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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Nov 30. 2015

누구나 깊은 곳엔 열망이 있다

유명산 힐하우스 여행 2 (16.11.26~27)

터미널에 내려 김밥집 같은 곳에서 점심을 간단히 먹었다. 서울은 맑기까지 했는데, 여긴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함박눈까지는 아니었지만, 육안으로 보일 정도의 눈송이들이 내린다. 어찌 보면 진정한 첫눈이라 할 수 있는데, 첫눈을 단재 아이들과 함께 누리는 행운(저주?)을 누리게 된 것이다.

조금 기다리니 펜션 아저씨가 픽업을 왔고 장을 보러간 여학생들과 초이쌤을 제외하고 남학생들(8명)은 그 차에 한 열당 4명씩 포개어 앉았다.                



▲ 2열 시트에 4명씩 포개 앉은 아이들. 왠지 지리산 마지막 날에 펜션으로 가던 때가 생각난다. 그 땐 택시 뒷좌석에 5명이 앉았었다.





펜션 운영에 대해 듣다 

    

펜션으로 향하는 길에 아저씨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펜션 운영에 대해 잘 모르기에, “펜션 운영을 하면 돈벌이가 괜찮나요?”, “주말은 거의 반납해야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어떠세요?”라는 질문을 던진 것이다. 내가 알기론 펜션 운영은 어찌 보면 남들은 연휴이거나 휴가철이라며 쉬어야 하는 시기에 가장 바쁘게 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니 말이다.

그랬더니 아저씨도 지금은 거의 유지만 하는 정도로 운영하고 있다고 말한다. 주말에 오는 손님은 그저 현상 유지만 시켜주며, 평일에 오는 손님이 수입이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자기 집으로 펜션을 운영하는 경우는 어떻게든 근근히 버틸 수는 있지만, 대출을 받아 집을 지어 하는 경우는 쪼들려서 할 수 없다는 말씀도 덧붙여 주셨다. 한때 펜션 사업이 호황을 누리던 시기에는 은퇴한 사람 중엔 무리한 대출을 받아 펜션사업을 하던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한물 꺾인 시기라 유지하기조차 힘들다고 하신다. 더욱이 오늘처럼 눈이라도 내리는 날이면 한숨도 자지 못한다고 한다. 그도 그럴 듯이 우리 오늘 묵을 펜션은 경사가 꽤 급한 곳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눈이 내려 오르막길이 결빙되면 사람도 차도 움직일 수 없게 발이 묶이게 되니, 눈이 내리자마자 바로 쓸어내야만 한다. 그래서 아저씨는 군인들이나 할 법한 “눈이 지긋지긋하죠”라는 푸념을 하실 정도였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펜션에 도착했고 여학생들이 장을 모두 보고 올 때까지 우리는 쇼파에 누워 티비를 보며 기다렸다.                



▲ 눈 내리는 날, 잠시의 여유를 만끽하고 있다.




보물찾기 1 - 누구에게나 깊은 곳엔 열망이 있다 

    

여학생들이 도착하여 잠시 쉰 후엔 이번 여행의 특별한 이벤트인 보물찾기게임(팀별 간식을 확보하기 위한 게임), 팀별 체육 대회(내일 아침에 하게 될 벌칙을 피하기 위한 불꽃 튀는 경쟁), 저녁 식사 만들기 등을 진행하게 되었다.

승태쌤과 초이쌤이 18장의 간식 이름이 적힌 포스트잇을 1층 펜션 내에 숨기기로 했기에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체육관으로 가서 기다렸다. ‘아이들이 언제 저렇게 농구를 좋아했었나?’ 싶게 자연스레 삼삼오오 모여 농구 경기를 하더라. 조금 놀고 있으니 승태쌤이 올라와서 본격적으로 보물찾기게임을 하게 되었다. 나의 경우에도 보물찾기는 초등학생 때 교회에서 간 야유회에서 했던 게 마지막이었다. 그 후로 20년 간 해본 적이 없는데, 아이들이라고 다르지 않을 것이다. 너 나 할 것 없이 오랜만에 추억여행을 하는 셈이다.



