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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Jul 13. 2016

남이섬에서 노닐다

 남이섬 & 춘천여행 5 (16.05.11~13)

콘도에 들어와 짐을 풀고 잠시 휴식시간을 가졌다. 이불을 펴고 누우니, 잠이 소록소록 온다. 아이들도 저마다 자리를 펴고 누워 게임을 하거나, 잠을 자거나 한다. 만약 이대로 놔뒀다면 한숨 푹 잤을 테지만, 다음 일정이 있기 때문에 30분 정도 쉬다가 일어나야 했다.                



▲ 각자의 방식으로 휴식을 취하는 아이들.




항우의 힘과 기개를 느낄 수 있던 잔디 축구

     

밖에 나오니 아이들은 콘도 바로 옆에서 공을 패스하며 놀고 있더라. 평소에 운동을 그렇게 좋아하진 않지만, 이런 날엔 몸을 움직이고 싶긴 하나 보다. 누가 말하지도 않았는데 공을 주고받으며 자연스럽게 놀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공 앞에 모인 아이들.



이런 모습을 보고 있던 승태쌤은 아예 팀을 짜서 미니 축구를 하자고 제안했다. 그러자 여학생들과 준영이는 쉬고 싶다며 하지 말자고 했고, 그 외의 학생들은 의외로 순순히 게임을 하자고 했다. 더욱이 평소에 ‘축구를 좋아한다’고 말하던 상현이까지 같이 하게 됐으니, 4월에 런닝맨 게임을 한 이후 가장 많은 인원들이 단체운동을 하게 된 셈이다. 그래서 우린 콘도 바로 옆에 있는 잔디로 자리를 옮겨 골대를 세우고 자리를 세팅했다.  



▲ 팀을 정하고 자리를 세팅하여 골대를 만들었다.



막상 게임이 시작되자마자 아이들은 정말 열심히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이 날은 엄청 뜨거운 날씨는 아니어도, 더운 날씨였기에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하지만 운동을 하며 흘리는 땀은 온 몸의 긴장을 풀어주고 개운한 느낌이 들게 하여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역시 이런 게임을 해보면 안다. 공에 대한 집착력, 그건 어찌 보면 과제집착력이라 할 수 있고, 그건 어떤 일이든 끈덕지게 해나갈 수 있는 저력이라 할 수 있다. 공을 쫓아 열심히 달리는 아이들의 모습은 ‘어떤 일이든 뚫고 나갈 기세’처럼 보여, 항우의 ‘힘으론 산을 뽑을 만하고, 기개는 세상을 덮을 만하다(力拔山氣蓋世)’란 말이 실제론 어떤 모습인지를 충분히 볼 수 있었다. 



▲ 운동을 하다 보면 우정이 샘솟는데, 이 때 공에 대한 집착력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시간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관리인이 오더니, “그곳은 잔디를 가꾸는 곳이라, 함부로 들락날락 거리면 안 됩니다”라고 주의를 줬기 때문이다. 그래서 게임이 시작된 지 10분도 지나지 않았지만, 그쯤에서 그만 둘 수밖에 없었다.                



▲ 어쩔 수 없이 축구는 십분 만에 끝이 났다. 아쉽고도 아쉽다.




남이섬엔 자전거 대여소가 있다

     

공놀이를 하지 못하게 되자, 원래 계획대로 자전거를 빌려 남이섬을 돌기로 했다. 은행나무길을 지나 섬의 중앙에 도착하니, 놀이터와 함께 자전거를 빌려주는 곳이 있더라. 자전거 대여료는 30분은 3.000원이었고 1시간은 5.000원이었다. 남이섬은 넓지 않기에 30분만 타도 모든 곳을 돌아볼 수는 있지만, 그러면 시간에 쫓기느라 정신없이 돌아보기만 해야 하기에 비추다. 당연히 1시간을 타야 그나마 여유롭게 구석구석 놓치지 않고 둘러보고 느낄 수 있다. 



