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한강 자전거 여행 10 - 15.9.10(금)
생각을 한다는 건, 어찌 보면 기대를 한다는 거다. 그건 곧 아무리 ‘될 대로 되라’라는 심정일지라도 그럼에도 무언가 바란다는 거다. 사람 관계에선 기대를 하면 안 되는 걸까?
상처 많은 자는 상처가 드러날까 감추기 바쁘다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기대를 품는다는 건, 관계를 유지하게 하는 전제이니 말이다. 만약 누군가에 대해 기대를 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그 관계는 유지되지 않는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럴 경우 피상적이거나, 형식적인 관계만 지속될 뿐 더 이상 깊은 관계로까지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응당 관계를 맺는다는 건, 기대를 키워간다는 말이기도 하다.
나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관계 맺기’다. 얼핏 보면 쉬운 것도 같고 지금껏 해온 방식으로 해나가도 전혀 문제가 없을 것 같지만, 그건 피상적인 관계일 경우에만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늘 들었던 얘기처럼 ‘어느 수준까지는 가까워질 수 있지만, 그 이상이 되면 쳐내려 한다’는 말이 그런 한계를 직시하는 말이라 할 수 있다. 피상적인 관계에서 좋아 보이거나 나의 품위를 유지하기는 쉽다. 하지만 그 이상의 관계에서 ‘타자가 보는 관점으로서의 나’를 지켜내기는 힘들다. 온갖 허영들이 완벽이 벗겨져 나의 볼품없음이 드러날까 전전긍긍하기에 아예 그런 관계로까지 나아가지 않게 하려 무진 애쓰는 것이다.
나를 감추되, 남을 패턴화하여 이해한다
이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나를 감추기 위해 남을 패턴화하여 이해하고 그에 따라 행동방침을 정하며 이성을 앞세워 감정의 모남을 가리는 것이다. 사람은 혼돈chaos을 보면서도 그 안에서 패턴cosmos을 찾아낸다고 한다. 누가 봐도 어떤 규칙도 없다고 생각될 정도로 들쭉날쭉한 것을 보면서도 나름 자신만의 패턴을 찾아내려 노력하는 것이다. 그건 바로 ‘알 수 없는 세계’를 알 수 없는 상태로 놔두는 게 아니라, ‘알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알 수 있는 것’으로 바꾸려는 사람의 절박함이라 할 수 있다. 왜 알려는 것일까? 모르는 것은 두려움의 대상이며, 모를 때 불안에 휩싸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패턴을 찾아내 아는 것으로 바꾸어 두려움에서 벗어나려 본능적으로 애쓰는 것이다.
내가 단재학교에 와서 4년간 교사를 하며 여러 사람들과 관계를 맺었지만, 그런 식의 관계 맺기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나에게 학생들은 ‘미지의 세계’에 다름 아니다. 그렇기에 그들을 가만히 놔둘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그들을 패턴화하여 내가 아는 대상으로 탈바꿈시키려 무진 애를 쓴 것이다. 그렇게 4년이란 시간이 흐르며 나름 그러한 노력들이 결실을 맺었고 게임을 하듯 어느 정도 레벨업이 되었을 줄로 알았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나의 상이 굳어지면 굳어질수록, 패턴을 통한 생각이 정리되면 정리될수록 오히려 벽에 부딪히는 느낌이 들었다. 그건 아마도 혼돈을 나만의 방식으로 정리하여 이해했는데, 그걸 어느 순간에 ‘이해했으니 이제 됐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한 부분에 대한 이해를 일반화시켜 전체를 이해한 양 착각했기에 더 힘에 부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나를 감추고, 남을 들추는 것에 대해
결국 지금에 이르러 느끼게 되는 건,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든, 나에 대한 이해든 감추거나 손쉽게 패턴화하여 이해하는 건 ‘아이의 방식’이라는 사실이다. 아이는 자신의 상처는 철저히 감추며 남의 상처는 완벽히 들추기 좋아한다. 그게 그 아이의 연약한 마음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었던 셈이다. 나 또한 어렸을 때 그런 식으로 나를 보호했던 것인데, 어느 순간엔 그게 삶의 방식으로 굳어져 버렸다. 그렇기에 직면하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아이의 방식에서 놓여날 필요가 있다. 더 이상 나를 감춰야 할 이유도, 타인을 어떻게든 나만의 이해체계에 구깃구깃 넣어야 할 이유도 없다. 내가 남에게 부족한 부분이 알려진들 그게 무에 대수며, 남을 잘 알지 못하여 상처를 받는다 한들 그게 무에 대수랴. 그런 게 삶이라면 도망갈 게 아니라, 직면하려 노력할 뿐이다.
