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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Jan 18. 2016

나의 역사가 스민 부안을 교사로서 다시 찾다

부안 & 격포여행 1 (15.09.30~10.02)

2학기가 시작되고 어느덧 한 달이 지났다. 2학기부터 새롭게 합류한 학생은 두 명이다. 준영이와 태기가 바로 그들인데, 준영이는 단재학교에서 첫 번째 여행을 하는 셈이고 태기는 1학기 마무리 여행인 가평 여행을 함께 했기에 두 번째 여행을 하는 셈이다. 이번 여행엔 아쉽게도 이향이가 대입 수시 준비로 빠졌고, 상현이는 개인 사정으로 빠져 9명의 학생과 3명의 교사가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 고속터미널에서 출발한다. 1975년에 건설되었으니 40년이 흘렀다. 그 땐 어마어마한 규모였겠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큰 문제는 결정이 쉽지만작은 문제는 오히려 결정이 어렵다

     

8시 50분까지 고속터미널역 7번 출구 쪽에서 모이기로 했다. 지훈이와 지민이는 아직 지하철 타는 것이 익숙하지 않기에 석촌역에서 8시 9분에 만나서 가기로 했다. 그러려면 나는 8시 3분에 강동구청역에서 모란으로 떠나는 지하철을 타면 되지만, 전날 저녁까지 어떻게 할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부안으로 떠날 때는 강남터미널에서 떠나지만 돌아올 땐 동서울터미널로 오기 때문이다. 동서울터미널에서 집까지 자전거로는 20분이면 가지만 버스를 탈 경우 30분이 걸린다. 그래서 자전거를 동서울터미널에 가져다 놓을 수 있으면 돈도, 시간도 절약된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아침에 40분 정도 일찍 집에서 나와야 한다. 그런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했던 것이다.



▲ 김수영 시인의 말처럼 '나는 왜 조그만 일에만' 고민하는 걸까? 하지만 그게 작은 일이지만, 어찌 보면 그 순간엔 절대적인 일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의외로 이 날의 고민은 쉽게 해결되었다. 여행을 떠나던 날 새벽 4시에 일어난 게 결정타였다. 명절 다음 날이라 보통은 명절 후유증에 시달릴 테지만,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가는 게 아닌 여행을 떠나는 것이기에 후유증 따윈 없었다. 산뜻한 기분으로 새벽의 어슴푸레함을 즐기며 여행을 준비하고 아침까지 든든히 챙겨 먹었는데도 시계는 겨우 7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그런 상황이니 당연히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자전거를 타고 나왔다. 

어찌 보면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때, 큰 문제에 대해서는 쉽게 결정을 내리는데 반해, 작은 문제에 대해서는 (누가 보면 하잘 것 없는 것인데도) 우유부단할 때가 많다. 즉, ‘삶이냐, 죽음이냐’의 문제보다 ‘짜장이냐, 짬뽕이냐’의 문제가 더 결정하기 어렵다는 소리다. 그게 삶을 바꾸지도 어떤 극적인 변화를 만들지도 못하지만, (그 때) 당사자에겐 실존의 문제로 부각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큰 문제에 대해 어떤 결정을 하며 살아왔느냐?’는 것보다 ‘일상다반사日常茶飯事의 자잘한 문제에 대해 어떤 결정을 하며 살아왔느냐?’하는 것이 그 사람이 누구인지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아래에 인용하는 중용의 구절은 이 말을 공명한다.           



그 다음은 한쪽을 지극히 함이니, 한쪽을 지극히 하면 능히 성실할 수 있다. 성실하면 나타나고, 나타나면 더욱 드러나고, 더욱 드러나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감동시키고, 감동시키면 변하고, 변하면 화할 수 있으니, 오직 천하에 지극히 성실한 분이어야 능히 화할 수 있다.

