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인시장 트래킹 2 (16.03.11)
10시까지 경복궁역 5번 출구에서 모이기로 했다. 평상시보다 한 시간 정도 시간의 여유가 있으니 한껏 여유를 부리며 아침을 맞이했다. 눈은 떠졌지만 따뜻한 이불 속에 누워서 행복을 만끽했고, 좀이 쑤실 때쯤 일어나 씻었다. 그럼에도 시간은 겨우 8시가 살짝 넘었을 뿐이다. 강동구청역에서 9시 17분에 출발하는 전철을 타면 되니, 맘은 한결 가볍다.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신경 쓰지 않았음에도 무려 25분이나 남았다.
그제야 가방을 챙기고 외출복을 갈아입고 이어폰을 귀에 꽂아 디어클라우드Dear Cloud의 ‘늦은 혼잣말’이란 노래를 들으며 길을 나섰다. 그 순간은 어느 것에도 비할 수 없는 나 자신에게 가장 충실한 시간이었다.
집에서 강동구청역까지는 10분 정도의 거리인데,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시간에 쫓기지 않고 여유롭게 걸어가고 있으니, 행복이 절로 밀려온다. 이미 초등학교 아이들은 모두 등교를 마친 뒤라 간간히 학부모님들만 눈에 띄며, 출근시간도 살짝 비낀 후라 거리엔 한산함이 묻어난다.
역 안으로 들어가 개찰구 앞에서 여느 때처럼 지갑을 꺼내려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런데 그 때 평상시와는 다른 느낌에 온 몸이 경직되고 말았다. 당연히 있다고 믿었던 지갑은 없고, 카메라만 덩그러니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희망의 끈을 놓기엔 일렀다. 주머니에 지갑이 없을 경우, 가방에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평상시에도 가방 앞주머니에 지갑을 여러 번 넣고 다녔기에 마지막 기대를 품고 가방을 뒤져보았다. 그런데 럴 수 럴 수 이럴 수가~ 여태껏 이런 경우는 없었는데, 하필 이 날엔 카메라를 챙기는 것만 신경 쓰느라 지갑은 전혀 신경조차 쓰지 못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방법은 없었다. 집이 멀지 않기에 지갑을 가지러 갔다가 오는 방법 밖에는 없었다.
그래서 집을 향해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역으로 향할 때만 해도 완벽한 자유와 여유로움을 느끼던 것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라 할 수 있다. 뭔가에 쫓기기 시작하니, 마음은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흐트러졌고 그에 따라 일념(빨리 지갑을 가져와야 한다)만이 온 생각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집으로 달려 들어가 지갑을 찾아보니 글쎄 어제 입었던 외투에 그대로 있는 게 아닌가. 그래서 바로 가지고 나왔다. 그제야 한 고비를 넘었기 때문인지, ‘강동구청역으로 갈까? 천호역으로 갈까?’라는 고민이 들기 시작하더라. 강동구청역까지는 걸어서 10분 거리이며 6분마다 전철이 배차되어 있는데 반해, 천호역까지는 15분 거리이며 4분마다 배차되어 있다. 어차피 천호로 가야 하기에 강동구청역에서 타면 그만큼 시간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걷는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천호로 바로 가서 타기로 맘먹었다. 얼추 시간을 계산해 보니, 이대로만 갈 수 있다면 늦지 않고 도착할 수 있는 시간이더라. 그래서 그 때부턴 열나게 뛰기 시작했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여유를 누리며 이 순간이 주는 행복을 만끽했지만, 지금은 시간에 쫓기며 늦지나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하지만 때론 불안이야말로 살아 있는 기분을 제대로 느끼게 해준다. 그래서 반복되는 일상을 살거나, 감정의 동요가 일지 않는 완벽한 삶을 살 때 사람은 지루하다는 감정이 들며 새로운 도전을 하려 하는 것이다. 새롭다는 건 기대와 함께 두려움이 동시에 따라오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 두려움이야말로 무뎌진 신체의 감각을 깨우는 일이며 살아있다는 기분을 느끼게 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불안한 마음은 그 순간을 온전히 느끼게 했다.
