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산 힐하우스 여행 3 (16.11.26~27)
원래 경기란 그런 것이다. 이기는 사람에겐 그것만큼 재밌는 게 없으며, 지는 사람에겐 그것만큼 지루한 게 없다. 그래서 어느 정도 가능성이 보인다면 하려 하지만, 이미 글렀다고 생각하면 포기하게 된다. 그렇기에 모두의 축제라며 함께 즐기라고 하는 건 경쟁을 위주로 하는 경기에선 불가능한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직 결과가 확실히 정해진 것이 아니기에 희망은 있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열기를 불사르며 다음 종목을 하기 위해 모여 들었다.
세 번째 종목은 이인삼각과 삼인사각이다. 유일하게 교사도 함께 참여하는 게임으로, 이인삼각엔 학생들만 참여하며, 삼인사각엔 교사가 한 명씩 끼는 것이기에 4명의 학생을 어떻게 배치하느냐가 중요한 전략이라 할 수 있었다. 이 종목에선 당연히 단합심이 가장 중요하며 그와 동시에 순발력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인삼각 종목엔 승태팀에선 이향이와 기태가, 초이팀에선 준영이와 주연이가, 건빵팀에선 송라와 규빈이가 나왔다. 승부욕이 강한 아이들이 참여한 게임이어서 그런지 초반에 그냥 구호에 맞춰 약간 빠르게 걷는 것에서 뛰는 것으로 완벽하게 게임이 바뀌었다. 이향이와 기태가 구호에 맞춰 빨리 달리는 수준으로 뛰어다녔기 때문에 다른 팀들도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가장 치열했고 출발 순간이나 코너를 돌 때 얼마나 빨리 도느냐가 관건이 되었다. 게임이 시작되자마자 모두 열심히 뛴다. 이향네는 발이 꼬였는지 조금 뒤쳐졌고, 준영네와 송라네가 막상막하로 골인하려던 찰라 송라네가 조금 일찍 들어오는 바람에 승부가 결정 났다. 얼마나 마음이 급했는지 송라는 스타트 라인에 들어섰는데도 멈추지 못해 무릎을 약간 다치는 불상사도 발생했다.
삼인사각은 승태팀에선 승빈과 상현이가, 초이팀에선 현세와 지민이가, 건빵팀에선 민석이와 지훈이가 나왔다. 아무래도 이 경기에선 남학생들과 남선생이 끼어 있는 승태팀과 건빵팀이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건빵팀은 민석이와 지훈이가 함께 참여하는 것이니, 박자만 잘 맞추면 오히려 승산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처음엔 다리가 꼬였지만 규빈이가 박자를 정해주고 여러 번 맞추고 나니, 직접 걷는 것처럼 편하게 걸을 수 있었고 코너에선 저글링처럼 바닥을 질질 끌며 돌면 되었다. 삼인사각은 그래도 이인삼각처럼 뛰거나 할 수는 없었기에 천천히 돌며 좀 느긋하게 게임을 할 수 있었다.
이런 종목을 해보니, 다음에는 아예 5인6각을 해보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려면 분명 승부욕은 낮추고 더 의기투합해야 하겠지만, 그만큼 서로 마음을 맞추고 배려심이 키울 수 있는(최악의 경우 서로 비난만 난무할 수도?) 계기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그렇다.
네 번째 종목은 배드민턴이다. 배드민턴은 벌써 3년간 학교 체육으로 하고 있는 종목이니만치 오래 다닌 아이들의 실력이 월등할 수밖에 없다. 민석이의 실력은 거의 단재 최강급이고, 이향이와 지민이가 실력자로 그 밑에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렇기에 탁구와는 달리 오히려 싱겁게 승패가 결정 날 가능성이 높은 게임이라 할 수 있다.
승태팀에선 이향이와 기태가, 초이팀에선 준영이와 현세가, 건빵팀에선 민석이와 송라가 각각 출전했다. 결과가 너무 뻔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접전이 펼쳐졌다. 민석이도 오랜만에 라켓을 잡아보는지(2학기엔 올림픽공원 배드민턴장 공사로 인해 석촌호수 돌기와 자전거 타기를 하고 있음)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는데 준영이의 엄청난 배드민턴 실력에 더불어, 순발력까지 갖추고 있어서 대등한 경기를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서서히 민석이가 자신의 페이스를 찾으며 이겼고 이향이네 팀도 그렇게 힘들이지 않고 이길 수 있었다. 실력의 개인차가 큰 게임이었던 탓에 1등이 너무 쉽게 결정 난 경기 종목이라 할 수 있다.
