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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Jul 18. 2016

팽팽히 당겨진 활시위가 아닌 느슨히 풀린 활시위가 되길

남이섬 & 춘천여행 7 (16.05.11~13)

남이나루에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한 번에 나가지 못하고 다음 배를 기다려야 했다. 지금 시간은 아침 11시 20분인데도 사람들은 가득 찼다. 들어오려는 사람부터 나가려는 사람들까지 한꺼번에 밀리니 그런 것이다. 남이섬에서 하룻밤을 지내지 않을 거면 차라리 이들처럼 아침 일찍 들어가 늦은 오후까지 맘껏 즐기다 가는 것도 괜찮을 것이기에, 이 시간부터 사람들이 넘쳐나는 것일 거다.                



▲ 남이섬 안녕 보고 싶을 거야.




가평터미널 기사식당에서 점심을 먹다

     

선착장에서 내려 터미널로 가야 한다. 33-5번 버스가 30~40분 간격으로 운행되고 있으니 그것을 타고 가도 되지만, 초이쌤은 택시를 타고 가자고 한다. 아무래도 버스를 타려면 시간이 꽤 지체될 것이니, 그럴 바에야 돈이 좀 더 들더라도 택시를 타고 가자는 의미였다. 택시비는 5천원에 살짝 못 미치게 나왔다. 



▲ 택시 타는 곳까지는 짐을 날라야 한다. 책임을 다하고 있는 아이들.



정류장에 내려서는 점심을 먹으러 터미널 지하에 있는 기사식당으로 갔다. 그곳은 터미널 직원들이 이용하는 식당인데, 식권을 내고 식판에 밥과 반찬을 받아가더라. 우리는 테이블에 앉아 각자 시켰다. 아무래도 기사식당이라 하면 ‘불고기백반’이 먼저 생각나기에, 아이들 대부분은 돼지주물럭을 시켰고 현세만 냉면을 시켰다. 조금 기다리니 한 접시에 돼지주물럭을 담아서 주더라. 한 명이 먹기엔 약간 많은 양이었고, 3명이 먹기엔 매우 적은 양이었다. ‘당연히 이게 1인분이겠지’라고 생각하며 받았는데, 아주머니는 “이게 3인분씩입니다”라고 쐐기를 박으시더라. 그 순간 ‘기사 식당하면 넉넉한 인심 아니겠습니까?’라는 볼멘소리를 한 뻔했다. 어제 저녁에 고기파티를 하며 아주 배부르게 고기를 먹었음에도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고기 앞에 욕심이 나는 걸 보니, ‘내 속엔 거지가 너무도 많아♬ 배부를 틈이 없네♪’라고 할 수 있다. 양이 적다곤 해도 3명이서 배려해가며 조금씩 먹으면 되기에, 조금씩 먹었고 현세도 함께 먹으며 식구(함께 먹는 사람)로서의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 우린 터미널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이 사진은 여행 첫 날의 사진.




그리이스 펜션둘째 밤의 역사가 새겨질 장소

     

오늘 저녁엔 아이들이 직접 요리를 해야 하기에, 어제에 비해 훨씬 사야 할 것이 많았다. 초이쌤과 여학생들은 함께 마트에 함께 들어가 여러 식재료들을 빠짐없이 사기 시작했다. 꼼꼼한 교사와 척척 일을 해내는 아이들이 함께 하니, 장보기는 순식간에 끝났다. 그리고 어제처럼 마트에서 버스로 펜션까지 직접 태워다 줘서 편하게 올 수 있었다. 



▲ 한 가득 장을 보고 둘째 날 펜션으로 가야 한다. 이 모든 게 하룻밤에 먹어야 할 것들이다.



다른 곳의 펜션은 초이쌤이 예전에 가본 적이 있기에 시설이 어떤지, 위치는 괜찮은지 어느 저도 아는 곳이라 했지만, 이곳만은 전혀 아는 게 없다고 했다. 그래서 이곳으로 여행을 오기 전에 이미 처음 정한 펜션을 바꾸기도 했다. 처음 정한 펜션의 시설이 낙후되어 있었던지, 불만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직접 검색을 하며 펜션 정보를 찾아봤고, 그나마 시설도 좋고 요리를 만들 공간도 넉넉한 이곳으로 결정된 것이다. 



▲ 성수기와 비수기의 가격 차가 엄청나다.



우린 별관으로 들어갔는데, 밖에서 볼 때부터 느낌은 꽤나 좋았다. 그리고 막상 안으로 들어가 내부모습을 보니 큰 거실에 방은 무려 4개나 딸려 있고, 별도의 비닐하우스로 된 바비큐장이 있을 정도로 넓고도 쾌적한 곳이더라. 이 정도면 충분히 괜찮다고 생각했다.                



▲ 별관 일층을 우리가 통으로 쓴다.