其次 致曲 曲能有誠 誠則形 形則著 著則明 明則動 動則變 變則化 唯天下至誠 爲能化 - 『中庸』 23장          


어떤 변화의 단서는 아주 작은 차이에서부터 시작된다. 내 주변의 사람에게 하는 말 한 마디, 그리고 생활의 가장 작은 부분들, 그리고 일상사의 별 것 없는 선택에 이르기까지 작은 부분에 신경 쓸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외부의 변화로, 그리고 천지자연의 변화로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용』에서는 ‘홀로 있을 때에 신중히 행동한다愼獨’을 강조한다. 이런 구구한 말들을 영화 『역린』에서는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 나오고 겉에 배어 나오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풀이했다.                



▲ 드디어 3일간의 일정을 소화하러 출발한다. 내일 오늘 내일 비 예보가 있어서 어떨지?




나의 아픔이 산산이 부서진 변산에 교사가 되어 가다

     

부안으로의 여행은 초이쌤의 제안으로 정해졌다. 1학기 여행은 전주-임실(이건 아이들이 회의로 결정됨)로, 2학기 여행은 부안으로 떠나는 것이니 두 곳 모두 나에겐 홈그라운드 같은 곳이라 할 수 있다. 부안은 마음이 울적할 때 무언가 기분 전환을 하고 싶을 때 찾아왔던 곳이다. 

언젠가 임용고시 1차 결과가 나오던 날이었다. 10시에 각 교육청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한글문서로 합격자를 발표했는데, 당연하지만 그 전날엔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어김없이 5시면 눈이 떠져 미래에 대한 착잡함과 기대감을 동시에 느껴야 했었다. 그 때도 9시 30분부터 교육청 홈페이지에 접속한 채로 대기하고 있었고 10시에 올라온 문서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열어봤다. 그 날은 눈송이가 흩날리며 내렸다. 10시에 문서를 열어보니 이번에도 나의 수험번호는 어디에도 없더라. 막막함은 현실이 되었고 내 마음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삶이 모두 무너져 내린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인 채 무작정 시외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어디를 가겠다는 뚜렷한 목적지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가만히 있다가는 돌아버릴 것 같았다. 그 순간 바다가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행선지를 살펴보니 ‘격포 터미널’이 눈에 들어왔고 격포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는 김제에서 한 번, 부안에서 한 번 쉰 다음에 격포로 향했다. 

오후가 되어서야 출발한 버스는 3시가 되어서야 격포터미널에 도착했고 마트에서 소주 하나와 과자를 샀고, 격포비치랜드 앞에 있던 만두집에서 만두를 샀다. 그리고 채석강 쪽으로 걸어 제방에 앉아 만두와 과자를 먹으며 소주를 마셨다. 해는 뉘엿뉘엿 저물어 가고 바다에 떠 있던 바나나 껍질은 파도에 따라 부평초처럼 정처 없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며 씁쓸히 내 인생을 관조했다. 삶의 온갖 비운을 온 몸에 안은 양, 그 비극 한 가운데로 쳐들어가는 양 그 시간은 무겁고도 애처로웠다. 해가 저물고 나선 닭이봉 꼭대기에 있는 팔각정에 올라 어두워져 암흑과 완벽하게 하나가 된 바다를 한 번 더 응시한 후 집으로 돌아왔다. 그 순간 격포는 단순히 바다이기보다 나에게 숨 쉴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는 곳이었다. 

그 땐 비극을 안고 갔다면, 이젠 희극을 안고 다시 찾아간다. 그것도 나 혼자 가는 것이 아닌, 단재학교 아이들과 함께 나의 아픔이 바다와 함께 산산이 부서진 그곳으로 간다.               



▲ 생은 어떤 모습으로, 어떤 순간에, 어떻게 전개될지 모른다. 그게 바로 생이고 삶이다. 그래서 그런 생을 사랑한다.




그대에게 변산이란?  

   

서울에서 격포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버스를 타고 부안 터미널에 와서 다시 시내버스나 시외버스를 이용해 격포로 가야 한다. 예전의 격포란 전주 가까운 곳에 있는 바다라는 의미가 있었지만, 지금의 격포는 서해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변산반도, 어떤 시인은 ‘모항母港을 아는 것은 변산의 똥구멍까지 속속들이 다 안다는 뜻이거든’이라고 시에 썼는데, 나에게 변산은 바다를 볼 수 있는 가깝고도 먼 곳이기만 하다. 

