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한강 자전거 여행 9 - 15.9.18(금)
‘라이딩 프로젝트’를 위한 세 번째 라이딩을 하는 날이다. 재익이는 의도적으로 금요일 오전에 빠지고 있다. 이유인 즉은, 광진청소년센터와 하는 협업을 왜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벌써 3주째 금요일 오전에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있으며, 아이들이 데리러 가서야 라이딩을 하러 나오고 있다.
무책임이 던져준 돌 하나
오늘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밥을 먹고 아이들이 재익이를 데리러 가자 그제야 나왔으니 말이다. 그 때 재익이가 취하는 제스처는 한껏 반가운 척을 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 한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오전에 나오지 않아 어색할 수밖에 없고, 상대방이 화난 것을 알기 때문에 그것을 무마하려는 제스처라고 할 수 있다. 이때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게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도망만 다닐 것인지가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무언가를 하려는 사람에게 ‘교육’이 필요하다기보다(그들은 어떤 식으로든 배우고 알아갈 것이기에), 오히려 할 맘이 없는 사람, 그리고 무기력에 빠진 사람에게 ‘교육’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하지만 이 때 교육이 일방적이거나 주입적이거나 해서는 더욱 반발만 키운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학교는 다녀야 하는 것’, ‘수업은 빠지지 말고 받아야 하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이런 당연함이 무너진 자리에서 오히려 교육의 본질은 드러나기 때문이다. ‘학교는 왜 다녀야 하는가?’, ‘수업은 왜 들어야 하는가?’를 함께 고민하고 그 이유를 만들어갈 수밖에 없다. 어찌 보면 재익이의 회피는 나에게 돌멩이 하나를 던져주는 일이라 할 수 있다. ‘당신 뭐 하러 교사가 되었어?’라는 느낌이라고 할까.
‘왜 땅은 두 번이나 나를 잡아끄는가?’
이런 복잡한 생각에 빠져 있는데 재익이는 갑자기 준영이 자전거를 타겠다며 끌고 나간다. 장난으로 “자전거 고장 낼 거야”라고 외치면서 말이다. 물론 준영이도 장난인 걸 알기에 싫은 티만 냈을 뿐 막진 않았다. 그런데 커브 틀다가 정말로 넘어지고 만 것이다. 차가 갑자기 나온 것도 아니고, 사람과 치일 뻔한 것도 아니기에 황당한 상황이었다. 아마도 가장 어이없는 사람은 재익이 본인일 것이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출발했는데, 얼마 가지 않아 설빙 앞에서 타이어가 보도블록에 걸리며 다시 넘어지고만 것이다. 짧은 시간에 두 번이나 자기도 이해할 수 없이 넘어졌다. 당연히 재익이도 우리도 어안이 벙벙했고 어디 다친 곳이 없나 걱정이 앞섰다. 재익이는 무릎을 약간 다쳤을 뿐이지만, 자전거의 왼쪽 핸들이 긁히며 앞 기어 변속레버가 부서졌고 브레이크 장력도 약해질 대로 약해져 있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재익이의 상태가 안 좋으니 가지 말자고 말했지만, 난 브레이크를 임시방편으로 고쳤고 다시 출발하게 되었다.
논문 제목은 『넘어짐에 대한 고찰』
논문 제목은 ‘넘어짐에 대한 고찰’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의 생각 상 한 번 넘어진 것은 ‘어쩌다’ 정도로 생각하여 고찰해야할 꺼리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같은 상황이 두 번, 그것도 짧은 시간 내에 발생했다면, 그 때엔 ‘이건 뭔가 있다?’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럴 경우 어떤 원인을 찾게 된다. 종교를 믿는 사람이라면 ‘지금까지 지은 죄가 많기에 그에 따라 당연히 벌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종교는 사람을 한 없이 죄인으로 만들고, 규율을 지키지 못한 것을 늘 마음의 짐으로 남게 한다. 하지만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이라면 여러 갈래로 그 원인을 찾게 된다.