9시 52분에 경복궁역에 도착했다. 아침에 본이 아니게 헐레벌떡 움직였던 것에 비하면 늦지 않은 것이니 정말 다행이다. 5번 출구 쪽으로 올라가니, 민석이와 초이쌤만 보이더라. 민석이는 글쎄 9시에 도착하여 기다렸다고 한다. 시간을 헷갈렸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냥 집에서 일찍 나오고 싶어서였는지 알 수는 없지만, 기다려야 하는 한 시간은 길고도 길었을 것이다. 그래서 고궁박물관에 들어가 몸을 녹이며 기다리다가 내려왔다고 하더라. 나머지 아이들은 10시가 조금 지나 모였다. 지훈이는 감기가 걸려 나오지 못했으며 상현이는 개인사정으로 나오지 못했고 준영이는 무단으로 결석했다. 현세는 받아야할 건강검진이 있어서 그걸 받고 바로 오기로 했다.
지상으로 올라가니, 햇빛은 밝고도 청명하게 대지를 내리쬐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바깥을 돌아다니기엔 추운 날씨다. 하긴 이제 봄이 서서히 오기 시작했으니, 이런 추위도 막바지라 표현하는 게 맞을 것이다.
이번 트래킹 계획은 민지네 팀에서 세웠고 대부분을 민석이가 도맡아서 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민석이의 인솔 하에 움직이게 되었다. 근정전에서 민석이는 “여기서부터 40분(이후에 20분을 더 추가하여 총 1시간동안 관람함)동안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11시 10분에 영추문에서 만나는 걸로 하죠”라고 제안을 하더라.
지금껏 경복궁엔 10번 이상 왔었다. 아무래도 서울의 상징적인 장소이다 보니, 누군가 올 때마다 당연히 찾게 되고 둘러보게 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여러 번 왔지만 잘 모르는 곳이 경복궁이기도 하다. 넓은 공간이기에 돌아다니느라 바쁘고 마구 돌아다니며 궁 내부를 보다 보면, 어디가 어딘지, 여긴 뭐하는 곳인지 하나도 모르겠다는 생각만 든다. 그런데도 여러 번 와봤기에 더 이상 신기할 것도, 호기심이 느껴질 것도 없는 그저 그런 곳이 되어버렸다. 그런 상황에서 교사라는 자격으로 또 이곳에 온 것이니, ‘아이들을 따라 무념무상으로 돌아다니게 되겠구나’라는 걱정이 앞서는 건 당연했다.
그런 상황에서 민석이가 자유롭게 관람하도록 시간을 준다고 제안한 것이니, 내 입장에선 반가운 말일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을 따라 다니지 않아도 되고, 그저 내가 가고 싶은 곳에서, 보고 싶은 곳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보면 되니 말이다. 그래서 이 날은 익숙하기에 놓쳤던 부분들을 좀 더 자세히 볼 생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난 경복궁의 뒤편에 있는 향원정을 향해 걸어갔다.
향원정香遠亭은 호수 한 가운데 솟아 있는 정자로, 분위기도 남다르고 뭔가 경복궁의 그윽한 흥취를 느끼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근정전처럼 모든 사람이 한 번씩 둘러보는 곳이 아닌, 그나마 깊숙한 곳에서 느껴지는 한적한 분위기는 복잡해진 마음을 다잡게 하며 헝클어진 생각을 들여다보게 한다. 그러니 이따금 마음이 심란할 때 찾으면 제격이라 할 수 있다.
더욱이 정자의 이름이 무척이나 맘에 든다. 향원정의 뜻은 ‘향기는 멀수록 맑다香遠益淸’라는 한자를 줄여서 만든 것으로, 이 문장의 출처는 주돈이周敦頤가 쓴 「애련설愛蓮說」이다.
나(주돈이)는 유독 연꽃을 사랑한다. 진흙 속에서 나왔지만 더럽혀지지 않고, 맑고 잔잔한 물결에 씻어도 요염하지 않으며, 가운데는 비어 있으되 밖은 곧고, 넝쿨지거나 가지 치지 않으며,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고 우뚝하고 맑게 심어져 있어 멀리서 볼 수는 있되 가까이서 멋대로 가지고 놀 수는 없는 것이 연꽃이기 때문이다.
余獨愛蓮之出於泥而不染, 濯淸漣而不妖. 中通外直, 不蔓不枝, 香遠益淸, 亭亭淨植, 可遠觀而不可褻玩焉.