9시 20분 차를 타고 부안에 도착하니 12시 20분 정도 되었다. 3시간 만에 도착한 셈이다. 그곳에서 조금 걸어서 밥을 먹고 바로 격포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40분 정도 달리니 격포 터미널에 도착하더라. 거기 있는 마트에서 장을 보고 펜션에서 픽업을 온다고 하여 기다리고 있었다.               



▲ 마트에서 장을 보고 왔다. 2박 3일을 보낼 수 있는 우리의 든든한 먹을거리들.




문제는 일의 발생이 아닌해결하려는 의지 

    

그 때 일이 발생했다. 아침에 터미널에 모였을 때 초이쌤은 지훈이에게 식재료(내일 아침 요리대전 때 쓸 것)가 든 장바구니를 지훈이에게 맡기며 펜션까지 날라주도록 부탁했는데, 여러 번 버스를 옮겨 타는 바람에 마지막 격포로 오는 버스에서 장바구니를 놓고 내린 것이다. 아무래도 격포에 오기까지 정신없이 왔다 갔다 해야 하니 그럴 만도 했다. 그렇기에 어떻게 이런 문제를 만들었냐고 뭐라 할 것은 하나도 없고, 어떻게 해결하려 노력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얘기다. 지훈이는 과연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할까?

하지만 지훈이는 뒤로 빠졌고 책임전가만을 하고 있었다. 장바구니를 혼자만 들기 힘들었던지 준영이와 나눠 들기로 했고 그걸 가위바위보로 결정했는데 다시 지훈이가 걸린 것이다. 이런 옥신각신하는 순간이 있었기에 장바구니에 대한 책임감은 당연히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결국 장바구니를 놓고 내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준영이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떠넘겼다. 준영이는 그 상황이 황당했을 테지만, 지훈이가 해결하려 하지 않는 것을 보며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부안터미널에 전화하여 상황을 알린 후 타고 왔던 차나, 터미널에서 짐이 발견될 경우 연락해주라고 말했다. 그렇게 전화를 끊으려던 찰라, 지훈이가 “맞다! 터미널에서 확실히 짐을 가지고 버스에 탔어. 그리고 머리 위 짐칸에 올려놨던 것까진 확실히 기억 나”라고 외친 것이다. 이로 인해 짐의 소재가 분명해졌기에 준영이는 다시 터미널에 전화를 걸어 이야기를 했고 버스가 다시 격포로 올 때 전해달라고 말해놨다. 

결론적으로 장바구니를 다시 찾을 수 있었고 해피엔딩으로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지훈이는 그게 억울했나 보다. 자신이 꼭 들어야 할 의무도 없는 장바구니를 들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자신의 몫을 했는데, 그에 대해 평가해주기보다 잃어버린 것까지 무한책임을 물으니 짜증난다는 것이다. 한 편으론 그런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그 때 발생한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나의 일’이란 관념은 어찌 보면 책임의식이 있어야만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 부안에서 격포로 향하는 버스에서 본 가을들녘. 징게맹게 외배미들엔 풍년이 왔다.




걷는 건 고생하자는 게 아닌삶을 오롯이 느끼자는 것

     

장바구니를 가지러 가야 했기에 첫 날 일정이 바뀌었다. 원래는 펜션부터 모항까지 걸어갈 예정이었는데, 짐도 받을 겸 모항이 아닌 격포 방향으로 걷기로 한 것이다. 잠시 펜션에서 쉰 후 둘레길을 걸을 때, 남학생들은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데 여학생들은 난리가 났다.      



규빈: “소저들을 위했다면 이런 식이면 아니 되옵니다.”

송라: (펜션을 나와 10분 정도 걸으니) “예까지 걸었으면 충분히 걸은 것이오니, 이만 귀가하는 게 마땅한 줄 아뢰오. 이렇게 멀리까지 걸어야 하는 건 사내들을 위한 계획이라 사뢰되오.”

건빵: “어인 안전이라고 그런 막말을~ 사내들을 위한 계획이면 4시간 정도 걷는 것으로 계획했을 터이다. 소저들을 생각해서 그나마 1시간 걸어 1시간 돌아오는 일정으로 줄인 것이니 그리 아시오.”

