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건빵 Jun 08. 2016

공원에서 런닝맨을 하다

평화의 공원 런닝맨 2 (16.04.22)

10시에 월드컵경기장역에 모이기로 했다. 단재학교의 등교시간은 8시 50분까지인데, 그 시간에 잘 맞춰 나오는 아이들은 어딜 가든지 늦을 것을 염려하지 않아도 되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밖에서 모일 때도 마찬가지다. 자기의 시간이 귀한 만큼 다른 사람의 시간도 귀하고, 내 시간이 아까운 만큼 다른 사람의 시간도 아까울 텐데, 매번 이러니 이해도 안 될뿐더러,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이럴 때 아이들은 흔히 시간 자체를 문제 삼곤 한다. 이를 테면 “8시 50분에 맞추려니 너무도 이른 시간이라 지각을 하게 되거든요. 그러니 30분만 늦춰주세요”라고 말이다. 단순히 생각해보면 얼핏 설득력이 있는 말처럼 들리지만, 늦는 것과 시간은 그다지 상관이 있다곤 할 수 없다. 오늘처럼 모이는 시간이 10시로 잡혀 등교시간보다 1시간 10분이나 늦춰지더라도 늦던 아이들은 여지없이 늦기 때문이다. 시간이 문제가 아니라 마음이 문제이며, 마음이 문제라기보다 ‘그 시간까지 꼭 가야 한다’는 인식 자체가 없다는 게 문제일 뿐이다.   



▲ 늦는 아이들 때문에, 오죽했으면 롯데월드 트래킹을 갈 땐 학교에서 잠을 자기도 했다.



             

상현이의 트래킹 합류그렇게 한 걸음씩 나아가도 충분하다 

    

오늘은 올해 들어서 트래킹에 참여하지 않았던 상현이가 처음으로 트래킹에 함께 했다. 어머니는 모이는 시간에 맞춰 홈플러스 주차장 입구까지 상현이를 데려왔다고 전화해주시더라. 그래서 1번 출구로 들어오면 된다고 말해줬지만, 어머니도 처음 온 곳이기에 지하철역 입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고 하더라. 그렇다고 나도 아는 곳은 아니기에, ‘다음지도’를 켜놓고 위치를 확인해 가며 주차장 입구로 갔고 그곳에서 상현이를 만날 수 있었다.  



▲ 14년 6월 24일에 영화팀 아이들과 사진을 찍었다. 그 때는 상현이가 단재학교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조금씩 적응을 하던 때였다.



상현이가 마지막으로 트래킹에 참석한 것은 작년 7월에 있었던 남산 트래킹 때였다. 그 때로부터 단순히 계산해보면 9개월 만에 다시 트래킹에 참석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작년 2학기엔 트래킹을 하지 않았으니, 올해 3월부터 시작된 3번의 트래킹만 빠진 후에 참석했다고 보면 된다. 일반적으로는 당연히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상현이는 아직도 함께 활동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고 있기에 오늘처럼 함께 하려 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마음으로 자꾸 피하려 하지 말고, 도망치려 하지 말고 한 걸음씩 나올 수 있다면, 그걸로 된 것이다. 조금 아쉽다면, 작년 여름에 영화팀에서 떠난 1박 2일 자전거여행 이후에 좀 더 나아졌으면 했는데, 그 때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 없다는 점이 그럴 뿐이다. 

상현이가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준영이를 뺀 나머지 아이들이 모두 모였다. 30분 정도 늦게 시작됐다. 날씨가 쾌청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그런다고 흐리기만 할 뿐 비는 내리지 않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이 정도면 나름 런닝맨을 하기에 딱 좋은 날씨다.                



▲ 정말 오랜만에 트래킹에 나온 상현이. 다시 한 걸음씩 그렇게 나가자.