다섯 번째 종목은 노래 부르기다. 노래 부르기는 노래방기기가 설치된 이 펜션의 특성으로 진행할 수 있었다. 이걸 진행하다보니 노래 부르기를 즐기는 아이들이 많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 수 있었다. 지훈이는 ‘바람기억’이란 노래를 지겹도록 반복하여 듣고 따라 부르며 노래에 대한 열정을 드러냈었고 현세와 태기는 탁월한 노래 실력으로 학교 안에 노래 소리가 멈추지 않도록 할 정도였으며 지민이는 여행 전날까지 노래를 틀어놓고 함께 따라 부르며 꼭 이겨야 된다는 의기를 북돋웠으니 말이다. 즉, 노래 부르기는 모든 아이들의 초미의 관심사임과 동시에 실력차도 그렇게 나지 않기 때문에 해볼 만한 종목이기도 했다. 더욱이 노래방 점수는 그렇게 객관적이지 않다. 그렇기에 어떤 우연적인 요소에 점수를 내맡겨야 하는 상황인지라 아이들은 더욱 긴장 아닌 긴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송라는 점수가 잘 나오는 법으로 ‘목소리를 크게 부를 것’과 ‘박자를 맞춰 부를 것’을 주문했는데, 그게 과연 맞는지 아닌지는 해봐야만 아는 상황이었다. 어찌 보면 노래 부르기는 경합이라기보다 그저 함께 어울려 노는 시간이라 할 수 있었다.
노래 부르기는 경합이라기보다 그저 함께 어울려 노는 시간이라 할 수 있었다
각 팀 당 두곡씩을 불러 점수를 합산하는 것이기에, 팀에서 노래를 그나마 잘 부르는 사람이 무대에 섰다. 승태팀에선 승태와 기태가, 초이팀에선 초이&지민과 현세가, 건빵팀에선 민석&지훈과 송라&규빈이가 노래를 불렀다. 다른 종목과는 달리 서로 노래를 한다고 비난하거나 야유를 퍼붓는 분위기가 아니라, 함께 즐기고 춤도 추며 분위기를 띄우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이로써 모든 게임이 끝났고 1등은 건빵팀, 2등은 초이팀, 3등은 승태팀이 하게 되었다. 오늘 이런 식으로 체육대회를 하니 여느 여행과는 다르게 무척 신났고 재밌었다. 그리고 또 하나 발견한 것은 아이들이 이렇게 무언가를 합심하여 하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이었다. 역시 상황과 사연이 개인을 만들기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런 열기를 보면서 2013년에 카자흐스탄의 체육 시간과는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그 때도 마찬가지로 승부욕이 있는 아이들인지라 경기에도 최선을 다해서 할 줄 알았는데, 전혀 그러지 않았던 것이다. 그 때와 지금의 차이라면 멤버들이 다르다는 것과 그 땐 친선경기인 반면 지금은 벌칙이 걸린 경기라는 것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게임에서의 승부욕이란 어찌 보면 자존심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어떤 혜택(또는 벌칙)이 걸려 있느냐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점이다. 한국 사회는 어려서부터 경쟁 위주의 활동을 당연시 한다. 그런 활동과 분위기 속에서 자라온 아이들이기에, 경기 후에 즉각적인 혜택이 없으면 ‘해야 할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러하다보니 즉각적인 참여동기가 부족한 경우, ‘이걸 하면 뭐가 좋아요?’, ‘이런 쓰잘데기 없는 것을 뭐 하러 해요?’라고 말하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이를 테면 등산이나, 시를 외우는 것이나, 전시회에 찾아가 보는 활동 등에 대해서 말이다. 그럴 때 가장 쉽게 유인하는 방법으론 “이걸 하면 나중에 대학 갈 때 도움이 돼!”라는 말을 하는 걸 테지만, 그것 또한 여전히 즉각적인 효과를 우회적으로 말해주는 것밖에 되지 않기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승부욕이란 어찌 보면 자존심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어떤 혜택(또는 벌칙)이 걸려 있느냐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점이다
누구나 알다시피 “교육은 공들인 것과는 다른 모양새로 다른 시간, 다른 곳에서 되돌아오는 시스템입니다. 비유적으로 표현하자면, 자판을 두드리면 화면에 문자가 뜨는 게 아니라 사흘 후에 그림엽서가 도착한다든지 삼 년 뒤 호박을 두 개 받게 된다든지 하는 식으로, 그게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 도통 알 수 없는 흐름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사를 춤추게 하라』 pp32(관련 글보기)”라는 게 바로 교육의 근본이라 할 수 있는데, 더 이상 그게 유용한 말이 아니게 된 것이다. 그렇기에 학생도 단기간적인 교육의 결과물을 원하며, 교사도 그런 학생들을 유인하기 위해 단시간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며 끌어들이게 되었다.
‘만약 이 날 체육대회에 어떤 결과가 걸려 있지 않았다면 아이들은 어땠을까?’하는 상상을 해본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카자흐스탄 때처럼 어떻게든 몸을 사르려 하고, 석모도 갯벌축구 때처럼 하는 둥 마는 둥 하지 않았을까.
운동이 끝나고 나니 몸이 많이 얼었다. 몸을 움직일 땐 잘 몰랐는데, 노래를 부를 때 가만히 서있으려니 한기가 온몸을 감싸더라. 그래서 마지막 결과가 나오자마자 펜션으로 바로 내려온 것이다. 펜션 문을 열고 들어가니 따뜻한 기운이 얼굴로 퍼지며 안경에 서리가 낀다.
