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건빵 Mar 15. 2016

좌충우돌 트래킹 회의를 기록하다

통인시장 트래킹 1 (16.03.11)

단재학교에선 재작년부터 트래킹을 하고 있다. 2013년부터 영화팀은 등산을 거의 한 달에 한 번씩 갔기 때문에, 그걸 영화팀뿐만 아니라 전체 학생들이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만든 것이 바로 트래킹이었다. 

처음엔 등산도 하고, 가볍게 산책도 하자는 의미로 만든 것인데, 아이들은 트래킹이란 단어를 듣자마자, ‘저건 등산과는 다른 의미일 것이다’는 것에 꽂힌 듯했다. 아무래도 움직이길 좋아하지 않고 최대한 걷지 않으려 하다 보니 그런 식으로 생각하게 되는 건 당연한 듯 보였다. 그래서 사전에서 찾아보니 ‘트레킹trekking은 느리지만 힘이 드는 하이킹이라는 정도의 의미로, 등반과 하이킹의 중간 형태이다.’라고 되어 있다. 이 개념 자체가 되게 아리송송한 편이기에, 서로가 원하는 것에 따라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처음 우면산 둘레길을 갈 땐 교사가 계획하고 학생은 따르는 방향으로 했지만, 그 이후부턴 아이들이 계획을 짜서 함께 움직이는 식으로 진행하게 되었다.                



▲ 12년과 13년에 영화팀은 등산을 많이 다녔다. 여기서 트래킹을 하게 되었다. 




지민이의 고군분투는 그 아이의 성장을 위한 과정이다

     

작년엔 금요일마다 바쁜 일정들이 꽉 차 있어서 트래킹을 거의 하지 못했다. 남산을 따라 거닐었던 게 작년의 유일한 트래킹이었던 셈이다. 그러다 보니 트래킹이라는 것 자체가 어색한 프로그램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올해 다시 계획을 짜야 하는 아이들은 끊겨진 흐름에 기겁해야 했던 것이다. 승태쌤은 수요일 오후에 학생회장인 지민이에게 “금요일엔 트래킹을 가니, 몇 가지 계획안을 만들어 오면, 목요일엔 아이들과 회의해서 결정하는 걸로 하자”고 말했다. 지민이는 “알았습니다”라고 대답하긴 했지만, 한 번도 계획을 짜본 적이 없기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손도 못 댔다. 이럴 땐 차라리 자신이 아는 정도 내에서 조금이라도 해보며 도움을 요청하면 좋으련만, 아직도 누군가가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큰 탓에 그러지 못하고 있다. 



▲ 2월 18일 석촌호수 산책 때 지민이와 대원이와 함께 걸었다. 둘은 이렇게 오붓하게 잘 크고 있다.



목요일 아침에 학교에 온 지민이는 “아는 곳도 없고, 어떻게 계획을 짜야 하는 줄 몰라서 아이들과 회의하여 정하도록 해볼게요.”라고 말했다. 예전 같았으면 그건 너무 자신의 책임을 전가하거나 방기하는 것 같아서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떠맡으려 하는 것이 지민이에겐 얼마나 큰 변화인 줄 알기에 가만히 두고 보기만 했다. 사람의 성장은 일직선상으로 진행되지 않고 비약적으로, 불규칙적으로 진행된다. 그래서 전혀 미동도 하지 않던 아이가 어느 순간 생각이 많아지고 해야겠다는 생각이 생기면 책임감을 가지기도 한다. 예전의 지민이었으면 회장을 맡으려 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이렇게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에선 짐짓 남의 탓을 하며 내빼려 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 도망치려 하지 않을뿐더러, ‘자신의 일’이라는 생각으로 해내려 하는 것이니 응원해줄 수 있었다. 