하늘공원에서 평화의 공원으로 장소가 변경된 사연

     

이곳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이번 트래킹 장소는 ‘하늘공원’이었다. 그건 3월 초에 회의를 하며 트래킹 장소를 정할 때 아이들이 의견을 내어 결정된 사항이었다. 그래서 그 결정에 따라 지금까지 정해진 장소들로 갔던 것이다. 물론 저번에 간 어린이대공원은 회의 때 의견으로 나오지 않은 예외의 장소라 할 수 있는데, 그런 경우엔 비상 회의를 소집하여 장소를 바꿔야할 이유를 설명하고 모두 동의할 경우 바꿀 수 있는 것이다. 그 땐 ‘봄이 가기 전에 봄꽃놀이를 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에 가자’는 의견이 반영되어 예외적인 장소로 간 것일 뿐, ‘그런 정도가 아니면 원래 결정된 대로 따르자’는 합의가 있었기에, 이번엔 바꾸지 않고 진행된 것이다. 

그래서 역에 도착하여 하늘공원에 가기 위해 지도를 살펴볼 때 승태쌤이 “하늘공원으로 갈 수도 있지만, 거기까지 가려면 멉니다. 바로 이 근처에 평화의 공원이 있어 런닝맨을 하기에 더 좋으니, 그곳으로 갑시다”라고 말했다. 아이들도 어떤 장소에 간다는 것보다 그저 야외활동을 나와 무언가를 한다는 게 더 좋았기에, 별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승태쌤 말을 따라 평화의 공원으로 움직였다.                



▲ 이곳에서 '하늘공원'이 '평화의 공원'으로 변경되었다.




런닝맨의 시작과연 최선을 다하여 놀 것인가최선을 다하여 망칠 것인가?

     

이미 평화의 공원에도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더라. 어린이대공원과는 달리 대부분은 소풍을 나온 학생들이었다. 우린 난지연못을 지나 평화의 공원 안쪽의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런닝맨은 3판 2선승제로 시작했다. 팀은 저번에 회의를 할 때 지민이와 규빈이가 가위바위보를 하여 한 사람씩 데려가는 것으로 결정했다. 그래서 지민이네 팀은 지훈, 상현, 성민이가 정해졌으며, 규빈이네 팀은 민석, 현세, 태기가 정해졌다. 솔직히 이 게임에서 이긴다고 해서 뭔가 혜택이 있다거나 선물이 있는 건 아니다. 그런 것 없이도 ‘호모루덴스’처럼 재미있게 놀 수 있고, 최대한 움직이며 신나게 놀 수 있기를 바란 것이니 말이다. 



▲ 회장 지민이의 사회로 진행되는 트래킹 회의.



오늘 런닝맨의 성패는 어찌 보면 회의 도중에 “내일 게임이 시작하자마자 내가 등을 내밀 테니까, 바로 떼어줘. 그러면 난 벤치에 가서 쉬면 되지”라고 말한 아이에게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사람은 주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데, 그 중에서 특히나 긍정적인 영향보다 부정적인 영향을 쉽게 휩쓸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은 열심히 할 마음이 있고, 이 시간을 맘껏 즐기고 싶은 마음이 있을지라도 주위에서 다른 아이들이 분위기를 조장하며 ‘뭘 그리 열심히 하냐?’라고 말하면, 그 마음은 눈 녹듯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런 것처럼 막상 런닝맨이 시작됐는데, 그 아이가 설렁설렁하면, 그걸 보고 있는 아이들도 “쉬엄쉬엄 하자”며 분위기를 흐트러뜨릴 수도 있다. 어찌 되었든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그 아이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지, 그리고 그런 반응에 따라 아이들의 분위기는 어떻게 달라지는 이제 지켜보는 수밖에 다른 방법은 없다. 