송라: “소저들을 위하는 것이었으면 아예 걷지 않는 것으로 했어야 맞는 줄 아뢰오.”     



예측 가능했던 반발이다. 그렇기에 감정의 동요는 없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격포터미널까지는 걸어가야 할 이유가 있었기에 같이 걸었다. 남학생들은 이젠 걷는 것엔 이골이 난 듯하다. 작년 남한강 도보여행을 하면서 주구장창 걸었던 터라 함께 이야기를 하며 신나게 걸었다. 비가 한 방울씩 내리고 있지만 폭우가 쏟아질 정도는 아니어서 오히려 걷기에 좋은 정도였다. 

격포에서 다행히도 짐을 받고 적벽강까지 가려 하다가 그러면 너무 시간이 지체될 것 같아 그냥 격포항만 둘러보고 돌아오는 것으로 했다.                



▲ 격포항을 함께 걸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함께 걷는다는 건 나눈다는 것.




걷는다는 게 불이익이 되는 구조  

   

격포항엔 산책길이 잘 조성되어 있다. 그곳을 둘러보며 바다에 놀러온 기분을 만끽했다.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다시 1시간여를 걸어야 했다. 남학생들은 당연한 듯 걸어가고 있었다. 나 또한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걸어가고 있는데, 차 한 대가 우리를 스쳐 지나가며 “우리 먼저 간다”라는 말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알고 보니 여학생들이 히치하이킹을 해서 숙소로 먼저 간 것이다. 난 그 때까지만 해도 그러려니 했다. 물론 다함께 걸어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여학생들이 먼저 갔다고 해서 우리가 손해를 본다고는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그 때 몇 명의 학생들에게서 하소연이 나오기 시작한다. “이거 같이 걸어가야 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니예요? 그런데 쟤네들은 자동차를 타고 가고 우리는 걸어가는 것이니 불공평해요”, “이럴 거면 계획이란 게 왜 있어요? 당연히 계획을 어긴 것이니 어떤 벌칙을 줘야 해요”라는 말을 들은 것이다. 그런 반응들에 깜짝 놀라서 “우리가 걸어서 간다는 게 불이익이라고 생각하는 거야?”라고 확인하기 위해 다시 물었다. 그랬더니 “불이익이죠. 누군 힘들게 걷고 누군 편하게 차를 타고 가고 이게 말이 되나요?”라고 말한다. 다음 후기에서 ‘걷는 것’에 대해 본격적으로 썰을 풀 테지만, 누구 할 것 없이 걷는다는 게 ‘힘듦’이거나, ‘고난’이거나, ‘될 수 있으면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라는 사실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 격포항을 둘러 보고 돌아왔다. 비는 한 방울씩 내리지만, 운치는 어느 것에도 비할 수가 없다.




갤럭시 그랜드 맥스가 그랜드(완전한)인 이유? 

    

펜션에 도착해서는 바로 고기를 구워 먹었다. 여행의 묘미는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과 함께 식도락을 즐긴다는 데 있다. 특히 한참 걷고 난 후 허기가 밀려올 때 먹는 음식은 ‘시장이 반찬’이란 말처럼 최고의 맛을 선사한다. 역시나 이 날 저녁에 구워 먹는 고기는 정말 맛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먹는 양이 줄어선지 사온 고기를 다 먹지 못하고 남겼다. 

펜션엔 손님이 우리 밖에 없었기에 맘껏 뛰놀고 시끄럽게 떠들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걸 알기 때문인지 아이들도 고기를 먹어 소화도 시킬 겸 아이들처럼 뛰어 놀았다. 승빈이를 놀리니 승빈이는 민석이를 쫓아가고 민석이는 피하려다가 ‘갤럭시 그랜드 맥스’라는 어마어마한 이름을 가진 폰을 떨어뜨렸다. 이미 여러 번 내동댕이쳐져 액정에 잔금이 가고 스마트폰 상단부엔 기판까지 드러날 정도로 망가졌다. 이미 응급처치의 상황을 넘어선 ‘하루 이틀’ 시한부 꼴이라 할 수 있다. 



