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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Jan 18. 2016

빗속 여행의 낭만

부안 & 격포여행 2 (15.09.30~10.02)

오늘은 7시 30분에 기상했다. 계획을 세울 때 아침에 세 명으로 팀을 정해 아침을 만들기로 했기 때문이다. A조는 준영, 규빈, 현세가 한 팀으로 볶음밥을, B팀은 승빈, 민석, 송라가 한 팀으로 계란말이와 김치찌개를, C팀은 지훈, 지민, 태기가 한 팀으로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아이들은 최선을 다해 만들더라.                



▲ 아침의 바닷가 풍경. 하늘이 잔뜩 흐려 있다. 비도 한 방울씩 내리고 있다.




손수 만든 음식을 남에게 대접한다는 것

     

8시부터 본격적으로 요리하기 시작했다. A팀은 재료를 모두 먹기에 편한 정도로 잘라야 했고 그걸 밥과 함께 볶아야 하니 당연히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규빈이가 진두지휘를 하고 야채를 칼로 잘랐으며 준영이와 현세는 가위로 야채를 자르고 볶는 것은 함께 볶았다. 12인분의 볶음밥을 만들어야 하니 당연히 일손이 많이 들어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볶음밥은 꽤 맛있었다. 야채도 골고루 잘 익었고 고소한 맛도 있었으니 말이다. 

B팀은 고난이도 음식인 찌개와 계란말이를 만든다. 승빈이는 야채들을 잘라주고 민석이와 송라는 함께 계란말이를 만든다. 보기 좋게 굴리기 위해서는 여러 노하우가 필요한데, 함께 만든 계란말이는 모양이 훌륭했다. 집에서 여러 번 만들어본 경험이 있을 듯 싶었다. 김치찌개는 아무래도 간을 맞춰야 하고 깊게 우러나온 맛을 내야 하기에 초이쌤이 도와주어 완성할 수 있었다. 이로써 두 팀이 메인요리를 완성했다. 

C팀은 디저트를 만들면 된다. 쉽다면 매우 쉽다고 할 수 있는 요리, 바로 샌드위치 만들기다. 하지만 지훈이도 지민이도 태기도 요리를 해본 적이 없으니 대략난감이다. 지훈이가 프라이펜을 손에 쥐고 프라이펜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맡기로 했다. 그래서 빵을 노릇노릇 구워내고 베이컨을 촉촉하게 익혀냈으며, 태기가 양상추를 깨끗하게 씻어 해체했으며, 지민이는 토마토를 포개기 쉽게 잘라냈다. 이 후 이들이 함께 모여 샌드위치를 만드는데, 처음 무언가를 해본 것치곤 꽤 그럴싸한 음식이 만들어졌다. 

이런 과정을 거쳐 둘째 날의 푸짐한 아침 식탁이 차려졌다. 두 가지 메인요리로 모두 배불리 먹고 나니 아무래도 디저트는 찬밥 신세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원래 계획은 요리를 서로 평가하자는 것이었으나 그럴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상품으로 주려고 사온 간식을 원하는 아이들에게 그냥 나눠 줄 수밖에 없었다. 이번 음식 만들기는 누군가에게 자신이 직접 만든 음식을 대접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 열심히 요리를 만들고 있는 아이들. 무언가 함께 만든다는 건, 그리고 그걸 남을 위해 만든다는 건 소중한 경험이다.




빗속 여행의 낭만 1 - 어떤 완벽한 여유로움 

    

원래 계획상 오전엔 내소사에 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일어났을 때부터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었으며, 아이들이 요리 대회를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었기에 오전엔 쉬고 오후엔 비 오는 상황을 보아 움직이기로 했다. 

모처럼 비 내리는 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빗소리를 만끽하며 여유를 즐기고 있으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었다. 비 오는 날 테라스에 앉아 비 내리는 광경을 보며 뜨거운 커피 한 잔 마시는 여유를, 추운 겨울에 함박눈이 내리던 날 뜨뜻한 아랫목에 누워 고구마를 먹으며 하고 싶었던 콘솔게임을 밤새도록 하는 여유를 머릿속에 그려본 적이 있다. 그건 늘 일상에 치여 살았기 때문에 어떤 여유롭고,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자유를 생각했기에 떠오른 장면일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그런 여유를 만끽하고 있으니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 때론 멍 때리는 시간, 때론 그냥 순간에 머무르는 것, 때론 무료하게 있어보는 것도 필요하다.