아이들과 만나며 가장 강하게 드는 생각은 ‘어른의 관점을 어떻게 버릴 것인가?’하는 점이다. 어른의 관점으로 아이를 바라보기 시작하면, 미성숙해보이고, 미진해보이며, 늘 책임감도 부족하고, 대충대충 사는 것처럼만 보여 못마땅한 것만 도드라져 보일 수밖에 없다. 자기 자신도 완벽한 인간이 아니면서도 유독 아이들에겐 완벽한 인간상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평가하려 한다. 그러니 거기서부터 서로에 대한 불신이 싹트고 아이의 가능성을 키워주기보다 가로막는 역효과가 생기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과의 관계에선 어른의 관점(이상적인 관점, 불멸의 아이를 추구하는 관점)를 버리고, 어떻게 아이의 관점(현실적인 관점, 역사적인 아이를 받아들이는 관점)을 회복하려 하느냐가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 당당하게 앞에 서서 아이들을 이끌며 회의를 진행한다.




트래킹 회의 1 - 우리 지금 노는 건가요?

     

회의가 시작되었다.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앉았고 회장인 지민이는 전면에 서서 회의를 진행한다. 지민이는 “트래킹을 가고 싶은 장소를 말해주세요”라고 안건을 이야기하니, 아이들은 각자 의견을 내놓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때조차 진지함보다는 장난식으로 받아치는 경우가 허다했다. ‘올림픽공원’, ‘석촌호수’가 나오는 건 너무도 당연(이 두 곳은 단재학교에서 체육활동을 하러 가는 곳임)했고, 심지어 제주도, 일본과 같이 허무맹랑한 얘기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나온다. 그러다 간혹 ‘하늘공원’, ‘검단산’과 같이 꽤 그럴듯한 의견이 나오면 상황이나 사정을 들어보려 하지도 않고 비난부터 하기에 바쁘다. 물론 단재학교는 소규모 학교이기에 서로가 친하고 어떤 생각이든 기탄없이 말할 수 있는 분위기이기에 이런 식으로 반응을 보이는 건 자연스럽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장난을 쳐야 하는 순간이 아닌, 진지해야 하는 순간마저도 그걸 구분하지 못하고 장난으로 일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사람이 성장해 간다는 것은 어떤 상황인지 판단할 수 있으며, 그 상황에 맞게 행동할 수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러려면 당연히 내 안으로만 파고드는 시선을 거두어 외부로 시선을 돌릴 수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조금이나마 알려하고, 그런 생각들이 모여 어떤 분위기를 만들었는지 알 수 있으니 말이다. 시나브로 이런 과정들을 통해 서로 배려하고 이해할 수 있으며 나아질 것이라 생각한다.                



▲ 가위 바위 보를 하며 무언가를 정하고 있다.




트래킹 회의 2 - 준비 또한 대충대충

     

이 과정을 통해 ‘통인시장’, ‘롯데월드’, ‘하늘공원’, ‘남한산성’, ‘검단산’이 결정되었다. 아이들이 고군분투하며 짠 것인데, 나름 서울 근교에서 갈 수 있는 곳으로는 잘 짜였기에 기분이 좋았다. 

내일 갈 곳이 ‘통인시장’으로 정해졌으니, 이제 구체적인 계획을 짜야 했다. 그래서 두 팀으로 나누어 각자 조사를 하고 함께 모여 하나의 계획으로 정리하기로 했다. ‘민석, 지훈, 지민(민지팀)’와 ‘준영, 상현, 태기(준태팀)’가 각각 팀이 되어 계획표를 짜기 시작했다. 민지네 팀에선 두 사람은 그래도 검색도 해보고 지도도 봐가며 계획을 짜는데, 지훈이는 자꾸 딴 짓을 하더라. 전혀 엉뚱한 정보를 찾아본다던지, 다른 검색어를 치며 정보 찾는 걸 방해했다. 준태네 팀에서 상현이는 컨디션이 좋지 않아 함께 계획을 짜지 못했다. 그래서 나머지 두 사람이 의기투합해서 해야 하는데 태기는 장난만 치고 싶은지 자꾸 딴 짓만 했고 대부분을 준영이가 했다. 시간을 무한정으로 주면 계속 지체될 것 같아 3시 20분까지 마치고 내려가서 의견을 모으기로 했다.   



▲ 두 팀이 회의를 진행한다. 장난처럼 대충하는 것처럼 하고 있다.