     

 ▲ 물 한 모금도 나눠 먹는 우애 가득한 모습. 덥던 날 물 한 모금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런닝맨 1차전승부욕이 만든 밸런스 붕괴

     

규빈이네 팀은 자신감이 넘치는지 적지로 한달음에 달려 들어갔다. 좀 더 신중하던 지민이네 팀은 잠시 쭈뼛하더니, 금방 대열을 정비하고 2대 2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열정이 넘치던 태기는 곧장 지훈이에게 달려들었다. 체급부터가 차이가 나지만 아마도 지훈이를 둔한 곰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지훈이는 둔한 곰이 아닌, 날렵한 곰이었고 급기야 힘으로 제압하더니 손쉽게 이름표를 떼고야 말았다. 이로써 태기는 뭘 하기도 전에 이름표가 떼이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 호기롭게 달려들었지만, 호쾌하게 이름표가 떼어졌다.



지민이는 규빈이와, 민석이는 성민이와, 현세는 상현이와 한바탕 전투를 벌였다. 당연히 여기서 변수는 지훈이가 얼마나 열심히 참여하느냐 하는 것이다. 지훈이는 아이들과 체급부터가 다르기 때문에 조금만 분발해도 4명의 이름표를 뗄 수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런닝맨에 꾹이가 있다면, 단재학교엔 지훈이가 있다’고 외칠 수 있을 정도다. 



▲ 이 때까지는 그래도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고 최선을 다했다.



팽팽한 긴장이 감돈다. 서로 날렵함이나 힘의 정도가 비슷하니 더 팽팽하게 경기가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이때 보다 못한 지훈이는 맘을 먹었는지, 달려들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현세의 이름표를 순식간에 떼어버렸고, 급기야 민석이까지 잡아 이름표를 떼어버렸다. 금방 전까지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는데 지훈이가 움직이자마자 긴장감은 완전히 사라지고, 균형추는 한쪽으로 일방적으로 기울어졌다. 게임을 할 때도 밸런스가 붕괴되면 게임을 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듯, 이 순간만은 정말로 그랬다. 심지어 게임이 시작되기 전까지 멤버를 바꿔달라고 애원하던 지민 팀장의 얼굴엔 미소까지 번질 정도였으니, 긴 말해서 무엇 할 것인가. 마지막으로 남은 규빈이는 자신의 이름표를 손으로 잡는 집착력과 깡다구를 보여줬지만 3명의 아이들 앞에선, 특히 지훈이 앞에선 ‘독 안에 든 쥐’일 수밖에 없었다. 이로써 1차전은 지민팀의 압승!



▲ 지훈인 두 개의 이름표를 뗀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세 명째 떼어내려 하고 있다. 단재학교 꾹이!



애초에 고민했던 것처럼 그 아이의 말만큼 현실에선 크게 영향을 끼치진 않았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과연 2차전의 승부도 그렇게 쉽사리 났을까? 삶은 그래서 재밌는 것이다. 한 번 처참히 당한 규빈팀은 심기일전을 하며 2차전을 준비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승부욕이 넘쳐도 주린 배는 채워야 했기에, 우린 그 자리에 돗자리를 펴며 식사준비를 했다.  



▲ 치열한 1차전이 끝났다. 막상 시작하니, 정말 재밌게 게임을 하더라.




목차     


1. 여유를 누리러 평화의 공원으로 떠나다

여유는 찾아오는가?

여유는 찾아야 하는 것

이번 트래킹의 컨셉, 런닝맨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것일 뿐’이라는 비겁한 변명     


2. 공원에서 런닝맨을 하다

상현이의 트래킹 합류, 그렇게 한 걸음씩 나아가도 충분하다

하늘공원에서 평화의 공원으로 장소가 변경된 사연

런닝맨의 시작, 과연 최선을 다하여 놀 것인가? 최선을 다하여 망칠 것인가?

런닝맨 1차전, 승부욕이 만든 밸런스 붕괴

   

3. 호모루덴스들평화의 공원에서 놀다

점심시간에 유용하게 쓰인 지훈이의 쓰레기봉투

민석이가 치우는 것과 현세가 치우는 것의 차이

런닝맨 2차전, 자체 밸런스 패치의 결과?

런닝맨 3차전, 치열함이 아닌 마지못함으로 마무리되다

런닝맨으로 함께 어우러진 이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