▲ 남이섬 산책로에서 만난 다람쥐. 이곳엔 다람쥐가 정말로 많다.



이렇게 자전거를 탈 때마다 자전거를 배워본 적이 없는 규빈이가 걸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14년에 여의도로 트래킹을 갔을 때도 자전거를 타고 여의도 일대를 라이딩 했었는데, 규빈이는 초이쌤과 함께 이야기를 하며 그 시간을 보내야 했고, 15년 4월에 전주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그 땐 규빈이가 커플자전거조차 타지 않으려 했었는데, 지금은 그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태기와 성민이, 지민이와 규빈이는 커플 자전거를 각각 빌려 타기로 하며 규빈이만 타지 못하는 남겨지는 상황은 없게 되었다. 드디어 자전거를 타고 남이섬 일대를 편하게 둘러보기만 하면 된다. 과연 남이섬 전체는 어떨까?               



▲ 자전거 대여점에서 자전거를 빌린다. 드디어 남이섬을 맘껏 구경할 수 있게 되었다.




남이섬을 타고 자전거를 둘러 보다

     

자전거를 빌린 아이들은 각자 흩어져 달리기 시작했다. 누군가 팀을 나눠 준 것도 아닌데, 네 팀으로 나누어져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민석이와 지훈이와 현세가 함께 달렸고, 지민이와 규빈이, 태기와 성민이는 각각 커플 자전거를 타서 함께 달렸으며, 준영이는 혼자만의 라이딩을 하며 사색하는 시간을 즐겼고, 상현이는 승태쌤과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 커플 자전거로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태기와 성민이.



나는 민석이네 팀의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달리기 시작했다. 우리가 달리는 길 앞으로 태기와 성민이는 에너지가 넘치는 사나이들답게 전력 질주하여 쌩하니 스쳐 지나가 버린다. 커플자전거는 오히려 구르기 더 힘들 텐데도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우린 남이섬 곳곳을 달리고 또 달렸다. 한 바퀴만 돌기엔 시간이 많이 남아서 구석구석 모든 곳을 다 가보잔 생각으로 달린 것이다. 꼭 ‘낙동강-한강 자전거 여행’때와 멤버들이 비슷하기 때문인지, 그 당시의 기분이 물씬 났다. 



▲ 꼭 자전거 여행을 하듯 쉴 새 없이 달리고 또 달리는 아이들.



남이섬 곳곳은 산책하며 여유를 누릴 수 있도록 잘 꾸며져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얼마 달라지 않으니, 타조들이 살고 있는 곳이 보이더라. 아무래도 타조는 한국 땅에서 낯선 동물이고, 그만큼 신기한 동물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곳에선 아주 자연스럽게 먹이를 먹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으니, 한국이면서도 외국에 온 느낌이 들었다. 



▲ 자연스럽게 먹이를 먹는 녀석들. 참으로 태평한 광경이다.



그리고 조금 있으니 기차가 달려가더라. 처음엔 ‘전시물로 놓은 기차에 사람이 탄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느린 속도로 이동하는 것을 보고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건 꼭 에버랜드의 꼬마기차 비슷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 기차가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기차가 있다. 한 번 타는데 이천원이라고 한다.



한참을 달려 남이섬 남쪽 끝까지 달리면 통나무다리가 놓여 있다. 강 위로 설치된 통나무다리를 건너는 맛은 꼭 자연 속으로 파고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비록 자전거를 타고 건널 수는 없기에 끌고 가야 하지만, 통나무 다리를 건너는 느낌은 어느 것에도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                



▲ 통나무다리를 건너는 기분도 상쾌하다.