             

트래킹 회의 3 - 성장의 바로미터지적을 받아들이는 정도

     

시간이 되어 함께 모여 회의를 하는데 아무래도 진지하게 계획을 짠 것이 아니니만큼,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초이쌤은 “이대로 끝내기보다, 나는 너희들이 틀에 맞춰서 조사를 제대로 하고 다시 모여 의견을 나눈 후에 정리하는 게 좋을 거 같아”라고 의견을 제시해줬다. 그에 따라 아이들은 너무 대충했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그 의견을 받아들이고 다시 조사하기 위해 올라왔다. 

이 모습은 어찌 보면 아이들의 성장을 보여준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아무리 대충했다고 생각할지라도 어른이, 교사가 지적하면 반감이 생기게 마련이고, 또는 끝나는 시간이 늦어지면 불만이 가득해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예전엔 끝나는 시간을 훌쩍 넘겨 회의를 하면 아이들 사이에선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짓고, ‘좀 빨리 끝내지 뭘 저리 질질 끌어’하는 반응을 보였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계획은 계획대로 미진한 상태로, 서로 얼굴만 붉히며 성급하게 마무리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이 날은 예전의 모습과는 완벽하게 다른 모습이었다. 아이들은 초이쌤의 말을 진지하게 들었고 불만 가득한 표정이 아닌, ‘우리들이 너무 대충했지’라는 생각으로 바로 받아들였으니 말이다. 아이들이 얼마나 성장했는지는 이런 자잘한 변화를 통해서도 여실히 볼 수 있다. 

컴퓨터 앞에 앉은 아이들은 아까와는 달리 제대로 폼을 만들고 그 안에 시간대별로 활동을 채워 넣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아까와는 완벽하게 다른 계획표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 민지네가 만든 계획표. 처음보다 훨씬 정성도 들어가고 체계적으로 바뀌었다.




트래킹 회의 4 - 우여곡절 끝에 계획이 정해지다

     

민지네는 시간대별로 세부적으로 계획을 짜왔기에 기본적인 폼에 가장 가까웠으며, 준태네 팀은 경복궁이나 통인시장에서 어떻게 활동할지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서로가 서로의 부족한 점을 메우며 하나의 완벽한 계획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사람이 많든, 적든 의견을 모으고 그걸 하나의 계획표로 만든다는 건 힘든 일이다. 서로의 이해가 상충하고 바라는 것들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난감한 상황에서 어떻게 의견을 모으고 하나로 만들어 가느냐를 충분히 고민할 수 있는 것은 그것대로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고민을 진지하게 해본 사람이, 그리고 그렇게 의견을 조율해본 사람이 앞으로 우리가 살아야 할 세상에선 정말 필요한 사람일 테니 말이다. 아마도 이번 트래킹 회의를 통해 아이들도 그런 감을 조금이나마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고 아주 미세하게나마 느꼈다면 그걸로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 평소보다 20분 정도 늦게 끝났기에 불만이 있을 만도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목차     


1. 좌충우돌 트래킹 회의를 기록하다

지민이의 고군분투는 그 아이의 성장을 위한 과정이다

트래킹 회의 1 - 우리 지금 노는 건가요?

트래킹 회의 2 - 준비 또한 대충대충

트래킹 회의 3 - 성장의 바로미터, 지적을 받아들이는 정도

트래킹 회의 4 - 우여곡절 끝에 계획이 정해지다     


2. 경복궁의 향원정과 건청궁을 아시나요?

여유로운 아침이 산산이 부서진 이유

시간에 쫓김은 불행이지만, 살아 있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조촐한 인원이 경복궁에 모이다

익숙하지만 그만큼 잘 모르는 곳, 경복궁

향원정에 와서 이름을 탐색하다

건청궁, 고종의 찬란한 꿈과 스러진 꿈   


3. 통인시장 북촌한옥마을을 가다

손에 잡히지 않는 순간에만 느껴지는 간절함이란 감정.

통인시장 1 - 여기선 엽전으로 음식을 산다

통인시장 2 - 엽전체험으로 엽전의 의미를 알게 되다

그래 결심했어~

북촌한옥마을과 전주한옥마을을 비교하며

토할 때마다 난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




매거진의 이전글 흔들리되 방향성이 있는 사람으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