이 글은 자신이 왜 연꽃을 좋아하는지에 대해 풀어쓴 글이다. 더러운 곳에서 피어나지만 더럽혀지지 않고, 곧은 지조를 지키며, 향기는 멀면 멀수록 더욱 짙어지기 때문에 좋기 때문에, 그러한 연꽃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주돈이는 연꽃을 통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풍파에 흔들리고 비루한 세상 한 가운데서 살아가더라도 자신의 가치를 따라 더럽혀지지 않고, 인품의 향기를 지녔으되 겉으로 바로 드러나는 게 아닌 지낸 시간에 따라 그 향기가 짙게 배어나오는 그런 사람이 되고자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인재상은 현대의 인재상과는 완벽하게 대비된다고 볼 수 있다. 현대엔 자신이 잘하는 것을 어떻게든 뽐내어서 튈 수 있어야 하며, 끊임없이 가지를 뻗어 세력을 불려야 하고 남을 짓밟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끊임없이 말하기 때문이다. 저 정자의 이름을 짓던 시대의 풍조는 사라졌고, 지금 우리의 기억 속에도 남아 있지 않지만, 적어도 이곳에서 정자의 이름을 보는 사람들은 그 시대의 풍조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이 정자의 이름을 지은 사람은, 후대에 그런 풍조를 전해주고 싶어서 저렇게 이름을 지은 것이 아닐까.
향원정 바로 뒤엔 건청궁이 자리하고 있다. 재작년에 남한강 도보여행을 하며 명성황후 생가를 찾아가지 않았다면 이 건물에 대해서 관심 갖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때의 여행을 통해 이 건물의 역사적인 사건을 알고 난 후에 건물을 보는 것이니, 남다르게 느껴지더라.
이 건물은 고종이 흥선대원군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힘을 기르기 위해 경복궁 후원에 자신이 거처할 목적으로 만든 건물이다. 그렇기에 아버지의 영향력이란 외피를 벗어던지고, 자신만의 가치를 세우려 하던 고종의 찬란한 꿈을 이 건물을 통해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꿈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미 조선은 열강의 힘에 짓눌리던 시기였고, 청과 일본과 러시아의 틈바구니에서 혼란스럽던 시기였으니 말이다. 이 때 결정적으로 명성황후시해사건乙未事變이 일어나며 고종의 꿈은 순식간에 스러져 버렸고 결국 이 건물을 일본군이 허물며 역사 속에 고이 묻히고 말았다.
그렇기에 건청궁은 고종의 찬란한 꿈을 상징하는 건물이자, 그 꿈이 철저히 짓밟힌 건물이기도 한 셈이다. 이와 비슷한 경우로는 부여의 정림사지를 볼 수가 있다. 정림사지는 부여가 수도를 공주에서 사비로 옮기며 중흥의 찬가를 읊은 곳이기도 하지만, 소정방에 의해 멸망당하며 절망의 애가를 읊조려야 했던 곳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보는 이 건물은 을미사변이 일어난 지 100년만인 2007년에 복원된 것이지만, 그래도 이런 식으로 고종의 꿈이 담긴 공간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홀로 거닌 경복궁 여행은 나름 재밌었다. 아직 시간이 꽤 남았기에 몸도 좀 녹이고 천천히 둘러볼 겸 민속박물관으로 가기로 했다. 하지만 그게 작은 소동을 일으키는 행동이 될지는, 그 때만해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목차
지민이의 고군분투는 그 아이의 성장을 위한 과정이다
트래킹 회의 1 - 우리 지금 노는 건가요?
트래킹 회의 2 - 준비 또한 대충대충
트래킹 회의 3 - 성장의 바로미터, 지적을 받아들이는 정도
트래킹 회의 4 - 우여곡절 끝에 계획이 정해지다
여유로운 아침이 산산이 부서진 이유
시간에 쫓김은 불행이지만, 살아 있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조촐한 인원이 경복궁에 모이다
익숙하지만 그만큼 잘 모르는 곳, 경복궁
향원정에 와서 이름을 탐색하다
건청궁, 고종의 찬란한 꿈과 스러진 꿈
손에 잡히지 않는 순간에만 느껴지는 간절함이란 감정.
통인시장 1 - 여기선 엽전으로 음식을 산다
통인시장 2 - 엽전체험으로 엽전의 의미를 알게 되다
그래 결심했어~
북촌한옥마을과 전주한옥마을을 비교하며
토할 때마다 난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