▲ 팀은 교사들이 가위바위보로 정했고 요리팀은 송라와 지민이가 정했다.



승태쌤과 초이쌤이 보물을 숨긴 장소는 위험하거나 완전히 감춰진 장소가 아닌 세세히 살피면 충분히 찾을 수 있는 장소였다. 하지만 얼핏 그냥 스쳐 지나가면 찾을 수 없는 꽤 난이도가 있는 곳이었다. 쇼파와 쇼파 사이, 쇼파 밑둥, 에어컨 리모컨, 꽃 잎 사이, 양말, 주방 냉장고 등등에 숨겨 있다. 아이들은 게임이 시작되자마자 흩어져 여기저기 찾기 시작한다. 호시탐탐 먹이를 노리는 승냥이처럼 눈에 불을 켜고 조그만 틈이라도 놓칠세라 차근차근 찾아간다. 열기가 가득차서 가뜩이나 보일러로 달궈진 방이 후끈후끈할 정도였다. 이 모습을 보고 있으니 같이 찾고 싶다는 생각이 한 편에 드는 것과 동시에, 사람 안엔 어떤 열기 같은 게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 구석구석 최선을 다해 찾는다. 열기가 어찌나 뜨거운지 방 안이 후끈후끈하다.


               


보물찾기 2 - 공간의 제약, 인식의 제약을 넘어서면 감춘 게 드러난다  

   

왜 이런 말을 갑자기 하냐면, 아이들의 무기력 같은 것을 평소 학교에 있을 때 자주 목격하기 때문이다. 삶에 미련이 없어 보이거나, 어떤 일에 최선을 다할 마음이 없어 보이거나, 분명 우리의 일임에도 나 몰라라하는 모습을 보일 때, ‘이렇게 무기력하고, 무책임한 아이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것 또한 학교라는 환경에서 학습된 무기력일 수 있는 것이다. 학교라는 테두리는 안전한 공간이지만, 그 반면에 학습된 무기력을 조장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학교를 벗어나 다른 장소로 가면 오히려 눈을 반짝 거리는 아이들도 있으며, 여행을 가면 적극적으로 바뀌는 아이들도 있다. 장소가 지닌 한계성, 또는 어떤 강압적인 힘에 의한 억눌림 등을 전체적으로 고려해야지만 아이들이 기를 펴고, 자기 안에 있는 열망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 단순한 보물찾기를 하는 데도 아이들은 누구 할 것 없이 최선을 다했고, 몸을 계속 움직여야 하기에 엄청 더웠음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학교라는 테두리는 안전한 공간이지만, 그 반면에 학습된 무기력을 조장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게임은 40분 동안 끊임없이 진행되었다. 아이들은 승태쌤과 초이쌤이 힌트를 줄 때마다 우르르 달려들어 보물을 찾으려 했다. 너무 과열되어 다치지나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던 것이다. 게임이 끝나고 팀별로 모은 간식의 개수를 확인해보니, 승태팀과 건빵팀이 비슷할 정도로 간식을 획득했고, 초이팀은 2개의 간식만 획득하여 확연하게 차이가 났다. 그 때문에 각 팀의 표정엔 명암이 확실히 갈렸다. 많이 얻은 팀은 많이 얻었다는 이유로 거만을 떨었고, 적게 얻은 팀은 적게 얻었다는 이유로 왠지 모를 비운이 감돌았다. 다행히도 주연이가 각 팀을 돌며 애교를 부린 덕에 각 팀의 누나들은 간식을 조금씩 나누어 줌으로 보물찾기 이벤트는 별탈 없이 끝날 수 있었다.                



▲ 간식에도 빈부격차가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같이 나누어 먹는 마음은 참 예쁘다.