빗속 여행의 낭만 2 - 중 때의 추억

     

원랜 12시에 나가려 했다. 그런데 비가 잦아들 것 같지 않다. 그래서 나갈 시간을 무기한 미룬 후 날씨 변화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바람은 거세져서 우산을 쓰고 걸었다가는 우산이 순식간에 변태하는 광경을 두 눈으로 봐야만 할 정도였다. 이런 상황이었기에 시간을 더 미루려 했는데, 초이쌤이 “여기까지 왔는데 이렇게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는 건 좀 그래요.”라고 하시며 “우의를 입고 걷는 건 어때요?”라고 하시더라. 그래서 생각해보니, 정말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가 많이 오지 않기에 옷은 그렇게까지 젖진 않을 것이고 날씨도 춥지 않아 바람을 맞으며 걸으면 오히려 상쾌하게 느껴질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우의를 입고 빗속을 걸어보는 체험을 이 때가 아니면 언제 해볼까도 싶었다. 

나에게 빗속여행은 어떤 낭만으로 자리하고 있다. 도보여행 때 그 쾌감을 맛봤지만, 최초의 경험은 중2 때였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가는 시간이었는데 비가 억수로 내리기 시작했고 금방 도로는 물바다가 될 정도였다. 갑작스런 비에 누구도 우산을 준비해오지 못했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하는 수없이 무작정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기 뭣해서 걸었다. 처음엔 어떻게 비를 피해볼까 궁리하며 걷다가 어느 정도 젖으니 아예 비에 몸을 맡기게 되면서 묘한 해방감이 들더라. 내리는 비를 흠뻑 맞으며 넘쳐나는 물에 발을 담그며 그렇게 온전히 그 시간을 즐기며 집에 왔었다. 그 때의 추억이 ‘빗속을 걸어가는 것은 낭만적인 일이다’라는 심상으로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추억을 떠올리며 택시를 타고 마트에 나가 일회용 우의를 사왔다.                



▲ 비는 조금 밖에 오지 않지만, 파도가 거세지고 있다.




빗속 여행의 낭만 3 - 자신이 뜻이 어긋난 곳에 싹트는 여행의 묘미

     

우의를 모두에게 주며 나간다고 하니, 모두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더욱이 국민안전처에서 ‘서해안 폭풍해일주의보 발표, 해안가 접근자제’라는 문자가 각자의 폰으로 온 후라 웅성이는 소리가 더 커졌다. 아이들의 웅성임을 들어보자.      


“이런 날에 나갔다가 문제 생기는 거 아니 예요?” / “이런 날엔 그냥 안에 있어요.” / “비도 오고 바람도 장난 아닌데 뭐 하러 나가요?” / “전 비 오는 날엔 절대 나가지 않아요.” / “(여행 와서 비까지 맞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돈 내고 와서 이게 뭐하자는 건지 모르겠어요.” 



▲ 세월호 사건 이후로 국민안전처가 신설되었다. 그곳에서 보내온 문자는 단재 아이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 물론 나도~


    

아무래도 아이들에게 이런 날에 우의까지 입고 밖에 나가는 것은 도전일 것이다. 그러니 이런 식의 볼멘소리가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반항하며 “전 이런 일은 절대로 못합니다”라고 하는 아이는 없었다. 아이들 입장에선 충분히 그러고 싶었을 테지만, 순순히 따라주기에 마음이 놓였다. 

이런 상황에서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이런 경험은 하고 싶어도 쉽게 할 수 있는 경험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런 자신의 뜻과는 동떨어졌던 경험들이 자신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언젠가 라디오에서 들은 얘기인데, 여행을 떠난 몇 명의 아이들이 돈이 다 떨어져 집에 돌아오는 버스를 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꾀를 내어 기사 아저씨에게 “버스에 태워주시면 가는 동안 승객들을 재밌게 하겠습니다”라고 제안을 했고 아저씨가 받아주어 타게 되었단다. 그 버스가 가는 동안 노래도 하고 개그도 하며 어떻게든 젊은 혈기를 불사르며 사람들과 어울리려 노력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여행 중 무임승차하여 고군분투했던 그 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사연을 보낸 이야기였다. 이처럼 여행의 묘미는 어찌 보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무엇, 경험해보지 못한 무엇 속에 있다. 그런 순간들을 경험해 나갈 때 내가 몰랐던 나의 모습을 알게 되며 자신의 가능성과 한계를 명확하게 알게 되기 때문이다.                



▲ 바람이 장난 아니다. 하지만 기분도 장난 아니다. 완전 신나는 일~




빗속 여행의 낭만 4 - 우의를 통해 본 옷의 원래 의미

     

모두 함께 우의를 입고 걷는 모습이 앙증맞다. 예전 개그콘서트에 ‘우비소녀’라는 프로가 있었는데, 그 모습처럼 아이들의 모습도 마찬가지였다. 