제이드 가든에서 우리가 노는 법

     

펜션에 들어가선 잠시 쉰 다음에, 다시 픽업용 버스에 몸을 실었다. 바로 ‘제이드 가든’이란 곳에 가기 위해서였다. 계획을 짤 때만 해도 쁘띠프랑스가 있었다. 이곳은 ‘베토벤 바이러스’란 드라마를 찍은 곳인데, 무척 재밌게 본 드라마여서 한 번 가보고 싶었다. 그러나 막상 실제로 계획이 짜일 땐 빠지게 된 것이니 어찌나 아쉽게 느껴지던지.



▲ [베토벤 바이러스]의 촬영장소인 쁘띠프랑스. 한 번 정도는 가보고 싶었다. 그 드라마는 여러 생각을 안겨줬기 때문이다



제이드 가든은 수목원이다. 출입문의 건물부터 유럽의 어느 나라로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물씬 든다. 그래서 여러 정보를 찾아보니, 제이드 가든의 컨셉은 ‘숲속에서 만나는 작은 유럽’이라고 하더라. 

막상 들어가선 그다지 감흥은 없었다. 식물에 대한 지식이 하나도 없는 ‘식물 문외한’이다보니, 그저 자연이 우거진 숲 속을 헤매는 정도의 느낌만 들었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가본 식물원은 한택식물원이 처음이었는데, 무려 5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는 동안 식물에 대한 지식은 하나도 늘지 않았다. 5년 동안 도대체 뭘 한 것이냐, 건빵이여! 애재哀哉로다!



▲ 들어가는 곳부터 남다른 분위기가 느껴지는 수목원이다.



지훈, 민석, 현세는 조금 걷다가 금방 흥미를 잃어버리고 벤치에 앉아 버렸다. 그래서 난 좀 더 보면 뭔가 보일 거라는 생각으로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조금 걸으니 혈기왕성하여 에너지가 넘치는 태기와 성민이, 그리고 준영이를 만났다. 이 아이들은 이 곳이 마냥 재밌는지 얼굴 가득 활기가 넘친다. 나를 보더니, “건빵쌤 저곳에 가면 아주 재밌는 게 있어요”라며 끌고 가더라. “도대체 뭐가 있길래 저럴까?”하는 의구심에 따라가 보니, 흔들다리가 있는 것이다. 태기는 의기양양하게 “건빵쌤 한 번 건너 보세요”라고 한다. 흔들다리라고 하면 전주 덕진공원의 연화교, 순창 강천산의 현수교, 도로이지만 바람에 따라 흔들리던 양평의 용담대교 등이 떠올랐다. ‘얼마나 심하게 흔들리겠냐’하는 생각으로 뛰어서 건너보니, 생각보다 엄청 많이 흔들려서 자칫 잘못하면 중심을 잃고 넘어질 뻔 했고, 다리를 접지를 뻔했다. 한 번 타고 나니 몸에 그 흔들림이 익숙해지면서 처음과 달리 잘 달릴 수 있게 되더라. 물론 거기엔 ‘안전주의 흔들다리에서 뛰거나 흔들지 마세요.’라는 팻말이 써져 있었지만, 우린 아랑곳하지 않고 어린이들처럼 맘껏 뛰어다니며 놀았다. 






청춘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1시간 20분 정도만 있기로 했기에, 시간이 많은 것도 적은 것도 아니었다. 태기와 성민이는 심드렁해졌는지, 더 이상 둘러보지 않고 그냥 내려가더라. 이에 반해 준영이는 길을 따라 쭉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나도 그 뒤를 따라 함께 올라갔다. 

준영이는 작년 2학기부터 함께 하며 ‘낙동강-한강 자전거 여행’을 함께 한 영화팀의 일원이기도 했지만, 등교시간이 차츰 늦어지면서 제대로 이야기를 나눌 시간조차 없었다. 그 후로 올핸 학교생활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면서 더 거리감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이땐 함께 오르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려고 했다. 



▲ 준영이와 함께 이야기를 나눈 곳. 오르니 그래도 좋긴 하다



제일 꼭대기에 올라가니, 카페가 있더라. 거기엔 차를 마실 수 있도록 파라솔이 쳐져 이어서 준영이와 함께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는 어쩔 수 없이 가혹한 청춘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누구나 청춘은 아름답다고 하고, 무엇이든 꿈꿀 수 있던 시기라고만 한다. 하지만 청춘이 그렇게 아름답게 치장되는 건, 청춘의 시기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라, 그 시기를 다 겪고 지나쳐버린 중년이 그런 말을 한다. 이에 대한 도올 선생님의 말씀을 들어보자.          