재익이도 처음엔 ‘뭔가 컨디션이 안 좋다’라고 생각했다. 라이딩에 나오기까지 잠을 잤던 터라, 비몽사몽으로 자전거를 타다 보니 중심을 잡지 못하고 넘어졌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나름 합리적인 고찰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성수대교에서 넘어질 때의 충격으로 핸드폰이 부서진 것을 알게 되자, 태연할 수가 없었나 보다. 무언가 상황이 자기가 생각한 것보다 엄청나다는 것을 아는 순간, 그리고 화가 치미는 순간 ‘욱하는 마음’에 일반적인 생각을 하지 않게 되니 말이다. 그러니 이러한 상황이 일어나게 만든 요인을 찾기에 분주해진다. ‘애초에 오늘 라이딩을 나오지 않았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거다’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고, 여기에 나오게 한 친구들이 원망스러워지는 것이다.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 여전히 ‘유아적인 사고’에 머물러 있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저렇게 생각할 수 있으려면 ‘이 일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는 생각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안 해도 되는 일’을 하다가 일이 발생한 것이기에, 그렇게 만든 사람을 원망하면 끝이다.
그래도 재익이가 나름 나아진 부분은 그와 같은 상황에서 작년 남한강 도보여행 때 같았으면 화를 내며 “더 이상 해야 할 의미가 없어요”라며 포기했을 텐데, 이젠 마음을 추스르고 하려 한다는 점이다.
비겁한 변명입니다!
어쨌든 이런 우여곡절을 겪으며 라이딩은 순식간에 마쳤다. 오늘은 5시에 천호로데오 거리에서 광진청소년센터의 아웃리치가 있기에 우리 영화팀도 그곳에 참여하기로 했다. 영화팀은 그곳에서 오가는 사람들을 촬영하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에 빠져 사나?’를 담을 예정이란다. 그래서 그 시간에 맞추느라 멀리까지 가지 않고 반포한강공원만 찍고 돌아간다.
당연히 오전에 재익이가 나오지 않아 그런 상황을 모르고 있으니, 5시에 천호에서 활동이 있다고 알려줬다. 그랬더니 즉각적으로 “가지 않을 게요”라고 말을 하더라. 엄연한 ‘자기의 일’임에도 ‘남의 일’로 생각하는 그 마인드에 화가 났다. 더 이야기를 하면 감정싸움이 될 것 같았고 그런 무책임한 태도에 기운도 빠져서 뒤처져 달렸다. ‘아이들끼리 그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재익이 스스로 자신의 무책임한 태도를 돌이키겠지’라는 기대를 하면서 멀찍이 뒤처져서 달린 것이다. 하지만 잠실철교를 지나자 재익이만 뒤돌더니 잠실대교 쪽으로 달려왔고 나와 딱 마주쳤다. 다음은 재익이와 나와의 이야기다.
재익: “아침에 나오지 않아 갑자기 들은 이야기이고 집에 가서 할 일이 많기 때문에 빠질게요.”
건빵: (한층 격앙된 목소리로) “아침에 학교에 나오지 않은 것에 그렇게까지 뭐라고 하진 않았잖아. 그런데 센터와 하는 활동에 빠진다는 게 말이나 되니? 넌 지금 아침에 빠진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게 맞지, 그걸 빌미 삼아 저녁활동도 빠져야 한다고 말해선 안 돼!”
재익: “오늘 오후에 자전거 타러 나와서 갔다 온 것만으로 저는 할 일을 모두 했다고 생각해요”
건빵: “센터와 하는 활동은 저번 학기 때 분명히 만장일치로 진행하게 된 거야. 그런데도 넌 지금 그 활동을 선택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잖아. 그래서 벌써 3주째 빠지고 있고, ‘안 해도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말야. 어떻게 그렇게 무책임할 수 있고,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지 정말 모르겠다.”
말은 자꾸 헛바퀴를 돌고 있다. 말과 말은 부딪히기만 할 뿐, 접점이나 행동의 변화로까지 이어지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천호에 가느냐, 가지 않느냐는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익이는 센터활동이 ‘선택 가능한 활동’이기에 안 가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선택’이 아닌 ‘필수’이며 그에 맞게 회피가 아닌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길 바랐다. 그 상황을 모면하고 싶어서인지, 아니면 정말 그것에 대해 인정해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받아들이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면서 협상 제의가 들어온다. 재익이는 ‘소비주체’로 자신을 형성한 아이답게 대부분의 경우에서 거래Deal을 하려 한다. 오늘은 맘의 준비(솔직히 맘의 준비 운운하는 건 이해가 되지 않는다)가 되지 않았기에 다음 주부터는 잘 나오겠다는 말이다. 이런 상황이었기에 억지로 끌고 갈 생각은 추호에도 없었다. 그저 ‘자기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길 바랄 뿐이었다.