함께 못하기에 대등한 경기가 된 탁구

     

보물찾기 후엔 간식을 나눠먹고 바로 체육관으로 이동했다. 오늘 종목은 탁구, 배드민턴, 이인삼각&삼인사각, 농구 자유투, 노래 부르기의 5개 종목으로 진행되었다. 각 팀당 교사 한 명에 학생이 4명씩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탁구와 배드민턴엔 각각 2명씩 참가(중복 참가불가, 교사 참가 불가)하여 게임을 진행하되 각 팀당 2번의 경기를 치러 등수를 정하고, 농구 자유투는 개인 당 5개(연습 2개)씩 던져 팀별 합산을 하여 등수를 정하며, 이인삼각은 두 명의 학생이, 삼인사각은 두 명의 학생과 교사(이 또한 중복 불가하며 이인삼각에 3점, 삼인사각에 3점이 부여됨)가 참여하여 먼저 골인하는 팀부터 등수를 정하고, 노래 부르기는 각 팀 당 2곡(듀엣도 가능)을 불러 점수를 합산하여 등수를 정한다. 여기서 획득한 점수를 총합하여 최종 등수를 정하고 2등과 3등은 벌칙을 받게 된다.

2등은 내일 아침엔 펜션 뒷산을 산책하는 것이며, 3등은 산책과 더불어 아침 설거지까지 해야 한다. 아무래도 아침엔 움직이기 싫을 수밖에 없기에 이만큼 무서운 벌칙도 없다고 할 수 있다. 아이들로 이 때문에 벌써부터 여기저기 작전을 세우느라 정신이 없다.



▲ 열심히 작전을 짜는 아이들. 꼭 영화 [암살]의 한 장면 같은 치열함이 묻어난다.



첫 번째 종목은 탁구다. 승태팀에선 승빈이와 상현이가, 초이팀에선 지민이와 주연이가, 건빵팀에선 지훈이와 규빈이가 선수로 나왔다. 탁구는 대부분이 잘 치지 못하기에 순식간에 승부가 갈리는 게임이다. 그래서 25점을 먼저 내는 팀이 승리하는 것으로 했다. 아이들의 실력은 비등비등하고 월등히 잘 하는 사람이 없다 보니, 네트를 넘어갈 수만 있으면 점수가 나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아이들도 나름대로 등수를 잘 받고 싶은 마음이 있다 보니, 최선을 다해서 경기를 하더라. 그에 따라 초이팀이 1등, 건빵팀이 2등, 승태팀이 3등을 기록했다.                



▲ 첫 게임은 탁구인데, 잘 치질 못하니 그저 네트를 넘어가면 되는 경기가 되었다.




누구에겐 최악의 게임, 누구에겐 최고의 게임인 자유투

     

두 번째 종목은 자유투다. 처음에 체육대회 계획을 세울 땐 있지 않았지만, 체육관에 농구대가 설치되어 있는 것을 보고 승태쌤이 즉석에서 넣은 종목이다. 이에 대해 승부욕이 강한 규빈이가 가장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그 이유는 당연히 자신이 가장 못하는 종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빼자고, 갑자기 그런 식으로 종목을 추가하는 게 어딨냐고 말을 하긴 했지만, 하기로 한 이상 그런 마음은 규빈이가 접어야만 했다.

단재학교에서 승부욕이 높은 학생으론 이향이, 승빈이, 지민이, 규빈이, 송라를 빼놓을 수 없다. 게임을 할 때 진다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기에 게임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최선을 다하기도 하지만, 질 것 같은 상황이 되면 자기팀을 비난하며 불필요한 오해를 만들기도 한다. 승부욕이 강하다는 건 분명한 장점이지만, 그걸 어떻게 주위 사람들에게 표현할 것이냐 하는 것은 고민해봐야 할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자유투 게임 때 빛을 발한 학생이 두 명이 있다. 두 명 다 ‘설마 걔네들이?’라고 의아할 정도로, 운동을 좋아하거나 농구를 잘하거나 하지 않는 아이들이다. 하지만 분명히 이 날만큼은 승리의 여신이 그 두 명에게 찡긋 윙크를 날리고 있었으며 승리의 기운이 그 둘을 감싸며 돌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유투는 연습투를 2번 던지고, 실전투를 5번 던지는 게임이다. 당연히 5개만 점수에 포함된다.




