 아이들을 교란 시키는 것이었기에 더 이상 숨지 않고 움직이기로 했다. 덤불에서 나와 길가 쪽으로 가니 아이들의 말소리와 플래시 불빛이 아주 잘 보인다. 이건 마치 ‘메탈기어 솔리드’라는 게임처럼 아이들 몰래 움직인 후에 물건을 던져 아이들을 유인해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주 날렵하게 움직여 비닐하우스 뒤로 숨어 아이들이 있는 쪽으로 나뭇가지를 던지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아이들은 내가 있는 쪽으로 움직였고 무려 민석팀에게만 2번이나 걸리게 됐다.
아이들은 승태쌤을 찾아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지고 있다. 승태쌤이 아까 전에 들어간 건물 근처를 수시로 뒤지곤 있지만, 이상하게도 발견되지 않더라. 어느덧 테스트를 시작한지 40분 가까이 지나고 있었다. 그러자 아이들 중엔 더 이상 못 찾겠다며 포기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때 빛을 발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태기가 그런 경우인데, 태기는 에너지가 넘쳐서 부산히 움직이고 열심히 말을 하며 주위의 분위기를 띄운다. 때론 엉뚱한 듯, 때론 천재인 듯 남들과는 다른 상상을 하고 행동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 때도 태기는 전혀 포기하지 않고 승태쌤을 찾아 다녔던 것이다. 그 때 태기는 플래시를 지붕에 비춰볼 생각을 했고, 지붕에 올라서 숨어 있던 승태쌤을 찾은 것이다. 어떻게 지붕을 비춰볼 생각을 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관습에 갇히지 않는 녀석이기에 아이들은 서서히 포기하던 그 때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그런 사실을 안 아이들 몇몇은 ‘지붕에 오른 건 반칙이죠’라고 말을 했지만, 지붕에 오른 승태쌤이나 그런 승태쌤을 찾은 태기나 고정관념에 갇히지 않았기에 완벽하게 숨을 수 있었고, 보란 듯이 찾을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담력훈련까지 마치고 들어오니 이미 새벽 12시가 넘었다. 여행의 마지막 날 밤은 언제나 게임을 하고 이야기를 하며 새하얗게 밤을 지새곤 했는데, 이 날은 하루 종일 너무 고된 일정을 소화했던지 얼마 놀지 않고 바로 잠에 들었다. 아무래도 쉴 시간조차 없는 강행군이었으니 충분히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로써 2박 3일의 잊지 못할 순간이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져 가고 있었다. 우리는 어드메서 만나, 어떤 인연으로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일까? 함께 할 수 있기에 고맙고, 그리고 이 순간의 기억들을 공유할 수 있기에 행복했다. 남이섬에서 춘천에서 쌓은 기억들은 추억으로 남아, 힘들거나 괴로울 때마다 이겨나갈 수 있는 자양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