막상 집에 가라고 하자 재익이는 “오늘 하루 뭘 하지도 않고 끝낸 것 같아 찝찝해요”라고 하더라. 재익이의 복잡한 마음이 그 말 속에 있다고 생각한다. 뭔가 뿌듯한 날들을 보내고 싶은 마음과 자포자기하고 아무 것도 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늘 충돌하며 괴로워하는 패턴이다. 그래서 “그냥 천호까지 잠시 다녀오자”고 마지막까지 권유를 해봤지만, 그걸 받아들이진 않았다. 하려는 마음은 있으나 하기는 싫고, 그렇다고 ‘안 해도 된다’고 아예 놓지도 못하는 진퇴양난 속에 자신만 괴롭히고 있는 재익이다.
원 투 펀치! 그로기 상태에 빠지다
재익이를 보내고 조금 가니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더라. 당연히 재익이는 어떻게 됐는지에 대해 물었고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해줬다. 그랬더니 현세가 “재익이 형은 빠졌는데, 왜 우리는 의무적으로 천호까지 가야 하나요?”라며 문제제기를 한다. 얼핏 들으면 그럴 듯한 얘기다. ‘누구는 빠져도 되고 누구는 해야만 한다’는 게 말이 안 되니 말이다.
하지만 여긴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오전에 민석, 준영, 현세는 간사님과 오후활동에 참여하기로 약속했다는 사실이다. 이런 식으로 재익이를 핑계대고 가지 않으면 자기 약속을 스스로 저버리는 경우가 된다.
다른 하나는 민석이와 준영이는 가는데, 현세는 재익이를 핑계대며 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재익이가 빠졌기 때문에 나도 빠진다’는 말이 성립된다면, ‘민석이나 준영이는 참여하기에 나도 참여한다’는 것도 말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참여하는 사람에게 자신이 약속을 어긴 것에 대해 사과를 해야 하고, 책임을 지지 않은 것에 대해 미안해해야 한다.
그렇지만 이런 식으로 ‘재익이의 빠짐’을 앞세우며 자신의 빠짐을 정당화하고 있는 현세에 대해 길게 말하고 싶진 않았다. 그건 비겁할 뿐만 아니라, 한심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가기 싫으면 가지 않아도 된다”라고 말했던 것이다. 단재학교에서 4년 생활을 하며 느끼는 건, 억지로 하거나, 누군가의 강요에 의해 하는 것은 서로에게 안 좋다는 사실이었다. 분명 억지로 시킨 데엔 ‘좋은 의도’가 있었다 할지라도, 서로에게 앙금만 남고 결과도 좋지 않았다. 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현세는 캠코더를 민석이에게 넘기고 그냥 가더라.
지옥에서 맛본 천국의 맛
재익이도 가고 현세도 가버렸다. ‘고작 이런 모습을 보려 내가 교사가 된 것인가?’하는 깊은 회의가 밀려왔다. 뿌리 뽑힌 나무처럼 지탱할 힘이 없어 주저앉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죽으란 법은 없는 모양이다. 현세가 재익이를 핑계 대며 빠지던 그 순간에, 민석이와 준영이는 같이 행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둘 다 가지 않겠다고 할 경우, 억지로 끌고 가진 않을 생각이었다. 이건 나와의 약속이라기보다 간사님과의 약속이었으며 강제로 하게 하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석이에게 의사를 물어보니, “약속한 것인데 당연히 가야죠”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그리고 준영이도 민석이의 반응과 다르지 않았다. 재익이에게 어퍼컷을 맞고 현세에게 니킥을 맞아 그로기 상태에 빠져 있었던 그 때, 민석이와 준영이는 의자에 앉게 한 후 찬물을 들이부어 정신을 차릴 수 있게 했을 뿐만 아니라, 고기까지 구워주며 힘을 낼 수 있도록 해줬다. 눈물 나도록 고맙고, 대견했으며, 행복하던 순간이었다. 그래서 천호에는 민석이와 준영이와 함께 갔고 아이들은 활동을 하고 9시가 넘어 끝났다고 한다.
오늘은 이래저래 일도 많았고 교육의 한계와 가능성에 대해 동시에 경험할 수 있던 하루였다. 난 지금 이 아이들과 잘 살고 있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