나를 감추던 모습에서 이제 자연스럽게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남을 내 틀에 맞춰 들추던 모습에서 그들의 틀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으로 그렇게 한 걸음씩 나가야 한다. 어찌 보면 관계란 얽히고설켜 있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내 자신을 좀 더 명확히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괜찮아 건빵이야
네 번째 라이딩 후기를 작성하면서 시작부터 너무 무거운 이야기를 꺼내서 ‘뭔 일 있냐?’ 싶을 거다. 그런데 실상 아무 일 없다. 그리고 이 날 라이딩은 그 어느 때 금요일 라이딩에 비해 가장 순조로웠고(아침 일찍 재익이가 나와 광진구청소년센터와 하는 수업도 받았으며 라이딩도 편하게 갈 수 있었기에) 내일부터 추석이 시작되기에 맘도 한결 가벼웠다. 오히려 마음이 한결 가벼워져 무언가 정리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기에 이런 좀 복잡한 이야기를 한 것이다.
그냥 흘러가는 생각인데 이렇게 글로 정리할 수 있어서 다행이고, 이런 식으로 생각을 정리하여 아이들과의 관계를 왜곡시키지 않도록 노력할 수 있어 또한 다행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완벽해지지 말자고 다시 한 번 다독인다. 완벽이란 결국 내 의지대로 남을 조정하려는 마음일 테니 말이다. 완벽해지지 말고 더욱 건빵다워지자. 그게 어려울지라도 그렇게만 할 수 있으면 된다.
齒亡脣亦支, 현세 빠진 자리에 그 분이 오셨네
카오스 현세(그만큼 아직 잘 모른다는 얘기)는 오늘 할아버지 칠순잔치로 해외여행을 떠나는 바람에 함께 하지 못했으며, 올해 2월에 1주일간 동거(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하^^)한 재익이는 3주간 계속했던 금요일의 방황을 마치고 오늘은 아침부터 나왔다. ‘우리 지금 만나’하고 싶던 준영이는 30분까지 등교하기로 한 약속을 깨고 30분이 넘어 학교에 왔고 민석인 ‘성실한 나라의 제드(콜라공작)’답게 영화팀의 버팀목 역할을 제대로 했다.
여기에 특별 게스트가 함께 했다. 누구도 오라 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고, 민석이가 사랑의 세레나데(이 노래는 아카펠라와 노래의 합성인데, 손톱으로 칠판을 긁는 듯한 거북한 멜로디와 목청을 최대한 자극하여 고주파로 내지르는 가사가 일품)를 부르며 오라 했다. 그래서 미천한 것들과 거룩한 분이 함께 라이딩을 하게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그 분의 하해와 같은 은혜, 천천만만대에 영원하리~ 그 분이 누구인지는 아래 사진과 영상을 통해 확인해 보시라. 이로써 네 번째 라이딩도 네 명의 멤버들과 함께 떠날 수 있었다.
양수역이 아닌 미사대교까지만 가게 된 절절한 사연(?)
순조롭게 출발했다. 생각 같아서는 양수역까지 가고 싶었지만, 두 가지가 그럴 수 없게 했다. 첫 째는 날씨가 너무 더웠다. 지금껏 금요일마다 3번 라이딩을 갔었지만, 이렇게까지 더운 적은 없었다. 서서히 가을이 무르익어 가며 ‘소중했던 내 반팔아 이젠 안녕’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라고 반문하듯 갑자기 더워진 것이다. 그래서 이대로 양수역까지 갔다가는 ‘낙동강-한강 자전거 여행’을 하기도 전에 오리알이 될 것만 같아서 생각을 접어야 했다.
둘 째 준영이는 오늘 쫑파티를 하기 때문에 3시 30분에는 끝나야 한다고 하더라. 내가 생각해봐도 라이딩보다 쫑파티가 백배 중요하다. 그렇기에 ‘라이딩이냐 쫑파티냐 그것이 문제로다’ 할 정도가 아니라면, 당연히 쫑파티를 택해야 한다. 일은 시작만큼이나 무언가 마무리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니라, 쫑파티는 청소년들에게 숨 쉴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열심히 살았던 그대, 그 시간만큼은 푹 쉬어라~’라는 정도의 의미랄까.
이런 상황인데 무에 대단한 일을 한다고 고생을 사서 하랴. 더욱이 천호대교에서 자전거 바람을 넣느라, 물을 사느라 시간이 벌써 2시 30분이 넘어가고 있던 터라 욕심을 낼 필요는 전혀 없었다. 그래서 미사대교까지 오가는 것으로 최종 결정했다. 고민은 진중히, 하지만 결단은 신속히~
준비 끄~읏!
긴 코스가 아닌 덕인지, 내일부터 추석 연휴의 시작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낙동강-한강 자전거 여행’의 체력을 기르기 위한 라이딩의 마지막이기 때문인지 아이들은 팔팔해보였다. 어떤 이유든 상관없다. 이렇게 기분 좋게 끝내고 10월 4일부터는 강을 따라 일주일간 달리면 되니 말이다. 끝났다고 모두 끝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 순간만은 간직하고 싶다. 순간을 간직한 사람만이 영원에 가까이 갈 수 있으니 말이다. 이 순간을 즐기며, ‘자전거 여행’을 위한 준비는 여기서 마무리 짓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