▲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산산이 부서진 갤럭시 그랜드 맥스여!



그런데 이 때 아이들과 장난을 치다가 폰을 무려 두 번이나 지구에 운석이 충돌하듯 엄청난 스피드로 자유낙하 시켰다. 순식간에 배터리는 저 멀리, 뒷 커버는 더 멀리 남남이 되었다. 과연 이번에도 켜지는 기적을 보여줄까? 이게 웬 걸 ‘당신이 무엇을 기대했건 그 이상’이란 걸 과시하기라도 하듯 일초의 오차도 없이 바로 켜졌다. 예전에 피처폰 시절에 자동차 사고가 나 모든 전화가 고장 난 상황에서 애니콜만 멀쩡했다 하여 ‘이건희폰’이란 별명이 붙었는데, 민석이의 이 폰도 ‘갤럭시 그랜드 맥스’라는 이름이 어색하지 않은 킹왕짱짱 폰이었다. 

이걸 보며 며칠 전 라이딩 때 중심을 못 잡고 넘어져서 바지 주머니에 넣어뒀던 폰이 부서진 상황과 겹쳤다. 그 폰도 삼성폰이었지만, 한 번의 실수로 수명을 다한 것이다. 이런 경험을 했던 지훈이는 “이 폰(민석이 폰)이야말로 하늘이 내린 폰이다. 난 다른 폰이 아닌 내구성이 완벽히 검증된 이 폰을 민석이에게 고가에 사겠다”라고 목청 높여 이야기했다. 과거의 아픔을 현재의 상황 속에 잘 희화화시켜 묘사한 지훈이의 센스가 잘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해는 완전히 저물었고 빗방울이 한 방울씩 떨어지는 밤이었다. 아이들은 12시까지 369, 마피아, 왕게임을 하며 여행 첫 날의 감흥을 함께 즐기다가 잠에 들었다. 



▲ 맛있게 고기를 먹고, 또 우리들만 있는 변산반도 해안가를 열심히 뛰어다녔다.






목차     


9월 30(나의 역사가 스민 부안을 교사로서 다시 찾다

큰 문제는 결정이 쉽지만, 작은 문제는 오히려 결정이 어렵다

나의 아픔이 산산이 부서진 변산에 교사가 되어 가다

그대에게 변산이란?

문제는 일의 발생이 아닌, 해결하려는 의지

걷는 건 고생하자는 게 아닌, 삶을 오롯이 느끼자는 것

걷는다는 게 불이익이 되는 구조

‘갤럭시 그랜드 맥스’가 그랜드(완전한)인 이유?     


10월 1(빗속 여행의 낭만

손수 만든 음식을 남에게 대접한다는 것

빗속 여행의 낭만 1 - 어떤 완벽한 여유로움

빗속 여행의 낭만 2 - 중 2 때의 추억

빗속 여행의 낭만 3 - 자신이 뜻이 어긋난 곳에 싹트는 여행의 묘미

빗속 여행의 낭만 4 - 우의를 통해 본 옷의 원래 의미

빗속 여행의 낭만 5 - 비바람 속에서 음식점 찾아     


10월 1(빗속 여행의 낭만과 걷는 것의 의미 

빗속 여행의 낭만 6 - 격포해수욕장에서 숭고의 감정을 느끼다

빗속 여행의 낭만 7 - 맑은 날이 아니었기에 누릴 수 있던 축복

빗속 여행의 낭만 8 - 걸을 땐 하나가 되고, 편함을 추구할 땐 혼자가 된다

걷는다는 것 1 - ‘걷는 것=시간낭비’가 되는 사회구조

걷는다는 것 2 - 걷는다는 건 나를 맞아들이는 시간

둘째 날 밤의 감상 1 - 나를 빗대어 너에게 말하다

둘째 날 밤의 감상 2 - 그대들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10월 2(안녕 변산안녕 변산    

새벽 산책 1 - 뜻밖의 제안 & 교사된 뿌듯함

새벽 산책 2 - 사람은 누구나 주변사람들의 영향을 받는다

새벽 산책 3 - 시간의 더께만큼 돈독해진다

안녕hi 변산, 안녕bye 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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