교복, 군복, 의사복과 같은 옷은 단순히 옷감으로 만들어져 인체를 감추고 꾸미는 용도만 있는 것이 아니라 권위와 함께, 욕망이 숨어 있다. 옷은 단순한 옷이 아니라, 자신의 내적 욕망이 외적으로 표출된 사회적 약속인 것이다(옷의 사회적 의미에 대해 재밌게 다룬 영화가 최근 개봉한 『피케이: 별에서 온 얼간이』다). 하지만 우리의 우의엔 그와 같은 사회적 인식이 전혀 개입될 여지가 없다. 비가 오기 때문에 입었기에 권위주의적이지도, 어떤 의미가 내포된 것도 아니며, 욕망의 표출은 더더욱 아니다. 그러니 오히려 몸을 보호하고 어떤 공동체의 일체감을 부여하는 옷의 가장 근본적인 의미에 가장 가깝다고 볼 수 있다.                



▲ 우의를 입으니 더욱 자유분방하게, 평소에 하지 못했던 포즈로.




빗속 여행의 낭만 5 - 비바람 속에서 음식점 찾아

     

바람은 세차게 불지만 비는 조금만 내린다. 시간은 1시가 넘어 서서히 배가 고파온다. 우선은 점심을 먹기 위해 격포항으로 나간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 걷는데 힘이 많이 든다. 격포항 사거리에 도착하니 음식점이 많이 보인다. 거기서 무엇을 먹을까 고민했는데, 아이들은 조금이라도 덜 움직이기 위해서 바로 눈앞에 보이는 음식점을 지목하며 저기서 점심을 먹자고 성화다. 하지만 여학생 중엔 여기에 온 이상 해산물이 잔뜩 들어간 칼국수를 먹자는 의견도 있고 해서 근처에 있는 칼국수집으로 들어갔다. 

이미 점심시간이 지난 다음이라 그런지 음식점엔 다른 사람은 없었다. 비린 음식을 먹지 못하는 지훈이와 태기는 칼국수를 시켰고 나머지는 회덮밥을 시켜서 먹었다. 역시 바닷가에 와서는 회를 먹는 게 제격이다. 바닷가에 나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작 양식 회라 할지라도 바다의 맛이 나기 때문이다. 회덮밥을 먹으며 해산물이 잔뜩 들어간 칼국수까지 함께 먹으니 바다의 향이 입 안 가득 퍼졌다. 



 ▲ 바다향 가득한 음식을 먹으니 절로 행복해진다






목차     


9월 30(나의 역사가 스민 부안을 교사로서 다시 찾다

큰 문제는 결정이 쉽지만, 작은 문제는 오히려 결정이 어렵다

나의 아픔이 산산이 부서진 변산에 교사가 되어 가다

그대에게 변산이란?

문제는 일의 발생이 아닌, 해결하려는 의지

걷는 건 고생하자는 게 아닌, 삶을 오롯이 느끼자는 것

걷는다는 게 불이익이 되는 구조

‘갤럭시 그랜드 맥스’가 그랜드(완전한)인 이유?     


10월 1(빗속 여행의 낭만

손수 만든 음식을 남에게 대접한다는 것

빗속 여행의 낭만 1 - 어떤 완벽한 여유로움

빗속 여행의 낭만 2 - 중 2 때의 추억

빗속 여행의 낭만 3 - 자신이 뜻이 어긋난 곳에 싹트는 여행의 묘미

빗속 여행의 낭만 4 - 우의를 통해 본 옷의 원래 의미

빗속 여행의 낭만 5 - 비바람 속에서 음식점 찾아     


10월 1(빗속 여행의 낭만과 걷는 것의 의미 

빗속 여행의 낭만 6 - 격포해수욕장에서 숭고의 감정을 느끼다

빗속 여행의 낭만 7 - 맑은 날이 아니었기에 누릴 수 있던 축복

빗속 여행의 낭만 8 - 걸을 땐 하나가 되고, 편함을 추구할 땐 혼자가 된다

걷는다는 것 1 - ‘걷는 것=시간낭비’가 되는 사회구조

걷는다는 것 2 - 걷는다는 건 나를 맞아들이는 시간

둘째 날 밤의 감상 1 - 나를 빗대어 너에게 말하다

둘째 날 밤의 감상 2 - 그대들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10월 2(안녕 변산안녕 변산    

새벽 산책 1 - 뜻밖의 제안 & 교사된 뿌듯함

새벽 산책 2 - 사람은 누구나 주변사람들의 영향을 받는다

새벽 산책 3 - 시간의 더께만큼 돈독해진다

안녕hi 변산, 안녕bye 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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