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건빵 Jan 04. 2016

자전거 여행의 세부계획을 정하다

낙동강-한강 자전거 여행 8 - 15.9.17(목)

라이딩 프로젝트(10월 4일~10일)를 떠나기까지 2주 정도의 시간이 남았다. 하지만 명절도 끼어 있고, 명절 후엔 바로 전체 여행(9월 30일~10월 2일)이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1주일 정도의 시간 밖에 없다. 

오늘은 세훈이가 운영하고 있는 카페에 가서 일정을 다듬기로 했다. ‘출발지와 도착지’는 정해졌는데, 세부일정은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년에 남한강 도보여행을 떠났을 때는 아이들에게 미션을 정하게 하고, 내가 세부 계획을 세웠었다. 아무래도 도보여행을 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세부계획을 세우기에 유리했고 아이들에게 맡기기엔 아직은 무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름 방학 중에 자전거 여행을 하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다. 좌충우돌하며 더딜지라도 맡겨놓으면 어떻게든 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고 내가 계획을 짜는 게 아이들에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 2014년 10월 16일에도 이곳에 와서 계획을 짰었다. 그 땐 미션을 정했는데, 여행 중 하진 않았다.




완벽하지 않기에 계획이다

     

어찌 보면 아직도 아이들에게 맡길 수 없다고 생각하는 데엔 ‘아이들을 믿지 못하는 마음’이 도사리고 있다. 아이들에게 맡기면 아무래도 혼자서 하는 것보다 힘은 두 배, 세 배로 들고 그만큼 신경을 더 많이 써야 하니 ‘그럴 바에야 혼자하고 만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실상 이런 생각이 문제다. 어른이 되었다고 해서 모두 다 잘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만큼 정보의 양이 늘었고 그걸 어떻게 활용하는지 알기 때문에 좀 더 능숙하게 하는 것일 뿐, 아이들도 그와 같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경험하다 보면 오히려 어른 이상으로 잘 할 수 있게 된다. 즉, 그만큼 무언가를 부딪히며 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영화 『사도』를 보니 어른의 ‘아이들을 믿지 못하는 어른의 마음’이 결국 자식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자세히 그려져 있어서 여러모로 반성하게 되었다.

2013년에 ‘지리산 종주’를 떠날 때, 지리산 종주를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을 해본 경험이 있는 건호에게 맡겼다. 그랬더니 우리의 리더가 되어 모두를 잘 이끌어줬으며 마칠 때까지 책임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줬다. 그 뿐인가? 2009년에 처음 도보여행을 떠났을 때를 떠올려 봐도 그건 마찬가지다. 처음 하는 일이기에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몰라 우왕좌왕했다. 하지만 하고 싶은 마음은 있으니, 어떻게든 하나하나 마련해 가며 결국 도보여행을 마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어떤 일을 할 때 필요한 건 ‘완벽한 계획’이 아니라, ‘실패해도, 실수해도 좋으니 적극적으로 부딪힐 마음가짐이 되어 있느냐’는 것이다. 이런 마음이라면 더 이상 아이들을 의심하거나, ‘해봐야 얼마나 잘 하겠어’라고 선을 그을 필요도 없다. 어설플 테고, 중간 중간 구멍이 쑹쑹 뚫려 있을 테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자랄 것이니 말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이번에는 전적으로 아이들에게 세부 계획을 맡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시간이 걸릴 테지만 우리에겐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고, 어차피 혼자서 하기엔 엄두도 나지 않겠지만 우리에겐 머리를 맞대고 함께 할 친구들이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그저 나는 그런 상황에 관여하지 말고 흘러가는 상황을 지켜보면 된다.                



▲ 어른이 잘하는 건 아니다. 접할 수 있는 정보, 그걸 운용할 수 있는 경험이 많기에 나을 뿐이다. 그렇기에 아이들에게도 그런 기회와 시간이 필요하다.




카페에서 회의하는 이유

     

세훈이는 10시에 문을 연다고 했기에 우리는 학교에서 9시 30분쯤 나가려 했다. 그런데 재익이는 자전거를 집에 놓고 왔고, 준영이는 지금 학교로 오고 있는 중이였기에 기다려야 했다. 모두 모여서 출발한 시간은 9시 50분이었다. 

10시가 넘어 카페에 도착했고, 카페는 아직 한산했다. 이런 상황이니 우리들이 목청 높여 회의를 하고 계획을 짜기에 최적이었다. 굳이 학교에서 회의를 해도 되는데, 자리를 옮겨 회의를 하는 이유는 ‘분위기가 바뀌면 생각도 바뀐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을 쓰려 할 때도, 한 자리에서 하다가 잘 되지 않으면 자리를 옮겨 분위기가 바뀌면 막혔던 게 풀리기도 한다. 장소와 내가 전혀 영향을 주고받지 않는 별개일 수는 없다. 환경에 영향을 받아 나의 생각이 정해지며, 나의 생각이 반영되어 환경이 변하기도 하니 말이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무기력’했던 아이들도 장소가 달라지면 ‘활기가 넘쳐’나기도 하고, 물론 그 반대도 있다. 그건 어느 장소가 좋다 나쁘다의 개념이라기보다, 그 장소가 나에게 ‘어떤 심리상태나, 행동을 하도록 만드냐’라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아이들에게 익숙해진, 고정된 가치를 지니는 학교라는 장소를 떠나 계획을 세우려 했던 것이다. 과연 아이들은 카페에서 전혀 감조차 없는 라이딩 프로젝트의 세부계획을 세울 수 있을까?               