누가 청춘을 아름답다 말했던가? 청춘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노인들의 청춘에 대한 회상만이 아름다운 것이다. 청춘에 대한 추억이 아름다운 것이다. 추억은 항상 아름다운 로맨스만을 추상해내는 능력이 있다. 거기에 부수된 불안과 공포와 고통은 떨쳐낸다. 청춘의 압도적인 사실은 좌절이다. 절망에는 내일이 없으며, 남아있는 재난의 기억조차 없다.

-김용옥, 『사랑하지 말자』, 통나무, 2012, pp18


          

이 말은 곧, 청춘이 아름답다는 말은 현실에서 느껴지는 말이라기보다 ‘과거는 미화된다’는 말처럼 한껏 의식 속에서 미화된 청춘의 이미지일 뿐이라는 말이다. 준영이가 지금 느끼는 여러 감정들과 그리고 삶에 대한 불안들은,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모든 청춘들이 느끼는 것이다. 그렇기에 힘들고 불안하고 두려움을 느끼는 모든 감정들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감정들이라는 사실을 알려줬고, 그런 감정들을 저주하거나 억압하려 하기보다 맘껏 느끼며 나아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 [습지생태보고서]라는 드라마에 나온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냄비받침으로 삼는 장면. 청춘이기에 아픔을 강요하고 더욱 옥죄는 건 아닌가.



그 말과 함께 너무도 완벽한 상으로 자신을 치장해선 안 된다는 말을 덧붙였다. 누구나 그렇지만, 처음 만나는 사람에겐 ‘좋은 사람’으로,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한다. 그러니 평소의 자기와는 달리 한껏 유쾌한 듯, 책임감 있는 듯, 뭐든 잘할 수 있는 듯 행동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무척이나 에너지를 많이 필요로 하는 일이다. 평소의 내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얼마 지나지 않아 에너지가 소모되어 더 이상 그렇게 행동할 수 없을 땐, 사람들에게 실망을 시켜주게 되고 나 또한 그로 인해 자신에 대한 미움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준영이에겐 “완벽해 보일 필욘 없어”라는 말을 해준 것이다.                



▲ 고산지대에서만 자란다는 '흰두메양귀비'꽃이다




너는 나다라고 외치다

     

그러자 준영이도 자신이 여러 겹으로 자신을 포장하고 있다는 얘기를 하더라. 포장은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건 어찌 보면 나의 약한 부분을 감출 수 있는 방어막이 되기도 하니 말이다. ‘에반게리온’이란 애니메이션에선 ‘AT필드’라는 방어막으로 겹겹이 감싸인 포장을 표현한다. 그건 적의 공격을 막을 수 있는 방어막이기에 ‘나다움’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론 나 자신과 소통하려는 수많은 생각이나 말들을 쳐내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러니 AT필드가 깨진다는 것은 적의 공격을 당한다는 것이기도 하지만, 타자와 소통하며 점차 다른 개체로 변해가는 계기이기도 하다. 준영이는 ‘자신이 여러 겹으로 포장되어 있다’라고 말하며, 이런 상황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 AT필드는 방어막이다. 그렇기에 남을 완전히 차단하는 막이기도 하다. 유용한 선은 어디까지일까?



이런 이야기를 나눌 때 준영이가 전혀 남 같이, 또는 특이한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너는 나다’라는 말을 외치고 싶었던 것이다. 나 또한 AT필드를 겹겹이 치고 날 방어하며 살아왔던, 그리고 살아가는 존재이니 말이다. 어려서부터 사람들과 말을 잘하지 않게 됐던 것은, 나를 노출하여 사람들에게 잔소리를 듣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럴수록 더 두껍게 방어막을 치며 나 자신을 고집하게 됐던 것이다. 지금은 그 때에 비하면 그런 공포에서, 그런 불안에서 많이 놓여난 게 사실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삶에 대한 긴장도는 높은 편이다. 난 준영이를 보면서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가 떠오르며 위태롭다는 생각을 들곤 한다. 어쩌면 준영이의 모습을 보며 나를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준영이든 나든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를 점차 풀 수 있기를, 그리고 느슨해진 활시위를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기를 기대하며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 그걸 보면서 잔뜩 긴장된 내와, 준영이가 보인 것, 그건 우연일까?



4시 20분이 되니, 아이들에게 전화가 오더라. 모두 출입문 쪽에 모여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준영이와 나는 천천히 걸어서 산책로를 내려갔다. 펜션으로 돌아가는 길은 1.6㎞ 밖에 되지 않는다. 30분도 채 걸리지 않기에,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걷기에 충분한 길이다. 오늘 저녁엔 요리를 직접 만들어야 하고, 아이들이 교사들을 위해 준비한 깜짝 파티까지 기다리고 있다. 단재학교의 아름다운 역사로 기억될 저녁 시간을 위해 우린 열심히 펜션으로 걸어갔다. 



▲ 이제 다시 펜션으로 걸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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