남이섬에선 빠름보단 느림으로효율보단 비효율로

     

구석구석 가볼 만한 곳은 모두 달렸지만, ‘남이장군묘’엔 가보지 못했다. 이곳은 애써 찾아야만 겨우 갈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우린 외곽으로만 달렸으며 안을 세밀하게 보면서 달리진 않았기 때문에 놓친 것이다. 진짜 남이장군의 묘는 경기도 화성시에 있고, 이곳은 역모를 꾀한다고 유자광이 모함하여 능지처참을 당하게 된 후에, 그 시체가 묻혀 있다는 전설이 전해오는 돌무더기를 묘로 만든 곳이라고 한다. 가묘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남이섬이란 이름의 유래에 해당되는 장소이니만치 한 번쯤은 가보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느라 결국은 가보지 못하고 남이섬 자전거 여행은 끝이 났다. 



▲ 남이섬 장군묘를 이번엔 볼 수 없었지만, 다음엔 꼭 볼 수 있기를.



자전거를 타고 몇 바퀴 돌아보니, 맘만 먹으면 남이섬 전체를 돌아보는데 30분이면 충분하다는 것을 알겠더라. 하지만 그렇게 하면 어디까지나 ‘모두 돌아다녀 봤다’는 생각만 충족시켜줄 뿐이지, 실제로 기억에 남는 것들은 없게 된다. 2009년에 국토종단을 했을 때 종단 자체가 목표였기에 그 날 그 날 최대한 많이 걸어야 한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한 달 만에 목포에서 고성까지 걸으며 종단이란 꿈은 이뤘지만, 각 지역에 대해 기억에 남는 건 그다지 없었다. 모든 곳은 그냥 스쳐 지나가는 곳일 뿐, 사람과 마주치거나 상황과 부딪혀 기억에 남을 만한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번 걸어 다녀 봤다’는 뿌듯함만 있었을 뿐,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런 아쉬움 때문에 2011년에 사람여행을 할 땐 사람과 상황과 만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여행을 떠난 것이다. 



▲ 남이섬에 왔으면 빠름이나 효율은 버리고 그저 즐겨볼 일이다.



이처럼 남이섬도 그저 빨리 둘러보는 것을 목표로 삼기보다, 천천히 음미하며 구석구석 느끼겠다는 목표로 삼는 것이 중요하다. 규모가 크지 않지만 곳곳에 여러 조형물들이 있고, 다양하게 꾸며져 있다 보니 느긋이 즐기며 다니면 된다. 

그러니 늘 빠름만을 추구했던 사람, 효율만을 중시했던 사람, 많이 봐야 한다는 강박에 빠져 있던 사람, 한 시도 쉴 수 없다고 생각하던 사람이라면, 남이섬으로 배를 타고 들어오는 순간부터 그런 마음들을 북한강에 던져 버려야 한다. 그래야만 남이섬의 묘미를 맘껏 느낄 수 있고, 비로소 남이섬에 투영된 나의 망상들을 볼 수 있다. 어찌 보면 남이섬이야말로 효율을 거부해야만, 허영을 차단해야만 자세히 볼 수 있고 오래 볼 수 있는 깊은 맛이 있는 섬이라 할 수 있다.                



▲ 천천히 걸으며 이 순간에 푹 잠겨 보는 것이다.




최고의 고기파티를 기록하다

     

그곳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먹고 천천히 걸어서 콘도로 돌아왔다. 그리고 곧바로 저녁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오늘 저녁은 고기파티다. 단재학교에서 단체여행을 갈 때면 숯불을 피우고 고기를 구워서 함께 먹는다. 아무래도 소 한 마리도 거뜬히 먹을 수 있는 왕성한 식욕의 청소년들과 함께 여행을 하는 것이다 보니 이런 식의 푸짐한 고기파티는 결코 빠질 수가 없고, 아이들도 여행하면서 가장 기대하는 시간이라 할 수 있다. 