▲  장소가 바뀌면 생각과 행동이 모두 달라진다. 그건 어찌 보면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인간의 자연스런 면모라 할 수 있다.




어떤 일에 대해 나의 일이란 생각 갖기의 어려움

     

아이들은 어떤 것을 회의해야 하냐고 물었다. 그래서 “세부계획을 세워야 해. 우리가 달릴 거리는 총 370km 정도 되니, 그 날 그 날 묵을 속소를 정해야 해. 거리는 50~60km 간격으로 있는 곳이면 가장 좋을 거 같아. 숙소가 정해지면 그 날의 경로가 정해지는 것이니, 그것만 먼저 정해봐”라고 말했는데, 아이들은 처음 하는 일이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엄두를 내지 못했다. 아무래도 거리감각, 그리고 숙소를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명확한 지침(경험)이 없다 보니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막연했을 것이다. 

민석이와 준영이는 전체 달려야 할 킬로미터를 6일로 나누어 60km당 머물러야 할 장소를 먼저 정했다. 재익이와 현세는 컴퓨터를 가지고 민석이가 정해둔 곳에 숙소가 있는지를 찾았다. 하지만 별로 자신이 해야 하는 일에 대한 책임감은 없어 보였다. 자꾸 딴 짓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카페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은 2시간이었는데, 급할 것은 없었기에 보채지는 않았다. 어떤 식으로든 자신들이 맡은 책임을 다 해야 하고, 이런 식으로 딴 짓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난 후엔 개인시간을 빼서라도 책임을 다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회의에 대해 일절 간여하지 않고 세훈이와 이야기를 나누며 아이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만 봤다. 아무래도 아직까지는 아이들이 자기가 해야 하는 일이라는 인식 자체가 없어 보인다. ‘대충 해도 된다’는 생각과 함께,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남에게 떠넘기는 심리도 엿보인다. 이런 것들이 모두 일련의 과정이라 생각한다. 무언가를 해보면서 점차 ‘자신의 일’이란 생각을 하게 될 테고, 그럴 때 ‘작지만 큰 변화’가 있을 거다.                



▲ 주문한 차를 받고, 드디어 본격적으로 역할 분담을 하고서 본격적으로 세부계획을 세운다.




현세의 분발세부계획이 정해지다

     

결국 민석이와 준영이는 자신이 할 일을 하긴 했는데, 재익이와 현세가 노는 바람에 세부계획이 정해지지 않고 끝났다. 그래서 금요일에 다시 시간을 빼어 세부계획을 정해야 했다. 이 날은 재익이가 오전에 오지 않는 바람에 현세 혼자서 정보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했다. 그 시간만큼은 다른 어떤 때에 비하여 가장 진지하게 정보를 수집했고 세부계획을 확정짓게 되었다. 

현세의 이런 모습은 2년 전의 안동여행 때와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그 때 안동여행 중 식단을 조사하라고 했더니, 어떤 식으로 해야 하는지 물으며 정보를 모으려 하기보다 대충 시간만 때우고 식당 사진 두 장만을 캡쳐하며 끝냈으니 말이다. 우리는 그 날 “사스가~ 현세 클라스!”라고 놀렸지만, 최근까지도 현세는 어떤 진지해야 할 순간에 그와 같이 얼렁뚱땅 보내곤 했다. 그런데 이 날만큼은 ‘자신이 아니면 이것을 할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았는지, 열심히 찾아 자신의 책임량을 끝냈던 것이다. 

그런 우여곡절 정해진 세부계획은 다음과 같다.      


수정 전

04일(일): 현풍터미널⇒대주황토참숯찜질방      /  41.72km

05일(월): ⇒상주참숯가마                                   86.48km

06일(화): ⇒문경새재게스트하우스                    68.20km

07일(수): ⇒충주스파렉스 대중사우나                60.36km

08일(목): ⇒남한강황토불한증막                        69.76km

09일(금): ⇒배로농원                                         54.28Km

10일(토): ⇒올림픽 평화의 문                            34.28Km  (총 415.08km)     


수정 후

04(일): 동서울 터미널→현풍터미널 도착→대주황토참숯찜질방       / 41.72km

05(월): 대주황토참숯찜질방→육신사→상주참숯가마                       / 91.05km

06(화): 상주참숯가마→상주박물관→문경새재게스트하우스            / 68.23km

07(수): 문경새재게스트하우스→이화령→탄금대→충주 스파렉스   / 61.52km

08(목): 충주 스파렉스→명성황후 생가→남한강황토불한증막         / 65.68km

09(금): 남한강황토불한증막→세종대왕릉→배로농원                      / 57.57km

10(토): 배로농원→올림픽공원 평화의 문                                          / 34.28km (420.05km)  

   

8월 27일부터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 여행 계획이, 3주 만에 마무리 되었다. 길었다면 길고 짧았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그 시간동안 함께 머리를 맞대고 만들어간 것이라 기분이 좋다. 여기까지는 어찌 되었든 계획의 일부이다. 이제 모든 건 현장에서 함께 지혜를 모아 즐겨나가야 한다. 2015년 단재학교 영화팀의 ‘라이딩 프로젝트’ 화이팅!


▲ 맛난 간식과 함께 더딜지라도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매거진의 이전글 지구평화 위해 달리는 오총사(예행연습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