아이들은 쉬지 못하고 두 개의 조로 나누어서 요리를 하기 시작한다. 한 조는 떡볶이를 만들고, 다른 한 조는 볶음밥을 만든다. 저번 부안여행 때도 세 팀으로 나누어져 요리를 함으로 노는 사람 없이 함께 모여 요리를 만들 수 있었다. 그런데 저번 여행에 비해 사람은 많은데도 불구하고 두 팀으로 나누어져 요리를 하다 보니, 하는 아이들만 하고 노는 아이들은 노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당연히 함께 만들어 먹자는 취지로 출발한 것이지만, 요리도구도 넉넉하지 않고 적극성에도 차이가 있다 보니 서로 갈등이 빚어지고 있었다. 열심히 하는 아이들은 열심히 하는 아이들대로 “왜 우리만 이렇게 열심히 해야 하죠?”라는 불만이 있었고,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그 아이들대로 “뭘 하라고 하지도 않고 성질부터 내잖아요?”라고 불만이 있었다. 솔직히 하루 이틀 알고 지낸 사이가 아니기에 서로 원만하게 얘기를 하며 갈등을 해소할 수 있다면야 오죽 좋겠냐만은, 그건 이상적으로나 가능한 얘기였을 뿐이다. 아이들은 어찌 되었든 갈등을 해소하려 하기 전에 자신의 감정을 앞세워 불만만 표시하기 바빴으니 말이다. 이러다간 밥 한 끽 먹기도 전에 의부터 상하겠다.
원래는 오늘 고기를 많이 구울 계획은 아니었다. 원래 단재학교에서 전체 여행을 가면 10근 정도의 고기를 사서 구워 먹는다. 그래야 아이들이 싸우지 않고 배불리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고기를 배불리 먹으며 먹는 재미, 노는 재미를 느끼는 게 전체여행을 하는 이유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날은 아이들이 요리를 만들어 함께 먹는 것이었기에 고기는 맛만 보는 정도로 구울 예정이었는데, 운동을 마치고 내려온 아이들은 고기를 찾기 시작하더라. 그래서 승태쌤이 차를 끌고 고기를 더 사와야 했다. 이렇게 되면 아이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볶음밥과 떡볶이는 찬밥 신세가 될 수밖에 없지만, 지금 그게 문제냐. 맛있는 것으로 배불리 먹는 게 제일인 것을.
그 때문에 이번 여행에도 고기를 굽게 되었다. 처음 꺼내 입은 외투에 고기 냄새가 밸까봐 외투는 식당에 벗어 놓고 고기를 구워야 하니 엄청 춥더라. 더욱이 이날 기온은 영하로 떨어졌기에 숯불에 바짝 다가가 고기를 구워야 그나마 버틸 만 했을 정도였다. 나는 오돌오돌 떨지만, 숯불 위에 놓인 고기는 잘도 익어간다.
요리를 만드느라 서로 갈등을 빚기도 했지만, 저녁을 먹을 때만큼은 행복한 시간이었다. 함께 먹을 사람들이 있다는 게 좋긴 하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밥을 먹진 않지만, 이렇게 한 학교에 다니는 인연으로 엮여 밥을 먹고 여행을 올 수 있다는 건 축복이긴 하다. 우린 어드메서 어떤 인연으로 엮인 사람들일까?
단재학교 2015년도 2학기 마무리 여행 목차
‘선녀와 나무꾼의 힐하우스’의 추억
여행 날 아침의 풍경
시간이 촉박하여 늦는 게 아니라, 그 시간에 맞춰 가려니 늦게 된다
역대 최대 규모의 전체 여행을 떠나다
10시 50분 버스를 보신 분 있나요?
여행은 우연을 맞이하는 법을 배우게 한다
그거 알아? 행동은 상대방의 태도에 따라 달라진다는 거
펜션 운영에 대해 듣다
보물찾기 1 - 누구에게나 깊은 곳엔 열망이 있다
보물찾기 2 - 공간의 제약, 인식의 제약을 넘어서면 감춘 게 드러난다
함께 못하기에 대등한 경기가 된 탁구
누구에겐 최악의 게임, 누구에겐 최고의 게임인 자유투
11월 26일(목) 3 - 체육대회 ② & 첫째날 저녁 시간
함께 하기에 행복했던 경기 2인3각, 3인4각
실력자 양준영을 발굴해낸 배드민턴
단재가왕, 그와 그녀들은 누구?
같은 체육대회, 다른 행동
함께 요리 만들기의 어려움
요리 만들기가 무색해진 고기 파티
11월 26일(목)~27(금) 4 - 흔들리는 사람들이 만든 이야기
잘 불러야 노래냐, 노래는 그냥 자연스러운 소리의 향연이야
교육단상 1 - 배려를 탁구로 배울 수 있다
교육단상 2 - 교육적 세팅으로 배려를 배운다?
우린 아직도 놀고 싶다
‘내가 아니어도 어떻게든 되겠지’가 남긴 아침 설거지 벌칙의 씁쓸함
흔들리는 나와 흔들리는 그대들이 만나 어떤 흔들림을 만들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