▲ 2014년 3월에 석모도에 갔을 때의 고기파티. 여행의 백미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여느 고기파티와는 달리 이번 고기파티엔 두 가지 다른 점이 있었다. 우선 첫째는 시기가 다르다는 점이다. 늘 여행의 마지막 날에 고기파티를 했던 데 반해, 이날은 여행 첫날에 고기파티를 했던 것이다. 그건 아이들이 고기를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많은 요리를 하기에 이곳 주방은 작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번 여행에선 두 번의 저녁을 준비해야 했는데, 한 번은 고기파티를, 다른 한 번은 세 팀으로 나누어져 각자 정한 요리를 하기로 했다. 그러니 당연히 세 팀이 요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부엌이 커야 했고 요리도구들도 넉넉해야 하는데, 이곳은 그러지 못했던 것이다. 그에 비해 내일 가게 될 펜션은 주방도 두 군데에 있고, 도구들도 넉넉하기에, 지금까지와는 달리 첫 날에 고기파티를 하게 된 것이다. 



▲ 여행 첫 날에 하는 고기파티. 아이들은 열심히 불을 붙인다.



둘째는 고기를 굽는 사람이 다르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고기는 교사들이 굽고 학생들은 먹고 정리하는 것을 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굽는 동안에 노릇노릇 익은 가장 맛있는 고기를 먹을 수는 있지만, 상추에 싸서 느긋하게 먹을 수는 없었다. 물론 간혹 아이들이 쌈을 싸서 주기도 하고 밖에 나와 도와주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잠시 뿐이어서, 교사가 편하게 고기를 먹을 순 없었다. 하지만 이때는 180도 달랐다. 불을 붙일 땐, 지민이와 규빈이, 태기가 승태쌤을 도와주었다. 그러니 서로 신나게 놀이를 하듯 불을 붙일 수 있었던 것이다. 승태쌤은 꼭 이소룡이 기합을 넣듯 “합~ 합!”이란 말로 기합을 넣으며 부채질을 했고, 아이들은 그 모습과 소리가 재밌는지 연신 깔깔거리며 웃었다. 이 모습이야말로 단재학교의 저력 같은 거라고나 할까. 교사도 모두를 위한 일을 하는 것이 신이 나고, 아이들도 그런 모습을 보며 신나게 함께 해나가는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이날은 그뿐만 아니라, 고기를 구울 때도 아이들은 떠나지 않았다. 민석이와 태기, 규빈이가 열심히 고기를 구워서 우리에게 보충해줬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모처럼만에 고기가 타나 안 타나 신경 쓰지 않고 자리에 편하게 앉아 채소에 고기를 쌓아 푸지게 먹을 수 있었다. 전체여행 중 이런 경험은 정말 처음이었으니, 이 날의 감흥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 아이들이 직접 나서서 고기까지 굽는다. 참으로 보기 좋다.



그리고 재밌는 점은 이날만큼은 아이들도 자신이 나서서 일을 하는 것에 전혀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고기를 먹다가 고기가 다 떨어지면, 지훈이에게 “고기 좀 더 가져와라”라고 명령조의 말투로 장난스레 말을 한다. 그러면 지훈이는 아무런 토도 달지 않고, 화도 내지 않고 당연히 자신의 일인 양 가서 고기를 받아다줬다. 그 덕에 나는 하나도 움직이지 않고 맘껏 채소와 고기를 먹을 수 있었으니, 이것이야말로 ‘건빵 배불리 먹느라, 학생들 신경조차 쓰지 않아’라는 헤드라인 뉴스의 카피로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였고, 단재학교에서의 5년 동안의 전체여행 중 단연 최고의 순간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재밌는 사실은 배불리 먹은 사람은 많지만, 역시나 고기를 굽는 사람은 그렇게 넉넉하게 먹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민석이는 여행기에 ‘나중에 먹기 시작했을 때는, 고기가 거의 없는 상태였고, 결국 얼마 먹지 못하고 고기 파티는 끝났다’라고 거의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아쉬움을 한 가득 담아냈다. 이 문구야말로 고기 굽는 자의 비애를 충분히 담아낸 명문이라고나 할까. 

드디어 우리의 고기파티는 끝났다. 이제부턴 이번 전체여행의 컨셉인 ‘공포여행’을 즐길 차례이다. 과연 이곳에서 우린 어떤 납량특집을 만들어갈 수 있을까?



▲ 먹을 때만큼은 세상의 그 어느 순간보다도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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