승부욕이 강하다는 건 분명한 장점이지만, 그걸 어떻게 주위 사람들에게 표현할 것이냐 하는 것은 고민해봐야 할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민석이는 연습투에선 1개를, 실전투에선 5개 모두를 넣는 대이변을 일으켰다. 그래서 엄청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있는데, 승빈이가 자유투 라인으로 들어선다. 승빈이의 경우 어떤 긴장된 상황에 놓일 때 몸이 굳고 돌출 행동을 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이 때도 ‘의욕만 앞서서 넣지 못할 거야’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완벽한 판단 미스 상황이 벌어졌다. 승빈이는 차근차근 공을 농구대 중앙의 네모가 그려진 곳을 맞췄고 자연스럽게 링 안으로 들어가게 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연습투와 실전투 모두 7개를 성공시키는 기염을 토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민석이와 승빈이 모두 그렇게 공이 잘 들어가는 상황이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두 사람 모두 ‘마지막 공까지 완벽하게 넣어야 한다’는 압박이 느껴지는 상황이었음에도 침착하게 던지려 노력했으니, 그것만으로도 그들은 이미 ‘챔피언(소리 지르는 니가, 챔피언♬ 자유투 던지는 니가, 챔피언♬ 인생 즐기는 니가, 챔피언♬)’이었다.



▲ 자유투에서 가장 빛을 발한 학생들. 이 두 학생이 판을 완전히 흔들었다.



어느덧 체육 경기는 중반부로 접어들고 있었다. 아직까지는 누가 월등하다, 승부는 이미 결정났다고 할 상황은 아니기에, 체육관의 승부에 대한 열망은 더욱 커져가고 있었다. 그래도 지금 상황에선 건빵팀이 약간은 유리한 게 사실이다. 그에 대해 다른 팀들의 견제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과연 건빵팀은 유리한 상황을 승부를 굳히는 상황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승태팀과 초이팀이 분발하여 이런 상황을 뒤집을 것인가? 그걸 지켜보는 것이 바로 체육대회를 관전하는 묘미다.





학교 2015년도 2학기 마무리 여행 목차     



1126() 1 - 추억을 기억으로 소환하다

‘선녀와 나무꾼의 힐하우스’의 추억

여행 날 아침의 풍경

시간이 촉박하여 늦는 게 아니라, 그 시간에 맞춰 가려니 늦게 된다

역대 최대 규모의 전체 여행을 떠나다

10시 50분 버스를 보신 분 있나요?

여행은 우연을 맞이하는 법을 배우게 한다

그거 알아? 행동은 상대방의 태도에 따라 달라진다는 거     


1126() 2 - 보물찾기, 체육대회 ①     

펜션 운영에 대해 듣다

보물찾기 1 - 누구에게나 깊은 곳엔 열망이 있다

보물찾기 2 - 공간의 제약, 인식의 제약을 넘어서면 감춘 게 드러난다

함께 못하기에 대등한 경기가 된 탁구

누구에겐 최악의 게임, 누구에겐 최고의 게임인 자유투     


1126() 3 - 체육대회 & 첫째날 저녁 시간    

함께 하기에 행복했던 경기 2인3각, 3인4각

실력자 양준영을 발굴해낸 배드민턴

단재가왕, 그와 그녀들은 누구?

같은 체육대회, 다른 행동

함께 요리 만들기의 어려움

요리 만들기가 무색해진 고기 파티     


1126()~27() 4 - 흔들리는 사람들이 만든 이야기

잘 불러야 노래냐, 노래는 그냥 자연스러운 소리의 향연이야

교육단상 1 - 배려를 탁구로 배울 수 있다

교육단상 2 - 교육적 세팅으로 배려를 배운다?

우린 아직도 놀고 싶다

‘내가 아니어도 어떻게든 되겠지’가 남긴 아침 설거지 벌칙의 씁쓸함

흔들리는 나와 흔들리는 그대들이 만나 어떤 흔들림을 만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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